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윤석열 당선인 파란만장 인생사

희로애락 드라마 같은 62년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제20대 대선. 그 대장정의 끝은 5년 만의 정권교체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0.73%p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지 불과 8개월 만의 일이다. 사시 9수생이 특수통 강골 검사로 거듭났고, 좌천됐다가 검찰총장으로 파격 영전했다.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다 사퇴한 뒤에는 1년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렇듯 윤 당선인의 인생역정은 유난히 파란만장했다.

윤 당선인은 1960년 12월18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서 태어났다.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와 최성자씨 사이의 1남1녀 중 첫째다. 유복하고도 학구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울 대광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각종 위기 극복
야 결집 진땀승

또래보다 큰 덩치에 골목대장을 도맡아 했고, 똘똘하다는 뜻의 ‘돌돌이’로 불렸다. 이어 충암중학교, 충암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 유명한 일화로는 ‘전두환 모의재판’ 사건이 있다.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던 1980년 5월, 윤 당선인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 피고로 선 전두환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는 그 후폭풍으로 석 달간 강원도 강릉 외가로 피신해야 했다.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를 통과했다. 교수가 되고자 했던 그는 ‘사시에 붙고 유학을 다녀오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2차 시험에서 연거푸 낙방하면서 최종 합격까지는 총 9번의 도전이 필요했다. 그는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온 동네 관혼상제를 다 챙기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이어 “9수 시험 직전에도 대구에서 결혼하는 친구 함을 지러 갔다”며 “그때 고속버스에서 봤던 비상상고가 이례적으로 시험에 나온 덕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비상상고란 검찰총장만 청구할 수 있는 형사소송법상 고유권한이다. 후에 윤 당선인은 이를 두고 “운명”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윤 당선인은 3년 뒤인 1994년 사법연수원을 제23기로 수료한다. 당초에는 변호사 개업을 염두에 두고 ‘3년만 경험해보자’는 생각으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결심은 26년이라는 기나긴 공직생활로 귀결됐다.

첫 발령지는 대구지방검찰청이었다. 이후 약 8년간 각지 지검‧지청을 거치며 무난한 이력을 쌓았다. 2002년 1월에는 검사복을 벗고 대형 로펌 ‘태평양’에 들어갔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1년 뒤 다시 광주지검으로 복귀하며 검사 생활을 이어간다.

“검찰청 복도에서 나는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는 게 그 이유였다. 참여정부에 들어서는 굵직한 특수 사건들을 연달아 맡으며 일명 ‘특수통 칼잡이’로 거듭났다.

정권 초기인 2003년에는 SK 분식회계 사건, 불법 대선자금 사건을 맡았다. 대선자금 수사에서는 당시 ‘살아 있는 권력’이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을 구속하기도 했다.

2006년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 때 “정몽구 전 회장을 구속하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며 지휘부에 맞선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에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론스타 사건),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한나라당대통령후보범죄혐의진상규명특별검사(일명 BBK특검) 수사에 모두 참여했다.

0선 정치 8개월 ‘왕초보’
뚝심 하나로 대권 잡았다

이때 수사 능력을 인정받아 이명박정부 들어서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서울중앙지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윤 당선인이 이명재‧정상명 등 당시 검찰총장들의 총애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법조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일반 대중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것은 2013년. 박근혜정부 때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면서다.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으로 있다가 해당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그는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의 체포·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국정원 압수수색은 헌정사상 최초였다. 아울러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은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검찰 수뇌부는 윤 당선인을 수사팀에서 배제했다. 영장 청구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게 명분이 됐다.

윤 당선인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직격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황 장관이 수사 지휘권을 틀어쥐고 있다며” “법무부와 검찰 일부에서 다른 뜻이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당해 10월 열린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국감장에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면서 “대놓고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는 질책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발언도 남겼다. 그가 대중들의 눈에 ‘강골 검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정권에 밉보인 그는 지방 고검 한직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대구고검과 대전고검 검사로 재직하며 4년간 야인으로 지냈다. 이맘때 민주당에서 총선 출마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고사했다. 그는 “검찰에 남아 후배들을 챙겨야 한다” “후배들이 나를 ‘정치 검사’로 보지 않겠느냐”고 고사의 변을 밝혔다.

정권 밉보여 
사실상 좌천

그의 특수통 이력은 사실상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며 끝내 화려하게 재기한다. 2016년 탄핵 정국에 들어 최순실등국정농단특별검사(일명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을 맡게 되면서다. 

이른바 ‘촛불 혁명’의 중심에 서게 된 그는 문재인정부 들어 파격과 출세의 상징이 됐다.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윤 당선인은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한다. 검찰 내 기수와 서열문화에 철저히 반하는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검찰 안팎에서 나왔다.

전임자인 이영렬 전 서울지검장은 사법연수원 18기 출신으로 윤 당선인과 다섯 기수 차이였다. 동기나 후배 기수가 총장이나 고검장으로 올라서면 스스로 물러나는 검찰의 ‘용퇴’ 관행을 고려하면, 청와대가 윤 당선인을 이용해 고위직 검사들에게 사실상의 거취 압박을 가한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이처럼 윤 당선인은 문재인정부 초기 적폐 청산의 ‘칼’ 그 자체이자 ‘칼잡이’였다. 존재 자체만으로 검찰개혁의 초석을 놓은 것에 이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를 진두지휘해 중형을 이끌어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했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수감시켰다.

윤 당선인은 2019년 6월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명됐다. 문 대통령은 야당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했다.

고민정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윤 지검장은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권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윤 지검장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은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시대적 사명인 검찰 개혁과 조직 쇄신 과제도 훌륭히 완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바람과는 달리, 윤 당선인은 검찰개혁 계획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양측은 검찰개혁 계획의 핵심으로 꼽히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두고 정면충돌했다.

윤 당선인은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그대로 따르며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에 칼끝을 겨눴다.

골목대장 ‘돌돌이’
9수 끝 강골 검사로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고수해 여당과 정부의 눈엣가시가 됐다. 조 전 장관 딸의 입시비리 의혹,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모펀드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윤 당선인은 당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 전 장관 일가 수사에 대한 의견을 나눈 뒤 “수사를 안 하면 우리가 검사냐”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알려졌다.

조 전 장관의 후임자인 추미애 전 장관이 윤 당선인에게 공공연한 거취 압박을 가하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됐다. 윤 당선인은 다시 국정감사에 출석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추 전 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을 두고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측근들이 모두 좌천당한 인사 결과에 대해서는 “전례가 없는 인사”라고 반발했다. 이 같은 추‧윤 갈등은 추 전 장관이 윤 당선인에게 검찰총장직 직무 정지를 명령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법무부 검사 징계위원회는 그에게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윤 당선인은 두 건 모두 행정소송 제기로 응수했다. 결국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총장직에 복귀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임기 종료까지 넉 달가량 남은 시점이었다.

그는 사퇴하면서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볼 수 없다”며 “검찰에서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는 말을 남겼다. 윤 당선인은 이미 사퇴 이전부터 반문(반 문재인) 세력의 중심으로 떠오른 지 오래였다. 정치 입문 선언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줄을 이었다.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는 줄곧 선두를 달렸다.

문정부 초
기사회생

그는 사퇴 후 석 달간 잠행을 이어갔다. 그동안 각계 원로와 전문가를 두루 만나며 실력 쌓기에 주력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29일,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이날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출마 선언 직후부터 그는 국민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다. ‘윤석열 X파일’과 처가 비리 논란, 고발 사주 의혹 등 각종 검증에 시달린 탓이다. 도덕성 리스크가 급부상하는 동시에, 여의도 문법과 동떨어진 과감한 화법으로 각종 발언이 줄곧 입방아에 올랐다.

한 달 뒤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후에도 부침은 계속 이어졌다. 입당 직후부터 불거진 당 대표 ‘패싱’ 논란부터 전두환 옹호 논란, ‘개 사과’ 논란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갖은 위기를 맞았다.

홍준표·유승민·원희룡 등 당내 유력 경쟁주자들이 논란과 처가 비리 의혹 등을 묶어 융단폭격을 가했다. 그럼에도 윤 당선자는 압도적인 당내 지지율을 유지하는 저력을 보였다. 심지어 보수 궤멸에 앞장섰다는 주홍글씨와 박 전 대통령 구속 책임론마저 버텨냈다.

결국 윤 당선인은 당내 경선에서 홍준표 의원의 맹추격을 따돌리고 승리했다. 여론조사에서 수세에 몰렸지만, 탄탄한 당내 지지를 끝까지 지킨 것이 주효했다.

우여곡절 끝에 당 대선후보가 됐어도 원팀 구성은 요원한 일이었다. 계속 지적돼왔던 당 대표 패싱 논란이 더욱 심화됐고, 함께 터진 윤석열 핵심 관계자(윤핵관) 리스크도 골칫거리였다. 경선 패배로 내상을 입고 칩거에 들어간 유승민 전 의원, 홍준표 의원 등의 적극적인 협력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기에 야심차게 구성했던 매머드급 선대위에서도 각종 논란이 쏟아지자, 경선 승리 직후 40%를 넘겼던 지지율이 20%대까지 수직 하락하면서 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

화려한 인생 2막 열어
새로운 드라마 써낼까?

윤 당선인은 ‘선대위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실무형 선대본부로 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이준석 당 대표와의 갈등은 울산 회동, 의원총회장 방문 등 직접 뛰며 봉합에 나섰다.

삼고초려 끝에 유승민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의 합류도 성사시켰다.

이후 윤 당선인은 빠르게 지지율을 회복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빠진 것을 틈타 그간 잃었던 부동층 지지율을 다시 거둬들였다. 호남·MZ세대 등 기존에 보수정당을 등한시하던 유권자들을 집중 공략하며 소구력을 높이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구사했다.

선거 막판 이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나타나는 초접전이 이어지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 전까지 야권 단일후보 논의는 국민의당의 결렬 통보, 국민의힘의 협상 내용 공개 등으로 공전을 거듭해왔다.

윤 당선인은 심야 회동을 통해 안 전 후보의 마음을 돌렸다. 안 전 후보는 사전투표 전날 오전, 자진사퇴 후 윤 당선인 지지를 천명했다.

단일후보를 배출한 보수 야권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의 낙승을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표 당일 뚜껑을 열어보니, 역대급 박빙 결과가 나왔다. 윤 당선인과 이 후보 간의 표차는 단 24만7000표. 득표율은 0.73%p 차이에 불과했다.

윤 당선인은 승리가 확실시된 지난 10일 오전 4시30분경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국민의힘 대선 개표 상황실에 방문해 당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들을 잘 모시겠다”며 “빠른 시일 내에 합당을 마무리 짓고 외연을 넓혀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비마다
먹힌 승부수

지난 26여년간 검사로서 드라마 같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어온 윤석열 당선인. 정치인으로 환골탈태한 지 8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인생 2막의 초입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다만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여소야대 정국·코로나 시국 수습 등 각종 난제가 산적해 있다. 과연 ‘대통령 윤석열’은 어떤 해법을 제시할까. 온 국민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새로 쓴 윤석열 대선 기록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제20대 대선에서 승리와 함께 각종 최초·최고 기록들을 받아들었다.

우선 윤 당선인은 직선제 시행 이후 최초로 ‘10년 주기설’을 깬 후보로 기록됐다.

윤 당선인 이전에는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보수와 진보 진영이 각각 10년마다 정권을 주고받았다.

또 1639만4815표를 받으며 역대 최고 득표수를 갱신하고도 역대 최소 표차·득표율 차를 기록하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종전 기록은 제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1577만3128표와 제15대 대선 당시 김대중·이회창 후보 간의 39만557표(1.53%p) 차였다.

‘서울대 법대 필패론’ 징크스도 최초로 깨트렸다.

지금까지 서울대 법대 출신들의 대권 도전은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번 선거를 포함하면 이회창·이인제·이낙연·최재형·원희룡 등 서울대 법대 졸업생들이 대권에 도전한 바 있다.

이외에도 윤 당선인은 최초의 0선 출신 대통령, 최초의 서울 출생 대통령,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 등의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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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