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스타가 탄생하는 계기 중 하나는 거장의 선택이다. 신예의 매력을 낚아채는 안목을 가진 제작진에게 캐스팅된다는 건 스타로 나가는 데 초석을 다지는 것과 다름없다. 배우 정지소는 봉준호 감독과 연상호 감독에게 픽을 받았다. 전혀 다른 색감의 캐릭터에서 완벽에 가깝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시험은 기세싸움이야”라며 호기롭게 자신을 이끄는 과외 오빠에게 한 눈에 빠져, 자신의 방 안에서 키스를 하는 여고생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해당 작품이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를 동시에 석권한 영화 <기생충>이었기 때문이다.
여고생 방법사
비록 짧은 분량이었지만,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캐스팅됐다는 것과 그 짧은 시간에도 분명한 임팩트가 있다는 것에 드라마·영화 관계자들의 이목이 쏠렸다. 큰 눈망울 덕분에 순수할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뒤에서는 소위 ‘호박씨’를 까는 여고생은 꽤 매력적이었다.
얼마 뒤 정지소는 머리를 싹둑 잘랐다.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자 쉽게 입술을 내주던 그가 입을 앙다물었다. 분위기는 우울하고 고독하다. 모친을 잃은 후 마음 둘 사람이 없었는데, 정의롭고 배울 점이 많아 보이는 기자 언니를 만났다. 그 언니에게 마음에 들고 싶어 던지는 말이 가관이다.
“언니가 원하는 사람 방법 해줄게요.”
tvN 드라마 <방법>에서 방법사 백소진과 <기생충>의 여고생이 같은 배우라고 하면 아마 다들 놀랄 테다. 같은 여고생인데, 인물의 삶과 분위기의 간극이 너무 커서다. 주인공이지만 대사도 많지 않았다.
몇 가지 물품을 집고 주문을 외우거나 사람을 맞잡고 노려보면, 상대는 갑자기 온몸을 비틀어대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어릴적부터 너무 많은 고초를 겪은 탓에 일찍 어른이 된 아이가 백소진이다.
봉준호·연상호가 픽한 여배우
<방법:재차의>서 화려한 귀환
드라마에서는 악귀를 몸에 담고 홀연히 떠나버린다. 어디서 뭘 하는지 소식조차 알 수 없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소진의 귀환이 자연스럽게 필요할 때 <방법> 제작진이 선택한 건 크로스오버다.
단 하나의 에피소드로 세계관을 확장하면서 드라마 시즌2로 이어가는 연결고리를 만들고, 드라마의 가장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소진을 업그레이드시켜 귀환하게 만들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니까. 신작 <방법:재차의>는 이러한 목적을 갖고 탄생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애교보다는 예의가 먼저라는 정지소는 배우치고는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다. 조심성도 강한 편이다. 그래서 <방법>에서의 정적인 연기가 잘 어울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강렬한 이미지가 많다. 굿도 하고 액션도 활기차다.
“드라마에서는 정적인 면이 많아 사실 답답하기도 했어요. <방법:재차의>에서는 동적인 모습이 많이 나와요. 조민수 선배님의 굿하는 장면이 부러웠는데, 저도 이번에 굿을 하게 돼요. 멋있는 모습으로 나오고 싶어서 최선을 다 했어요. 영화로 제 마음의 한이 풀렸어요.”
국내에서 드라마가 영화화된 경우는 <나쁜 녀석들> 정도로 흔치 않다. 드라마에서 연기한 캐릭터로 영화를 갖고 오는 경험, 또 이미 만났던 동료 배우들을 다시 한 번 비슷한 콘셉트와 색다른 촬영 환경에서 만난다는 것은 누구도 쉽게 누릴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전 선배님들에게 애교스럽게 다가갈 정도로 친화력이 좋지 않아요. 운동을 해서 그런지 공손하고 어렵게 다가가는 스타일이에요. 기존의 <방법> 선배님들이나 오윤아 선배님께서 매우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엄지원 선배님과는 소통을 많이 했어요. 첫 촬영날 크게 반가워해 주셨던 게 특히 감사해요.”
방법 외에는 다른 능력이 없었던 소진은 3년 사이에 더 강력한 무기를 들고 온다. 악귀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숨기는 결계를 사용하기도 하고, 방법의 힘은 더 강력해졌다. 외형도 많이 바뀌었다. 머리는 다소 길어졌고, 얼굴에는 화장기가 있다. 입술은 빨개졌다. 첫 등장부터 너무 매력적이다. ‘백소진이 예뻐졌다’는 말에 그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예쁘다는 말은 참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수련으로 악귀인 이누가미를 어느 정도 제어하게 됐고요. 악귀를 이용할 줄 알게 됐어요. 세계관이 확장되면서 개인적으로도 기대감이 있어요”
“스케이팅 선수 시절부터
꾸준히 배우의 꿈 키웠죠”
피겨스케이팅 선수 시절부터 꾸준히 배우에 대한 꿈이 있었다. 선수 생활 중에 부친에게 연기자의 꿈을 말했고, 그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우연히 MBC 드라마 <메이퀸>에 합격해 배우 손은서 아역으로 시작했다. 꾸준히 작품과 배역을 가리지 않고 활동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활동이 뜸해졌다. 오디션에도 실패하고, 그를 찾는 제작진이 없었다. “이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 <기생충>에 출연하게 됐다.
“고1까지는 쉬지 않고 작품을 했는데, 갑자기 작품이 없어졌어요. 고민이 많았어요. 대학에 가면서는 아르바이트를 했었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애매한 나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고민이 컸죠.”
<기생충>을 발판 삼아 <방법>을 히트시켰고, 최근 방영한 드라마 <이미테이션>에서는 귀여운 여학생으로 분하는 등 꾸준히 활약 중이다. 자신의 이름보다는 캐릭터로 더 기억되길 바라고, 이전 작품의 이미지를 걷고 새로운 인물로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배우가 갖춰야 할 올바른 덕목이겠다.
배움과 욕구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서 저는 정말 값비싼 경험과 배움을 얻었어요. 소중한 직업이에요. 무언가 공부를 하고 관찰하고 배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제가, 연기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해줬어요. 인간 정지소로서도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직업이에요. 앞으로도 더 열심히 연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