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국정감사는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수단 중 하나다. 국감에서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피감기관에 맡겨 놓은 나랏일을 잘하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감사한다. 이런 연유로 국감 현장은 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총칼 대신 말과 논리로 무장한 의원들이 피감기관들과 각종 현안을 놓고 싸운다. 때로는 양측에 고성이 오가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도 한다.
국정감사 현장에 사상 처음으로 대선후보가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당장 지사직을 사퇴하지 않고, 국정감사에 나가겠다“고 밝혔다.
무의미한 질문
피감기관장인 현직 도지사가 여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야권에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상대 대선후보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망신주기에 딱 좋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 좋은 기회를 살리기 위해 만반의 공격 준비에 나섰다.
국민의힘 측은 지난 14일, ‘이재명 저격수’라 일컬어지는 박수영 의원을 행정안전위원회에 전격 배치했다. 경기도청 국정감사에 참여시키기 위해 정무위원회 소속이었던 박 의원을 행안위에 사보임시킨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행안위 소속이었던 이명수 의원은 외교통상위원회로, 외통위였던 김기현 의원은 정무위로 각각 자리이동했다. 순전히 이재명 저격만을 위한 세 의원 간의 전략적 이동이었다.
박 의원의 공격력은 이 지사를 공격하는 데 특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민의힘 대장동 태스크포스(TF)에 소속돼있는 박 의원은 지난 30년간 경기도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는 행정고시 29회로 공직에 입문해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 경기도 경제투자실장, 기획조정실장, 행정1 부지사 등을 역임했다. 자타공인 행정 전문가인 것이다.
사람들이 대장동 개발에서 발생한 수천억원의 이익이 민간에 흘러간 경위를 이 지사에게 물을 때, 이 지사는 풍부한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근거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대응해왔다.
이 지사에게 효과적인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같은 행정 전문가가 필요하고, 이 역할을 박 의원이 자처했다.
박 의원은 그동안 대장동에 대한 의미 있는 저격을 수차례 해왔다. 그는 지난 9월, 국힘 대장동 TF에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으로 대장동 의혹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사상 첫 대선후보 국감장 출석
국힘 ‘행정통’ 박수영 전면배치
박 의원은 “도시개발법령에 따르면 개발계획안에 대한 공고를 할 때 응모 기간은 90일 이상이어야 하는데, 대장동의 경우는 단 41일에 불과했다”며 “법령을 어겨 무효고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남의뜰이 대장동의 개발공사로 선정될 당시, 응모 기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이었다. 박 의원은 이것이 유동규 당시 사장 대행의 임무 기간에 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측근으로 알려진 당시 유 사장 대행과 비리를 저지르기 위해 응모 기간을 줄이고, 경쟁자들을 최소화해 사업을 몰아줬다는 것이다. 그는 “신임 사장이 오기 전에 신속히 처리해버린 것 같다. 27만8000평의 미니 신도시를 권한 대행이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라 덧붙였다.
이뿐 아니라 성남의뜰 지분구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통주’와 ‘비참가적 우선주’ 배분에 대한 문제 제기다. 박 의원은 성남시가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 ‘보통주’를 독식하는 데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보통주’는 배당에 제한이 없는 주식을, ‘비참가적 우선주’는 배당에 제한이 있는 주식을 말하는데 초과이익이 많이 발생할 경우 그 이익은 ‘보통주’를 가진 주주들에게 모두 돌아간다.
박 의원은 성남시 측과 다른 투자자들은 이를 알고 있음에도 ‘보통주’를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에 몰아줬다고 주장한다.
만반의 공격 준비
결과는…이 판정승
박 의원은 “비참가적 우선주는 사업 리스크가 클 경우 확정 배당을 받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라며 “앞서 밝힌대로 모든 투자자들이 리스크가 적고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한 대장동 사업에서 성남시와 금융사들이 배당이 큰 ‘보통주’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구체적인 의혹제기가 이번 국감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박 의원은 지난 18일, 경기도청 국감질의 시간에 이 지사에게 불발탄만 쏴댔다.
박 의원은 보고에 관한 질문, 유동규 사면에 관한 질문, 사퇴에 관한 질문까지 총 세 발의 탄환을 쐈지만, 이 지사는 이를 족족 피해갔다.
이 지사는 “대장동 개발의 기본 틀, 누가 얼마의 배당을 받을 것인지 보고받았느냐”란 질문에 “공공개발을 하지 못하고, 위탁을 했기 때문에 세부적인 보고는 받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또 “대통령이 되면 유동규나 김만배를 특별사면하겠느냐”란 질문에는 “말이 안되는 소리다. 부패사범을 어떻게 사범하겠나”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측근 비리가 밝혀지면 사퇴하시겠느냐”는 질문에는 “윤석열 후보가 먼저 대답하면 나도 대답하겠다”고 답했다. 세 개의 총알이 모두 불발된 것이다.
정가에선 이번 국감에 대해 “이 지사에 대한 결정적 직격탄은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의원 배치를 바꾸고, 국감을 철저하게 대비한 야당이 여론의 반향을 불러올만한 결정적 한 방을 때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불발탄
심지어, 국힘 내부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TBS와의 인터뷰에서 “국정감사를 보는 내내 억장이 무너졌다. 그렇게 못할 수가 없다”며 “이 지사의 동공이 흔들리는 질문을 최소 10개는 했어야 하는데, 그저 따지고 훈계하는 사람만 많더라. 그건 득점이 안 된다”고 총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