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정부 및 지자체의 공공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공공앱) 운영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구잡이식 앱 출시로 불필요한 예산이 낭비되면서, 사전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행정안전부가 2017년부터 공개한 모바일 대민서비스 앱 성과 측정 및 정비계획 검토 결과를 전수 분석한 결과,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교육청 등이 5년간 개발한 공공앱 중 635개가 폐기 또는 폐기 예정·권고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개 폐기
이들 공공앱 개발에 들어간 예산만 총 188억8579만원에 달한다.
정부는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국민들이 공공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공앱을 개발·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공공앱 개발로 인해 다른 기관이나 민간과 중복되는 앱이 다수 출시되거나, 활용도가 저조한 공공앱은 업데이트 없이 방치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행정안전부는 지난 2017년부터 공공앱 성과관리 결과를 발표해 공공앱 개발 실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용 의원은 행안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공공앱 운영실태는 더욱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공공앱 폐기율은 2017년 17.0%(895개 중 152개)에서 2021년 10%(738개 중 74개)로 감소한 반면, 지난해 새로 만들거나 유지된 공공앱은 90%(664개로) 오히려 늘어났다.
무분별한 공공앱 개발 실태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정리되는 공공앱보다 새로 만들어지거나 유지되는 공공앱이 더 많다는 것.
게다가 업데이트 실적이 전혀 없이 방치되는 공공앱도 2017년 347건에서 2021년 424건으로 증가했다. 비율로 따지면 2017년 38.8%에서 2021년 57.5%로 18.7%p 늘어난 셈이다.
용 의원은 “전수분석을 위해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자료 외 ▲계약현황 ▲평균 이용자 수 ▲앱 개발비 등을 요구했지만, 행정안전부는 자료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앱 개발비만 추가로 작성해 자료를 제출했다”며 “공공앱 개발비조차 해마다 평균 189건의 자료가 미비한 상태로 실제 공공앱 폐기로 낭비된 예산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안부의 부실한 공공앱 관리 실태는 이미 이달 초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감사원은 이달 초 행안부의 공공앱 성과관리 체계를 감사한 결과 기준이 불명확하거나 일부 측정 대상 및 측정값이 누락되는 등의 문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지난 2019~2021년 3년간 공공앱 성과측정 결과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복지부 등 112개 기관은 ▲누적 다운로드 수 ▲전년 대비 설치율 ▲업데이트 최신성 등 318건의 성과측정값을 잘못 산정했으나 행안부는 이를 그대로 확정했다.
잘못된 측정값에 기초해 공공앱 성과를 평가한 만큼, 퇴출돼야 할 공공앱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보안 문제도 심각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말 기준 누적 다운로드수가 100만 이상인 36개 공공앱의 보안 실태를 조사했는데, 무려 30개(83.3%)의 공공앱은 보안 약점에 대한 진단·제거를 제대로 하지 않아 앱별로 최소 1건에서 최대 3192건의 보안약점이 검출됐다.
공공앱의 보안 취약성만큼 행안부의 관리·감독 부실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 2020년 정보시스템에 포함된 32개 행정·공공앱의 보안약점만 조사했을 뿐, 전체 956개 공공앱 중 나머지 924개(96.6%)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다.
보안 취약·서비스 중복…행안부 관리 부실 지적
지자체·문화재청 공공앱 예산 낭비 심각한 수준
민간 서비스와 중복되는 공공앱도 적지 않다. 특히 ▲관광 ▲배달 ▲주차 ▲택시 ▲버스 등 문화관광·교통 분야에서 민간과 중복되는 공공앱이 다수 발견됐는데, 대부분 행안부가 사전협의 과정에서 민간과의 중복 여부를 검토하지 않았거나 행안부의 지적을 지자체가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였다.
실제 ‘경상남도 스마트투어’의 경우 행안부가 공공앱만 별도 파악하는 과정에서 민간서비스 침해 여부를 검토하지 못했다. 군산시 ‘배달의 명수’나 ‘수원e택시’ 등의 앱은 행안부가 민간서비스와의 중복 여부를 지적했음에도 사업을 추진한 사례다.
‘제주버스정보’는 민간과의 중복 문제로 행안부가 서비스 폐지를 권고했음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용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공공앱 예산 낭비가 가장 심각한 곳은 지자체다. 지난 5년간 지자체에서만 401개의 공공앱이 폐기돼 98억6489만원의 예산이 낭비됐는데, 건수로 보면 서울시가 65개(8억7167만원)로 가장 많은 공공앱을 폐기했으며, 예산은 경남이 가장 많은 16억4964만원(35개 폐기)을 낭비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관별로는 문화재청이 내손안의덕수궁·경복궁·종묘·불국사 등 유사·중복앱 7개를 개발하는데 18억7600만원을 지출해 가장 예산 낭비가 심한 부처로 꼽혔다. 공공앱을 관리·감독하는 행안부 또한 7개의 공공앱을 만들었다가 폐기해 6억5700만원을 소모했다.
용 의원은 “공공앱 예산 낭비는 이용자가 필요로 하지 않은 대민서비스를 남발하는 전시행정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윤석열정부 들어 ‘디지털플랫폼정부’를 국정과제로 강조하며 민간과 협업해 공공앱은 물론 앱스토어까지 만든다곤 하지만, 부실 운영부터 개선하지 않으면 오히려 공공앱 개발만 남발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전수조사로 행정안전부의 공공앱 사전심사 및 점검 조치가 부실하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라며 “이용자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모바일 대민서비스만 제작될 수 있도록 계획·등록 단계에서부터 사업성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파일럿 테스트 등 실제 검증 과정을 사전에 도입해 예산 낭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앱이 외면받는 건 공공서비스 소비자인 국민의 니즈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지자체·기관별로 일단 만들고 보자식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 크다.
188억 공중분해
업계 관계자들은 “누구를 위해 만든 앱인지 의아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 편의를 위해 출시했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작 국민들은 실생활에서 그 ‘편의’에 대한 별다른 필요성을 못 느끼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