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돈보다 연기 오영수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1.17 12:25:04
  • 호수 13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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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과 고집으로 50년 한 우물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뇌종양에 걸린 칠순 노인이자 오징어 게임 참가번호 001번. <오징어 게임> 오일남은 오영수 배우에게 제79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선사했다. 한국 배우가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건 오 배우가 처음이다.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한국시각 10일 오전 11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할을 맡은 배우 오영수는 <테드 브래소>의 브렛 골드스타인, <더 모닝 쇼>의 마크 듀플라스, 빌리 크루덥, <석세션>의 키에란 컬킨 등과 경합해 남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인종차별 깬 
78세 노배우

오영수 배우는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며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고맙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그간 골든글로브는 백인 위주의 배타적이고 보수적 문화를 상징하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았다”며 “오영수 배우의 수상은 골든글로브가 이제 문호를 넓히지 않으면 존립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도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오징어 게임>에 작품상이나 남우주연상을 주지 않은 것은 아직도 ‘고집’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외신의 반응도 뜨거웠다. 로이터 통신은 “할아버지 오영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상을 차지했다”고 전했고, CNN 방송은 “<오징어 게임> 스타 오영수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포브스는 “독창적인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순식간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인기 드라마라는 명예를 얻었고 극중 오영수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다”며 “(골든글로브 수상에 따라)78살 그의 연기 이력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뒤 오 배우는 한국 최초 수상자로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지만 “내일 연극 공연이 있다”며 인터뷰 제안을 거절했다. 지난달 초 열린 <라스트 세션>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지금까지 50년 이상 조용한 모습으로 연기자 생활을 해왔는데 <오징어 게임> 이후 갑자기 내 이름이 여기저기 불리게 되더라”고 말했다.

당시 오 배우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연극 <라스트 세션>에 출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어서 나름대로 자제심을 가지겠다 생각하던 차에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며 “(그동안)지향해온 내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가게끔 해준 동기가 돼준 것 같아서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해 무대와 관객을 만나겠다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 배우가 <오징어 게임>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그는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놀이의 상징성을 통해서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을 찾아내는 감독의 혜안을 좋게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남한산성> 제작 때도 출연 제의를 줬었는데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징어 게임> 제안을 주셔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지난해 SBS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오영수 배우는 과거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의 이미지가 크게 남아 있다”며 “어느 날 오영수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갔다. 무대 연기를 직접 보고 캐스팅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오 배우에게 <오징어 게임> 촬영은 어린아이의 삶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는 “쉬는 시간에 게임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놀기도 하고 즐거운 촬영이었다”고 촬영 당시를 기억했다.

새 역사 쓴 ‘깐부 할아버지’
골든글로브 첫 한국인 수상

오 배우가 <오징어 게임> 촬영 현장이 즐거웠다고 기억한다면, 관객들은 오영수의 오일남을 ‘목숨을 건 게임에서 원리·원칙을 지키는 사람’ ‘사람들이 패닉일 때 혼자 해맑은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이처럼 세계적 깐부(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를 뜻하는 은어) 할아버지 오일남은 <오징어 게임>에서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은 성기훈과 구슬치기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럼 자네가 날 속이고 내 구슬 가져간 건 말이 되고?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 없는 거야. 그동안 고마웠네. 자네 덕분에 잘 있다가 가네.” 오 배우의 골든글로브 수상은 인종, 언어의 벽을 허문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우물을 판 사람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는 25세에 군 제대 후 취업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극단 단원이었던 친구의 권유로 1963년 극단 광장 단원으로 연극인의 삶을 시작했다. 극단 자유 단원을 거쳐 1987년에는 국립극단 단원이 됐다. 반세기 넘는 세월을 연극배우로 살아온 것이다. 

국립극단에서는 1987년부터 2010년까지 간판 배우로 활동했다. 작품으로는 1996년 연극 <혼수없는 여자>, 1997년 연극 <태>, 2001년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 2008년 연극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2010년 연극 <리어왕>, 2011년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200여편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과의 접점이 많지는 않았다.

그의 짧은 머리 스타일 때문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단역을 맡거나 주연을 하더라도 스님 역할이었다. 1998년 영화 <퇴마록>에서는 단역인 노 신부역을 맡았고, 2003년 영화 <동승>에서는 큰스님, 2003년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도 역시 노스님 역할을 맡았다. 

다수의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1981년 MBC 드라마 <제1공화국>의 군 검사 단역과 1983년 KBS1 <전우>의 종군 기자 단역으로 시작했다. 2009년 MBC의 <선덕여왕>에서는 ‘월천대사’를 연기했는데, 승려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시청자들이 오 배우를 실제 승려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흔들림 없는 
연기 내공

오 배우는 1981년부터 지난해 <오징어 게임>까지 총 14개의 드라마 활동을 했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개봉했을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오 배우는 “영화는 기회가 와도 하고 싶은 역할이 없었다. 연극이나 영화나 같은 예술 아닌가? <철도원> 같은 영화를 우리 나이에 맞게 왜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오 배우의 삶 전체가 연극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에서 보이는 오일남은 이 모든 배경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골든글로브 수상이 그의 첫 번째 수상은 아니다. 오 배우는 1979년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1994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2000년 한국연극협회 연기상을 받았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 활동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연극배우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 1960년대 극단은 경험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지만 몇 년 동안은 청소와 잡일만 도맡아 해야 했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면 경제적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오 배우는 40~50대 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부업으로 EBS에서 성우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안정적인 연기력과 중저음의 목소리는 목소리 연기를 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이 시기가 모두 지나고, 그가 안정적으로 연기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기는 국립극단 단원이 되던 해부터다. 국립극단 단원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오 배우는 “국립극단 단원이 된 이후에나 생활이 안정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결혼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 배우에 대한 주변 배우들의 평은 어떨까. <오징어 게임>에서 함께한 배우들은 그를 ‘젊은 배우’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오 배우는 “‘나이가 들면 열정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만 나이를 먹고 다 젊으니 그 속에서 내가 존재하려니까 과장되게 젊은 척을 했다”고 겸손을 표했다.  

“나에게 있어 
연극은 종교”

기훈 역할의 이정재 배우는 오 배우의 수상소감을 듣고 “일남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장면 모두가 영광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깐부로부터”라고 재치 있는 축하를 전했다. 상우 역할을 맡은 박해수 배우 역시 오 배우의 칭찬을 이어갔다. 

<한경 연예>의 인터뷰에서 박해수 배우는 “오영수 선생님은 국립극단에 있었을 때부터 봐왔고 동경하던 분이다. 그런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오 선생님은 현장에서 남다른 무게감을 느끼고 계셔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라스트 세션>에 함께 출연 중인 이상윤 배우는 오 배우를 위해 준비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오 배우가 분홍색 왕관을 쓰고 케이크를 안고 있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오태근 한국연극협회 이사장도 “연극계의 큰 경사”라면서 “연극배우들이 선생님의 수상을 보고 큰 희망을 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환영했다.

이처럼 오 배우의 주변은 오랜 시간 그의 연기를 봐온 사람이 많다. 그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일까. 오 배우는 “나에게 연극은 종교”라며 짧은 말로 정의했다. 

<라스트 세션>의 출연자인 신구 배우는 “오영수와 1960년대 후반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차분히 실력을 쌓는 모습은 똑같다”고 전했다. 연극 <3월의 눈>에서 오 배우와 함께 작업한 희곡 작가 배삼식은 “무대 위에 서는 것을 기쁨으로 누리는 배우”라고 그를 설명했다.

이를 증명하듯, <라스트 세션>의 첫 공연이 끝나자 인사를 하러 나온 오 배우에게 관객 330명은 일제히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곳에는 깐부 할아버지가 아닌 <라스트 세션>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존재했다. 

만석이 된 객석, 환호하는 사람들. 이에 기쁜 감정을 표출할 법도 하지만, 오 배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무대다. 기자회견도 마다한 그는 “무대로 돌아가겠다. 이 연극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말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배우가 한 작품에서 큰 흥행을 하거나, 깊이 몰두하면 역할에 빠져나오기 힘들 때도 있다. 아니면 배우가 다른 연기를 하고 싶어도, 관객들이 과거의 역할로 계속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 배우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50년 이상 200명의 인생을 살았던 오 배우의 능력이자, ‘연극은 종교’라고 말한 오 배우의 말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50년 넘게 200명 인생 연기
“연극 집중이 가장 행복해”

오 배우의 연극 철학은 일상 속에서도 존재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로 인기를 얻은 오 배우는 치킨 프랜차이즈 광고모델 제의를 받았다.

광고모델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드라마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깐부’를 광고에 쓰면 작품의 의미를 훼손한다는 것이 오 배우의 답변이었다. 정말 오영수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의 경력은 아무리 열정으로 최선을 다해도 체력이 없으면 쌓기 불가능한 일이었다. 60년간 끊이지 않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오 배우의 비결은 무엇일까. 오 배우는 10대 때부터 끊임없이 ‘평행봉’을 이용해 체력 관리를 했다고 한다.

오 배우는 “지금도 하루에 평행봉을 50번 한다”며 “젊었을 때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때 우선 그 동네에 평행봉이 있나 없나 봤다.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끼리 함께 식사하며 얘기를 나누는 순간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뽑았다.

오 배우는 “가족끼리 같이 앉아 식사하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대로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사는 가정이 가장 행복한 가정이 아닌가”라고 전했다.

탄탄한 연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오 배우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오 배우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고민은 없고 염려라고 할까. 가족과 같이 이렇게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것. 염려하면서 기대하면서 바람”이라고 전했다.

이어 “젊었을 때는 어디 산속을 타다가 꽃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 꽃을 꺾어 간다. 내 나이쯤 되면 그냥 그대로 놓고 온다”며 “그리고 다시 가서 본다. 그게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냥 있는 그 자체를 놔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배우는 “소유욕 같은 것은 별로 없다. 이제 딸이 자기 뜻대로 편안하게 살게끔 해주고 싶다”며 “딸한테는 우리 집사람한테 못 해줬던 일을 하나씩 갖춰가면서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오 배우는 1975년 30대의 나이로 연극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를 맡았다. 당시 <파우스트>는 어느 극단에서 올려도 망한 적 없이 큰 흥행을 하는 작품이었다.

연극을 올리기 전, 극단 자유 대표였던 김정옥은 오 배우에게 파우스트보다 악마 메피스토가 더 맞을 거라고 조언했다. 극중 파우스트의 나이는 많은데, 오 배우는 30대였기 때문이다. 

연출자는 오 배우의 파우스트 연기에 문제 삼지 않았다.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 사이에서 무슨 역을 할지 고민했던 그의 선택은 파우스트였다. 주연을 하고 싶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소유욕 없다
지금 이대로

오 배우는 당시를 회상하며 “지구본을 잡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20초가량 의식을 잃었다. 연습하면서 탈진해서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오만과 자만심이 낳은 결과였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항상 ‘나이 들어서 파우스트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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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