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각양각색 ‘골프 스윙’ 변천사

한 세기를 풍미하며 살다 간 수많은 골프 영웅의 스윙은 어땠을까. 골프스윙은 클럽과 볼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져왔다. 스윙의 변천사는 클럽의 변천사와 함께한 것이다.

골프의 신이라 불리웠던 스코틀랜드의 알렌 로버트슨은 19세기 스윙의 정석으로, 1859년 올드코스에서 인류 최초 80대를 깬 골퍼였다. 당시의 클럽은 히코리클럽이었고, 볼은 역사 속으로 사려져가는 거위깃털볼을 사용했다.

시간 흘러도…

162㎝ 정도의 작은 키에 왜소했던 알렌은 어드레스에서 뒷발에 무게 중심을 두고 클럽을 어깨에 맬 정도로 플랫하게 백스윙을 했다. 히코리클럽 자체의 무게가 버겁기 때문이었다.

오른손 그립은 백스윙의 톱에서 엄지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갈 정도였는데, 이는 헤드를 왼쪽 어깨 쪽으로 더 내려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왼발 뒤꿈치는 백스윙의 회전을 돕기 위해 심하게 들어야 했고, 왼 무릎은 오른 무릎에 닿을 정도로 움직여야 했다. 결국 움츠린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지만, 19세기의 전형적인 스윙의 표본이었던 그는 볼 컨트롤의 귀재였으며, 패배가 없는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20세기 초에 활약한 해리 바든은 ‘스윙의 아버지’로 불렸다. 150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하는 새끼손가락을 왼손 검지 위에 올려놓는 ‘오버래핑 그립’을 창시한 골퍼다.

그는 사려 깊은 포즈로 너무도 쉽게 스윙을 한다고 당시의 골퍼들은 묘사한다. 고요하게,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고, 눈에 거슬리는 동작이 하나도 없으며, 마치 세상을 이해하고 관대한 아량을 베풀 듯이, 그러면서도 자신이 위대한 골퍼라는 자만심은 전혀 없는 동시에 무의식의 세계로 가는 듯한 스윙을 한다.

어떤 샷이건 어깨 넓이의 스탠스를 유지하는 게 특징이었다. 바든 역시 무거운 히코리클럽 때문에 좁은 스탠스로 플랫한 스윙을 했다.

전설의 골퍼인 보비 존스는 완벽한 스윙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초창기는 너무도 조급한 나머지 코치로부터 백스윙을 하면서 볼을 친다는 비아냥까지 들을 정도였다. 이유는 그의 심리상태에서 기인했다.

사색에 잠기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길 좋아했던 수줍은 그는 대중들 앞에 서면 심장이 매우 두근거렸다. 가능한 빨리 볼 앞으로 걸어가서 공을 때리고, 또 걸어가는 게 그는 차라리 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다듬어지기 시작한 그의 스윙은 너무도 쉽게 변했다. 몸의 모양이나 샷의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채 무의식적인 스윙 같았다. ‘골프는 그냥 때리고, 볼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린에 올려 놓고, 홀에 집어넣으면 된다’는 게 그의 골프 철학이었다. 히코리클럽과 스틸클럽의 과도기에서 활동했던 그는 어떤 클럽이건 일관성 있는 스윙을 유지했다.

보비 존스의 스윙은 아름다웠으며, 너무도 간결하고 일관성이 있었다. 어깨 넓이 만큼 벌린 어드레스를 취한 뒤 백스윙을 하기 전 그는 긴장을 풀기 위해 타깃 쪽으로 손목과 몸을 움직이는 특유의 ‘왜글’을 하면서 리듬을 탔다.


백스윙으로 가는 동작은 그야말로 잔잔한 파도 위의 물결과도 같이 고요하다. 참고할 점은 백스윙을 시작할 때 절대 왼손의 코킹을 먼저 하면서 클럽 헤드를 미리 뒤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클럽 헤드보다 손목이 먼저 뒤로 빠질 정도로 클럽 헤드를 늦게 가져간다.

백스윙의 톱에 도달할 때 오른 겨드랑이는 많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옆구리에 붙이는 경향이 있다. 왼발 뒤꿈치는 완전히 세워서 발가락으로만 지탱한다. 오른쪽으로 무게 중심이 완전히 쏠렸음을 의미한다.

백스윙의 톱에서 양손의 코킹은 심할 정도로 많이 해서 클럽 헤드가 ‘오버 된다’ 싶은 느낌이 들게 한다. 다운스윙은 몸 전체를 이용한 그야말로 몸통 스윙이다. 와인통을 그대로 돌리듯 온 힘과 스피드를 한데로 모아 임팩트에서 발산한다.

퍼팅에 대해 그는 “Never Up, Never In”을 강조했다. ‘퍼팅을 할 때 자신 있고 과감하게 홀 컵보다 조금 더 길게 쳐서, 홀이 지나가도록 쳐야된다’는 뜻이다. 몸이 움츠러들어 홀컵 앞에서 볼이 서게끔 짧은 퍼팅을 결코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보비 존스의 스윙을 배우고 싶어 했다. 1931년부터 1933년까지 2년 동안 그는 골퍼 최초로 헐리우드에서 워너브라더스와 계약을 맺고, 18부작 ‘골프 레슨’시리즈를 영화필름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필름은 빛을 못 보다가 수십 년 뒤에야 그의 친지가 레슨 프린트를 동영상 기법으로 만들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이 필름에서 보비는 혼자 출연해 흑백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어진 옷을 입고, 백스윙과 다운스윙의 과정을 옷 색깔로 알리기도 했다.

아름답고 간결한 전설들 동작
변치 않는 무게중심의 중요성

스윙 교본이 적힌 골프교습서도 여러권 출판했다.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쓰인, 모든 사람이 그의 생각과 교감을 나누도록 쓰인 책들이었다. 하버드대학 영문학 전공답게 그의 저서는 매끄럽다는 평을 받았다. 필름 제작 시에도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바르고 올빽으로 넘긴 단정한 모습과 넥타이에 7부 바지를 입는 정장 스타일을 고집했다.

그의 아름다운 스윙은 영구히 보존되고 있다.

1950년대 감나무헤드와 스틸 샤프트 골프채를 중심으로 한 현대 스윙으로 진화하면서 벤 호건이 등장한다. 그의 스윙은 어깨 넓이의 스탠스로 백스윙을 시작해서 손목은 클럽 헤드보다 타깃 쪽으로 놓고, 척추 선은 수평으로 만든다.

상체와 어깨 회전을 할 때 작은 각도로 유지해 어깨와 힙의 회전이 같은 비율로 꼬이게 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상대적으로 힙의 회전을 최대한 줄이려는 것이다. 백스윙의 톱에서는 클럽과 손의 위치가 어깨 뒤로 가게끔 플랫한  스윙 궤도를 이룬다.

전형적인 하체 스윙을 하는 그는 오른 무릎을 많이 사용하지만, 왼 무릎은 피니시에도 피지 않고 각도를 유지한다. 이렇게 하면 오른 무릎을 왼쪽으로 밀어주고 왼쪽 힙이 옆이 아닌 뒤로 이동하면서 동시에 왼쪽 앞에 공간이 많이 생겨 스피드가 증가된다. 호건은 골프 역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스윙을 하는 선수였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잭 니클라우스를 비롯한 많은 선수가 허리를 이용한 공통적인 스윙을 하기 시작했다. 왼쪽 골반뼈를 중심으로 다운스윙을 시작하면서 임팩트 후 허리를 과도하게 휘게 했다.

피니시 자세에서도 몸 전체가 구부러지는 ‘C자’모양의 스윙이었다. 감나무헤드와 스틸 샤프트의 탄성을 이용해 볼을 높이 띄워 거리를 내기 위한 스윙이었지만 허리에 무리가 가는 위험한 스윙으로 간주됐다.

1990년대 말에 타이거 우즈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그의 스윙이 수백 년의 결정체라고 했다. 21세기 신소재를 탑재한 그의 스윙은 벤 호건의 스윙에 기초했다. 단지 다운스윙에서 하체 동작으로 앞의 공간은 충분히 확보했지만, 호건이 허벅지로 왼쪽 벽을 세운 반면, 우즈는 무릎으로 대신했다.

스윙 속도는 빨라졌지만, 호건이 하체 부상이 없었던 것에 반해 그는 4차례나 무릎 십자인대를 수술해야 했다. 2008년까지 10년 동안 우즈는 가공할 만한 스윙으로 황제의 자리를 지켰지만 2009년부터 몰락한다.

우즈의 스윙은 수차례 바뀌었다. 초창기 코치인 부치 하먼에서 시작된 스윙은 올라간 궤도대로 내려오는 원-플레인 스윙의 창시자인 행크 헤이니에 의해서 교정됐다. 다음 코치는 숀 폴리였다. 숀은 유럽 선수들이 2000년대부터 시행하던 허벅지를 이용한 하체 스윙을 미국에 도입한 코치였다.

우즈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던 미국의 톱 코치 대신 변화를 시도한 숀을 택했다. 3년여의 노력 끝에 2013년 우즈의 하체 스윙은 빛을 발하는가 싶었다.


가치는 여전

몇 차례의 우승으로 스윙이 안정된 듯 보였고, 5년여의 슬럼프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부터 계속된 부상과 수술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의 스윙은 너무도 많은 코치들에 의해 얽히고설켜 자신의 스윙이 어느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총체적인 잘못된 조합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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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도이치 브로커’ ‘청담동 사기꾼’ 연결고리 추적

[단독] ‘도이치 브로커’ ‘청담동 사기꾼’ 연결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건희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준수가 3년간 수백 차례 연락에 사용한 휴대전화를 특검팀이 확보했다. 이준수는 주식·코인 주가조작으로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기다 구속된 이희진에게 오광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소개한 인물이다. 앞서 이희진이 구속된 2016년에도 그를 옹호하는 영상을 웹사이트에 올려 친분을 과시했다. 이준수는 과거 무자본 인수합병(M&A) 혐의 등으로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당시에도 김건희 계좌와 연관된 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불기소 처분된 바 있다. 같은 부류 서로 옹호 지난 7월15일 김건희 특검은 김건희와 이준수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에서 단순한 투자 조언을 넘어선 사적 관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메시지에는 주식 매매 관련 대화뿐 아니라, 사적인 감정 표현과 비공식적 만남 정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렌식 결과 이준수는 김건희에게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처음 소개한 인물로 드러났다. 2013년 이준수는 김건희에게 보낸 문자에서 “무당이라기보다는 거의 로비스트에 가깝다. 정치권 네트워크가 막강하다”고 표현하며 전씨를 추천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은 이 관계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준수→건진법사→김건희’로 이어지는 핵심 연결고리로 보고 있다. 특히 건진법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후에도 대통령실 인사들과 접촉하고 영향력을 행사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특검은 이 라인과 김건희의 대선 이후 행보와의 연속성을 주시하고 있다. 이후 특검은 이준수의 최근 행적 단서를 발견했다. 지난해 10월, 이준수가 음주 운전 혐의로 적발됐는데, 경찰 조사에서 “가까운 지인이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를 받아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당시 ‘무혐의’를 받은 인물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김건희를 의미한다. 경찰 조사 조서에는 ‘지인’이라고만 기록됐지만, 특검은 실제 진술 내용과 시점을 대조해 그 ‘지인’이 김건희임을 확인했다. 이는 2023년 말까지도 김건희와 이준수 간에 연락이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이준수가 차명계좌 등을 통해 거래에 참여한 정황을 새롭게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음주 운전 혐의로 경찰에 수배된 상태였으며, 특검팀은 지난달 압수수색 현장에서 그를 발견하고 체포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려 달아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수는 김건희의 금융 거래와 밀접한 인물로 여러 차례 거론됐다. 특히 2022년 대선 당시 김의겸 의원은 김건희가 2010년 4월 주가가 급등락하던 태광이엔씨 주식을 대량 매수한 뒤 하루 만에 1000만원이 넘는 이익을 보고 매도했다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자 의혹을 제기했다. 이준수, 김건희-건진법사-도이치모터스 핵심 코인판으로 진화한 주가조작 조직 ‘VIP’까지 당시 태광이엔씨를 실질적으로 인수해 주가를 띄우고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확정받은 인물이 바로 이준수였다. 김건희가 이준수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받아 주식을 사고 팔았던 것 아니냐는 과거 의혹이 재조명되고 있다. 김건희 측은 이에 대해 “이준수가 일방적으로 투자와 관련해 연락을 취한 적은 있으나, 김건희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적이 없으며 이준수와 밀접한 관계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이준수와 지난해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이준수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으로 불린다. 과거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유명한 그는 여러 투자자 명의 계좌를 동시에 관리하며 시세조종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김건희의 계좌 출고 명령을 직접 수행했다는 내부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그를 기소하지 않아 ‘봐주기 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이준수는 “주가조작 전과 4범, 닉네임 ‘새강자’”로 유명했다. 이희진 주가조작 사건 당시 검찰 전관 변호사 오광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중개했다. 해당 사실은 이준수가 이희진에게 변호사를 알선하고 대가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으면서 드러났다. 이희진은 지난 2016년 9월 무인가 투자매매사를 설립했고, 2014년 7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600억원대의 주식을 판매해 자본시장법·유사수신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희진과 조기축구 모임에서 친해진 이준수는 2016년 8월 이희진에게 오광수 등 변호사를 알선하고 그 대가를 받거나 약속받은 혐의를 받았다. 당시 이희진은 증권방송 회원들에게 비상장 주식을 매도한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끼리끼리 축구 모임 이희진은 수사기관에서 이준수가 검사·수사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변호사들을 소개하고, ‘착수금’ 2000만원과 불구속 수사를 받을 경우 성공 보수 5000만원을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진술했다. 이준수의 혐의에 관한 증거는 대부분 이희진의 진술에서 비롯됐다. 이희진에 따르면 이준수는 “변호사들에게 적지 않은 선임료를 주는데 나도 그동안 너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니 돈을 달라. 변호사들은 앞선에서 일하고 나는 뒷선에서 일을 볼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승낙한 이희진은 자신의 주거지에서 이준수에게 현금 1000만원을 줬다. 또 며칠 뒤 이준수는 이희진에게 “검찰 수사관에게 알아보니 너 골인(구속)될 것 같다. 약속한 1000만원을 달라”고 해 나머지 1000만원을 더 지급했다고 한다. 이에 관해 이준수는 “1000만원은 비상장 주식을 담보로 한 담보대출을 추진하기 위해 수고비 명목으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희진의 공소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희진과 다른 증인의 진술이 상반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이희진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준수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착수금·성공 보수를 요구받았다고 했지만, 해당 차량 운전사는 이 같은 말을 들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짚었다. 이희진의 진술은 동생 이희문의 말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이희진은 동생과 이준수에게 돈을 지급할지, 깎을지 상의했다고 했지만, 동생은 “당시 변호사 소개비 등 명목으로 2000만원을 줬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고 나중에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7년 2월14일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이희진과 그의 동생을 사기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피해자 28인에게 허위, 과장된 내용을 말하며 대략 41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하며 추가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인가 금융투자업을 영위하며 비상장주식 종목을 추천한 뒤 선행 매매한 주식을 판매해 122억6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2020년 2월 징역 3년6개월, 추징금 122억6000만원이 확정됐다. 최근 이씨 형제는 현재 가상화폐(피카코인) 시세조종 사건에 연루돼 구속 상태로 재판받고 있다. 국가권력으로 범죄 네트워크 이희진의 절친이자 김건희와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 이준수는 주가조작 전담 브로커로서 “증권사 내부망 접근, 차명계좌 운용, 대포폰 관리” 등을 통해 시세조작을 총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이희진 코인 사건의 자전거래 구조 및 주식시장 조작 방식과 유사하다. 통정·자전 거래 구조가 동일하다. 차명계좌·직원을 동원해 리딩방을 운영하고, 허위 보도자료·루머형 호재를 유포하는 패턴도 동일하다. 지난 2016년 이준수는 웹사이트를 통해 이희진을 두둔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해당 방송에서 “언론이 사건을 과장했다”며 혐의 전반을 축소하고, “1600억 허가 안 받은 것뿐이지 큰 죄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유사수신죄는 원금 보장 약속이 있어야 성립한다. 계약서엔 그런 말이 없다”며 기소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또 이준수는 “주가가 4배, 5배 간다고 했다가 떨어졌다고 죄는 아니”라며, 주가조작을 단순한 ‘예측 실패’로 치부했다. 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목표가를 제시하는 것도 죄냐”고 반문하며, 이희진이 진행했던 거래를 “시장 참여자의 일반적 행위”로 표현했다. 영상에서 이준수는 전환사채 거래와 내부자 정보 이용 혐의를 언급하며 “브로커들이 조작했고, 희진이는 오히려 그 사실을 검찰에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IS동서 전환사채권은 큰 잘못이지만 희진이는 계약 불이행 피해자”라며 범죄의 고의성을 부정했다. 이는 공소장과 재판기록상 사실과는 상충되는 주장이다. 수백억 먹은 이희진 절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소개 또 다른 발언에서 그는 “사기적 부정거래는 회사가 거짓말로 주식을 파는 행위”라며 “이희진은 단지 회사 공시를 믿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리패스 등 현재 상장폐지된 기업을 언급하며 “공시가 취소됐다고 사기라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금융감독 규정상 ‘허위 공시 정보 활용’과 ‘공모 행위’의 구분을 의도적으로 축소한 해석이다. 영상 말미에서 이준수는 피해자들의 법적 구제 가능성마저 부정했다. “이희진한테 피해 입었다고 나라가 받아주지 않는다. 민사·형사도 성립 안 된다”며 “다 변호사들이 사기 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조계를 “돈에 눈먼 집단”이라 비난하며, 피해자들의 소송을 “쓸데없는 짓”이라 재차 강조했다. 한편, 이준수가 옹호한 주가조작범 이희진은 코인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2023년 10월4일자로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피고인 이희진과 이희문은 A, B, C 토큰을 이용한 대규모 가상자산 시세조종·사기 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두 형제는 실체가 불분명한 ‘스캠(Scam) 코인’을 발행해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고, 허위 공시와 자전거래(봇 프로그램 활용)를 통해 시세를 인위적으로 부풀린 뒤 투자자들에게 고점 매도를 유도하는 ‘물량 털기(Pump & Dump)’ 방식으로 약 700억원대의 피해를 입혔다. A 토큰 피해자는 1만564명으로 피해액은 약 217억원, B 토큰 피해자는 4342명, 피해액은 약 341억원, C 토큰 피해자는 1만5641명, 피해액은 약 339억원이다. 김건희 특검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는 그의 단순한 과거 인연을 넘어, 사적 네트워크가 실제 정치권력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검은 현재 ‘김건희·이준수·건진법사’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의 실체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이희진과 이준수는 변호사·브로커 인맥을 공유하고, 자전거래 기술을 활용해 주식과 코인 양쪽의 시장 조작 기술도 공유했다. 이희진과 김건희의 접점은 없으나 이준수를 경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이희진 형제는 ‘코인판 사기’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준수에 대한 직접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소장과 언론 보도를 교차 검증할 때 자전거래 시스템, 차명계좌 운용, 허위 호재 유포 패턴 등이 모두 이준수의 과거 주가 조작 수법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검찰의 보강 수사 필요성이 높다. 국정으로 연결 범죄 네트워크 이씨 형제의 범행은 과거 주가조작 사건의 복제판이며, 그 배후에는 이준수 같은 ‘조작 기술자’가 존재한다는 정황이 공소장 등에서 확인된다. 김건희 계좌가 활용된 도이치모터스 사건과의 연계가 입증될 경우, 이 사건은 단순한 금융 사기가 아닌 ‘국가권력과 민간 조작 네트워크의 교차 지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