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양자의 촉매' 임충섭

사잇 : 사이와 잇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나는 서예가 서양에 미친 영향과 그 관계를 미학적 조형론으로 일목요연하게 이론화할 수 없다. 그저 작가로서 시각적인 반추를 시도할 뿐이다. 나는 한문의 조형성이 지닌 반추상적 입지 때문에 서양 미술의 추상 표현 등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본다.” <작가 임충섭>

갤러리현대는 1970년 4월4일 서울 인사동에 ‘현대화랑’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미술계 흐름을 선도해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갤러리다. ‘국민화가’로 평가받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이 갤러리현대를 통해 조명받았고, 김환기·유영국·윤형근 등 추상 미술의 거장과 함께 전시를 개최해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시적 감성

갤러리현대가 임충섭의 개인전 ‘드로우잉, 사잇’을 준비했다. 2017년 ‘단색적 사고’에 이어 갤러리현대가 기획한 임충섭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 임충섭은 신작 드로잉 2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사잇’은 임충섭의 작품세계를 함축하는 단어다. 두 장소나 대상끼리의 거리나 공간을 의미하는 ‘사이’와 그것을 연결하는 ‘잇다’를 결합해 만들어졌다. 1973년 새로운 예술형식을 찾기 위해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작가 활동을 이어온 임충섭에게 사잇의 개념은 창작의 원동력이자 시각적 모티프가 됐다. 

임충섭은 자신이 한국(동양)과 미국(서양), 자연(시골)과 문명(도시), 과거와 현재, 여백과 채움, 평면과 입체, 추상과 구상 등 양자 사이를 연결하는 촉매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작품은 그 사이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시각적 해학’을 펼친 조형 행위의 결과다. 


두 번째 갤러리현대 전시
신작 드로잉 20여점 소개

‘드로우잉, 사잇’의 출품작은 사잇의 개념을 형상화한 결과물로, 2015년부터 팬데믹 상황에 처한 지난해까지 임충섭이 뉴욕 스튜디오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한 120여점의 드로잉 중 일부 작품으로 구성됐다.

임충섭은 서양의 현대 미술과 동양의 서예 예술의 조형성 사이의 관계를 다각도로 연구하며 조형적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일련의 드로잉 시리즈를 통해 서예 예술의 방법론이 미국 추상 미술가의 작품 형성 과정에 미친 영향을 시각적으로 반추해 자신만의 독자적 작품을 완성했다. 

임충섭은 “한문의 조형성이 지닌 반추상적 입지가 서양 미술의 추상 표현 등에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그의 드로잉 작품에는 언어적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서예의 엄격하면서도 자유로운 붓질을 떠올리는 형상 ‘ㅇ’ ‘ㅣ’ ‘ㄴ’ ‘ㅅ’ ‘ㅂ’ 등 한글의 자음과 모음, 綠(록), 角(각), 居(거) 등의 한자를 닮았거나, 그 음이나 의미를 연상시키는 반추상적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무제’라는 제목을 지닌 드로잉 작품에 ‘꼬리’ ‘바람’ ‘혀’ ‘너’ ‘뿌렁이’ 등의 순우리말이나 방언을 부제로 붙여 임충섭만의 시적 감성과 언어유희적 유머를 부여했다. 단어의 지시 대상과 시각적 유사성을 지닌 화면의 형상은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단어와 시각적 유사성
관람객의 상상력 자극

사잇의 개념은 드로잉의 재료 선택에서도 반복되고 변주된다. 회화, 설치, 영상, 조각 등 매체와 방법론의 경계 없이 작품을 제작해온 임충섭은 다양한 일상적 사물을 콜라주하거나 아상블라주하며 화면에 이색적 형태와 유기적 구조를 만든다. 


그는 유화·아크릴릭·연필·캔버스처럼 전통회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재료부터 먹·한지 같은 동양적 재료, 페이퍼타월·플라스틱 망·카펫·나무못 등의 오브제, 그리고 목공에 사용되는 린시드오일·왁스 같은 공업적인 재료까지 그 성질과 쓰임이 다종다양한 소재를 한 장소에 놓고 병치하거나 중첩하면서 재료 사이를 잇는다.

모든 재료는 캔버스에 투명하게 침잠하듯 스며들어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입체적인 돋보이는 부조적 화면을 구축한다. 

언어유희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임충섭은 ‘현대인의 잠재의식의 흔적을 간직한’ 일상적 사물의 파편을 화면에 깊숙이 침투시켜 시간과 기억의 풍화를 입은 화석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미감을 완성했다”며 “한국적인 색채로 평가받는 미니멀한 단색조의 드로잉 작품은 작가가 나고 자란 고향에 관한 기억과 추억으로 우리를 조용히 안내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임충섭은?]

1941년 충청북도 진천에서 출생해 유년기를 보냈다. 196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후 약 10년간 한국에서 작업 활동을 펼치다 1973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1993년 뉴욕대학교 미술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까지 뉴욕을 거점으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OK 해리스갤러리, 산드라게링갤러리, 국제갤러리, 학고재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17년 현대화랑(갤러리현대)에서 ‘단색적 사고’를 선보였다.

2012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 대규모 회고전 ‘임충섭: 달, 그리고 월인천지’를 소개했다. 

이밖에 국립현대미술관(2011), 시드니현대미술관(2011), 스미소니언국제갤러리(2003), 서울시립미술관(1999), 허쉬혼미술관과 조각공원(1997), 퀸즈미술관(1997)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