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갑론을박 '말 많은' 장애인이동센터 무슨 일이…

“어두운 괴물 뱃속에 갇혀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주변이 너무 어두워 불을 켰다. 조금 밝아지나 싶더니 이내 꺼졌다.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과 같이 불을 밝혔다. 하지만 또 꺼졌다. 거듭된 시도에도 어둠은 가시질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괴물의 뱃속에 있다는 것을….

“내가 군청 앞에서 분신자살이라도 해야 내 말을 믿어줄까요?” 모든 직장인이 ‘전태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전태일’은 직장에서 태어난다. 평범했던 월급쟁이 직장인이 노동법을 줄줄 읊는 투사가 되는 데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범했는데
노동투사로

박주연씨는 대학에서 보건복지학을 전공했다. 2015년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이하 장애인이동센터)에 지원할 때도 사무원을 희망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는 장애인이동센터는 센터 업무를 총괄하는 센터장, 상담업무와 차량예약, 회계 등을 담당하는 사무원, 운전을 맡는 운전원 등으로 구성된다.  

당시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직원은 총 4명. 박씨는 사무원 대신 운전원으로 일했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2호차’를 맡은 박씨에게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거의 모든 배차가 몰렸다. 차에서 내릴 시간도 없이 종일 운전을 했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리가 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직원이 4명뿐인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서 박씨는 말 그대로 왕따였다. 8세 어린 동료 사무원은 박씨에게 ‘너’ ‘2호차’ ‘사형감이다’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당시 진도군 지회장을 겸하고 있던 센터장은 직원 회의에서 ‘개 같은 ○’ ‘멍청한 ○’ 이라고 욕했다. ‘스스로 못 견뎌서 사표 쓰게 만든다’ ‘모가지를 딴다’ 등 지속적인 모욕과 욕설, 고성이 박씨를 향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서 박씨는 투명인간이었다. 법정의무교육이나 행정사무 감사자료,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등 모든 구성원이 받아야 할 교육이 박씨의 유급휴가 기간에 이뤄졌다. 박씨를 징계하기 위한 징계위원회도 수시로 열렸다.

징계위원조차 반복적인 징계위원회 소집에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박씨는 2019년 전라남도 인권센터를 찾았다. 그는 동료 사무원과 지회장 겸 센터장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인권침해 관련 진정을 제기했다. 녹음 파일, 문서 등 그동안 모은 자료를 도민 인권보호관에게 건넸다. 도 인권센터는 지난해 5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박씨의 진정 내용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5월27일 도 인권센터는 지회장 겸 센터장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내리고, 신청인(박씨) 구제를 위해 유급휴가와 심리치료 제공 등 필요한 조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도 인권센터의 이 같은 시정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터져
센터장 채용·보조금 논란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지난해 12월 2차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면서 도 인권센터를 다시 찾기에 이른다. 도 인권센터는 조사 결과 박씨가 ▲지속적인 폭언과 욕설, 험담 ▲업무 배제 등을 당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전보다 근무환경이 매우 악화됐다고 봤다. 그러면서 지난 3월31일 박씨의 2차 진정 내용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두 번에 걸친 도 인권센터의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시정권고 등에도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박씨가 신청한 유급휴가를 허가하지 않고, 징계위원회 소집을 진행하는 등 괴롭힘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도 인권센터의 결정에도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8건이나 제기하는 등 반발했다.

도 인권센터 관계자는 “피신청인들은 공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제공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 직접 찾아가 소명을 받는 과정에서 피신청인이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기다림 끝에 답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무용지물이다. 일종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실제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도 인권센터, 언론, 시민단체 등이 비판과 지적의 창끝을 들이 밀어도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방패로 방어하고 있다.

도 인권센터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진정 사건을 여러 건 담당하고 있는데, 시정권고를 이렇게까지 이행하지 않는 곳은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노무사, 시민단체 관계자들 역시 “한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라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지난 3월 도 인권센터의 결정이 나온 이후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통해 자신의 사정을 알리려 노력했다. 많은 언론에서 박씨의 이야기를 보도했고, 시민단체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그를 지원했다. 박씨는 보건복지부, 진도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진도군 지회 등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두 번이나
괴롭힘 인정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박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여러 기관들의 외면은 박씨의 고립으로 이어졌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지난달 18일 “근무태도가 불성실하고 직무명령에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했다”며 박씨에 대해 정직 3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기존의 인사위원들을 교체하면서까지 강행한 징계위원회 결과였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운영위원은 인사위원을 겸직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인사위원들이 갑자기 해촉됐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이의신청을 하려다가 안 했다. 어차피 해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더라. 나만 바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 대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직 3개월 기간 동안 월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박씨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유일하게 남은 희망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과다. 

박씨는 징계 의결 전날인 지난달 17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고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에게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문제는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서 일어난 사건이 단순히 한 지회만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박씨 사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관계자들은 장애인이동센터의 구조적인 문제를 뜯어 고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문제가 빙산의 일각이고, 어딘가에 또 다른 ‘박씨’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이동센터는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도에 지부를 두고, 다시 지부가 시·군에 둔 지회에서 운영된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경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의 진도군 지회에서 운영하는 식이다. 각 지회의 지회장이 장애인이동센터 센터장을 겸임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시·군 지회장은 전맹(시력이 0으로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시각장애인이 맡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이동센터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센터장이 눈이 보이지 않아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봤다. 그러다보니 주변 관계자들에게 많이 휘둘리는 경향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적에도
요지부동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경우도 진도군 지회장이 센터장을 겸임했는데, 당시 지회장이 전맹 상태의 시각장애인이었다고 한다. 도 인권센터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의 입김에 휘둘릴 수 있는 시각장애인보다 상황 파악에 용이한 사람을 센터장에 채용하는 방식을 권고했다.

기존에 무급 명예직이었던 센터장 직급을 유급으로 바꿔 월급을 지급, 장애인이동센터 운영에 좀 더 적합한 인재를 뽑자는 취지다.

진도군에서 이를 받아들여 지난 3월 장애인이동센터는 센터장 공모 절차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도 잡음이 발생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직원 김모씨가 센터장 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자신이 입후보하는 일이 일어난 것.


이른바 ‘셀프채용’ 논란이 불거졌다. 총 3명이 센터장에 지원했지만 관계자 사이에서 2명은 들러리라는 말이 심심찮게 새 나왔다.

김씨가 박씨의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가운데 1명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박씨는 “센터장에 지원한 김씨도 나를 괴롭힌 게 맞다. 전임 센터장, 직원 2명 등 총 3명이 나를 괴롭혔다”며 “채용 과정에서 김씨가 센터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항변했는데 결국 (김씨가)뽑혔다”고 주장했다. 

실제 김씨는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센터장으로 취임했다. 박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3명 가운데 2명이 지회장과 센터장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센터장을 겸임했던 진도군 지회장이 김씨를 센터장으로 만들었다는 말까지 돌았다.

센터장의 권한이 막강한 만큼 가까운 사람을 센터장에 앉혀 영향력을 발휘하려 했다는 소문이다. 

진도군과 도 인권센터에 센터장 채용 문제로 민원이 제기됐다. 민원인은 ▲전임 센터장이 면접관으로 면접을 본 점 ▲김씨가 사표를 내지 않고 센터장 후보에 지원한 점 ▲면접 과정이 공정했는지 여부 등을 진도군에 질의했지만 ‘문제없이 진행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진도군은 김씨의 센터장 취임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지회장 센터장 겸임
소극적 태도 사실관계 부정

진도군이 장애인이동센터에 지원한 보조금을 두고도 여러 지적사항들이 나왔다. 진도군은 장애인이동센터에 연 1억4000만원가량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이 돈을 인건비, 차량 수리비, 유류비 등으로 사용한다.

진도군의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관련 운영 및 보조금 조사결과 보고’에서 장애인이동센터는 여러 가지 운영상 문제점을 드러냈다.

2018년과 2019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규칙’에서 규정한 서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또 편성 예산에 대한 공고 의무도 어겼다. 분기별 1회 이상 개최해야 할 운영위원회 정기회의도 개최하지 않았다. 

‘전라남도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운영규정에 따르면 운영위원회는 분기별로 정기회의를 개최하도록 돼있다. 운영위원들은 운영위원회를 통해 ▲운영 계획의 수립·평가 ▲종사자의 근무환경 개선 ▲종사자와 이용자의 인권보호 및 권익 증진 등을 논의한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올해도 운영위원회를 전혀 개최하지 않았다.

직원이 4명에 불과한 작은 단체에서 ▲직장 내 괴롭힘 ▲센터장 채용 논란 ▲보조금 문제 등 총체적인 문제가 발생했지만 진도군은 물론 상위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 진도군 지회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사실관계를 부정하는 등 박씨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진도군의 소극적인 행정이 일을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관계자들은 진도군이 매년 장애인이동센터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만큼 회계뿐만 아니라 인사, 직원 채용 등에 있어 확실한 관리·감독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이동센터가 진도군의 시정 조치를 따르지 않을 경우 ‘시설 폐쇄’ 등 강경한 대응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진도군청 주민복지과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박씨에 대한)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센터장 채용 건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보조금 문제도 최근 진행한 회계감사 결과를 장애인이동센터에 통보했고, 시정 조치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 등은 진도군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각각 “잘 모른다”거나 “규정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인사권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 전남지부에 문의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남지부는 “사건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지만, 운영규정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진도군 지회에 물어보라”고 전했다. 

진도군 지회 관계자는 “박씨의 주장은 전부 허위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박씨를 포함한 직원 2명이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피신청인이)박씨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발했다는 점만 말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 인권센터 결정에 대해서는 “(도 인권센터에서)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상위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광주사무소 홍관희 노무사는 “이 사건이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인사업주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대한 근로감독을 청원한 상태”라고 말했다.

미루고
또 미루고

이제 박씨에게 이 사건은 더 이상 개인만의 일이 아니다. 박씨는 자신 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사명감으로 힘겨운 사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차라리 센터를 그만두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내가 지금 그만두면 모든 것을 잘못한 사람이 된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가보겠다”며 “내가 선례를 만들면 어딘가에 있을 나 같은 사람이 언젠가는 도움을 받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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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