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장시간 착용한 마스크로 얼굴이 짓물러 상처 치료용 밴드를 겹겹이 붙인 얼굴. 사진 속 인물은 마스크를 다시 착용하며 웃는다. 이들은 바로 ‘코로나19 영웅’이라고 불리는 ‘간호사’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영웅’ ‘천사’ 등의 찬사가 아닌 ‘간호사법’ 제정이다. 그러나 보건 의료 10개 단체는 간호사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발간한 ‘보건 의료자원 현황 통계분석(2016~2020)’에는 보건 의료 인력의 수치가 실려 있다. 분석 자료에 따르면 의과‧치과‧한의과를 포함한 의사는 15만6992명, 의과 전문의는 8만8877명, 약사는 3만9765명이다. 간호사 면허증 소지자는 대략 46만명이고, 간호사는 22만5462명이다.
OECD 33개국
의사‧의과 전문의‧약사를 다 포함한 숫자가 간호사 숫자보다 6만명 정도 많다. 의료 인력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간호사가 병원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의 보건 의료 인력들 중에는 간호사 수가 가장 많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국은 국민 1인당 연간 외래진료 횟수 1위, 평균 입원 일수는 OECD와 비교하면 평균 2.5배 높다. 그러나 간호사 수는 OECD보다 절반 이상 적다.
보통 외국에서는 한 명의 간호사가 4~5명의 환자를 본다면, 한국은 한 명이 20~30명의 환자를 관리한다. 이 같은 문제는 간호사 면허증 소지자 중에서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간호사가 절반 수준이라는 데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과한 간호사들은 ‘왜’ 간호 일을 그만두는 것일까.
그 배경에는 간호사에 대한 처우, 노동환경, 업무 강도 등의 문제를 들 수 있지만, 현재 간호사들이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은 ‘간호법’의 부재다. 그렇다고 간호사에 관한 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료법’이라는 이름으로 보건 의료 인력을 도와 국민의 보건 향상을 높이는 법이 있다.
다만 이 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를 모두 포괄하고 있지만, 대부분 의사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에는 간호사 업무에 관해 ▲환자의 간호 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 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상담 및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의 기획과 수행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보건활동 ▲간호조무사가 수행하는 업무보조에 대한 지도가 있다.
하지만 전문 간호사의 역할은 ▲가정 ▲감염관리 ▲노인 ▲마취 ▲보건 ▲산업 ▲아동 ▲응급 ▲임상 ▲정신 ▲종양 ▲중환자 ▲호스피스 등으로 나뉘어, 국민의료법이 간호사의 전문성과 역할을 나누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이유로 대한간호협회 등은 ‘간호사법’ 제정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3월25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 등 49인이 발의한 ‘간호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힘을 싣고 있다.
간호법안에는 “현행 국민의료법은 1951년 제정돼 숙련된 간호사 등 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근무환경의 개선과 지역 간 인력 수급 불균형의 해소를 위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간호 정책 시행이 필요하다. 현행 의료법에는 이와 관련된 규정이 미비한 상태”라고 제안 이유가 설명돼있다.
법의 사각지대 놓인 ‘간호사’
보건 의료 10개 단체 제정 반기
“의료체계 붕괴” vs “가짜뉴스”
법안에는 간호사에 대한 ▲정의 ▲국가시험 ▲역할 ▲업무 ▲업무환경 등을 세밀히 나눴다. 현재 간호법안은 국회 보건복지부 법안심사 소위에 머물고 있다.
이 ‘간호법안’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이다.
이들 단체들이 간호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오직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 만들어질 경우 보건 의료 지역 간 갈등을 유발된다는 점 때문이다. 현행 의료체계보다 간호법안을 우선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간호단독법은 보건 의료 정책의 근간을 붕괴시킬 우려가 매우 크다. 그 위험성에 우리는 엄중히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간호사의 업무가 ‘의사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에서 ‘의사의 처방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될 경우 간호사의 단독 의료행위로 환자의 응급상황 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수 있고, 119 구급대, 해양경찰 등 여러 분야에서 응급환자를 돌보고 있는 응급구조사의 업무가 모두 무면허 간호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간호법이 제정되면 의원급 의료기관 경영이 어려워져 병원비를 올려야 한다’ ‘요양보호사와 동등한 국가자격을 간호사 면허에 종속시킨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대한간호협회는 “가짜뉴스를 만들지 말라”며 이들 주장이 무엇이 틀렸는지 설명했다. 우선 ‘간호법이 보건 의료 정책을 붕괴시킨다’에 관한 것이다.
국민의료법 제27조에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다.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는 ‘의료기사 등이 아니면 의료기사 등의 업무를 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다.
간호법안에는 ‘간호사가 아니면 누구든지 간호사 업무를 할 수 없으며, 간호사도 면허된 것 외의 간호 업무를 할 수 없다’고 돼있다. 즉 간호법안이 단독으로 나와도 각자의 업무를 하는 것이지, 보건 의료 정책이 무너진다고 할 수 없다.
같은 맥락으로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를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에 따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해,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환자 진료에 필요한 행위를 할 수 없다.
“간호법이 제정되면 의료기관 경영이 어렵다”는 주장도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간호법은 의료기관, 장기 요양기관, 어린이집 등의 간호 인력 기준을 담고 있지 않다.
특히 간호조무사 업무는 간호 보조지만, 예외적으로 간호조무사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지도하에 진료보조를 허용하는 현행 의료법 규정을 그대로 반영했다.
아울러 “요양보호사와 동등한 국가자격을 간호사 면허에 종속시킨다”는 주장도 오해라고 반박했다. 요양보호사의 권리 등과 관련된 자격관리, 교육과정 등은 노인복지법에 나와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장기 요양기관에서만 업무 영역이 한정된 요양보호사의 업무 영역을 의료기관과 지역사회로 확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적 이용”
국제간호협의회(ICN) 파멜라 시프리아노(Pamela Cipriano) 회장은 지난 7일 ‘간호법 제정을 위한 특별방한기념 간담회’에서 “간호법은 환자의 안전을 위한 것뿐 아니라 간호사의 역량 강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며 “간호법 제정을 정치적 문제로 인식하면 안 된다. OECD 38개국 중 33개국에서 간호법을 제정해 환자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한국도 조속히 간호법이 제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