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완성형 신예 무진성

“8년 무명 생활, 불안감이 컸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이른바 무명배우라 불리는 이들의 불안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작품 출연의 기회는 물론 오디션 기회조차도 적다. 작은 역할이라도 맡아 연기를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데, 정기적으로 일하는 자리를 얻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오디션 일정과 겹칠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에 출연한 신예 배우 무진성의 무명 기간도 무려 8년이 넘는다. 어두운 미래를 뚫고 영화 데뷔를 치렀다. 개봉 후 벌어지는 모든 일이 꿈만 같다고 한다. 

1988년생 무진성은 어렸을 때부터 똘똘했다. 공부를 잘해야만 거머쥘 수 있는 초등학교 전교 학생회장 출신이며, 중학생 때는 전교 학생 부회장을 역임했다. 늘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으며, 공부하는 게 즐거웠다고 한다. 

인생 바꾼 연극

토론을 즐겼고, 직업 적성검사를 하면 변호사나 검사가 1순위에 떴다. 가족들도 법조인이 되길 기대했다고 한다. 

그랬던 무진성의 인생을 바꾼 건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연극영화과를 지망하는 친한 친구의 소개로 한 편의 연극을 관람하면서다. 인천에 살고 있던 무진성은 친구와 2시간 넘게 걸려 연극 <사랑에 대한 다섯 가지 소묘>를 보러 간다. 너무 먼 길을 갔던 터라 투덜대면서, 짜증을 부렸다고 한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에 오른 배우들을 보자마자 느낀 건 ‘이건 신세계다’였다. 


학업에만 열중하던 그에게 배우들의 연기를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은 충격이 더 컸을 수 있다. 입이 떡 벌어진 채로 몰입해서 연극을 봤다고 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생소했어요. 당황도 많이 했어요. KO 펀치를 맞은 기분이었죠.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이 올라갔는데, 어떤 분은 슬픔이 차서 울고 계시고, 어떤 분은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고, 누군가는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어요.”

10대였던 어린 무진성의 뇌리에 스친 건 ‘내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나를 모르는 사람이 손뼉을 쳐줄 직업은 무엇일까’였다. 연기하는 것 외에는 다른 직업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후로 바로 연기학원을 다닌다. 부모님도 흔쾌히 허락했다. 조건이 있었다. 단 한 달만 배워보기로 하는 것.

만약 적응이 안 되면 다시 학업에 열중하자는 제안이었다.

“아마 금방 적응 못하고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정말 재밌더라고요. 연기실습을 했는데, 성적도 잘 나왔어요. 그렇게 한 달이 몇 년이 됐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됐죠.”

그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 졸업한 뒤 곧바로 연예 기획사와 계약을 맺었다. MBC <투윅스>를 시작으로 SBS <열애> tvN <미생>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하지만 인지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연기를 보여줄 기회를 접하기조차 어려웠다.

외아들이라는 점에서 부모님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으며 20대를 보냈는데, 30대를 넘어가니 불안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 성소수자 유진 역
“성숙한 가치관 가진 배우가 되겠습니다”

“서빙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곤 했죠. 연기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매니저분들이 명함을 주기도 했어요. <장르만 로맨스>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 슬럼프가 심했어요. 아침마다 산에 다니면서 불안을 극복하려 했죠. 힘들었어요. 연기를 그만할까도 생각했는데, 연기 외에 하고 싶은 일은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막다른 길에 놓인 기분이 가득할 때 한 줄기 빛처럼 찾아온 게 <장르만 로맨스> 오디션이었다. 2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다. 역할은 소설가이자 교수를 사랑하는 제자다. 이름은 유진이고 성소수자다.

아직도 국내 사회에서는 편견이 가득한 존재다. 특정 종교집단은 성소수자를 죄악으로 여기기도 한다. 

역할을 배정받으면 연기를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숙제에 놓이는 게 배우의 숙명이다. 무진성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성소수자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유진이라는 인물이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거나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가진 정서에 최대한 집중했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캐릭터로 여겼고요. 현(류승룡 분)을 사랑하는데, 남자 현이 아닌 인간 자체의 현을 사랑한다고 여겼어요. 개인적으로 꽂힌 대사가 ‘바라는 게 없는데 어떻게 상처를 받겠어요’였어요. 도대체 유진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바라는 게 없을 수 있나에 집중했죠. 성숙한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잖아요. 그 부분을 많이 생각했어요.”

배우는 ‘글에 쓰인 인물을 몸에 담는’ 직업이다. 시나리오에 쓰인 감정을 읽고 자신의 눈과 마음, 몸으로 표현한다. 경험이 적을수록 이른바 과한 연기로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진성은 매우 적절한 감정선을 유지한다.

신예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력을 드러내기 위해, 때론 과도하게 과잉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무진성의 연기에서는 담백하고 건조한 느낌이 일관된다. 무진성은 공을 류승룡과 조은지 감독에게 돌렸다.

“류승룡 선배께서 늘 기본을 놓치지 말라고 하셨어요. 액션이 아닌 리액션을 잘 하라고요. 상대가 어떤 연기를 하는지 보고 그에 맞는 연기를 하라고요. 처음에는 긴장도 되고, 여유가 없어서 리액션을 못했는데, 선배님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어요. 감독님도 연기자 출신이잖아요. 제 고민을 단번에 아시더라고요. 두 분 덕분에 비교적 절제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드리고 싶네요.”

<장르만 로맨스>는 사회적으로 통념되기 어려운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전 남편을 사이에 둔 현 부인과 전 부인의 관계, 이혼한 남편의 30년 지기 친구와 연인 관계에 있는 여인, 유부녀를 사랑한 고등학생,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등 말로 설명하기 복잡한 관계가 얼키설키 섞여 있다. 

사회적으로는 지탄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들여다보면 모두 진심이고 타인에 대한 존중이 있다. 우연히 발생한 인간의 감정을, 누군가의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남자를 사랑하는 유진은 특히 진정한 사랑을 보인다.

성숙한 생각


“진심으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타인을 대하는 유진의 진심이 뭔지 정확히 표현하고 싶었어요. 최대한 담백하게 흘러가는 대로 그리고 싶었죠. 유진은 제가 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나는 유진만한 그릇이 되는가에 대해 질문하면서 저를 돌아봤어요. 아마 우리가 모두 궁극적으로는 유진처럼 성숙한 인간이 되는 과정에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제가 첫걸음을 뗐는데요. 앞으로 유진처럼 성숙한 배우가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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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