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퇴임을 앞두고 있는 박병석 국회의장이 2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편 가르기와 증오의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장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지금 우리 정치는 편 가르기와 증오, 적대적 비난에 익숙하다”며 “자기 편의 박수에만 귀 기울이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 합리적인 다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념과 지역, 세대, 성별로 갈라진 ‘국민 분열’의 적대적 정치를 청산하자”고 당부했다.
그는 “국민통합으로 나가야 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개헌이 꼭 필요하다”며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키고, 다당제를 전제로 한 선거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제도적으로 권력을 분산시키고 협치하게끔 개혁해야 한다”며 “대화와 협치를 제도적으로 풀어내는 새 헌법을 만들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박 의장은 “우리는 전환기적 시련과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감염병과 기후위기, 공급망 혼란, 남북 갈등을 비롯한 숱한 불안 요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위기에 강한 민족으로 이미 식민지배와 전쟁, 가난을 이겨냈다. 짧은 시간 안에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아래는 박병석 국회의장의 퇴임 기자간담회 모두발언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장 박병석입니다.
오늘 저의 의장 임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대면 기자 간담회를 갖습니다. 아직은 경계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되지만, 우리는 비로소 소중한 일상을 하나씩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와 싸우느라 고통을 겪으신 국민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눈물겨운 헌신으로 코로나를 막아 내신 방역 당국과 의료진 한 분 한 분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와 감사를 전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년 전 6월, 의장직을 맡은 첫날의 다짐을 새겨봅니다.
저는 ‘소통’을 으뜸으로 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국회를 운영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군주민수(君舟民水)’를 마음 깊숙이 새겼습니다. 정치는 배, 국민은 강물과 같습니다.
강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국민을 지키는 국회’, ‘국민과 함께하는 국회’, ‘국민의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직 국민과 국익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화와 타협의 의회주의를 꽃피우고자 했습니다.
21대 국회는 거의 모든 법안들을 여야합의로 통과시켰습니다.
20년 가까이 논란이 됐던 세종시 국회의사당 설치법을 여야가 한마음으로 처리했습니다.
여야의 의견이 다른 법안들도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중재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최근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여야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장의 중재안은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사안이었습니다.
양당 의원총회에서 추인도 받았습니다.
새 정부 인수위에서도 합의를 존중한다고 밝혔고, 당시 대통령은 잘된 합의라고 평가했습니다.
정치권 거의 모든 단위의 동의와 공감대를 거친 아주 높은 수준의 합의였습니다.
국민투표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단계의 합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합의가 한순간에 부정당한다면 대화와 타협의 의회정치는 더 이상 설 땅이 없을 것입니다.
의회정치의 모범을 보였으나 일방적으로 뒤집혔습니다. 참으로 아쉽습니다.
민생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21대 국회는 정부 예산안과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상가건물임대차 보호법 개정안 등 민생 관련 법안들을 최우선으로 다뤘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영업시간 단축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자영업자들, 일터를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노동자들, 생계를 걱정하는 서민들을 위해 여야는 5차례 추경을 신속하게 통과시켰습니다.
예산안도 2년 연속 여야합의로 법정시한 내에 통과시켰습니다.
아주 드문 좋은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가 간 외교 공백이 컸습니다.
그럼에도 의회 외교에 팔을 걷었습니다.
의회 외교와 정부 외교는 씨줄과 날줄의 관계입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각종 회의에서 67개국의 국회의장과 23개국의 대통령, 국왕, 총리 등 최고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한반도평화 외교’와 ‘코리아 세일즈 외교’에 중점을 뒀습니다.
아시아태평양의회포럼(APPF) 총회에서는 한반도 평화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관련국 대통령의 적극적 협력을 얻어내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국민과 우리를 도운 아프가니스탄 현지인들을 무사히 탈출시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요소수 파동 때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바레인 등을 직접 접촉해 글로벌 공급망 협력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입국 제한이 엄격할 때 여러 나라에서 우리 기업인들의 특별 입국 절차에 관한 협조를 받기도 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즉 WHO를 직접 방문해 한국이 백신-바이오 인력 양성 허브로 지정받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국가의 미래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의장 직속 자문기구로 국가중장기아젠더위원회와 국회국민통합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했습니다.
5년 단임 정부로서는 다루기 힘든, 세 명의 대통령 시대를 감안한 15년간의 미래비전을 다듬었습니다.
국회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각 분야 석학들이 참여한 국가중장기아젠더위원회는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선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국회국민통합위원회는 ‘국민통합을 제도적으로 이뤄내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의장인 저의 입장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일하는 국회를 지향했습니다.
국회가 언제든지 열릴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했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국회가 멈추지 않도록 비대면 영상회의 시스템과 투표까지 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갖췄습니다.
21대 국회는 지난 2년 동안 본회의에서 역대 최다인 4355건의 법안을 처리했습니다.
상임위 법안 소위는 이전 국회 대비 37%(36.6%) 증가한 470회를 열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런 노력과 원칙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러분의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도 있었습니다.
때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엄존하고 있습니다.
그 장애물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편 가르기와 증오, 적대적 비난에 익숙합니다.
자기편의 박수에만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지 돌아봅시다.
침묵하는 다수, 합리적인 다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념과 지역, 세대, 성별로 갈라진 ‘국민 분열’의 적대적 정치를 청산합시다.
‘국민통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국민통합을 제도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개헌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 정치의 갈등과 대립의 깊은 뿌리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모든 것을 갖는 선거제도에 있다고 오래전부터 강조해왔습니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다당제를 전제로 한 선거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제도적으로 권력을 분산시키고 제도적으로 협치를 하게끔 개혁해야 합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도자의 선의에만 의지하는 협치는 성공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화와 협치를 제도적으로 풀어내는 새 헌법을 만들도록 합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는 전환기적 시련과 도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감염병과 기후 위기, 공급망 혼란, 남북갈등을 비롯한 숱한 불안 요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습니다.
저성장과 양극화, 사회적 갈등은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에 강한 민족입니다.
우리는 이미 식민지배와 전쟁과 가난을 이겨냈습니다.
짧은 시간에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어떤 위기도 다시 이겨내고 전진할 것입니다.
의회민주주의의 이정표를 남기기 위해 성심으로 노력했습니다.
부족함과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의회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의회정치가 부활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함께 노력해주신 국회의원과 국회 직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후대의 국회 지도자들이 저의 부족함을 거울삼아 아름다운 의회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우기를 바랍니다.
국회의장으로서 국민과 더불어 일했던 지난 2년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며칠 후면 평의원으로 돌아갑니다.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과 국익을 위한 헌신의 길을 흔들림 없이 뚜벅뚜벅 걷겠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를 합니다.
열심히만 하면 내일이 오늘보다 좋아지는 세상, 인생에 한 번 실패해도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세상,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세상, 어느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꿈의 크기가 달라지지 않는 나라, 남과 북이 화해와 평화의 강을 함께 노 젓는 나라를 위해서 헌신해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국민통합과 한반도평화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치에 뛰어들 때 지녔던 초심을 되새기며 헌신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