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놀이' 범죄자들의 잇단 자서전 논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7.19 14:16:39
  • 호수 1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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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서 평생 썩어도 책으로 이름 남긴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한다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다. 각종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도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과거부터 최근까지 책을 집필했거나 집필하려고 하는 범죄자들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범죄자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대표적인 게 포토라인이다. 포토라인에 서는 범죄자들은 자신이 마치 영웅이라도 된 것 마냥 착각하기도 한다.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범죄를 일으키면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뒤 죄를 뉘우치기보다 자신을 우상화해 자서전을 출간하려는 이들도 있다.

기나긴 수감
독서·글쓰기

일본에서 인육 살인을 저지르고도 무죄로 풀려나 자신의 범행 일체를 <악의 고백>이란 책으로 펴낸 살인마 사가와 잇세이의 자서전이 화제가 됐다. 또 1997년 고베 아동 연쇄살인 사건의 가해자인 당시 14세 소년 살인범은 32세가 된 해에 자신의 범행 경위와 심경을 담은 수기 <절가>를 펴내며 피해 유가족의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살인 경험을 쓴 해당 자서전은 20만부가 넘게 팔렸으며 희대의 살인마는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유명세를 탄 사가와는 <신센죠노 아리아>라는 성인 드라마에 출연하고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인기를 누렸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영웅담 만들기’를 좋아하는 일본문화일 뿐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사가와 잇세이 이전부터 국내의 범죄자들도 자서전을 출간한 적이 있다. 

지난 1991년, 국내 여객기 한 대가 인도양 상공서 실종된 적이 있다. 115명이 희생된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폭파 사건의 전모와 자신의 공작원 선발과 훈련 과정, 유년기에 대한 추억을 담은 수기 <이젠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펴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국민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당시 김씨는 책으로 벌어들인 인세 8억5000만원을 KAL기 유가족 대표단에 전달하며 사죄와 반성의 뜻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에도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문을 흘립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소설가 노수민씨가 김씨 자서전의 대필 사실을 폭로했다. 노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서전 집필을 의뢰받을 당시 대필 사실을 밝히지 않기로 각서를 쓰기도 했고 소설가로서 남의 글을 대필한 것이 자랑도 아니라서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최근 공개된 김씨 편지에 그가 겪은 고통을 들은 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김씨를 위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자서전이 인기를 끌자 조폭들도 앞다퉈 자서전 출간을 계획했다. 1995년 만기 출소한 조양은씨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변신하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듬해 <어둠속에 솟구치는 불빛>을 출간했다. 조씨는 자서전에서 순천교도소 난동을 자신이 배후 조종했다고 서술했다.

조폭이 전하는 싸움의 기술
살인마가 밝힌 살인의 이유

이후 영화 출연, TV 토크쇼 출연 등 갖가지 화제를 뿌리다 이듬해 사기, 폭행 등의 혐의로 재구속돼 2년 실형을 살았다. 2001년에는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다시 구속, 10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3년간 도망다니면서 보디가드를 50명씩 데리고 다녔다. 김태촌과 조양은 측은 서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1978년 화해하고 조창조씨가 신상사에게 사과하면서 함께 데려가서 사과를 시켰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 주먹으로 전국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신상사파 신상형씨도 저서를 냈다. 1932년생인 신씨는 1950년대 명동에서 가장 강한 조직을 이끌었고,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전국구 보스 ‘신상사’로 군림했다.

그 역시 2013년 발간한 저서 <주먹으로 꽃을 꺾으랴>에서 1대 1 싸움 철학을 기술했다. 

책 내용에는 싸움의 기술 중 먼저 공격을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주먹으로 턱을 가격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비슷한 싸움 실력에서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이 승패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조폭 전성시대일 때 조폭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 위용을 드러냈다. 주먹 세계에 일어나는 일과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책에 담아 출간한 것이다. 

희대의 탈옥범 신창원씨도 책을 쓴 적이 있다. 직접 신씨가 쓴 것을 아니지만 <신창원 907일간의 고백>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 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넌 착한놈이다’하고 머리를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쌍놈의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는 내용이 기재돼있다. 

출소 전후
줄줄이 출간

신씨 배경을 알게 된 독자들은 이해가 간다는 반응이었다. 네티즌 리뷰에 ‘신창원도 불쌍하다. 가난하고 돈 없어서…’ ‘신창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등 신창원의 가난하고 열악한 상황을 이해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간암으로 투병하던 어머니를 잃은 신씨는 6년 뒤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신씨에게는 가난보다, 어머니가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슬픔이 컸다. 만약 아버지가 사랑을 줬다면 신씨가 이리 엇나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신씨를 폭행했고 나중에는 계모까지 가세했다. 신씨 계모는 신씨 동생이 아픈데 관심도 없었다.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로부터 잦은 따돌림을 받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해 중학교 입학 세 달  만에 퇴학당했다.

신씨는 중학교 학생들로부터 잦은 따돌림에 석 달 만에 중퇴하고 1982년에 절도죄로 소년원에 수감됐다. 신씨 아버지 신흥선씨는 아들이 소년원에 들어가서 새 사람이 되길 갈망했지만 신씨 사건으로 인해 본격 반항적인 인생을 살게됐다.

어금니 아빠로 알려진 이영학씨도 최근 구치소에서 자서전 집필에 매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나는 살인범이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집필하고 있다는 것.

이씨가 구치소에서 쓴 편지와 탄원서, 그리고 법원에 매일 작성해 제출하고 있는 반성문을 입수해 해당 내용을 공개했다.

한 매체에 따르면, 이씨는 법조인에게 쓴 편지에서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뒤 2심에서 싸우겠다며 항소 준비를 부탁하는가 하면,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주현 서울경찰청 경사는 “이영학이 사이코패스 평가에서 40점 중 25점을 받았다”고 말했다. 25점은 사이코패스 판정 최저선이다. 이 경사는 “어릴 때 장애로 놀림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면 친구를 때리는 등 보복적 행동을 했고, 대응 방식이 폭력적이었다”고도 했다.

주먹 세계 
뒷이야기

이어 “성(性) 각성 수준이 높다”며 “아내와 17년을 살면서 수준이 조금씩 강해져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아성애자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성인 여성을 성범죄 대상으로 계획했다가 여의치 않자 통제가 쉬운 여성 청소년으로 바꿨다는 게 근거다.

어릴 적 트라우마가 관리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자기를 피해자로만 여기다 보니 타인에 대한 보복심으로 이어졌다”며 “아내를 매춘부 취급했던 일에 비춰봤을 때 이영학은 매우 지배적인 성적 경향을 가지고 여성을 성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정식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범행 동기 중 핵심적인 부분이 성적 쾌락”이라며 사이코패스 성향과 성 도착증적 행동에 연관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씨 자서전에는 “여자애들 앞에서 무안을 당한 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며 “나도 모르게 눈물까지 주룩 흘렀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큰 바위 얼굴’이라고 놀림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이씨는 한차례 자서전을 출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작가 정성환의 글에 따르면 이씨 자서전은 실제로는 자신이 쓴 소설이며 출판사에 의해 에세이로 둔갑했으며 정 작가의 이름도 배제됐다. 

38세 나이로 6000억원대 어음사기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큰 손’ 장영자씨도 자서전 출간 계획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씨는 이순자씨를 상대로 낸 소송이 무위(無爲)로 끝나자 이를 설욕하기 위해 <월간조선>에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이순자씨 관련 자료 등을 수집해 자서전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죄 뉘우치긴커녕 스스로 우상화
간증·강연 등 굴곡진 삶 전해

장씨가 작성한 서한 대부분에는 이순자씨에 대한 원한이 묻어 있는데 그는 시종일관 이순자씨를 ‘이 부인’이라고 호칭했다. 장씨는 이씨가 2017년 출판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 중 ‘작은아버지 처제 장씨가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남편 이철희씨와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을 문제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도’ 조세형씨도 자서전을 준비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당초 조씨의 자서전은 ‘대도’라는 이름에 가려진 진짜 조씨에 대해 진솔하게 풀어내는 내용으로 채워질 예정이었다.

조씨가 직접 쓴 이 책은 고아로 자라 거리에서 보낸 유년기, 소년 시절 장난으로 시작된 물건 훔치기, 자주 드나들었던 소년원과 당시 사회의 모습, 도둑이 돼 물건을 훔치는 생활을 담을 계획이었다. 

또 ‘대도’라는 이름을 얻게 된 사건, 거듭된 탈주, 절도죄로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은 사연, 누구도 견디지 못할 엄정 독거방의 고통, 교도소에서 겪은 이야기, 출소 후 만난 인연들, 행운으로 빚어진 가정, 재활을 위한 노력 등이 담겼다.

또 종교를 만나고 시작한 간증 생활, 보안업체에서 일하며 겪은 이야기, 말년에 일본에서 겪은 수난,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대도’라는 허명, ‘대도’라는 이름을 버리고 싶었던 마음도 담았다.

조씨는 기나긴 수감생활 중에 독서와 글쓰기를 계속해왔다. 조씨 필력은 이미 판검사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있는 수준이다. 또 간증 활동 및 강연을 통해 다져진 경험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할 예정이었다. 그는 2012년 도서출판 행복에너지와 계약을 맺고 자서전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3일 강남 소재의 한 고급빌라를 털다가 출동한 경찰에게 잡히면서 출간은 무산됐다. 

항변하는 
싸이코패스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과거 범죄자들은 책을 내고 싶어하거나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강호순도 자신의 범죄를 책으로 써서 인세를 아들들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기와 더불어’ VS ‘전두환 회고록’
김일성은 되고 전두환은 안 된다?

법원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대한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자 4년 전 전두환씨 회고록이 출판·배포 금지 결정을 받았던 것과 비교되고 있다.

지방법원 재판부가 독립적으로 결론내렸지만 법원의 결정에 대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전씨 회고록은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출판과 배포가 금지된 반면,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이 별다른 문제없이 출판돼 팔리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률전문가들은 법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책의 내용을 문제삼은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보호이익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인격권 침해나 명예훼손 여부에 있어서도 두 책이 법원에 의해 다른 판단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한 내용 등이 문제된 전씨 회고록은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던 5·18 단체들의 주장을 광주지법이 받아들였다.

회고록 내용이 조비오 신부를 비롯한 당사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법원이 인정했다.

반면 김일성 회고록에 대해선 서울서부지법은 책 내용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판매·배포 행위가 가처분을 신청한 시민단체 구성원들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부지법은 “신청인인 시민단체는 김일성 회고록의 내용이 대한민국 국민 일반의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음을 이유로 판매·배포 금지를 요청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인격권은 전속적 권리로서 채권자들이 임의로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이 같은 신청을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국민 일반을 대신해 시민단체가 김일성 회고록이 국민들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 셈이다.

김일성 회고록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진행했던 소송대리인 측은 “신청인 중 한 사람은 납북된 인사의 직계후손이고 이 책은 납치범죄 전쟁범죄자를 거짓 미화하는 책인데, 그런 거짓된 책이 합법의 가장을 띄고 돌아다니는 것은 납북자 직계 후손의 인격적인 명예나 정신적인 온전성을 침해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씨 회고록은 2017년 8월 광주지법이 5·18의 진실을 왜곡하고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출판·배포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법원이 문제삼은 부분을 삭제한 ‘삭제판’이 재출간됐으나 5·18 단체는 2017년 12월 다시 삭제판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삭제판 출판·배포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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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