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윤석열 당선인 파란만장 인생사

희로애락 드라마 같은 62년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제20대 대선. 그 대장정의 끝은 5년 만의 정권교체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0.73%p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지 불과 8개월 만의 일이다. 사시 9수생이 특수통 강골 검사로 거듭났고, 좌천됐다가 검찰총장으로 파격 영전했다.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다 사퇴한 뒤에는 1년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렇듯 윤 당선인의 인생역정은 유난히 파란만장했다.

윤 당선인은 1960년 12월18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서 태어났다.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와 최성자씨 사이의 1남1녀 중 첫째다. 유복하고도 학구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울 대광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각종 위기 극복
야 결집 진땀승

또래보다 큰 덩치에 골목대장을 도맡아 했고, 똘똘하다는 뜻의 ‘돌돌이’로 불렸다. 이어 충암중학교, 충암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 유명한 일화로는 ‘전두환 모의재판’ 사건이 있다.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던 1980년 5월, 윤 당선인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 피고로 선 전두환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는 그 후폭풍으로 석 달간 강원도 강릉 외가로 피신해야 했다.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를 통과했다. 교수가 되고자 했던 그는 ‘사시에 붙고 유학을 다녀오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2차 시험에서 연거푸 낙방하면서 최종 합격까지는 총 9번의 도전이 필요했다. 그는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온 동네 관혼상제를 다 챙기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이어 “9수 시험 직전에도 대구에서 결혼하는 친구 함을 지러 갔다”며 “그때 고속버스에서 봤던 비상상고가 이례적으로 시험에 나온 덕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비상상고란 검찰총장만 청구할 수 있는 형사소송법상 고유권한이다. 후에 윤 당선인은 이를 두고 “운명”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윤 당선인은 3년 뒤인 1994년 사법연수원을 제23기로 수료한다. 당초에는 변호사 개업을 염두에 두고 ‘3년만 경험해보자’는 생각으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결심은 26년이라는 기나긴 공직생활로 귀결됐다.

첫 발령지는 대구지방검찰청이었다. 이후 약 8년간 각지 지검‧지청을 거치며 무난한 이력을 쌓았다. 2002년 1월에는 검사복을 벗고 대형 로펌 ‘태평양’에 들어갔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1년 뒤 다시 광주지검으로 복귀하며 검사 생활을 이어간다.

“검찰청 복도에서 나는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는 게 그 이유였다. 참여정부에 들어서는 굵직한 특수 사건들을 연달아 맡으며 일명 ‘특수통 칼잡이’로 거듭났다.

정권 초기인 2003년에는 SK 분식회계 사건, 불법 대선자금 사건을 맡았다. 대선자금 수사에서는 당시 ‘살아 있는 권력’이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을 구속하기도 했다.

2006년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 때 “정몽구 전 회장을 구속하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며 지휘부에 맞선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에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론스타 사건),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한나라당대통령후보범죄혐의진상규명특별검사(일명 BBK특검) 수사에 모두 참여했다.

0선 정치 8개월 ‘왕초보’
뚝심 하나로 대권 잡았다

이때 수사 능력을 인정받아 이명박정부 들어서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서울중앙지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윤 당선인이 이명재‧정상명 등 당시 검찰총장들의 총애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법조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일반 대중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것은 2013년. 박근혜정부 때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면서다.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으로 있다가 해당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그는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의 체포·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국정원 압수수색은 헌정사상 최초였다. 아울러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은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검찰 수뇌부는 윤 당선인을 수사팀에서 배제했다. 영장 청구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게 명분이 됐다.

윤 당선인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직격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황 장관이 수사 지휘권을 틀어쥐고 있다며” “법무부와 검찰 일부에서 다른 뜻이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당해 10월 열린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국감장에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면서 “대놓고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는 질책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발언도 남겼다. 그가 대중들의 눈에 ‘강골 검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정권에 밉보인 그는 지방 고검 한직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대구고검과 대전고검 검사로 재직하며 4년간 야인으로 지냈다. 이맘때 민주당에서 총선 출마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고사했다. 그는 “검찰에 남아 후배들을 챙겨야 한다” “후배들이 나를 ‘정치 검사’로 보지 않겠느냐”고 고사의 변을 밝혔다.

정권 밉보여 
사실상 좌천

그의 특수통 이력은 사실상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며 끝내 화려하게 재기한다. 2016년 탄핵 정국에 들어 최순실등국정농단특별검사(일명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을 맡게 되면서다. 


이른바 ‘촛불 혁명’의 중심에 서게 된 그는 문재인정부 들어 파격과 출세의 상징이 됐다.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윤 당선인은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한다. 검찰 내 기수와 서열문화에 철저히 반하는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검찰 안팎에서 나왔다.

전임자인 이영렬 전 서울지검장은 사법연수원 18기 출신으로 윤 당선인과 다섯 기수 차이였다. 동기나 후배 기수가 총장이나 고검장으로 올라서면 스스로 물러나는 검찰의 ‘용퇴’ 관행을 고려하면, 청와대가 윤 당선인을 이용해 고위직 검사들에게 사실상의 거취 압박을 가한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이처럼 윤 당선인은 문재인정부 초기 적폐 청산의 ‘칼’ 그 자체이자 ‘칼잡이’였다. 존재 자체만으로 검찰개혁의 초석을 놓은 것에 이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를 진두지휘해 중형을 이끌어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했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수감시켰다.

윤 당선인은 2019년 6월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명됐다. 문 대통령은 야당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했다.

고민정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윤 지검장은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권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윤 지검장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은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시대적 사명인 검찰 개혁과 조직 쇄신 과제도 훌륭히 완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바람과는 달리, 윤 당선인은 검찰개혁 계획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양측은 검찰개혁 계획의 핵심으로 꼽히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두고 정면충돌했다.


윤 당선인은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그대로 따르며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에 칼끝을 겨눴다.

골목대장 ‘돌돌이’
9수 끝 강골 검사로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고수해 여당과 정부의 눈엣가시가 됐다. 조 전 장관 딸의 입시비리 의혹,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모펀드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윤 당선인은 당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 전 장관 일가 수사에 대한 의견을 나눈 뒤 “수사를 안 하면 우리가 검사냐”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알려졌다.

조 전 장관의 후임자인 추미애 전 장관이 윤 당선인에게 공공연한 거취 압박을 가하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됐다. 윤 당선인은 다시 국정감사에 출석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추 전 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을 두고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측근들이 모두 좌천당한 인사 결과에 대해서는 “전례가 없는 인사”라고 반발했다. 이 같은 추‧윤 갈등은 추 전 장관이 윤 당선인에게 검찰총장직 직무 정지를 명령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법무부 검사 징계위원회는 그에게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윤 당선인은 두 건 모두 행정소송 제기로 응수했다. 결국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총장직에 복귀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임기 종료까지 넉 달가량 남은 시점이었다.

그는 사퇴하면서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볼 수 없다”며 “검찰에서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는 말을 남겼다. 윤 당선인은 이미 사퇴 이전부터 반문(반 문재인) 세력의 중심으로 떠오른 지 오래였다. 정치 입문 선언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줄을 이었다.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는 줄곧 선두를 달렸다.

문정부 초
기사회생

그는 사퇴 후 석 달간 잠행을 이어갔다. 그동안 각계 원로와 전문가를 두루 만나며 실력 쌓기에 주력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29일,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이날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출마 선언 직후부터 그는 국민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다. ‘윤석열 X파일’과 처가 비리 논란, 고발 사주 의혹 등 각종 검증에 시달린 탓이다. 도덕성 리스크가 급부상하는 동시에, 여의도 문법과 동떨어진 과감한 화법으로 각종 발언이 줄곧 입방아에 올랐다.

한 달 뒤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후에도 부침은 계속 이어졌다. 입당 직후부터 불거진 당 대표 ‘패싱’ 논란부터 전두환 옹호 논란, ‘개 사과’ 논란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갖은 위기를 맞았다.

홍준표·유승민·원희룡 등 당내 유력 경쟁주자들이 논란과 처가 비리 의혹 등을 묶어 융단폭격을 가했다. 그럼에도 윤 당선자는 압도적인 당내 지지율을 유지하는 저력을 보였다. 심지어 보수 궤멸에 앞장섰다는 주홍글씨와 박 전 대통령 구속 책임론마저 버텨냈다.

결국 윤 당선인은 당내 경선에서 홍준표 의원의 맹추격을 따돌리고 승리했다. 여론조사에서 수세에 몰렸지만, 탄탄한 당내 지지를 끝까지 지킨 것이 주효했다.

우여곡절 끝에 당 대선후보가 됐어도 원팀 구성은 요원한 일이었다. 계속 지적돼왔던 당 대표 패싱 논란이 더욱 심화됐고, 함께 터진 윤석열 핵심 관계자(윤핵관) 리스크도 골칫거리였다. 경선 패배로 내상을 입고 칩거에 들어간 유승민 전 의원, 홍준표 의원 등의 적극적인 협력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기에 야심차게 구성했던 매머드급 선대위에서도 각종 논란이 쏟아지자, 경선 승리 직후 40%를 넘겼던 지지율이 20%대까지 수직 하락하면서 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

화려한 인생 2막 열어
새로운 드라마 써낼까?

윤 당선인은 ‘선대위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실무형 선대본부로 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이준석 당 대표와의 갈등은 울산 회동, 의원총회장 방문 등 직접 뛰며 봉합에 나섰다.

삼고초려 끝에 유승민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의 합류도 성사시켰다.

이후 윤 당선인은 빠르게 지지율을 회복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빠진 것을 틈타 그간 잃었던 부동층 지지율을 다시 거둬들였다. 호남·MZ세대 등 기존에 보수정당을 등한시하던 유권자들을 집중 공략하며 소구력을 높이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구사했다.

선거 막판 이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나타나는 초접전이 이어지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 전까지 야권 단일후보 논의는 국민의당의 결렬 통보, 국민의힘의 협상 내용 공개 등으로 공전을 거듭해왔다.

윤 당선인은 심야 회동을 통해 안 전 후보의 마음을 돌렸다. 안 전 후보는 사전투표 전날 오전, 자진사퇴 후 윤 당선인 지지를 천명했다.

단일후보를 배출한 보수 야권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의 낙승을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표 당일 뚜껑을 열어보니, 역대급 박빙 결과가 나왔다. 윤 당선인과 이 후보 간의 표차는 단 24만7000표. 득표율은 0.73%p 차이에 불과했다.

윤 당선인은 승리가 확실시된 지난 10일 오전 4시30분경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국민의힘 대선 개표 상황실에 방문해 당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들을 잘 모시겠다”며 “빠른 시일 내에 합당을 마무리 짓고 외연을 넓혀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비마다
먹힌 승부수

지난 26여년간 검사로서 드라마 같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어온 윤석열 당선인. 정치인으로 환골탈태한 지 8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인생 2막의 초입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다만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여소야대 정국·코로나 시국 수습 등 각종 난제가 산적해 있다. 과연 ‘대통령 윤석열’은 어떤 해법을 제시할까. 온 국민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새로 쓴 윤석열 대선 기록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제20대 대선에서 승리와 함께 각종 최초·최고 기록들을 받아들었다.

우선 윤 당선인은 직선제 시행 이후 최초로 ‘10년 주기설’을 깬 후보로 기록됐다.

윤 당선인 이전에는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보수와 진보 진영이 각각 10년마다 정권을 주고받았다.

또 1639만4815표를 받으며 역대 최고 득표수를 갱신하고도 역대 최소 표차·득표율 차를 기록하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종전 기록은 제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1577만3128표와 제15대 대선 당시 김대중·이회창 후보 간의 39만557표(1.53%p) 차였다.

‘서울대 법대 필패론’ 징크스도 최초로 깨트렸다.

지금까지 서울대 법대 출신들의 대권 도전은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번 선거를 포함하면 이회창·이인제·이낙연·최재형·원희룡 등 서울대 법대 졸업생들이 대권에 도전한 바 있다.

이외에도 윤 당선인은 최초의 0선 출신 대통령, 최초의 서울 출생 대통령,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 등의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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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