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라는 학술용어처럼 사실은 피해자가 없는 범죄는 있을 수 없는데도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하는 것은 전통적 범죄 피해자와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붙여진 용어일 뿐이다.
전통적 범죄는 특정한 가해자가 특정한 피해자에게 특정한 동기에서 가하는 범죄인 반면, 피해자 없는 범죄는 마약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인이거나, 환경 범죄나 기업 범죄처럼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인 경우다.
‘묻지마 범죄’도 전통 범죄와 구별하기 위한 의도에서 언론이 작명한 신조어다. 전통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속에서 분명한 동기를 가지고 행해지지만, 묻지마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도 없고, 따라서 특정한 동기도 없다는 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도 동기도 묻지도 따질 수도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특별한 특정한 동기가 없다는 점에서 ‘동기 없는 범죄(Motiveless crime)’, 혹은 증오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증오범죄(Hate crimes)’로 분류하기도 하며, 전형적인 동기가 아닌 이상한 동기의 범죄라는 점에서 ‘이상 동기 범죄’로 표현하기도 한다.
왜 극히 일부이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그토록 잔혹한 범행을 하는 것일까?
청소년기 성장 과정에서 외톨이로 자라고, 성인이 된 후에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단절되고, 다양한 이유로 사회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이들의 범죄에 직간접적 원인이거나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묻지마 범죄가 범죄자의 정신병력보다는 환경적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묻지마 범죄를 ▲현실 불만형 ▲정신 장애형 ▲만성 분노형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현실 불만형은 현실과 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경우에 속하고, 정신 장애형은 주로 조현병이나 피해망상이나 과대망상 등 망상과 같은 정신분열의 정신 질환이나 마약 등 환각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경우다.
만성 분노형은 오해나 편견으로 인한 타인의 말과 행동 또는 인식에 대한 분노를 분풀이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묻지마 범죄의 원인이나 유형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낙오와 소외가 묻지마 범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낙오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크고 작은 ‘방아쇠 효과(Trigger Effect)’가 될 수 있는 사건이 발단이 되어 극단적인 범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리그(League)’가 아닌 ‘토너먼트(Tournament)’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경쟁에서 낙오되면 영원히 끝이 되고 마는 ‘패자부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에 자포자기로 자기 현실과 처지를 비관하고, 삶의 의지를 잃기 쉽다.
이들의 좌절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자신을 향할 때는 자살에 이르기 쉽지만, 이들의 다수는 자신의 좌절, 상대적 박탈, 그리고 처지가 나 아닌 타인과 사회의 탓이라고 생각할 때는 사회적 증오와 분노가 묻지마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의 다중살인 전문가인 엘리어트 레이튼 박사는 신문 기고문에서 “다중 살인범들은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묻지마 범죄가 무섭고 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들 범죄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 특히 여성과 노인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별한 관계도 없고, 특정한 동기도 없기 때문에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범행을 할지 예측할 수도 없고 따라서 예방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자신이 묻지마 범죄가 발생한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범행의 표적이 되고 피해자가 된다.
물론 상대적 박탈과 좌절에 빠진 모든 사람이 묻지마 범행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경제적으로 소외됐을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도 단절돼 분노와 적개심을 완충시킬 방법이 없는 ‘상대적 박탈에 빠져서 좌절한 은둔형 외톨이’가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 묻지마 범죄에 대한 통합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범죄는 형사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복지 등 사회정책은 물론이고 정신질환이나 약물남용 등 정신건강을 중심으로 하는 공중보건의 문제로서 접근해야 한다.
[이윤호는?]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