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돈보다 연기 오영수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1.17 12:25:04
  • 호수 13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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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과 고집으로 50년 한 우물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뇌종양에 걸린 칠순 노인이자 오징어 게임 참가번호 001번. <오징어 게임> 오일남은 오영수 배우에게 제79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선사했다. 한국 배우가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건 오 배우가 처음이다.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한국시각 10일 오전 11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할을 맡은 배우 오영수는 <테드 브래소>의 브렛 골드스타인, <더 모닝 쇼>의 마크 듀플라스, 빌리 크루덥, <석세션>의 키에란 컬킨 등과 경합해 남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인종차별 깬 
78세 노배우

오영수 배우는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며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고맙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그간 골든글로브는 백인 위주의 배타적이고 보수적 문화를 상징하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았다”며 “오영수 배우의 수상은 골든글로브가 이제 문호를 넓히지 않으면 존립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도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오징어 게임>에 작품상이나 남우주연상을 주지 않은 것은 아직도 ‘고집’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외신의 반응도 뜨거웠다. 로이터 통신은 “할아버지 오영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상을 차지했다”고 전했고, CNN 방송은 “<오징어 게임> 스타 오영수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포브스는 “독창적인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순식간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인기 드라마라는 명예를 얻었고 극중 오영수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다”며 “(골든글로브 수상에 따라)78살 그의 연기 이력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뒤 오 배우는 한국 최초 수상자로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지만 “내일 연극 공연이 있다”며 인터뷰 제안을 거절했다. 지난달 초 열린 <라스트 세션>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지금까지 50년 이상 조용한 모습으로 연기자 생활을 해왔는데 <오징어 게임> 이후 갑자기 내 이름이 여기저기 불리게 되더라”고 말했다.

당시 오 배우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연극 <라스트 세션>에 출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어서 나름대로 자제심을 가지겠다 생각하던 차에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며 “(그동안)지향해온 내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가게끔 해준 동기가 돼준 것 같아서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해 무대와 관객을 만나겠다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 배우가 <오징어 게임>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그는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놀이의 상징성을 통해서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을 찾아내는 감독의 혜안을 좋게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남한산성> 제작 때도 출연 제의를 줬었는데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징어 게임> 제안을 주셔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지난해 SBS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오영수 배우는 과거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의 이미지가 크게 남아 있다”며 “어느 날 오영수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갔다. 무대 연기를 직접 보고 캐스팅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오 배우에게 <오징어 게임> 촬영은 어린아이의 삶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는 “쉬는 시간에 게임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놀기도 하고 즐거운 촬영이었다”고 촬영 당시를 기억했다.

새 역사 쓴 ‘깐부 할아버지’
골든글로브 첫 한국인 수상

오 배우가 <오징어 게임> 촬영 현장이 즐거웠다고 기억한다면, 관객들은 오영수의 오일남을 ‘목숨을 건 게임에서 원리·원칙을 지키는 사람’ ‘사람들이 패닉일 때 혼자 해맑은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이처럼 세계적 깐부(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를 뜻하는 은어) 할아버지 오일남은 <오징어 게임>에서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은 성기훈과 구슬치기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럼 자네가 날 속이고 내 구슬 가져간 건 말이 되고?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 없는 거야. 그동안 고마웠네. 자네 덕분에 잘 있다가 가네.” 오 배우의 골든글로브 수상은 인종, 언어의 벽을 허문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우물을 판 사람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는 25세에 군 제대 후 취업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극단 단원이었던 친구의 권유로 1963년 극단 광장 단원으로 연극인의 삶을 시작했다. 극단 자유 단원을 거쳐 1987년에는 국립극단 단원이 됐다. 반세기 넘는 세월을 연극배우로 살아온 것이다. 

국립극단에서는 1987년부터 2010년까지 간판 배우로 활동했다. 작품으로는 1996년 연극 <혼수없는 여자>, 1997년 연극 <태>, 2001년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 2008년 연극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2010년 연극 <리어왕>, 2011년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200여편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과의 접점이 많지는 않았다.

그의 짧은 머리 스타일 때문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단역을 맡거나 주연을 하더라도 스님 역할이었다. 1998년 영화 <퇴마록>에서는 단역인 노 신부역을 맡았고, 2003년 영화 <동승>에서는 큰스님, 2003년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도 역시 노스님 역할을 맡았다. 

다수의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1981년 MBC 드라마 <제1공화국>의 군 검사 단역과 1983년 KBS1 <전우>의 종군 기자 단역으로 시작했다. 2009년 MBC의 <선덕여왕>에서는 ‘월천대사’를 연기했는데, 승려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시청자들이 오 배우를 실제 승려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흔들림 없는 
연기 내공

오 배우는 1981년부터 지난해 <오징어 게임>까지 총 14개의 드라마 활동을 했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개봉했을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오 배우는 “영화는 기회가 와도 하고 싶은 역할이 없었다. 연극이나 영화나 같은 예술 아닌가? <철도원> 같은 영화를 우리 나이에 맞게 왜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오 배우의 삶 전체가 연극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에서 보이는 오일남은 이 모든 배경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골든글로브 수상이 그의 첫 번째 수상은 아니다. 오 배우는 1979년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1994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2000년 한국연극협회 연기상을 받았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 활동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연극배우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 1960년대 극단은 경험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지만 몇 년 동안은 청소와 잡일만 도맡아 해야 했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면 경제적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오 배우는 40~50대 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부업으로 EBS에서 성우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안정적인 연기력과 중저음의 목소리는 목소리 연기를 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이 시기가 모두 지나고, 그가 안정적으로 연기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기는 국립극단 단원이 되던 해부터다. 국립극단 단원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오 배우는 “국립극단 단원이 된 이후에나 생활이 안정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결혼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 배우에 대한 주변 배우들의 평은 어떨까. <오징어 게임>에서 함께한 배우들은 그를 ‘젊은 배우’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오 배우는 “‘나이가 들면 열정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만 나이를 먹고 다 젊으니 그 속에서 내가 존재하려니까 과장되게 젊은 척을 했다”고 겸손을 표했다.  

“나에게 있어 
연극은 종교”

기훈 역할의 이정재 배우는 오 배우의 수상소감을 듣고 “일남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장면 모두가 영광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깐부로부터”라고 재치 있는 축하를 전했다. 상우 역할을 맡은 박해수 배우 역시 오 배우의 칭찬을 이어갔다. 

<한경 연예>의 인터뷰에서 박해수 배우는 “오영수 선생님은 국립극단에 있었을 때부터 봐왔고 동경하던 분이다. 그런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오 선생님은 현장에서 남다른 무게감을 느끼고 계셔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라스트 세션>에 함께 출연 중인 이상윤 배우는 오 배우를 위해 준비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오 배우가 분홍색 왕관을 쓰고 케이크를 안고 있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오태근 한국연극협회 이사장도 “연극계의 큰 경사”라면서 “연극배우들이 선생님의 수상을 보고 큰 희망을 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환영했다.

이처럼 오 배우의 주변은 오랜 시간 그의 연기를 봐온 사람이 많다. 그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일까. 오 배우는 “나에게 연극은 종교”라며 짧은 말로 정의했다. 

<라스트 세션>의 출연자인 신구 배우는 “오영수와 1960년대 후반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차분히 실력을 쌓는 모습은 똑같다”고 전했다. 연극 <3월의 눈>에서 오 배우와 함께 작업한 희곡 작가 배삼식은 “무대 위에 서는 것을 기쁨으로 누리는 배우”라고 그를 설명했다.

이를 증명하듯, <라스트 세션>의 첫 공연이 끝나자 인사를 하러 나온 오 배우에게 관객 330명은 일제히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곳에는 깐부 할아버지가 아닌 <라스트 세션>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존재했다. 

만석이 된 객석, 환호하는 사람들. 이에 기쁜 감정을 표출할 법도 하지만, 오 배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무대다. 기자회견도 마다한 그는 “무대로 돌아가겠다. 이 연극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말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배우가 한 작품에서 큰 흥행을 하거나, 깊이 몰두하면 역할에 빠져나오기 힘들 때도 있다. 아니면 배우가 다른 연기를 하고 싶어도, 관객들이 과거의 역할로 계속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 배우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50년 이상 200명의 인생을 살았던 오 배우의 능력이자, ‘연극은 종교’라고 말한 오 배우의 말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50년 넘게 200명 인생 연기
“연극 집중이 가장 행복해”

오 배우의 연극 철학은 일상 속에서도 존재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로 인기를 얻은 오 배우는 치킨 프랜차이즈 광고모델 제의를 받았다.

광고모델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드라마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깐부’를 광고에 쓰면 작품의 의미를 훼손한다는 것이 오 배우의 답변이었다. 정말 오영수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의 경력은 아무리 열정으로 최선을 다해도 체력이 없으면 쌓기 불가능한 일이었다. 60년간 끊이지 않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오 배우의 비결은 무엇일까. 오 배우는 10대 때부터 끊임없이 ‘평행봉’을 이용해 체력 관리를 했다고 한다.

오 배우는 “지금도 하루에 평행봉을 50번 한다”며 “젊었을 때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때 우선 그 동네에 평행봉이 있나 없나 봤다.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끼리 함께 식사하며 얘기를 나누는 순간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뽑았다.

오 배우는 “가족끼리 같이 앉아 식사하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대로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사는 가정이 가장 행복한 가정이 아닌가”라고 전했다.

탄탄한 연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오 배우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오 배우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고민은 없고 염려라고 할까. 가족과 같이 이렇게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것. 염려하면서 기대하면서 바람”이라고 전했다.

이어 “젊었을 때는 어디 산속을 타다가 꽃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 꽃을 꺾어 간다. 내 나이쯤 되면 그냥 그대로 놓고 온다”며 “그리고 다시 가서 본다. 그게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냥 있는 그 자체를 놔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배우는 “소유욕 같은 것은 별로 없다. 이제 딸이 자기 뜻대로 편안하게 살게끔 해주고 싶다”며 “딸한테는 우리 집사람한테 못 해줬던 일을 하나씩 갖춰가면서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오 배우는 1975년 30대의 나이로 연극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를 맡았다. 당시 <파우스트>는 어느 극단에서 올려도 망한 적 없이 큰 흥행을 하는 작품이었다.

연극을 올리기 전, 극단 자유 대표였던 김정옥은 오 배우에게 파우스트보다 악마 메피스토가 더 맞을 거라고 조언했다. 극중 파우스트의 나이는 많은데, 오 배우는 30대였기 때문이다. 

연출자는 오 배우의 파우스트 연기에 문제 삼지 않았다.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 사이에서 무슨 역을 할지 고민했던 그의 선택은 파우스트였다. 주연을 하고 싶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소유욕 없다
지금 이대로

오 배우는 당시를 회상하며 “지구본을 잡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20초가량 의식을 잃었다. 연습하면서 탈진해서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오만과 자만심이 낳은 결과였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항상 ‘나이 들어서 파우스트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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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