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못 채우는 '낙하산 성지' 코레일 수장 잔혹사

누가 와도 끝은 같다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지난 2일, 손병석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 사장이 사임했다. 임기 3년 중 9개월을 마저 채우지 못한 것이다. 손 사장을 비롯한 역대 코레일 사장들이 공기업 전환 후 단 한 명도 제 임기를 채우지 못하면서 ‘중도 하차’한 사례가 또 추가됐다. 

코레일 사장들은 정치권의 ‘입김’과 사장들이 정권 교체기에 비전문가인 친정부 성향의 낙하산 인사 임명 의혹이 지속돼왔다. 이밖에도 코레일 자체의 사건 사고, 비리 문제로 인해 사장직을 내려놓고 퇴진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끝까지 완주 
사장이 없다

손 사장이 사의를 밝힌 첫 번째 이유는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는 적자 때문이다. 코레일은 손 사장 취임 첫 해인 지난 2019년 109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1조1600억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지하철 이용객 감소가 원인으로 꼽힌다. 적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지난해 12개 지역본부 개선, 조직문화 혁신 등을 통한 비용 절감을 시도했다.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적자폭을 줄이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발표된 ‘2020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도 손 사장의 사임에 주된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코레일은 경영평가에서 보통에 해당하는 C 등급을 획득했으나 경영관리 부문에서 최하 등급인 E 등급을 받았다. 이로 인해 손 사장은 기관장 경고까지 받았다.


코레일은 손 사장이 취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도 D(미흡)를 받기도 했다. 코레일이 고객만족도 조사(PCSI)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직원 208명이 고객으로 위장한 뒤 설문조사에 참여해 결과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조사 결과 코레일 전국 12개 지역본부 가운데 8개 본부 소속 직원들이 경영실적 평가의 점수를 높게 받고, 성과급을 받기 위해 직원 신분으로 직접 설문조사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코레일 직원들이 참여한 설문조사 수는 전체 1400여건 가운데 222건이다.

코레일 서울본부 직원 200여명이 있던 대화방에는 고객만족도 조사원의 동선과 사진을 직원끼리 서로 공유했다. 조사원이 나타나면 주변에 있다가 조사를 받게끔 유도했다. 점수를 줄 때도 10점만 주지 않고 9점 혹은 8점의 점수를 매겼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직원 16명을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다만 코레일 본사에서 실시한 자체조사에서 조작을 지시하거나 개입한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명도 임기 채우지 못하고 하차
사건사고, 비리 문제로 중도 퇴진

해당 고객만족도 조작 사건은 경영평가 결과가 낮게 나오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로 인해 코레일 직원들은 그동안 받아왔던 성과급을 받지 못하게 됐다. 손 사장은 해당 사건의 여파로 기관장 경고를 받았다. 

논란이 일자 코레일은 “고객만족도 조사를 왜곡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동안 코레일은 2013년 실시한 경영평가에서 파업 여파로 ‘E(아주 미흡)’ 등급을 받았던 것을 제외하면 성과급을 받지 못한 사례는 없었다. 파업과 안전사고에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모두 ‘C(보통)’ 등급을 받으며 꾸준히 성과급을 받아오다가 E 등급을 받자 손 사장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게다가 적자 상황임에도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감사 결과 지적도 나왔다. 지난 2019년 공공기관 성과급 지급 기준을 어기고 성과급을 700억원 이상 지급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감사원이 지난달 23일 공개한 코레일 정기검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코레일이 2019년 경영 평가 성과급을 임직원에게 총 3362억원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성과급 지급기준인 월 기본급에는 정기상여금이 포함됐는데, 통상 수당과 정기상여금을 제외하도록 한 공기업, 준정부기관 예산편성 지침을 어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코레일은 근속연수에 따른 직무역할급과 관리보전수당 등의 통상적 수당 급여도 월 기본급에 포함시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감사원은 총 성과급을 2626억원으로 추산했다. 조사 결과 코레일은 기준을 어겨가며 직원들에게 736억원을 더 지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출마 전…
보은 인사

또 코레일의 전신인 철도청으로부터 승계받은 철도회원 예약 보관금 412억원에 대한 반환 과정에서도 채무 소멸로 인한 70억원을 수익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철도청은 위약 수수료 담보로 철도회원 가입 시 2만원의 예약 보관금을 받았다. 

철도청은 2007년 1월 코레일 멤버십 제도를 도입하면서 철도회원에게 회원 탈퇴를 안내하고 예약 보관금 반환 신청을 받기는 했다. 국정감사에서 이를 두고 소극적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반환하지 않은 예약 보관금을 법원에 공탁하겠다고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감사원은 코레일 사장에게 경영평가 성과급 과다 지급에 대한 주의를 주고,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는 경영평가 성과급 과다 지급 사실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 반영하도록 통보했다.

이밖에도 사원복 구매 계약에서 2016년 계약을 체결했던 사원복 견본품에 대한 원단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계약업체로부터 받은 시험성적서만으로 품질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 규격에 미달하는 사원복을 2018년 말까지 납품받았다.

또 계약업체의 대표이사가 2018년 사원복 전문위원에게 1억원을 공여하는 등 청렴계약을 위반한 사실을 인지하고도 계약을 유지한 사실도 이번 감사에서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코레일이 적자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성과급 등을 과다 지급해 경영보다는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코레일의 경영을 두고 철도개혁이 이뤄지지 못하는 원인으로 대표이사를 비롯한 상임·비상임이사 등의 임원진이 전문가가 아닌 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비단 내부 직원뿐 아니라 사장도 낙하산 인사라는 뒷말도 무성하다. 코레일은 2005년 1월 철도청에서 공사로 전환한 뒤 16년 동안 9명의 사장들이 모두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코레일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코레일 사장은 국토부 산하기관으로 국토부 장관이 신임 사장을 제청하면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구조 탓에 사장 임명에 청와대나 국토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누적 적자
책임 느껴

손 사장의 경우 능력보다는 국토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철도업계에선 지난 16년 동안 초대 신광순 사장과 6대 최연혜 사장, 7대 홍순만 사장을 제외하곤 모두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로 평가된다. 코레일 사장 자리가 정치 행보를 위해 거쳐가는 ‘요직’ 중 하나로도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초대 사장인 신광순 전 사장은 철도청장을 맡다가 코레일이 공기업화되면서 사장직을 이어서 수행했다. 신 전 사장은 코레일 내부 출신이고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아왔으나 유전 개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5개월 만에 사임했다.

뒤를 이은 2대 사장 이철 전 사장은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후보 시절 부산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지난 2008년 1월 이명박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자 스스로 물러났다.

3대 사장인 강경호 전 사장도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지난 2009년엔 다스(DAS) 사장직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강 전 사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서울메트로 사장을 지낸 경력이 있지만 철도업계에선 철도 관련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그는 강원랜드의 인사청탁 및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된 이력도 있다. 

뒤이어 취임한 경찰청장 출신 허준영 전 사장은 33개월이라는 역대 최장 기간 동안 사장직을 맡았다. 당시 허 전 사장의 사임을 두고 총선 출마를 위해 코레일 사장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5대 정창영 전 사장은 감사원 사무총장을 출신 사장이다. 이명박정부 말 사장으로 임명된 그는 코레일의 ‘철도 구조 상하통합’을 주장했으나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뒤 임기를 마쳤다. 

6대 최연혜 전 사장은 한국철도대학 교수, 철도청(코레일 전신) 차장을 거쳐 코레일 부사장까지 지냈던 만큼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차 사장 공모 당시 최종 후보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비전문 친정부 성향 수두룩
정치 행보 위해 필수 관문?

최 전 사장 임명 후 코레일 사장직은 결국 정치권의 낙하산이란 평가가 다수 존재했다. 임기 종료를 앞둔 시점에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선 그가 재임 기간 동안 현업에 집중하기보다 정치적 행보가 더 두드러졌다는 말도 나왔다. 

7대 홍순만 전 사장은 건설교통부 소속 고속철도과장과 철도국장 등을 지낸 전문가였다. 그러나 대표적인 친박(친 박근혜)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고 철도 노조에선 ‘철도 적폐’ 12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8대 사장 오영식 전 사장은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직을 맡았고, 3선의 전직 국회의원 출신 인사다. 코레일 국정감사 때 그는 총선 출마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 강릉 KTX 탈선 현장을 찾아 사고의 원인이 추위로 인한 선로 이상이라고 언급해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코레일 사장은 정권 교체 시기에 맞춰 늘 교체돼왔다. 역대 사장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20개월 정도로 임기 3년 중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처럼 평균 재임 기간이 짧고, 정치 행보를 위해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이라 여기면서 일각에선 경영에 몰두하기보다 ‘경력 채우기’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같은 과거 낙하산 인사를 철저히 배제하고 위기 극복을 위해 추후 사장 임명 시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나같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사퇴했다는 점에서 내부 직원들 역시 사장을 ‘금방 떠날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는 모양새다. 

한 코레일 관계자는 “코레일 사장들이 교체되는 시기가 빨라 다른 공기업 기관장들보다 상대적으로 내부에 비판적 여론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유로 각종 의혹이나 내부적인 문제,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사장만 교체되면 그만’이라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16년 동안 사장들에 대한 잡음과 비리, 성과급 등으로 코레일의 이미지는 추락할 대로 추락한 상태다. 이는 심각한 적자 기록은 물론,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여전히 하위권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분석된다.

이미지는 
이미 추락

한 전문가는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 문제는 정권 교체 시기에 항상 발생하는 문제”라며 “코레일 사장으로 임명된 인사들이 보여주기식에만 치중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정치인이 사장으로 오더라도 철도계 전문가와 대외적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면 괜찮다”며 “지금까지는 낙하산 사장이 많았던 만큼 앞으로 사장을 신중하게 선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레일 적자 이유는?

2016년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고속철도가 시작됐다. 코레일이 KTX를 운영하고 있는 도중, SR이라는 새로운 철도회사가 탄생한 것이다. 

정부는 경쟁을 이유로 SR를 만들었다. 현재 SR은 열차 22대를 코레일에서 빌려 쓰고 있는 중이다. 코레일은 이 열차를 새로 사서 SR에 빌려줬다.

열차를 구매한 가격만 7200억원이 투입됐다. 정부에 구입 비용 절반 정도를 지원받았지만, 매년 갚아야 할 채권 이자율은 3.6%다. 손해까지 보면서 SR에 열차를 빌려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마저도 열차를 빌려주는 값을 국토교통부가 정해줬다. 설립 당시 경쟁 체제라더니, 정부가 코레일에는 손해를 떠넘기고, 반대로 SR에는 큰 특혜를 몰아 줬다는 의혹이 있다.

이를 두고 철도노조는 정부가 SR의 민영화를 위한 행위라며 의심하고 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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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