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놀이' 범죄자들의 잇단 자서전 논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7.19 14:16:39
  • 호수 1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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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서 평생 썩어도 책으로 이름 남긴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한다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다. 각종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도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과거부터 최근까지 책을 집필했거나 집필하려고 하는 범죄자들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범죄자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대표적인 게 포토라인이다. 포토라인에 서는 범죄자들은 자신이 마치 영웅이라도 된 것 마냥 착각하기도 한다.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범죄를 일으키면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뒤 죄를 뉘우치기보다 자신을 우상화해 자서전을 출간하려는 이들도 있다.

기나긴 수감
독서·글쓰기

일본에서 인육 살인을 저지르고도 무죄로 풀려나 자신의 범행 일체를 <악의 고백>이란 책으로 펴낸 살인마 사가와 잇세이의 자서전이 화제가 됐다. 또 1997년 고베 아동 연쇄살인 사건의 가해자인 당시 14세 소년 살인범은 32세가 된 해에 자신의 범행 경위와 심경을 담은 수기 <절가>를 펴내며 피해 유가족의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살인 경험을 쓴 해당 자서전은 20만부가 넘게 팔렸으며 희대의 살인마는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유명세를 탄 사가와는 <신센죠노 아리아>라는 성인 드라마에 출연하고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인기를 누렸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영웅담 만들기’를 좋아하는 일본문화일 뿐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사가와 잇세이 이전부터 국내의 범죄자들도 자서전을 출간한 적이 있다. 


지난 1991년, 국내 여객기 한 대가 인도양 상공서 실종된 적이 있다. 115명이 희생된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폭파 사건의 전모와 자신의 공작원 선발과 훈련 과정, 유년기에 대한 추억을 담은 수기 <이젠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펴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국민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당시 김씨는 책으로 벌어들인 인세 8억5000만원을 KAL기 유가족 대표단에 전달하며 사죄와 반성의 뜻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에도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문을 흘립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소설가 노수민씨가 김씨 자서전의 대필 사실을 폭로했다. 노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서전 집필을 의뢰받을 당시 대필 사실을 밝히지 않기로 각서를 쓰기도 했고 소설가로서 남의 글을 대필한 것이 자랑도 아니라서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최근 공개된 김씨 편지에 그가 겪은 고통을 들은 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김씨를 위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자서전이 인기를 끌자 조폭들도 앞다퉈 자서전 출간을 계획했다. 1995년 만기 출소한 조양은씨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변신하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듬해 <어둠속에 솟구치는 불빛>을 출간했다. 조씨는 자서전에서 순천교도소 난동을 자신이 배후 조종했다고 서술했다.

조폭이 전하는 싸움의 기술
살인마가 밝힌 살인의 이유

이후 영화 출연, TV 토크쇼 출연 등 갖가지 화제를 뿌리다 이듬해 사기, 폭행 등의 혐의로 재구속돼 2년 실형을 살았다. 2001년에는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다시 구속, 10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3년간 도망다니면서 보디가드를 50명씩 데리고 다녔다. 김태촌과 조양은 측은 서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1978년 화해하고 조창조씨가 신상사에게 사과하면서 함께 데려가서 사과를 시켰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 주먹으로 전국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신상사파 신상형씨도 저서를 냈다. 1932년생인 신씨는 1950년대 명동에서 가장 강한 조직을 이끌었고,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전국구 보스 ‘신상사’로 군림했다.

그 역시 2013년 발간한 저서 <주먹으로 꽃을 꺾으랴>에서 1대 1 싸움 철학을 기술했다. 

책 내용에는 싸움의 기술 중 먼저 공격을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주먹으로 턱을 가격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비슷한 싸움 실력에서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이 승패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조폭 전성시대일 때 조폭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 위용을 드러냈다. 주먹 세계에 일어나는 일과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책에 담아 출간한 것이다. 

희대의 탈옥범 신창원씨도 책을 쓴 적이 있다. 직접 신씨가 쓴 것을 아니지만 <신창원 907일간의 고백>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 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넌 착한놈이다’하고 머리를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쌍놈의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는 내용이 기재돼있다. 

출소 전후
줄줄이 출간

신씨 배경을 알게 된 독자들은 이해가 간다는 반응이었다. 네티즌 리뷰에 ‘신창원도 불쌍하다. 가난하고 돈 없어서…’ ‘신창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등 신창원의 가난하고 열악한 상황을 이해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간암으로 투병하던 어머니를 잃은 신씨는 6년 뒤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신씨에게는 가난보다, 어머니가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슬픔이 컸다. 만약 아버지가 사랑을 줬다면 신씨가 이리 엇나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신씨를 폭행했고 나중에는 계모까지 가세했다. 신씨 계모는 신씨 동생이 아픈데 관심도 없었다.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로부터 잦은 따돌림을 받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해 중학교 입학 세 달  만에 퇴학당했다.

신씨는 중학교 학생들로부터 잦은 따돌림에 석 달 만에 중퇴하고 1982년에 절도죄로 소년원에 수감됐다. 신씨 아버지 신흥선씨는 아들이 소년원에 들어가서 새 사람이 되길 갈망했지만 신씨 사건으로 인해 본격 반항적인 인생을 살게됐다.


어금니 아빠로 알려진 이영학씨도 최근 구치소에서 자서전 집필에 매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나는 살인범이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집필하고 있다는 것.

이씨가 구치소에서 쓴 편지와 탄원서, 그리고 법원에 매일 작성해 제출하고 있는 반성문을 입수해 해당 내용을 공개했다.

한 매체에 따르면, 이씨는 법조인에게 쓴 편지에서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뒤 2심에서 싸우겠다며 항소 준비를 부탁하는가 하면,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주현 서울경찰청 경사는 “이영학이 사이코패스 평가에서 40점 중 25점을 받았다”고 말했다. 25점은 사이코패스 판정 최저선이다. 이 경사는 “어릴 때 장애로 놀림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면 친구를 때리는 등 보복적 행동을 했고, 대응 방식이 폭력적이었다”고도 했다.

주먹 세계 
뒷이야기

이어 “성(性) 각성 수준이 높다”며 “아내와 17년을 살면서 수준이 조금씩 강해져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아성애자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성인 여성을 성범죄 대상으로 계획했다가 여의치 않자 통제가 쉬운 여성 청소년으로 바꿨다는 게 근거다.


어릴 적 트라우마가 관리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자기를 피해자로만 여기다 보니 타인에 대한 보복심으로 이어졌다”며 “아내를 매춘부 취급했던 일에 비춰봤을 때 이영학은 매우 지배적인 성적 경향을 가지고 여성을 성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정식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범행 동기 중 핵심적인 부분이 성적 쾌락”이라며 사이코패스 성향과 성 도착증적 행동에 연관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씨 자서전에는 “여자애들 앞에서 무안을 당한 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며 “나도 모르게 눈물까지 주룩 흘렀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큰 바위 얼굴’이라고 놀림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이씨는 한차례 자서전을 출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작가 정성환의 글에 따르면 이씨 자서전은 실제로는 자신이 쓴 소설이며 출판사에 의해 에세이로 둔갑했으며 정 작가의 이름도 배제됐다. 

38세 나이로 6000억원대 어음사기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큰 손’ 장영자씨도 자서전 출간 계획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씨는 이순자씨를 상대로 낸 소송이 무위(無爲)로 끝나자 이를 설욕하기 위해 <월간조선>에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이순자씨 관련 자료 등을 수집해 자서전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죄 뉘우치긴커녕 스스로 우상화
간증·강연 등 굴곡진 삶 전해

장씨가 작성한 서한 대부분에는 이순자씨에 대한 원한이 묻어 있는데 그는 시종일관 이순자씨를 ‘이 부인’이라고 호칭했다. 장씨는 이씨가 2017년 출판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 중 ‘작은아버지 처제 장씨가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남편 이철희씨와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을 문제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도’ 조세형씨도 자서전을 준비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당초 조씨의 자서전은 ‘대도’라는 이름에 가려진 진짜 조씨에 대해 진솔하게 풀어내는 내용으로 채워질 예정이었다.

조씨가 직접 쓴 이 책은 고아로 자라 거리에서 보낸 유년기, 소년 시절 장난으로 시작된 물건 훔치기, 자주 드나들었던 소년원과 당시 사회의 모습, 도둑이 돼 물건을 훔치는 생활을 담을 계획이었다. 

또 ‘대도’라는 이름을 얻게 된 사건, 거듭된 탈주, 절도죄로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은 사연, 누구도 견디지 못할 엄정 독거방의 고통, 교도소에서 겪은 이야기, 출소 후 만난 인연들, 행운으로 빚어진 가정, 재활을 위한 노력 등이 담겼다.

또 종교를 만나고 시작한 간증 생활, 보안업체에서 일하며 겪은 이야기, 말년에 일본에서 겪은 수난,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대도’라는 허명, ‘대도’라는 이름을 버리고 싶었던 마음도 담았다.

조씨는 기나긴 수감생활 중에 독서와 글쓰기를 계속해왔다. 조씨 필력은 이미 판검사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있는 수준이다. 또 간증 활동 및 강연을 통해 다져진 경험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할 예정이었다. 그는 2012년 도서출판 행복에너지와 계약을 맺고 자서전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3일 강남 소재의 한 고급빌라를 털다가 출동한 경찰에게 잡히면서 출간은 무산됐다. 

항변하는 
싸이코패스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과거 범죄자들은 책을 내고 싶어하거나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강호순도 자신의 범죄를 책으로 써서 인세를 아들들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기와 더불어’ VS ‘전두환 회고록’
김일성은 되고 전두환은 안 된다?

법원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대한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자 4년 전 전두환씨 회고록이 출판·배포 금지 결정을 받았던 것과 비교되고 있다.

지방법원 재판부가 독립적으로 결론내렸지만 법원의 결정에 대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전씨 회고록은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출판과 배포가 금지된 반면,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이 별다른 문제없이 출판돼 팔리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률전문가들은 법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책의 내용을 문제삼은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보호이익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인격권 침해나 명예훼손 여부에 있어서도 두 책이 법원에 의해 다른 판단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한 내용 등이 문제된 전씨 회고록은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던 5·18 단체들의 주장을 광주지법이 받아들였다.

회고록 내용이 조비오 신부를 비롯한 당사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법원이 인정했다.

반면 김일성 회고록에 대해선 서울서부지법은 책 내용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판매·배포 행위가 가처분을 신청한 시민단체 구성원들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부지법은 “신청인인 시민단체는 김일성 회고록의 내용이 대한민국 국민 일반의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음을 이유로 판매·배포 금지를 요청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인격권은 전속적 권리로서 채권자들이 임의로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이 같은 신청을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국민 일반을 대신해 시민단체가 김일성 회고록이 국민들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 셈이다.

김일성 회고록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진행했던 소송대리인 측은 “신청인 중 한 사람은 납북된 인사의 직계후손이고 이 책은 납치범죄 전쟁범죄자를 거짓 미화하는 책인데, 그런 거짓된 책이 합법의 가장을 띄고 돌아다니는 것은 납북자 직계 후손의 인격적인 명예나 정신적인 온전성을 침해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씨 회고록은 2017년 8월 광주지법이 5·18의 진실을 왜곡하고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출판·배포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법원이 문제삼은 부분을 삭제한 ‘삭제판’이 재출간됐으나 5·18 단체는 2017년 12월 다시 삭제판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삭제판 출판·배포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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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