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거나 속이 터질 만큼 답답할 때, 또는 걱정되어 마음이 몹시 안타까운 상황을 당했을 때 ‘복장 터진다’고 한다. 속만 터지는 게 아니라 옷(복장)까지 터진다는 말장난으로 답답증을 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마음 편한 농담의 대상이 아니다.
내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이 불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의 변형도 편치 않다. ‘복장을 긁는다(성나게 하다)’ ‘복장을 짓찧는다(마음에 몹시 심한 고통을 주다)’ ‘복장이 뒤집힌다(성이 나다)’는 형태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복장(腹藏)은 불상(弗像)을 제작한 후 붓다의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 빈 뱃속에 넣은 물목을 말한다. 특히 가슴 부위에 후령통을 안치한다. 이 후령통에는 붓다를 상징하는 사리, 소형 금불상, 불경, 발원문 등을 담았는데 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빈 공간을 옷이나 비단으로 가득 채운다.
1984년 7월에 오대산 상원사의 문수동자상 복장을 개봉해 2점의 발원문과 조선 전기의 복식, 전적류 등 23점을 수습했다.
세조 12년(1466)에 정현조와 의숙공주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오대산 문수사에 여러 불·보살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과 1599년에 2구의 문수동자상과 16구의 나한상 등에 금칠을 새로 하고 고쳤다는 내용의 기록이다.
의류에는 세조의 피고름이 묻은 저고리도 발견됐다. 세조가 문수동자를 만난 후 피부병이 나았다는 전설을 뒷받침하는 사료라서 복장품 모두를 보물로 지정했다. 복장은 불상의 신성성을 위한 의식이지만 한 번 꺼낸 복장품은 다시 원상으로 복구하지 못한다.
오랜 세월 응축돼있던 것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부풀려 부피가 늘어난 까닭이다. ‘복장 터진다’는 말은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어린 시절 호기심에 라디오를 분해해 재조립하면 반드시 두세 개의 부속이 남아 속을 태우던 경험, 그것이 복장 터지는 현상의 변형이다.
사람은 먹이만 있으면 사는 말단적 동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가치를 나누며 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나름의 규율을 정하고 지도자를 뽑아 질서를 유지한 것이 정치의 모태다. 그래서 정치는 너·나 없이 만족하고 즐거운 문화적 공통분모를 이뤄야 한다.
사회가 분화되면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많아졌다 해도 본질적인 정치의 개념이 변할 수는 없다. 일반인들로 인해 복장 터지는 일은 이내 사회에 묻혀버린다. 그러나 식자층의 의도적인 행위는 복장이 터져도 한참 크게 터져 깊은 상처를 남긴다.
복장이 터지면 횡재한다. 당시의 귀중품은 물론 역사를 한꺼번에 풀어내는 보물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횡재할 복장품은 무엇인가? 행복에 들뜬 승자는 물론 0.7%의 벽에 무너진 패자 역시 국민을 복장품이라 한다. 공동분모를 이뤄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 화합이라는 복장품은 남의 이야기다. 상대가 미워도 일단 잘한다며 수긍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건전한 정치 토양이 국민의 행복을 위한 진정한 복장품이다. 6월 선거에서 또 다시 복장 터질 일이 있었지만 모두가 함께 함포고복(含哺鼓腹)의 행복을 열어가는 풍토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강기옥 시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