<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⑩해외는? 시카고 법의관 만나 보니…

“부유촌과 빈민가, 기대수명 30년 차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의학을 하려는 ‘미친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이 일을 하려 하지 않는데 법의학에 미래가 있을까요?” “현재 법의학자는 ‘사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책임만 주어진 전문가’에 불과합니다.” 권한은 없고 처우가 부족하다. 법의학자가 입을 모아 말하는 한국 법의학계의 현실이다. 

희소성으로만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직업이다. 한국의 법의학자는 전국을 통틀어 70명이 채 안 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더하다. 치아로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법치의학자는 전국에 7명, 뼈를 통해 개인을 식별하는 법인류학자는 전국에 단 3명뿐이다.

권한·처우↓
할 사람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법의관은 수년째 30명대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내년에는 충원율 ‘제로(0)’다.

대한법의학회가 연구한 <법의학 전문 감정 연구 인력 인재 양성 방안 연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에서 활동 중인 법의학자 수는 63명. 국과수 30명,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 2명, 대학 15명, 개원의 10명, 은퇴 후 촉탁부검의 6명 등이다. 절반가량(44%)이 서울에서 근무 중이다. 제주도에는 법의학자가 1명뿐이다.

이 중 사법부검을 주 업무로 하는 법의학자는 전국에 32명밖에 안 된다. 국과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부검 건수는 8813건이다. 법의학자 1명이 1년에 275건의 사체를 부검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난 10월에 만난 한 법의학자는 “아직 6월에 부검한 건의 부검감정서를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양경무 국과수 법의학부 부장은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데 나간다는 사람은 많다”며 “병리과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지면서 이른바 관문 앞에 서는 사람도 줄고 있다”고 한탄했다.

2019년 보건복지부가 김순례 의원실(자유한국당)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병리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6년 66.1%, 2017년 60.7%, 2018년 41.7%, 2019년 35% 등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중이다. 

신규 법의관 지원자가 줄자 국과수는 지원자격을 병리과 전문의에서 일반의로 바꿨다. 낮아진 진입장벽에도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병리과 전문의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어 인력 충원이 쉽지 않다. 여기에 개원의나 봉직의와 비교해 처우 수준도 낮다.

‘사명감’만 가지고 뛰어들라고 하기엔 법의학자 자체가 일종의 ‘극한 직업’인 셈이다. 결국 인력이든 제도든 어느 쪽이라도 충족돼야 한국 법의학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은 “법의학은 망하지 않는다. 국가가 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민성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은 “20년 안에 법의학은 망할 것 같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사회에 미칠 파장이다. 죽음을 다루는 전문가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최민성 법의관은 “선진국의 경우 법의학의 비율이 오히려 줄어들기도 한다. 죽음에 대한 정책과 제도가 잘돼있어 법의학이 융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쿡카운티 MEO서 520만명 관할
어시스턴트 법의관으로 재직 중


경제지수로는 선진국이지만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그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의 검시제도는 크게 영미법계의 전담검시제와 아시아와 독일, 덴마크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륙법계의 겸임검시제로 나뉜다. 한국은 대륙법계의 검시제도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두 검시제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검시권의 주체다.

영미법계는 검시관(Coroner)과 법의관(Medical Examiner)이 광범위한 권한을 갖는 반면 대륙법계는 대체로 수사기관이 1차 주체가 된다. 한국은 검사에게 독점적 검시권이 있다.

김윤신 조선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영국은 살인사건을 조사할 때 사건을 담당할 법의관이 반드시 현장에 입회하도록 하는 법을 갖고 있다. 살인사건은 죽음을 조사해 가해자를 기소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 죽음의 처리에 허술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제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국은 전담검시제도인 검시관 제도를 세계 최초로 시행한 국가다. 검시 책임자인 검시관이 변사사건을 조사하고 부검 여부를 결정해 의과대학의 법의학‧병리학 교수에게 의뢰하는 방식이다. 연방국가인 미국은 주별로 검시제도가 매우 다양하다. 영국식 검시관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주도 있고, 미국만의 법의관 제도로 운영되는 주도 있다. 

지난 7월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기초의학 학술대회 주관의 대한법의학회 프로그램에 참석한 송혜정 법의관을 만났다. 송 법의관은 미국 시카고 쿡카운티 MEO(Medical Examiner Office)에서 어시스턴트 법의관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 일하는 500여명의 법의관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이다.

결국 피해
국민에게로

지난 7월4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송 법의관을 다시 만났다. 송 법의관은 은사님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 원주에 다녀온 참이었다. 학회 참석과 개인적인 업무로 바쁜 시간을 보낸 송 법의관은 출국을 하루 앞두고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냈다. 송 법의관을 통해 미국과 한국의 법의학 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송 법의관이 일하는 MEO는 시카고와 시카고 주변 작은 도시를 합쳐 약 520만명을 관할한다. 일리노이주 인구의 약 45%에 달하는 수치로 해당 지역의 유일한 법의관 시스템이다. 1972년 국민투표로 1976년 12월6일 쿡카운티 검시관실이 설립됐다. 

MEO에 소속된 법의관은 15명 정도다. 송 법의관은 “법의관 정원이 16~17명 정도인데 다 채운 적은 없다. 15명 전후로 늘었다 줄었다 한다”고 말했다.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인구 100만명 당 법의관 수가 3명이다. 한국(인구 100만명당 1.16명)과 비교해 3배 정도 많다. 

<Cook County Medical Examiner’s Office 2019 Annual Report>에 따르면 2019년 쿡카운티에서 4만1317명이 사망했다. 그중 MEO에 보고된 대상은 1만3758명, 이 가운데 법의관 관할로 결정된 대상은 6274명이다. 사고사가 2564명, 자연사가 2339명, 범죄 피해자가 676명, 극단적 선택이 479명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총기의 나라’인 만큼 쿡카운티에서도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이 많다. 자료에 따르면 16~30세 살인으로 인한 사망자의 93%가 총기로 인해 유명을 달리했다. 송 법의관은 “사람을 상대로 총을 쏠 때 한 방에 명중하기 쉽지 않다. 누군가를 죽일 의도라면 20발이고 30발이고 쏘게 된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벌집 같은 사체를 마주할 때가 많다”고 밝혔다. 


송 법의관은 경주에서 열린 학회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과 비교해 한국 법의관에게 주어진 권한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쿡카운티에서는 법의관이 원하면 의료기록 등 필요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사건 전후 사정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순히 요구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강제성을 띤다.

93% 총기 사망
벌집 같은 사체

미국의 법의관은 사건 당시 상황과 사망자의 생전 기록 등 여러 자료를 확인한 뒤 부검 등의 절차를 거쳐 사인을 내놓는다. 이 과정을 통해 나온 사망진단서는 법의관도 새카맣게 몰랐던 전혀 새로운 내용이 나오지 않는 이상 유일무이한 결과로 남는다. 의사에 따라 사인이 바뀔 수 있는 한국의 시체검안서와는 다른 무게감이다. 

“시체검안서를 아무 의사나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예를 들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는데 그 기록을 남기기 싫어 다른 의사를 찾아가 병사로 써달라고 하면 써준다는 말이잖아요. 이렇게 되면 신뢰가 떨어지죠. 저는 제 직업적 공신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돼요. 안 그럼 MEO 전체에 누를 끼치게 되는 거예요.”

한국의 법의관은 부검 전 사망자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변사사건이 발생한 이후 부검에 이르기까지 1~2일 동안 경찰이 모아온 수사기록을 확인하는 정도다. 사망자의 의무기록도 볼 수 없다. 한국은 사람이 사망하면 한 달 이내에 신고를 하도록 돼있다.


다시 말해 신고 전까지는 행정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적용돼 법의관은 의무기록에 접근할 수 없다. 

반면 쿡카운티의 경우 법의관이 자신이 담당한 사체에 대한 사망의 원인과 종류를 직접 등록한다. 유족은 필요할 경우 법의관이 밝힌 사망원인을 기반으로 작성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으면 된다. 죽음을 확인한 자가 죽음을 등록하는 것이다.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 병원, 공공기관 등을 전전해야 하는 한국과 비교해 사회적 비용이 덜 드는 구조다.  

그렇다고 쿡카운티에 ‘죽음의 격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리노이주 제1도시인 시카고는 미국 역사에서 오랜 시간 ‘흑백 분리’가 돼있었다. 도시 자체가 빈부격차에 따라 굵직하게 구분돼있을 정도. 실제 시카고의 건강불평등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부유한 지역과 빈곤한 지역 사이의 기대수명 차이는 무려 30년에 이른다. 미국의 도시 중 1위다. 

한국 비해 광범위한 권한
사회적 비용 덜 드는 구조

구조적 인종 차별주의, 경제적 차이 등이 이유로 꼽힌다. 부검대에 오르는 이들의 배경만 봐도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송 법의관은 “경제적 빈곤으로 의사를 만나지 못해 사망 후 MEO로 옮겨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일리노이주는 법의관이나 검시관이 확인해야 하는 죽음을 명시하고 있다. 살인·극단적 선택·사고·교통사고·마약 사건, 그리고 자연사로 의심되지만 사망진단서를 써줄 주치의가 없는 경우 등이다. 

“미국인은 사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보험에 1년에 한 번 주치의를 만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돼있어요. 이건 무료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 주치의가 보험자의 사망진단서를 써주는 거거든요. 주치의가 없이 사망해 MEO에 오는 경우는 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는 뜻이죠.”

더 큰 문제는 이미 벌어진 기대수명 격차가 소득의 재분배를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송 법의관은 “젊을 때 일정 수준의 돈을 붓고 특정 나이가 되면 받는 연금제도가 있다. 하지만 가난한 지역의 사람은 죽어라고 연금을 붓지만 받을 때쯤 혹은 그 이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부자 지역의 사람은 오래 살면서 낸 돈보다 더 받는다. 연금제도 자체가 재분배를 위해 마련된 건데 아이러니하게 악화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기자를 꿈꿨다는 송 법의관은 중학교 때 ‘의사가 되는 게 어떠냐’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의대로 진학했다. 이후 의대 예과 2학년 때 오대양 사건(오대양 공장에서 일어난 집단 극단적 선택 사건)과 관련한 강의를 듣고 법의학자에 대한 꿈을 키웠다.

법의학을 하면 ‘기자 같은 의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그는 ‘이 일(법의학)을 평생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되뇌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악순환 반복
고리 끊어야

“저는 공급이 많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오래 버텨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 전역에서 법의관은 500명밖에 안 되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제 사명을 감당하는 거예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되 소진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jsjang@ilyosisa.co.kr>

 

[송혜정 법의관은?] 

▲Cook County Medical Examiner Office
▲Assistant Medical Examiner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경북대학교 수사과학대학원
▲Miami-Dade County Medical examiner office 법의 펠로우
▲Jackson Memorial hospital 병리 레지던트
▲Miami-Dade County Medical examiner office international scholar
▲삼성서울병원 인턴, 병리 레지던트, 병리 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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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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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