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돈보다 연기 오영수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1.17 12:25:04
  • 호수 13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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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과 고집으로 50년 한 우물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뇌종양에 걸린 칠순 노인이자 오징어 게임 참가번호 001번. <오징어 게임> 오일남은 오영수 배우에게 제79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선사했다. 한국 배우가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건 오 배우가 처음이다.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한국시각 10일 오전 11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할을 맡은 배우 오영수는 <테드 브래소>의 브렛 골드스타인, <더 모닝 쇼>의 마크 듀플라스, 빌리 크루덥, <석세션>의 키에란 컬킨 등과 경합해 남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인종차별 깬 
78세 노배우

오영수 배우는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며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고맙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그간 골든글로브는 백인 위주의 배타적이고 보수적 문화를 상징하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았다”며 “오영수 배우의 수상은 골든글로브가 이제 문호를 넓히지 않으면 존립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도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오징어 게임>에 작품상이나 남우주연상을 주지 않은 것은 아직도 ‘고집’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외신의 반응도 뜨거웠다. 로이터 통신은 “할아버지 오영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상을 차지했다”고 전했고, CNN 방송은 “<오징어 게임> 스타 오영수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포브스는 “독창적인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순식간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인기 드라마라는 명예를 얻었고 극중 오영수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다”며 “(골든글로브 수상에 따라)78살 그의 연기 이력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뒤 오 배우는 한국 최초 수상자로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지만 “내일 연극 공연이 있다”며 인터뷰 제안을 거절했다. 지난달 초 열린 <라스트 세션>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지금까지 50년 이상 조용한 모습으로 연기자 생활을 해왔는데 <오징어 게임> 이후 갑자기 내 이름이 여기저기 불리게 되더라”고 말했다.

당시 오 배우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연극 <라스트 세션>에 출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어서 나름대로 자제심을 가지겠다 생각하던 차에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며 “(그동안)지향해온 내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가게끔 해준 동기가 돼준 것 같아서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해 무대와 관객을 만나겠다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 배우가 <오징어 게임>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그는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놀이의 상징성을 통해서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을 찾아내는 감독의 혜안을 좋게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남한산성> 제작 때도 출연 제의를 줬었는데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징어 게임> 제안을 주셔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지난해 SBS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오영수 배우는 과거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의 이미지가 크게 남아 있다”며 “어느 날 오영수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갔다. 무대 연기를 직접 보고 캐스팅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오 배우에게 <오징어 게임> 촬영은 어린아이의 삶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는 “쉬는 시간에 게임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놀기도 하고 즐거운 촬영이었다”고 촬영 당시를 기억했다.

새 역사 쓴 ‘깐부 할아버지’
골든글로브 첫 한국인 수상

오 배우가 <오징어 게임> 촬영 현장이 즐거웠다고 기억한다면, 관객들은 오영수의 오일남을 ‘목숨을 건 게임에서 원리·원칙을 지키는 사람’ ‘사람들이 패닉일 때 혼자 해맑은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이처럼 세계적 깐부(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를 뜻하는 은어) 할아버지 오일남은 <오징어 게임>에서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은 성기훈과 구슬치기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럼 자네가 날 속이고 내 구슬 가져간 건 말이 되고?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 없는 거야. 그동안 고마웠네. 자네 덕분에 잘 있다가 가네.” 오 배우의 골든글로브 수상은 인종, 언어의 벽을 허문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우물을 판 사람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는 25세에 군 제대 후 취업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극단 단원이었던 친구의 권유로 1963년 극단 광장 단원으로 연극인의 삶을 시작했다. 극단 자유 단원을 거쳐 1987년에는 국립극단 단원이 됐다. 반세기 넘는 세월을 연극배우로 살아온 것이다. 

국립극단에서는 1987년부터 2010년까지 간판 배우로 활동했다. 작품으로는 1996년 연극 <혼수없는 여자>, 1997년 연극 <태>, 2001년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 2008년 연극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2010년 연극 <리어왕>, 2011년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200여편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과의 접점이 많지는 않았다.

그의 짧은 머리 스타일 때문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단역을 맡거나 주연을 하더라도 스님 역할이었다. 1998년 영화 <퇴마록>에서는 단역인 노 신부역을 맡았고, 2003년 영화 <동승>에서는 큰스님, 2003년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도 역시 노스님 역할을 맡았다. 

다수의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1981년 MBC 드라마 <제1공화국>의 군 검사 단역과 1983년 KBS1 <전우>의 종군 기자 단역으로 시작했다. 2009년 MBC의 <선덕여왕>에서는 ‘월천대사’를 연기했는데, 승려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시청자들이 오 배우를 실제 승려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흔들림 없는 
연기 내공

오 배우는 1981년부터 지난해 <오징어 게임>까지 총 14개의 드라마 활동을 했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개봉했을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오 배우는 “영화는 기회가 와도 하고 싶은 역할이 없었다. 연극이나 영화나 같은 예술 아닌가? <철도원> 같은 영화를 우리 나이에 맞게 왜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오 배우의 삶 전체가 연극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에서 보이는 오일남은 이 모든 배경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골든글로브 수상이 그의 첫 번째 수상은 아니다. 오 배우는 1979년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1994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2000년 한국연극협회 연기상을 받았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 활동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연극배우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 1960년대 극단은 경험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지만 몇 년 동안은 청소와 잡일만 도맡아 해야 했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면 경제적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오 배우는 40~50대 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부업으로 EBS에서 성우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안정적인 연기력과 중저음의 목소리는 목소리 연기를 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이 시기가 모두 지나고, 그가 안정적으로 연기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기는 국립극단 단원이 되던 해부터다. 국립극단 단원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오 배우는 “국립극단 단원이 된 이후에나 생활이 안정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결혼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 배우에 대한 주변 배우들의 평은 어떨까. <오징어 게임>에서 함께한 배우들은 그를 ‘젊은 배우’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오 배우는 “‘나이가 들면 열정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만 나이를 먹고 다 젊으니 그 속에서 내가 존재하려니까 과장되게 젊은 척을 했다”고 겸손을 표했다.  

“나에게 있어 
연극은 종교”

기훈 역할의 이정재 배우는 오 배우의 수상소감을 듣고 “일남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장면 모두가 영광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깐부로부터”라고 재치 있는 축하를 전했다. 상우 역할을 맡은 박해수 배우 역시 오 배우의 칭찬을 이어갔다. 

<한경 연예>의 인터뷰에서 박해수 배우는 “오영수 선생님은 국립극단에 있었을 때부터 봐왔고 동경하던 분이다. 그런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오 선생님은 현장에서 남다른 무게감을 느끼고 계셔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라스트 세션>에 함께 출연 중인 이상윤 배우는 오 배우를 위해 준비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오 배우가 분홍색 왕관을 쓰고 케이크를 안고 있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오태근 한국연극협회 이사장도 “연극계의 큰 경사”라면서 “연극배우들이 선생님의 수상을 보고 큰 희망을 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환영했다.

이처럼 오 배우의 주변은 오랜 시간 그의 연기를 봐온 사람이 많다. 그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일까. 오 배우는 “나에게 연극은 종교”라며 짧은 말로 정의했다. 

<라스트 세션>의 출연자인 신구 배우는 “오영수와 1960년대 후반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차분히 실력을 쌓는 모습은 똑같다”고 전했다. 연극 <3월의 눈>에서 오 배우와 함께 작업한 희곡 작가 배삼식은 “무대 위에 서는 것을 기쁨으로 누리는 배우”라고 그를 설명했다.

이를 증명하듯, <라스트 세션>의 첫 공연이 끝나자 인사를 하러 나온 오 배우에게 관객 330명은 일제히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곳에는 깐부 할아버지가 아닌 <라스트 세션>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존재했다. 

만석이 된 객석, 환호하는 사람들. 이에 기쁜 감정을 표출할 법도 하지만, 오 배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무대다. 기자회견도 마다한 그는 “무대로 돌아가겠다. 이 연극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말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배우가 한 작품에서 큰 흥행을 하거나, 깊이 몰두하면 역할에 빠져나오기 힘들 때도 있다. 아니면 배우가 다른 연기를 하고 싶어도, 관객들이 과거의 역할로 계속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 배우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50년 이상 200명의 인생을 살았던 오 배우의 능력이자, ‘연극은 종교’라고 말한 오 배우의 말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50년 넘게 200명 인생 연기
“연극 집중이 가장 행복해”

오 배우의 연극 철학은 일상 속에서도 존재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로 인기를 얻은 오 배우는 치킨 프랜차이즈 광고모델 제의를 받았다.

광고모델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드라마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깐부’를 광고에 쓰면 작품의 의미를 훼손한다는 것이 오 배우의 답변이었다. 정말 오영수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의 경력은 아무리 열정으로 최선을 다해도 체력이 없으면 쌓기 불가능한 일이었다. 60년간 끊이지 않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오 배우의 비결은 무엇일까. 오 배우는 10대 때부터 끊임없이 ‘평행봉’을 이용해 체력 관리를 했다고 한다.

오 배우는 “지금도 하루에 평행봉을 50번 한다”며 “젊었을 때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때 우선 그 동네에 평행봉이 있나 없나 봤다.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끼리 함께 식사하며 얘기를 나누는 순간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뽑았다.

오 배우는 “가족끼리 같이 앉아 식사하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대로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사는 가정이 가장 행복한 가정이 아닌가”라고 전했다.

탄탄한 연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오 배우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오 배우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고민은 없고 염려라고 할까. 가족과 같이 이렇게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것. 염려하면서 기대하면서 바람”이라고 전했다.

이어 “젊었을 때는 어디 산속을 타다가 꽃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 꽃을 꺾어 간다. 내 나이쯤 되면 그냥 그대로 놓고 온다”며 “그리고 다시 가서 본다. 그게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냥 있는 그 자체를 놔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배우는 “소유욕 같은 것은 별로 없다. 이제 딸이 자기 뜻대로 편안하게 살게끔 해주고 싶다”며 “딸한테는 우리 집사람한테 못 해줬던 일을 하나씩 갖춰가면서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오 배우는 1975년 30대의 나이로 연극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를 맡았다. 당시 <파우스트>는 어느 극단에서 올려도 망한 적 없이 큰 흥행을 하는 작품이었다.

연극을 올리기 전, 극단 자유 대표였던 김정옥은 오 배우에게 파우스트보다 악마 메피스토가 더 맞을 거라고 조언했다. 극중 파우스트의 나이는 많은데, 오 배우는 30대였기 때문이다. 

연출자는 오 배우의 파우스트 연기에 문제 삼지 않았다.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 사이에서 무슨 역을 할지 고민했던 그의 선택은 파우스트였다. 주연을 하고 싶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소유욕 없다
지금 이대로

오 배우는 당시를 회상하며 “지구본을 잡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20초가량 의식을 잃었다. 연습하면서 탈진해서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오만과 자만심이 낳은 결과였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항상 ‘나이 들어서 파우스트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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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