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르포> ‘택시가 왕’ 새벽 이태원 탈출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0.17 14:18:45
  • 호수 13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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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미터기…흥정도 어렵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이태원의 불이 다시 켜졌고, 사람들이 몰려 새벽이 될수록 활기찬 분위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법 택시’의 온상이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피해자는 승객이다. 이태원의 새벽은 ‘말도 안 되는’ 택시비에 놀라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는 사람과 길거리에서 첫차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용산구청은 그저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할 뿐이다.

서울시 용산구에는 이태원동이 있다. 용산구의 대표적 번화가로 외국인과 외국 문화의 집결지로 유명하다. 이태원동은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주택가와 상업 지구로 이뤄져 있으며, 중심이 되는 길은 해밀톤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취객들의 
귀가 전쟁

이태원 상업 지구의 중심에는 클럽이 있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강남과 홍대에 비해 외국인 또는 주한미군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에 못지않게 국내 청년들도 이태원 클럽에 많이 방문한다. 이태원은 코로나19 감염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2020년 5월7일 이태원의 한 클럽 관련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이태원의 집단감염이 심각했던 이유는, 확진자가 젊은 층이어서 활동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코로나 신규 감염자 보고가 1일 한 자릿수대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었다. 신규 확진자는 지역 발생이 아닌 해외 유입이 높아 코로나가 수습되는 방향이었다.

전 세계 주요 외신은 한국 사례를 모범 사례로 알렸다. 그러나 이태원발 코로나 확진자가 100명 이상인 것이 확인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이태원은 한국의 대표적인 번화가이며, 한국 인구의 절반가량인 2500만명 이상이 밀집한 수도권이다. 이 한복판에 감염병이 터진 것이다. 특히 최초 확진자가 주로 방문했다는 이태원 클럽은 게이 클럽으로 분류됐고, 일반 클럽에 방문한 사람 중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이태원 클럽은 ‘코로나 클럽’이라고 낙인찍혔다. 

2020년 10월28일부터 이태원, 강남, 홍대 거리에 있는 대규모 인기 클럽은 방역 당국‧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 끝에 할로윈 기간 휴업을 자체적으로 결정하기도 했고, 지난해 7월12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2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가 시작됐다. 유흥주점 영업은 밤 10시로 제한됐다.

이때부터 이태원의 ‘곡소리’가 감지되기 시작됐다. 이태원 상권이 무너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뒤 이태원은 황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골목마다 북적였던 사람은 찾을 수 없었고, 상가에는 ‘임대 문의’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손님이 없어 가게에서 시간만 때우는 상인들도 많았다.

이태원에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한 후 정부와 언론 등에서 ‘이태원발 집단감염’이라고 부르자 그나마 오던 손님들도 발길을 끊었다. 정부 방침으로 ▲집합 금지 ▲영업 제한 ▲영업 시간 제한 등이 이어지자 이태원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전체가 피해를 본 것이다.

지난 4월18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국적으로 전면 해제됐다. 이때부터 ▲영업시간 12시 제한 ▲사적 모임 인원 제한 ▲행사·집회 최대 299인까지 허용 ▲종교활동 수용인원의 70% 허용 ▲영화관·종교시설·교통시설 등 다중 이용 시설 실내 취식 가능 ▲실외 마스크 착용 해제 등으로 방침이 바뀌었다.

오전 1시부터 4시까지 직접 나가보니…
‘부르는 게 값’ 험난한 집에 가는 길

이태원 상권은 즉시 살아났다. 20대와 30대의 이태원 소비가 활발해지면서 소비가 빠르게 회복됐다. 이를 ‘보복 소비’라고도 불렀다.


지난 5월16일 KB국민카드가 발표한 ‘서울시 주요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영향 분석’에 따르면 영업 제한 시간을 전면 해제한 지난 4월18일~5월8일 오후 6시 이후 매출건수와 매출액은 영업시간이 오후 9시까지였던 지난해 12월18일~ 올해 2월18일보다 각각 44%, 60% 증가했다.

용산구는 매출건수 69%, 매출액은 76% 증가했다.

늘어난 매출액은 이태원에 방문한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태원 거리에는 다시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지금의 이태원은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방불케 한다. 2년 만에 ‘유령도시’ ‘이태원발 집단감염’이라는 불명예를 완벽하게 졸업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또 다른 불명예가 시작되는 실정이다.

버스와 지하철 막차가 끊기면 이태원역 인근의 택시 운전사가 택시 승객을 상대로 불법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는 이태원 일대에 퍼져있는 불법 영업 택시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일 밤 11시에 이태원에 방문해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일대를 살폈다. 

우선 지하철 강남역에서 이태원역까지 어플을 통해 택시를 불렀다. 어플을 통해 측정된 금액은 1만원 정도였고, 이동 시간은 길어봤자 30분 정도다.

이태원으로 향하는 중 택시 운전사에게 “심야 시간에 이태원에서 택시를 잡는 게 어렵냐”고 물으니 택시 운전사 A씨는 “기본적으로 일반 택시가 이태원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차가 너무 많이 막히고, 이태원은 사람이 너무 많다”며 “이태원을 빠져나가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린다. 교통문제가 심각한데 용산구에서는 손을 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이태원역 인근 길거리에 자가용이랑 렌터카가 줄지어 주차돼있는데, 이 사람들 중에는 승객에게 ‘현금으로 돈을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불법”이라고 분개했다.  

날뛰는
불법 택시

A씨는 “일반 택시 운전사는 하루 일해서 순수익 20만원을 벌기가 어렵다. 가스값, 보험료, 4대보험 등을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법은 이런 게 없다. 현금을 가져 가니까. 심야 택시비를 올린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먼저 주차단속이랑 불법 택시 단속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불법 택시 영업을 하는 택시 운전사는 전체 택시 운전사에 비해 소수며, 모든 택시 운전사의 잘못이 아니란 걸 정확하게 확인하고 보도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도착지에 다가갈수록 A씨의 말처럼 이태원역 인근부터 차량 정체가 심했다. 

어쨌든 이태원의 밤은 화려했다. 특히 해밀톤 호텔 바로 뒤인 ‘이태원 세계음식 거리’는 직선거리가 300m로 걸으면 총 3분 정도의 걸리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사람이 많아 앞으로 나가기 힘들 정도였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이태원에는 한국의 밤 문화를 즐기러 온 외국인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대부분은 한국의 청년이었다. 사람들은 야외 테라스가 제공되는 펍의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유명 클럽을 입장하려고 길게 늘어선 줄이 서로 뒤엉켜 있었고, 그마저도 내부 클럽 인원이 가득 차서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도 없었다. 기다려서 들어간 클럽 내부 역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버스 막차 시간인 밤 12시가 지나고부터 이태원역 인근의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이태원역 주변 대략 600m 거리의 1차선 도로에는 더 이상 주차할 수 없을 정도로 승용차나 택시들로 가득 찼다.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중심으로는 택시가 주차돼있었다.

길거리에는 택시 호출 앱으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길바닥에 앉아서 택시를 잡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새벽 1시가 다 돼갈 때쯤 택시 호출 3개 앱으로 택시를 잡아봤다. 출발지는 이태원역이고, 도착지는 강남역이었다. 우선 택시 플랫폼인 ‘카카오’와 ‘타다’는 아무리 시도를 많이 해도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우버 앱인 ‘우티’로만 택시가 잡혔다. 이것도 여러 차례 시도해 나온 결과였다. 핸드폰으로 택시를 잡는 것은 그야말로 ‘운’에 맡겨야 했다. 택시를 잡는 데 1시간이 걸릴지, 2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도로에는 빈 택시가 즐비했다.

3만원 이상 
많이 내야


도로의 빈 택시가 일반 택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거의 모든 택시에 ‘예약’ ‘휴무’라고 불이 들어와 있고 서행 중이었다. 길거리에 택시를 정차해 놓고 택시 운전사가 바깥으로 나와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쯤부터는 사람들이 직접 도로에 나가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 도로 중간까지 나간 사람도 많았다. 아무리 차가 서행 중이라도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술에 취한 사람, 갑자기 뛰어드는 사람 등이 많아 위험천만해 보이는 광경이었다. 

이태원역 인근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목적지가 을지로인데 이태원에서는 15분 걸린다. 대부분은 목적지를 들어보지도 않고 그냥 간다. 이유를 모르겠다”며 “벌써 1시간 넘게 택시를 잡고 있다. 이태원은 새벽 시간이 지날수록 더 택시가 안 잡힌다. 오랜만에 이태원에 왔는데 발도 아프고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잠실로 가는 택시를 잡는 20·30대 여성도 있었다. 이들은 “카카오택시는 전혀 잡히지 않는다. 도로에 있는 예약 차량을 잡으려고 하면 ‘경기도 간다’ ‘안양 간다’고 승차를 거부했다”며 “보통은 얼굴을 보지도 않고 가라고 한다. 이런 택시가 제일 많다. 이태원은 자주 오는데 새벽 2시부터는 택시가 정말 잡히지 않는다”고 답했다. 

새벽 2시30분쯤 기자는 도로의 택시를 직접 잡기 시작했다. ‘예약’ 간판이 켜져 있는 택시 근처로 가니 앞 문의 창문을 열렸다. 기자가 “강남역까지 가나요”라고 물어보자, 택시 운전사는 대답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한 택시는 아예 얼굴을 보고 그냥 지나쳤다. 한 택시는 “강남역까지 3만5000원 주면 간다”며 그 이하는 절대 가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또 다른 택시는 “나는 경기도 택시니까 강남역은 3만5000원에 간다”고 말했다. 기자가 다시 “그러면 경기도 과천은 얼마에 가냐”고 물어보자 “경기도 과천은 멀어서 5만5000원에 간다”는 황당한 대답을 했다. 

기자는 과천까지 그 금액으로 가겠다며, 대신 영수증을 끊어달라고 요청을 했다. 택시 운전사는 “이거 불법인데 신고하려고 하지?”라고 언성을 높이며 지나가 버렸다. 

막차가 끊긴 이태원에서 택시를 타려면 택시 운전사가 부르는 가격을 현금으로 내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26세 한씨는 이태원 불법 택시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한씨는 “코로나19가 유행할 때는 이태원에 안 왔다. 올해 4월쯤부터 다시 이태원에 왔는데, 친구들이랑 놀다 보면 새벽 1~2시까지는 논다. 귀가하려고 할 때 호출 앱을 사용하는데 잡히질 않았다”며 “도로에는 빈 택시가 많은데 안 잡혔다. 서 있는 택시는 대체로 안 간다고만 한다”고 말했다.

일부 택시 조직적 조폭식 활동
영수증 불가 “신고하니까 안 돼” 

이어 “‘수원만 간다’거나 ‘인천만 간다’고 한다. 택시가 안 잡혀서 이태원 상가 계단에 누워서 아침까지 잔 적도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도대체 왜 안 갈까’하고 택시 운전사에게 금액을 더블로 주겠다고 했더니 금액을 흥정해줬다”며 “술을 마시고 집에 가고 싶으니 불법인 걸 알면서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보통은 돈을 더 주면 간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태원 지하철역에 들어가 보면 아침까지 자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택시 운전사들이 다 불법인 줄 알면서 이렇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막상 숙박하려면 이태원은 너무 비싸다. 평일이 6만원 정도면, 휴일은 18만원까지 올라간다. 숙박 앱으로 예약하려면 또 안 된다. 전화로 직접 예약을 해서 현금을 달라고 한다”며 “이 부분은 고쳐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불법을 하지 않는 택시 운전사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잘됐으면 좋겠다. 1만원도 안 나오는 거리를 몇 배로 높이는 것은 너무하다”고 지적했다.

한 택시 운전사는 이태원 길거리의 정차된 자동차 사진을 찍을 때 다가와서 “왜 내 택시를 찍냐”고 욕설을 하며 다짜고짜 화를 내기도 했다.

택시 운전사 B씨는 불법 택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B씨는 “예약을 걸어 놓는 건 손님이 어디 갈지 모르니까 예약을 걸어놓은 것이고 한국 사람은 금액이 너무 높으니까 대부분 안 탄다”며 “보통 1만원에 갈 거리를 3만원에 간다고 하는데 외국인들은 100% 탄다”고 귀띔했다.

이어 “아예 호텔에서 택시 타고 오라고 명함을 준다. 한국인은 안 가고 외국인은 가니까, 지도도 못 보고, 둘러서 가도 신경 안 쓴다. 그래서 택시 운전사들이 한국인이라서 물어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에 대한 택시업계의 입장은 어떨까. 서울개인택시운송 사업자 조합 관계자 역시 이태원 불법 택시에 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한 서울개인택시운송 사업자 조합 관계자는 “지금 이태원에 택시를 몰고 가면 그곳은 불법의 온상인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택시 잘못도 있지만, 교통 문제도 있다”며 “일반 승용차가 도로에 불법 주차 때문에 차량 진입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서울시에서는 주차 문제를 해결해서 통행이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도로에 주차돼있으니 한 개 차선만 이용한다. 이태원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일부 택시 운전사가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 같다”며 “보통 중형 택시, 고급 택시, 모범택시는 불법을 안 한다. 보통 K7 차량이 많고 그룹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평범한 택시 운전사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반 택시 운전사가 거기서 자리를 잡으려면 분명 싸움이 날 것이다. 이태원만 전문적으로 하는 것 같은데, 서울시에서 단속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속?
“없다”

이태원이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시점은 4월부터다. 그렇다면 6개월 동안이나 불법 택시 영업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태원 택시 문제에 대해 용산구청 관계자는 “연간 단속 계획을 세워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단속이 쉬운 상황은 아니다. 단속 계획 외에 다른 계획은 없다”고 짧게 답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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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청신호’ 이재명 꽃놀이패

‘대권 청신호’ 이재명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권행 급행열차 티켓을 거머쥔 채 돌아왔다. 선거법 위반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그야말로 기사회생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여부다. 벼랑 끝까지 몰렸던 이 대표가 반격의 날을 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 리스크라는 족쇄에 얽매인 지 3년 만이다. 웃음을 띤 채 법원서 나온 이 대표는 “진실과 정의에 기반해서 제대로 된 판결을 해주신 재판부에 먼저 감사드린다. 이제 검찰도 자신들의 행위를 되돌아보고 더는 국력을 낭비하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살아서 돌아왔다 지난 26일 서울고법 형사6-2부(부장판사 최은정·이예슬·정재오)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서 무죄를 선고했다.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모두 뒤엎은 것이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이 대표가 민주당 대선후보이던 2021년 TV 프로그램서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과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에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발언한 것이다. 재판부는 두 가지 모두 허위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발언이 교유관계를 부인해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아닌 주관적 인식에 대해 허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교유행위를 부인한 발언으로도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서 유죄가 인정됐던 ‘골프 발언’에 대해서도 TV 프로그램 진행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 일부며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거짓말한 것으로 볼 수 없고 허위성 인정도 어렵다”고 무죄로 봤다. 특히 이 대표가 호주 출장 중 김 전 처장과 찍은 사진에 대해서도 “10명이 한꺼번에 찍은 사진으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수 없다”며 원본 일부를 떼어냈기 때문에 조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용도변경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국토부가 협박했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핵심은 국토부가 법률에 의거해 변경 요청을 했고 성남시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변경했다는 것”이라며 “(발언의)일부가 독자성을 가지고 선거인의 판단을 그르칠 만한 발언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피선거권 박탈형 1심 몽땅 뒤집혀 무죄 선고에 한시름 놓은 민주당 이 같은 판결이 나오자 검찰은 “항소심 법원 판단은 피고인의 발언에 대한 일반 선거인들의 생각과 너무나도 괴리된 경험칙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판단으로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곧바로 상고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해당 사건의 최종 판결은 대법원서 가려지게 됐다. 이 대표의 선고가 예정된 26일 이전부터 민주당은 초긴장 상태였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당의 운명이 걸려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향후 모든 방향이 결정되는 하루일 것이다. 조기 대선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60일 이내 선거를 치를 경우 하나의 작은 변수도 나비효과처럼 커질 수 있어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무죄가 선고된 후에는 “차기 대통령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완벽한 서사”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심서 무죄를 받은 이 대표가 밝은 얼굴로 법정서 걸어 나오자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지지자들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대권주자 1위를 달리는 이 대표 앞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사법 리스크를 겨냥해 ‘이재명 흔들기’에 나섰던 대권 잠룡들의 목소리는 당분간 사그라들 전망이다. 후보 교체론을 주장해 왔던 비명(비 이재명)계 잠룡 역시 입을 모아 “법원의 판단을 환영한다” “사필귀정” 등의 메시지를 냈다. 이 대표 대세론이 탄력을 받으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지만 탄핵 정국이 현재 진행형인 만큼 총구를 밖으로 돌린 것으로 해석된다. 뒤통수 얼얼 여당 대혼란 국민의힘은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당초 1심서 피선거권 박탈형이 나왔기 때문에 2심 역시 최소한 벌금 100만원을 예상했던 것이다. 국민의힘은 재판부의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전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고 직후 “항소심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이 부분은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당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럽고 대법원서 신속하게 6·3·3 원칙(1심은 6개월, 2·3심은 3개월 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재판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최대 리스크였던 범죄자 프레임이 상당 부분 걷어지자 보수 잠룡들은 저마다 말을 얹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거짓은 죄, 진실은 선이 정의”라는 글을 게시했다. 오 시장은 “대선주자가 선거서 중대한 거짓말을 했는데 죄가 아니라면 그 사회는 바로 설 수 없다”며 “대법원이 정의를 바로 세우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재명이 억지 무죄가 된 것은 사법부의 하나회 덕분”이라며 “사법부 조차 진영 논리로 재판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지만 사법부 현실이 그런 걸 어떡하겠나. 오히려 잘됐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차기 대선을 각종 범죄로 기소된 사람과 하는 게 우리로서는 더 편하다”고 비꼬았다. 대세론 굳히기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2심 결과는 존중받아야 한다”며 “정치의 큰 흐름이 사법부의 판단에 흔들리는 정치의 사법화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문제의 골프 사진을 최초로 제시한 개혁신당 이기인 최고위원은 “졸지에 사진 조작범이 됐다”며 “옆 사람에게 자세하게 보여주려고 화면을 확대하면 사진 조작범이 되나? CCTV 화면 확대해서 제출하면 조작 증거이니 무효라는 말이냐? 무죄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논리를 꾸며낸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상고심서 잘 다퉈주길 바란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고비를 넘긴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운명을 쥔 헌재를 최대한으로 압박하는 동시에 차기 집권여당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무죄를 선고받은 이 대표는 곧장 안동을 찾아 대형 산불로 터를 잃은 이재민을 위로했다. 지난 26일 이 대표는 법원서 곧바로 국회로 이동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었지만 산불 피해가 커지자 이를 뒤로 미루고 안동으로 향했다. 안동은 이 대표의 고향이기도 하다. 앞서 이 대표는 무죄 선고 이후 취재진 앞에 서서 “이 당연한 일들을 이끌어내는 데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고 국가 역량이 소진된 것에 대해서 참으로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이 또 이 정권이 이재명을 잡기 위해서 증거를 조작하고 사건을 조작하느라 썼던 그 역량을 우리 산불 예방이나 아니면 우리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썼더라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겠나”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이 대표는 안동을 찾은 데 이어 27일에는 화재로 소실된 경북 의성군 고운사를 찾아 “고운사를 포함해 피해 입은 지역이나 시설 예산 걱정을 하지 않도록 국회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헬기로 산불 진화 작업을 벌이던 중 추락사고로 순직한 고 박현우 기장의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당분간 통하지 않을 ‘범죄 프레임’ 여권 잠룡 집중포격에도 꼿꼿하게 이 대표가 민생을 살피는 동안 나머지 민주당 의원이 장외 투쟁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2심 결과가 나왔으니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 이상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고궁박물관 앞 민주당 천막 당사에서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서 “헌법재판소는 해야 할 일을 즉시 하라”며 다시 한번 압박에 나섰다. 박 원내대표는 “오늘로 12·3 내란발발 115일째, 탄핵소추안 가결 104일째, 탄핵 심판 변론종결 31일째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라며 “선고가 늦어지면 늦어지는 이유라도 밝혀야 되는 것 아니냐”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헌재가 헌법 수호라는 중대한 책무를 방기하는 사이 온갖 흉흉한 소문과 억측이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다”며 “헌재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회의도 그만큼 커졌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 역시 “선입 선출에 따른 파면 선고라는 상식의 시간은 지났고, 오늘 오전까지도 선고기일 공지를 안 하면 명예의 시간도 넘어간다”며 “검찰의 억지 기소에 따른 이 대표의 (선거법 2심) 선고 이후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지연하느냐는 불명예스러운 물음에 답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범죄자 이재명은 안 된다”는 국민의힘 전략이 반쪽짜리가 되면서 탄핵 정국 돌파구가 막혔다. 2심 무죄 판결이 대법원서 뒤집히길 바라며 상고심이 오는 6월26일까지 나와야 한다고 재촉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남은 건 헌재뿐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외에도 4개의 재판을 더 받는 만큼 아직 ‘완전히’ 족쇄를 풀지 못했다는 새로운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미 날개를 단 이 대표의 존재감만 키워줄 뿐, 큰 효과는 없을 것이란 게 야권 관계자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시름 놓은 이 대표는 본격적으로 대권주자 1위를 굳힐 일만 남았다. 중도층을 포섭하는 동시에 비호감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이에 맞춰 이 대표의 목소리도 더욱 날카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피 튀기는 3월이 마무리되면서 조기 대선의 운명을 가를 헌재에 모든 시선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