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산책 ④고성 화진포와 송지호

짙푸른 동해와 맞닿은 아름다운 석호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고성은 가슴 아픈 분단의 현실이 실감 나는 곳이다. 도로에 수시로 보이는 군용 지프와 트럭, 검문소가 북녘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고성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여행자를 맞아주는 곳이기도 하다. 고요한 호수와 운치 있는 바다가 낭만적인 여행을 보장한다.

고성에서 첫손으로 꼽히는 여행지가 화진포(강원기념물 10호)다. 강 하구와 바다가 맞닿은 곳에 생긴 석호로, 물은 담수와 해수의 중간 성격을 띤다. 강릉 경포호와 속초 영랑호도 석호다. 

10km 산책로

화진포는 거대한 ‘8자 형’이다. 둘레 16km, 넓이 2.3㎢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석호다. 호수는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며 남호 주변으로 갈대밭, 조류관찰대 등 자연 탐방 지대가 자리한다. 길이 10km에 이르는 산책로도 잘 정비됐다. 화진포는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겨울이면 고니(천연기념물 201-1호) 수천 마리가 날아들어 말 그대로 ‘백조의 호수’가 된다.

호숫가에는 갈대가 우거지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진다. 화진포(花津浦)는 여름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서 붙은 이름이다. 재미난 전설도 있다. 먼 옛날 고성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았다. 어느 날 건봉사에서 내려온 승려가 시주를 청했는데, 이화진은 승려에게 오물을 부었다. 화가 난 승려는 “복 많이 받으라”며 돌아갔다. 그때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졌고, 이화진의 집과 논밭은 물에 잠기고 말았다. 이 물난리로 화진포가 생겼다고 한다.

호수를 거닐다 보면 화진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단층 슬래브 건물이 있다. 1954~1960년 고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한 별장으로, 지금은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으로 활용된다. 침실과 집무실, 거실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으며, 유품을 전시한다.

호수에서 길목 하나 넘어서면 화진포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은 길이 1.7km로,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해변 뒤에 울창한 솔숲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연인들은 어깨를 꼭 안은 채 모래밭을 거닐고, 아이들은 밀려드는 파도에 쫓기면서도 마냥 즐거워 깔깔댄다. 강릉이나 양양, 속초 해변보다 한적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화진포해수욕장에서 먼저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백사장이다. 조개껍데기와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모래는 파도가 지날 때마다 차르륵차르륵 소리가 난다. 조선 시대 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화진포해변을 울 명(鳴), 모래 사(沙)를 써 ‘명사’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진포해수욕장은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준서(송승헌)가 죽음을 앞둔 은서(송혜교)를 업고 걸은 장면으로 유명해졌다. 해수욕장 끝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금구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화진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화진포의성이다.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가 의뢰한 예배당으로, 1938년 독일 건축가 베버가 지었다. 1948년 이후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했는데, 김일성 가족이 묵은 적이 있어 김일성별장으로 알려졌다. 3층 석조 건물 앞쪽을 중세 유럽의 성처럼 둥글게 만들어 화진포의성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지금은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으로 쓰인다. 앞으로 드넓은 호수가 펼쳐지고, 오른쪽에 푸른 동해가 일렁인다. 멀리 보이는 산줄기는 채하봉, 집선봉, 옥녀봉 등 외금강 봉우리다. 바다 쪽으로 해금강이 아스라하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고성
천혜의 자연환경 느끼며 여행

화진포 남쪽에 자리한 송지호는 또 다른 풍경이 돋보인다. 둘레 6km로 큰 편은 아니지만, 어느 석호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송지호에 첫발을 디딘 사람은 울창한 소나무와 갈대숲이 어우러진 고혹적인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는다. 호수는 거울처럼 잔잔하고, 자작나무 숲에서 날아온 새 소리가 발치에 내려앉는다.

송지호관망타워에도 가보자. 5층 전망대에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데, 멀리 설악산 울산바위가 병풍 같고, 정면에는 아담한 정자가 자리 잡은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호수를 따라 송지호산소길도 있다. 약 5.2km, 2시간쯤 걸린다. 호수 주변 황톳길을 따라 왕곡마을을 거쳐 송지호관망타워로 돌아온다.

호수 건너편 송지호해수욕장은 여름이면 물놀이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모래밭을 배경으로 솔숲이 우거지고, 뒤에 설악산이 버티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최근에는 서핑 명소로 떠오르는 곳이다. 송지호해수욕장의 또 다른 매력은 오토캠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바다 앞에 있어 시원한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캠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송지호에서 내려오면 화진포, 송지호와 함께 고성8경에 드는 천학정과 청간정을 차례로 만난다. 천학정은 기암괴석과 해안 절벽 위에 있다.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청간정(강원유형문화재 32호)이다.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송강 정철은 동해안을 둘러보고 ‘관동별곡’을 지었다. 관동팔경을 유람하고 쓴 기행가사다. 정철은 관동에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청간정을 꼽았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면 팔작지붕 중층 누각이 나오는데, 누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인 동해가 눈앞에 가득하다.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기분 좋은 솔 향이 실려 온다. 내부에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현판이 있다.

건봉사

아이들과 물놀이하기 좋은 해변은 아야진해수욕장이다. 활처럼 부드럽게 휜 백사장 북쪽에 갯바위 지대가 펼쳐지고, 속이 훤히 보이는 물빛이 환상적이다. 스노클링 명소로 꼽힌다.

고성에는 천년 고찰도 있다. 520년(신라 법흥왕 7) 창건한 건봉사는 전국 4대 사찰이자,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곳이다. 융성한 때 가람이 무려 3183칸이었다고 전해지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며 거의 소실됐다. 신라 자장율사가 당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 치아 사리가 봉안됐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송지호→화진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건봉사→화진포→송지호 
둘째 날: 천학정→아야진해수욕장→청간정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고성군 문화관광 www.gwgs.go.kr/tour/index.do
- 건봉사 www.geonbongsa.org

문의 전화
- 고성군청 관광과 033)680-3362
- 건봉사 033)682-8100 

대중교통
[버스] 서울-간성,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1회(06:49~21:10) 운행, 2시간30분~3시간 소요. 간성터미널 정류장에서 1번 버스 이용, 죽정1리 정류장 하차, 화진포까지 도보 약 1.7km. 간성터미널 정류장에서 1번 버스 이용, 송지호공원 정류장 하차, 송지호까지 도보 약 350m.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txbus.t-money.co.kr 간성터미널 033)681-2233

자가운전
화진포: 서울양양고속도로→양양 JC에서 속초 방면→속초 IC에서 속초 방면 고속도로 출구→교동지하차도사거리에서 간성 방면→화진포교차로에서 화진포 방면→화진포  
송지호: 서울양양고속도로→양양 JC에서 속초 방면→속초 IC에서 속초 방면 고속도로 출구→교동지하차도사거리에서 간성 방면→봉포지하차도 진입→송지호

숙박 정보
- 고성금강산콘도: 현내면 금강산로, 033)680-7800 
- 소노캄델피노: 토성면 미시령옛길, 1588-4888 
-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 토성면 동해대로, 033)631-7601

식당 정보
- 동해반점(중화비빔면): 현내면 한나루로, 033)682-2210 
- 동루골막국수(막국수): 토성면 동루골길, 033)632-4328

주변 볼거리
고성 통일전망타워, 거진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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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