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면 사라지는 서울 택시 미스터리

11시 넘기면 집에 가긴 글렀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도시의 ‘밤’이 다시 길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도 어느덧 한 달째. 시간에 쫓기는 술자리 풍경도 이젠 옛말이다. 대중교통 운행이 대부분 끝난 자정 즈음이 되면, 대로변은 택시를 찾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택시 잡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그 많던 택시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서울에서 일하는 직장인 A씨.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회식이 돌아온 요즘, 부쩍 택시 탈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택시 잡기가 쉽지 않다. 택시를 잡는 데 짧아도 30분, 길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지나가는 택시뿐만 아니라 전화·앱 등을 총동원해도 마찬가지다.

회식은 부활
택시는 실종?

A씨는 “술자리가 많아지면서 택시를 타려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맞지만, 택시 수도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고 느낀다”며 “돈을 좀 더 줘야 하는 콜택시, 호출 앱 등을 써도 잡히질 않는다. 종로나 건대입구 같은 번화가에서 택시를 타려면 길 위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A씨 말대로, 최근 불거진 심야 택시 ‘대란’은 공급이 급감한 탓이 크다.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그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코로나 불황 때 업계를 떠난 인력은 돌아올 기미조차 없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전국 택시 기사 수는 지난 2월 기준 23만9434명이다. 2년 전 26만1634명에 비해 8.4% 줄었다.

이 중 법인 택시 종사자 수는 같은 기간 9만6709명에서 7만4754명으로 22.7% 감소했다. 특히 수도권의 낙폭이 두드러진다. 서울 법인택시 기사는 2020년 2월 2만9203명에서 지난 2월 2만709명으로 감소했다. 불과 2년 만에 3분의 1이 줄어든 셈이다. 경기도청 역시 지난 2년간 관내 법인택시 기사가 26.5% 감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택시 법인들은 인력난 때문에 차량은 남아돌지만 ‘몰 사람’이 없는 웃지 못할 상황에 부닥쳤다. 법인택시를 정상 운행하기 위해서는 1대에 최소 1.5~2명 이상의 인원이 배치돼야 한다. 그런데 경기도의 택시 법인들은 지난 3월을 기준으로 차량당 평균 1.03명의 기사를 보유하고 있다.

코로나 유행 이전인 2019년 차량당 1.4명 이상의 기사를 확보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서울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서울시 내 법인택시 가동률은 30%대, 경기도는 40%대로 주저앉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야 택시 운행의 주축인 법인택시가 줄어든 것이 심야 교통난에 결정타를 날린 셈이다.

법인택시 기사의 이탈이 가속화된 표면적 원인은 코로나 유행에 따른 수입 감소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기사들의 대규모 이탈은 더 근본적인 문제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택시 기사는 “단순히 코로나가 문제였다면, 어느 정도 수습된 지금 돌아오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거리두기가 풀린 지 한 달째에, 택시가 부족하다는 말이 많은데도 복귀자가 없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꼬집었다.

법인택시 기사들의 수입은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제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일명 ‘사납금’ 제도와 그 잔재 때문이다.

심야 택시 ‘대란’…발 묶인 시민들
변변찮은 수입에 택배·배달로 이탈

사납금은 기사가 운행이 끝나면 회사에 가져다줘야 하는 돈이다. 주간 운행 시 12만~14만원, 야간은 15만~17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사납금을 다 채워주지 못하면 임금이 깎인다. 다 채운다고 해서 많은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실제 근로시간을 따져보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법인택시 기사의 처우 문제가 지속적으로 도마에 오르자, 공공 주도로 ‘전액관리제’라는 개선책이 등장했다. 하지만 개선 효과는 미미했고, “이름만 바꿨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개악’이라고 혹평했다. 전액관리제는 일 단위 납부가 원칙인 사납금을 월 단위 목표액으로 바꾼 것이 특징이다.

‘목표액을 채운 기사는 일정 월급과 유류부가세 등을 받아간다’는 큰 틀은 유지됐다. 대신 기본급이 이전보다 소폭 올랐다. 대신 목표액이 기존 사납금보다 높은 경우도 빈번했고, 초과금은 회사와 6대4로 나누게 됐다. “수입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었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여기에 코로나발 불황까지 겹쳐지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법인택시 기사들은 배달·택배 등 수입이 더 높은 업종으로 이탈했다. 

법인택시를 거쳐 개인택시를 5년째 몰고 있다는 B씨는 “노동강도는 배달이나 택배가 더 높을 수도 있겠지만, 벌이 차이가 그 이상”이라며 “남은 기사들은 대부분 고령이라 떠나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이다. 갈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다 갔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급한 대로 개인택시에 눈을 돌리고 있다. 개인택시 기사는 운행 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심야 운행 선호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 여러 곳이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각종 ‘당근’을 내걸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부터 오후 5시~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운행하는 근무조 ‘심야9조’를 모집했다. 유가보조금 지원, 서울시 인센티브 제공 등 각종 혜택도 내세웠다. 

당근 걸어도
묵묵부답

그럼에도 서울시는 당초 목표인 5000대 모집에 실패했다. 서울시는 지난 11일 다시 기사들에게 안내문을 보내는 등 참여 독려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 서울시는 지난 12일부터 ‘해피존’을 운영하고 있다. 해피존이란 매주 목·금요일 저녁 10시30분부터 새벽 1시까지 시민들의 택시 승차를 돕는 임시 택시 승차대다. 해피존에서 승객을 태운 택시기사는 1만원 안팎의 추가 운임을 제공받는다.

서울시는 다음달 3일까지 종로·신촌·강남 등 택시 수요가 몰리는 주요 지역에 해피존을 설치하고 택시 운행을 집중시킨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게 중론이다. 제도 시행 이후에도 교통난을 호소하는 사례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B씨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없다”며 “큰 병에 걸린 환자한테 진통제만 주면 환자가 낫겠느냐”고 날을 세웠다.

B씨 설명에 따르면 개인택시가 심야 운행 참여에 소극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기사 대부분이 고령층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심야 운행에 따른 체력적 부담이 더 심할뿐더러, 사고 위험 역시 크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2월 부산의 대형마트 주차장 5층에서 벌어진 택시 추락 사고도 70대 운전자의 조작 과실로 벌어진 일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발생한 택시 사고 중 65세 이상의 기사가 낸 사고 비중은 46%였다. 2015년 수치의 두 배에 달한다.

취객 등으로 심야 운행 도중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점도 이들이 심야 운행을 꺼리는 이유다. 취객의 택시 기사 폭행은 잊을 만하면 다시 반복되고 있고, 피해자들은 대부분 고령의 기사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젊은 여성 1명을 폭행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지난달 22일 오후 9시15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에서 60대로 추정되는 택시 기사에게 발길질을 하고 멱살을 잡아 업어치기를 시도하는 등 폭행했다. 그는 당시 만취 상태였다.

본질 빼먹고
사후 약방문

B씨는 “기사 고령화 부추기고, 젊은 기사들 유입 막은 게 서울시”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그러고는 이제 와 저런 미봉책이나 남발하고 있다”며 “사고 날까 두렵고, 혹시 맞진 않을까 무서워서 안 한다는 사람들이 돈 몇 푼 더 준다고 잘도 나서겠다”고 비꼬았다.

B씨 주장을 종합하면, 개인택시 고령화 현상 역시 ‘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서울시의 과도한 규제와 역차별이 고령화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개인택시는 서울시 방침에 따라 부제 시행, 택시 총량제, 번호판 판매 제한 등의 규제를 받는다. 더 나아가 기사들은 기본요금·심야 할증 요금 규정도 사실상 규제로 인식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 내 개인택시는 가~다 및 라(일요일)·9조(야간)으로 나뉘어 운행 중이다. 개인택시들은 부제에 따라 이틀 운행 후 하루를 무조건 휴식해야 한다. 서울시는 “과도한 운행에 따른 사고 위험을 줄이겠다”는 취지를 내세우지만, 설득력이 높진 않다.

일관성이 없는 탓이다. 부제는 지자체별로 시행 여부가 천차만별인데다 법인·플랫폼 택시는 적용 대상도 아니다.

B씨는 “서울 택시는 안 쉬면 사고 나고, 경기도 구리 택시는 안 나느냐”며 “엄연히 따지자면 우리는 1억원 주고 번호판 사서 사업하는 개인사업자다. 그런데 지자체에서 자의적으로 휴무일을 정하고 이를 강요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비판했다.

개인택시를 시작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택시 대수의 상한선을 정해두는 ‘택시 총량제’ 때문이다. 개인택시 기사들은 이 ‘자리’를 얻기 위해 1억여원을 들여 번호판을 구매한다. 하지만 플랫폼 택시는 국토교통부에 40만원 가량의 기여금만 내면 영업면허를 받을 수 있고, 택시 총량제 적용도 받지 않는다.

개인택시, 역차별·탁상공론에 몸살
지자체, 업계 고질병 해결책 고심

또한 서울시에는 ‘60세 미만은 번호판을 산 뒤 5년 이내에 다시 팔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큰 수입을 기대하기도 어려운데 목돈까지 5년 동안 꼼짝없이 묶이는 상황. “서울시가 젊은 기사 유입을 막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택시도 법인택시처럼 젊은 기사들은 다른 업종으로 빠져나가고, 비교적 고령으로 다른 일을 하기 힘든 사람들만 남는 추세다. 현재 서울 내 개인택시 기사 평균 연령은 64.5세를 넘어선다.

이렇듯 택시업계는 개인·법인 가릴 것 없이 낮은 수입·인력 이탈과 고령화·플랫폼 택시와의 경쟁 등 ‘삼중고’에 시달리는 중이다. 지자체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다.

대구·양양 등 일부 지자체는 기사 수입 증대를 위해 기본요금 인상을 검토·시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중형 택시의 심야 할증 적용 시간을 밤 12시에서 오후 10시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심야 할증 제도 정비는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기본요금은 2019년부터 동결된 상태다.

반면 플랫폼 택시는 이미 수익성 제고에 성공했다. 탄력요금제 적용 등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들이 운행하는 대형택시·프리미엄 택시 등은 수요에 따라 요금을 3배까지 할증해 받을 수 있다. 일반 택시는 ‘심야에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시외로 나간다’는 억지 가정에도 최대 40% 할증까지만 가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개인택시 기사들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가고, 그 자리를 플랫폼 택시가 빠르게 메워나가는 중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여파가 승객에게까지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승객은 이들의 선의의 경쟁을 응원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야 합리적 가격에 양질의 서비스를 누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기존 택시 산업이 무력하게 패퇴하는 모양새다. 이대로라면 플랫폼들이 택시 시장을 쥐고 흔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게 된다면 교통난이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 택시업계 관계자는 “카카오택시는 지난해 여름 호출비를 최대 5000원까지 인상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며 “강한 반발에 부딪혀 철회하긴 했지만, 언제 다시 시도해도 이상하지 않다. 업계 내 경쟁이 사라진다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웃는 자는
플랫폼뿐?

이어 “숱한 논란으로 기존 택시에 대한 시민들 시선이 부정적인 것은 안다”면서도 “그래도 이들이 대항마로 남아줘야 시민 입장에서도 좋은 거다. 시민들이 기사 처우 개선과 제도 정비에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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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