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도는' DGB금융 회장님 리스크

누굴 앉혀도 그 나물에 그 밥?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채용 비리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홍역을 치렀던 DGB금융지주가 또 한 번 구설에 휘말렸다. 투명 경영을 강조했던 회장이 뇌물 공여 혐의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부각되는 양상이다. 몇 해 전과 혐의만 다를 뿐 최고위층이 연루된 비위행위는 도통 근절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DGB금융그룹은 대구·경북지역에 거점을 둔 DGB대구은행을 중심으로 2011년 5월 출범한 금융기업집단이다. 지주사인 DGB금융지주를 비롯해 ▲DGB대구은행 ▲하이투자증권 ▲DGB생명 ▲DGB캐피탈 ▲하이자산운용 ▲DGB유페이 ▲DGB데이터시스템 ▲DGB신용정보 ▲하이투자파트너스 등이 소속돼있다. 

회사는
풍년인데…

지배구조의 맨 꼭대기에는 DGB금융지주가 자리 잡고 있으며, DGB금융지주가 나머지 계열회사를 아우르는 구조를 띠고 있다. DGB금융지주의 최대주주는 올해 3분기 기준 지분 12.66%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이고, OK저축은행(5.10%)도 지분 5% 이상을 보유 중이다.

올해 들어 DGB금융지주는 뚜렷한 실적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누적 순이익은 전년 동기(3176억원) 대비 43.7% 증가한 4564억원이고, 지배주주 순이익(4175억원)과 영업이익(6120억원)은 각각 47%, 50% 증가했다.

비이자 이익 증가로 3분기 만에 전년 연말 기준 실적을 뛰어넘었다.


주력 계열사인 DGB대구은행이 이익 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DGB대구은행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3768억원, 순이익은 285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6.6%, 40.3% 급증했다. 고정이하여신(NPL)비율이 0.7%에서 0.53%로, 연체율이 0.54%에서 0.31%로 개선되는 등 향후 이익 전망도 밝다.

하이투자증권, DGB캐피탈 등 비은행 계열회사의 선전도 돋보였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하이투자증권이 1301억, DGB캐피탈이 615억원으로 각각 51.5%, 117.3% 증가했다. 

이처럼 DGB금융그룹은 계열회사들의 고른 활약에 힘입어 순풍을 타고 있지만, 생각지 못한 잡음으로 인해 심각한 속앓이를 거듭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고 경영진이 잇따라 구설에 엮인 상황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한술 더 떠 에게 씌어 진 뇌물 제공 혐의로 인해 그룹 이미지 추락이 표면화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윗선이
문제

지난 6일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부장검사 김남훈)는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과 DGB대구은행 임원 3명을 국제뇌물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캄보디아 특수은행의 상업은행 인가를 취득하기 위해 캄보디아 금융당국 공무원 등에 건넬 로비자금 350만달러(약 41억원)를 캄보디아 현지 브로커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DGB대구은행은 2018년 글로벌 영업 확대를 위해 캄보디아 현지 대출전문은행을 인수하고, 현지 법인 ‘DGB 스페셜라이즈드 뱅크(SB)’를 설립했다. SB는 특수은행으로 업무가 제한적인 관계로, DGB대구은행은 예금 등의 수신업무와 외환, 카드, 전자금융까지 가능한 상업은행의 지위를 얻고자 했다.

문제는 캄보디아 현지 부동산 매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DGB대구은행은 지난해 초 캄보디아 현지 사옥 건물 매입을 위해 현지 중개인에게 133억원의 계약금을 지급했지만, 건물은 제3자에게 매각됐다. 이 과정에서 대구은행은 돌려받지 못한 계약금을 대손충당금으로 처리했다.


이후 DGB대구은행은 대금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관련 업무를 담당한 직원들은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전 캄보디아 현지법인 부행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DGB대구은행장을 겸직 중이었던 김 회장을 비롯해 대구은행 글로벌본부장, 글로벌 사업본부장, 캄보디아 현지 특수은행 부행장 등이 해당 사건에 연루된 조직적인 뇌물 공여라고 판단했다. 또 이들이 지난해 5월 로비자금을 마련하고자 캄보디아 현지 부동산의 매매대금을 부풀려 로비자금 300만달러를 부동산 매매대금에 포함되는 것처럼 가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뇌물 제공 의혹 망신
헛구호가 된 투명 경영

해당 사건이 알려지자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DGB금융그룹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지난 7일 대구참여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김 회장의 퇴진과 대대적 혁신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구참여연대는 “검찰이 김 회장 등에 대해 성역 없이, 더욱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밝히고 엄벌해야 한다”며 “김 회장은 일부라도 사실이 명백하다면 즉시 시민들에게 사죄하고, 회장직 등 직위도 즉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대구경실련) 역시 성명서를 내고 해당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번 비리 혐의가 대구은행 간부들의 중대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DGB금융지주의 부패방지 경영시스템을 무력화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구경실련은 “국제사회 대외 신용도를 하락하고 금융기관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형사적 책임과 상관없이 행위 자체만으로도 중징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변호인 입장문을 통해 유감을 표명한 상황이다. 김 회장 측은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했음에도 불구속 기소에 이르게 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공소장에 기재된 혐의 사실 중 상당 부분은 실체적 진실과 차이가 있어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또 터진
구설수

김 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DGB금융지주는 투명 경영에 대한 그간의 노력마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김 회장은 사회적 책임 강화,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한 투명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욱 부각된다.

2018년 5월 김 회장이 취임할 당시 DGB금융그룹은 연이은 추문에 휩싸인 상황이었다. 특히 간부급 직원이 비정규직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에 터진 최고위급 임원의 비자금 조성 혐의가 치명적이었다.

2018년 초 박인규 전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일명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 30억여원을 조성한 혐의를 받았다. 또 박 전 회장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은행직원 채용 과정에서 각종 평가등급이나 직무점수를 상향 조작하는 방법으로 부정 채용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 전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와 채용 비리 의혹이 공론화되자 2018년 3월 정기주총에서 모든 직책을 내려놨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지역 사회와 주주, 고객님께 심려를 끼쳐 드려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지배구조 개선 및 은행의 안정을 위해 은행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박 전 회장은 실형을 피할 수 없었다. 2019년 10월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업무방해 및 증거인멸교사, 업무상 횡령·배임,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박 전 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1심과 2심에서도 채용비리, 비자금 조성 범행을 주도적으로 실행하거나 지휘했고, 공무원 아들을 부정 채용하는 방법으로 뇌물을 공여한 사실이 인정된 상태였다. 

겉만 그럴듯
속 빈 강정

박 전 회장의 중도 사퇴로 인한 공백을 메꾼 사람은 다름 아닌 김 회장이었다. 2018년 5월 취임 당시 김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조직 내부와 지역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불법행위를 근절하는 등 모범적인 지배구조와 경영문화를 갖춘 금융그룹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heaty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