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섹시한 보스 박희순

“돈이 얼마 들더라도 섹시해야 했어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허스키한 목소리와 서구적인 인상, 날렵한 이미지는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배우 박희순에게는 부드러운 역할보다는 늘 사나워 보이는 역할이 주어졌다. 인물이 정의의 편에 서거나 불의의 위치에 있거나, 그는 늘 강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네임>에서 박희순은 카리스마의 정점을 찍었다.

박희순이라는 이름을 대중에 각인시킨 첫 영화 <세븐 데이즈>에서서 직업이 형사인 성열을 연기했다. 아이를 유괴당한 지연(김윤진 분)을 끝까지 돕는 성열은 누구보다 강인했고 무서웠다. 수틀리면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아껴둔 악당

박희순은 <밀정>에서 장옥 역을 맡으며 추운 겨울 한성 바닥과 옥상을 휩쓸면서 홀로 일본군과 대치했다. 장옥은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위인으로 꼽히는 김상옥 열사를 모티브했다. 자결로써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가 내뿜는 에너지는 얼얼할 정도로 인상이 깊다.

영화 <작전>에서 주가를 조작하는 보스일 때도, <가비>에서 암살에 노출된 고종황제일 때도, <1987>에서 권력을 받드는 시녀 조한경 반장일 때도, <마녀>에서 괴물을 길러낸 미스터 최일때도 박희순의 얼굴에는 늘 강함이 서려 있었다. 

국내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은 박희순의 얼굴에 담긴 강함을 끄집어내려는 데 주력했던 듯 보인다.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 늘 드세고 짐승 같은 인물을 연기해온 박희순은 지겨울 법도 했을 텐데 <마이네임> 속 마약 밀매 조직인 동천파의 보스 최무진을 연기하기로 선택했다. 진정한 강함을 표현하고 훌훌 털어내자는 속내가 있었다.

“<마이네임>만큼은 그토록 제가 아껴뒀던 악당, 누아르의 보스를 해낸 느낌이에요. 최무진 같은 역할을 안 해본 것도 아니죠. 이런 역할을 많이 해봤는데, 최대치는 한 번 뽑아내고 졸업을 해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번에 만족스럽게 연기해서, 훌훌 털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최무진은 죽음을 앞에 두고 무서워하는 눈을 보며 상대를 죽여야 기어코 성이 풀리는 악마 같은 인간이지만, 마음 한쪽에는 자신을 배신하는 사람에 가슴 아파하는 인간적인 면도 있다. 자신이 믿는 사람은 끝까지 지지할 뿐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 늘 현명한 판단을 한다.

마약을 밀매하거나 사람을 죽이지만 않으면 누구보다도 매력적인 인물이 최무진이다. 그간 카리스마 측면에서 내공을 쌓아온 박희순은 그야말로 멋있는 악당을 그려낸다. 최무진이 한껏 멋을 드러내니 한소희, 이학주, 김상호, 장률, 안보현 등 주요 인물들이 살아나고, 작품도 빛이 난다.

<마이네임>이 거침없는 흥행을 하는 데 수훈갑이다.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하기도 했는데, 실감이 잘되지 않네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최무진은 복잡한 악인이에요. 일관된 악인은 많이 봐왔죠. 누아르에서는 보통 감정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데 <마이네임>에서 여성 작가님이 쓰셔서 그런지 감정선이 짙어요. 슬픔과 분노가 공존하죠. 이걸 잘 건드려보면 좋은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이네임> 조직 보스 ‘무섭지만 멋있다’
“카리스마 분야서 이젠 졸업하려 합니다”


최무진의 눈에는 들개 같은 악랄함이 엿보이는데, 의상은 늘 딱 떨어지는 슈트다.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짐이 없다. 소탈하고 편해 보이는 찰나도 없다. 언제나 각이 잡혀있다. 술을 마실 때도, 웃을 때도 눈물을 흘릴 때도 최무진은 늘 긴장감을 준다.

섹시한 보스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

“평소 섹시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 ‘내가 섹시해서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싶겠는데, 전혀 그런 말을 들어보질 못하다가 이 작품으로 그런 칭찬을 듣네요. 작가님이 쓴 무진의 매력이 큰 몫을 한 것 같아요. 김진민 감독도 제게 ‘이 작품 속 무진은 무조건 멋있고 섹시해야 한다. 돈이 많이 들어도 좋으니 섹시하게 해달라’고 주문했고요.”

단순히 강하고 무섭기만 했으면 편했겠지만, 최무진의 감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둘도 없이 믿었던 친구가 알고 보니 경찰 스파이었다. 슬픈 심정으로 복수를 했는데, 진실을 모르는 친구의 딸은 자신을 거둬달라 한다. 그뿐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위해 헌신한다.

내가 직접 죽인 친구의 딸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에 아무리 악마 같은 최무진이라도 순간순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희순은 작품 내내 모호함을 드러내야 했다. 진실과 거짓, 거짓과 진실을 오가면서.

“지우(한소희 분)는 내가 죽인 친구의 딸이죠. 그를 보는 감정에는 아마 500가지가 넘게 뒤섞여 있을 거예요. 한 가지로 정의해서 연기하지 않았어요. 연기하는 순간마다 여러 생각이 오갔던 것 같아요.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가짜일지 고민하면서요.”

“암자에서 지우를 속이는 신이 진실과 거짓을 내포하는 대표적인 장면 같아요. 사실 제가 인터뷰하는 것도 좀 부담스러운 게 있어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해석이 쏟아지고 있는데, 제가 괜히 정의해서 상상이 펼쳐지는 걸 막고 싶지 않아요. 관객들의 생각이 곧 정답입니다.”

처음부터 강한 긴장감을 주며 출발하는 <마이네임>은 마지막회 정점을 향해 끝없이 내달린다. 그리고 마지막은 지우와 무진의 1:1 싸움이 펼쳐진다. 총으로 쉽게 승부를 낼 수 있지만, 수많은 감정이 얽히고설킨 두 사람은 몸을 부딪쳐가며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

숨 막히는 싸움을 보고 있자면 눈시울이 불거진다. 

“모든 장면이 다 소중한데요. 많은 분이 마지막 장면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감정이 극에 달한 채 액션을 했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감정 액션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 같아요. 저도 액션 연기를 하는 중에 눈물이 났어요. 감독이 절대 울지 말라고 했는데, 멈춰지지 않더라고요. 결국, 눈물이 나는 장면은 다 걷어냈더라고요. 지우 눈만 봐도 슬퍼서, 눈물을 못 멈추겠더라고요.”

감정 액션

박희순의 다음 작품은 다시 넷플릭스에서 나온다. 마약 조직과 연관된다. 제목은 <모범가족>.  “<모범가족>은 <마이네임>과는 다릅니다. 다시 한 번 좋은 연기로 찾아뵐게요. 그때까지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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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