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금융권 모럴헤저드 실태 고발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9.12 14: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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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돈으로 '빚잔치'…"내 돈 어디에 맡기나?"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을 믿고 맡길 데가 없다. 집에 쌓아두자니 '도둑'이 무섭고 통장에 넣자니 '은행'이 무섭다. 은행들이 고객돈으로 개인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횡령·배임·불법대출을 넘어 고액배당·정보유출까지 탐욕은 끝이 없다. 징계자는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는데 감시망은 여전히 허술하기만 하다.

 

경기 일산경찰서는 지난달 29일 고객이 예치한 돈을 빼돌린 혐의로 우리은행 최모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우리은행 등에 따르면 최씨는 2010년 6월부터 2011년 6월까지 1년간 13회에 걸쳐 고객돈 31억원을 횡령하다 은행 내부감사에 적발됐다.

최씨는 고객이 정기예금에 가입하고 2억5000만원을 맡겼을 때 1000만원만 입금하고 2억5000만원이 입금된 것처럼 통장에 가짜 잔액을 붙이는 수법을 사용했다. 정상거래 내용을 임의로 출력해 통장에 오려 붙이는 수법으로 고객들을 속였지만 은행 간부라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았다.

31억 가져갔는데
은행 1년간 몰라

최씨는 30억원이 넘는 돈을 주식 선물옵션에 투자했다 모두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우리은행이 이러한 사실을 한동안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6월에서야 감사를 통해 적발해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은 지점장급 전·현직 은행원 3명이 지난 2005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채권보전절차 없이 1350억여원의 PF대출을 해 주는 조건으로 수억원의 뭉칫돈과 함께 골프 등의 접대를 받은 것이 밝혀져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 일로 우리은행은 서울 회현동 본점이 경찰 특수수사과에 압수수색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최근에는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에 복합 유통센터를 조성하는 파이시티 사업과 관련해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 2010년 우리은행이 파이시티의 사업권을 뺏기 위해 청와대에 비리 첩보를 제보하고 의도적으로 파산신청을 냈다는 주장인데 은행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신한은행에서는 직원 18명이 고객이 낸 수수료 수억원을 가로채 전원 면직처리 당한 일도 발생했다.

지난 3일 금감원 등에 따르면 신한은행 서울 서교동 지점 한 직원은 지난해 기업고객들이 납부한 신용평가수수료 등 각종 1회성 수수료 2억여원을 수차례 걸쳐 빼돌리다 올해 초 고객의 민원제기로 덜미가 잡혔다.

이를 계기로 신한은행이 전체 지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였고 이 결과 직원 18명이 적발됐다. 조사결과 이들은 수수료 영수증을 허위로 발급해준 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적게는 4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돈을 횡령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8일에는 2010년 9월 '신한사태'를 앞두고 신한은행 직원들이 재일교포 주주의 계좌를 무단으로 열람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감원은 "신한은행 사태를 앞두고 양용웅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장과 그 가족의 계좌를 신한은행 측이 무단 열람했다는 민원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이어 "계좌 열람 권한이 있는 직원들이 본 것인지 아니면 무단으로 열람한 것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오는 10월 신한은행 종합검사 때 이 부분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횡령·정보유출·서류조작까지 '비리백화점'
비리 징계자 지난해 2배…근본 대책 절실

양 회장은 신한지주 사외이사를 역임했으며 신한지주 주식 100만주 이상을 가진 재일교포 주주모임 회원이다. 양 회장은 2010년 신상훈 전 사장의 사퇴를 반대한 바 있다. 때문에 양 회장 계좌 무단 열람이 신 전 사장 진영의 약점을 잡기 위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파문이 예상된다.

감사원이 지난 7월23일 발표한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공개문에서는 신한은행이 개인신용대출 금리를 매길 때 대출자의 학력 수준에 비례해 차등을 뒀다고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신한은행은 고졸 이하 대출자에 13점을, 석·박사 학위자에는 54점을 줬다. 4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 신용평점은 곧바로 대출승인 여부와 대출금리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당시 신한은행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민은행은 아파트 중도금 대출 서류를 직원이 고객 동의를 받지 않고 조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여기에 본점 영업감사부가 금감원의 근거리 감독하에 중도금 집단대출 서류를 검사하는 중 약 4000~5000여건의 조작사실이 적발되면서 "직원 실수"라고 해명한 국민은행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출 만기를 은행직원이 멋대로 바꾼 사례가 가장 많았고 고객 대신 서명을 하거나 대출금액을 고친 일도 있었다.

지난 7월에는 고객돈을 마음대로 인출해 쓴 전직 국민은행 고객관리팀장 이모씨에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이씨는 2007년 8월 중순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중랑구 국민은행 모 지점의 VIP고객관리팀 사무실에서 27회에 걸쳐 고객 5명의 예금 약 10억4000만원을 인출해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쓴 혐의로 기소됐다.

올해 1월까지 고객예금을 관리하며 펀드와 보험 등 각종 금융 상품의 관리와 판매 업무를 맡아왔던 이씨는 펀드 실적을 높이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했으나 큰 손실이 발생해 고객 예금에 손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투자한 주식에서도 손실이 발생하자 생활비와 개인 주식 투자를 위해 고객돈을 인출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에서는 지난 2월 경기도 포천의 한 지점에서도 지점장이 자신이 관리하던 고객돈 28억5000만원을 인출해 달아난 사건도 있었다.

하나은행은 지난 5월 금감원으로부터 기관경고와 과태료 2750만원 처분을 받았다. 또한 임직원 28명을 징계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상품권 횡령, PF 대출 부당 취급, 이사회 결의의무 위반 등 온갖 비리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당시 금감원에 따르면 하나은행 직원 김모씨 등은 2008년 6월부터 3년간 기업들이 국민관광상품권을 수천만원씩 사들인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고 상품권을 빼돌려 현금화했다. 횡령 규모가 174억4000만원에 달했지만 하나은행 측은 사고를 인지하지도 못했다.

우리·신한·국민·하나
그들만의 '돈잔치'


하나은행은 2268억원 규모의 PF 대출을 취급하면서 여신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1506억28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대주주 특수관계인들에게 총 7100억원의 신용공여 안건을 이사회에서 처리하면서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는데도 안건을 의결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파생상품 회계 부당처리 ▲금융거래 실명확인 의무 위반 ▲예금잔액증명서 부당발급 ▲고객신용정보 부당 조회 ▲대출금 용도 외 유용 및 사후관리 불철저 ▲담보 및 보증 설정업무 불철저 ▲그룹 내 임직원 겸직업무 불철저 ▲은행장 승인 없이 외부 영리업무 영위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모럴헤저드는 제2금융권에서도 심하게 나타났다. 특히 신협·농협·수협 등 상호금융회사 행태가 '위험수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일 금감원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우산신협은 직원 가족 등 특수관계인에게 11억원을 빌려주고 대출 상환이 연체되자 7000만원의 대출을 일으켜 이자를 메웠다. 또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대출 이자를 내부 전산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더욱이 우산신협은 5차례나 징계를 받은 직원 3명을 9차례나 승진시키고 3차례 자체 표창과 특별 승급 혜택도 부여했다.

불법대출이 적발되자 징계를 피하기 위해 공사를 미끼로 건설업자에게 4000만원을 빌려주고 다시 받아 갚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역시 광주시에 소재한 퇴촌신협에서 여직원 김모씨가 10년에 걸쳐 고객 예금 66억여원을 횡령한 사건도 발생했다.

신협·농협·수협
'비리백화점'

김씨는 조합원 명의의 청구서를 위조해 임의 해지 후 예금을 출금하거나 조합원이 요청한 입금액보다 적은 금액만 입금시킨 다음 입금되지 않은 나머지 돈을 횡령하는 수법 등을 사용했다.

농협도 간부와 조합장들이 잇따라 각종 비리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지난 2일 경남 마산중부경찰서는 투자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혜택을 주고 공금을 가로챈 혐의 등으로 마산시농협 간부 윤모, 강모, 차모씨 등 3명을 농업협동조합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에는 대출청탁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남 도내 모 지역 농협 조합장 박모씨가 경찰에 형사입건됐고 지난 1월에는 전국 지역 단위농협에서 수백억원의 대출비리가 포착되기도 했다.

수협은 더하다. '비리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다. 경북 포항수협에서는 수협 대의원과 이사 선거 과정에서 20여명의 수협 임원과 조합원들이 돈 봉투를 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 목포수협에서도 지난해 9월 목포수협 조합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 지지를 부탁하며 조합원들에게 수십만~수백만원을 건넨 혐의로 5명의 조합원이 불구속 기소됐다.

제주수협에서는 수협 저장냉동고에서 2000여만원 상당의 갈치와 30여만원 상당의 어업용 면세유 400ℓ가 도난당했는데도 제주수협이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도록 관련 내용을 수협중앙회에 보고하지 않아 제주해양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

부산수협은 수십만원을 수수하고 오징어 경매대행 수수료를 100여 회에 걸쳐 총 1억원 가량 초과 지급하다 지난 3월 적발됐다.

보험권에서는 설계사가 고객의 보험료를 가로채는 일이 여러 차례 적발됐다. 올해에만 메트라이프생명, 교보생명, 알리안츠생명, 미래에셋생명, 삼성생명, ING생명, 대한생명의 설계사 12명이 보험료 수백만~수억원을 유용했다.

제2금융권도 금융사고 빈발, 탐욕 위험수위
'비리척결' 칼 빼든 금감원, 실효성은 의문

삼성화재, 현대해상, 한화손보, 동부화재, 메리츠화재, 악사손보 등 손해보험사는 자동차사고 피해자의 보험금 수백만~수억원을 주지 않았다가 적발됐다.

저축은행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동양저축은행 직원은 고객 330명의 예금을 멋대로 해지해 146억원을 횡령했고 참저축은행은 대출해준 업체에서 주식 배당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받았다.

신민저축은행은 대주주가 사실상 지배하는 회사에 불법대출을 했고 W저축은행과 HK저축은행은 주거래 회사의 대출이자를 부당하게 깎아줬다.

금융권에서 올해 8월 말까지 비리로 인해 징계를 받은 임직원은 무려 447명으로 임원 95명, 직원 352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징계를 받은 임직원 468명과 비슷한 수치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 222명과 비교해선 2배가 넘는다.

피해액 규모도 2006년 874억원에서 2010년 2736억원으로 급증했다. 2009년 48건이던 은행권 비리는 2010년 57건으로 19% 증가했고 연간 피해액은 291억원에서 1692억원으로 무려 222% 늘었다. 2006년부터 5년간 총 피해액을 보면 은행권이 257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비은행권 1920억원, 증권사 896억원, 보험사 264억원 순이었다.

이처럼 금융권의 모럴헤저드가 갈수록 심해지자 금융당국이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금감원은 가산금리 문제와 차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다음 달 중 개선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금감원은 보험의 약관대출 가산금리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만들도록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은행의 경영실태평가 제도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기도 했다. 경영실태평가 6개 항목 가운데 수익성 항목의 배점 비중을 15%에서 10%로 줄였고 경영관리적정성 항목에 '사회적 책임 이행실태'와 '성과보상체계 적정성'을 새로 만들었다.

'사후약방문'
실효성 의문

부유층 회원에게 지나친 혜택을 제공하는 초우량고객(VVIP) 서비스도 모럴헤저드의 소지가 있어 이를 억제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금감원은 VVIP신용카드 신규발급을 사실상 제한하고 기존 VVIP카드의 수익성도 재검토할 방침이다.

저축은행에는 아예 법을 고쳐 대응키로 했다. 금융위는 대주주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저축은행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겪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대형 비리들이 잇따라 터지고서 나온 처방전이어서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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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