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흔드는 '귀족 스태프' 부작용

"월 1000만원" 부르는 게 몸값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수년 전만 해도 영화 혹은 드라마 스태프들에게는 '열정페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고생스러운 노동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스태프들의 처우는 선진국과 다름없는 수준이 됐다. 스태프의 노동비가 오른 반면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시장의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오히려 업계의 존폐가 걱정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 투자배급사의 한 예산 관련 직원은 예산을 나눠줄 때마다 자괴감에 빠진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사회에서 통용되는 스펙이 낮은 스태프들의 임금이 힘겹게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자신보다 2~3배가량 높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

지난 20일 최근 영화 촬영을 마친 한 감독에 따르면 일반 보조 스태프들의 평균 월급은 800만~900만원에 이른다. 약 3년에서 5년 경력을 가진 스태프들 대부분이 1000만원에 가까운 월급을 가져간다. 경험이 전무한 신입 스태프도 월 27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는다. 

이 같은 현상은 드라마·영화 등의 촬영 관련 스태프들이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시점부터 시작됐다. 주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대다수 스태프들의 임금이 대폭 상승했고,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부터는 업무 질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방영을 앞둔 드라마 스태프라고 밝힌 A씨는 "주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2년 전부터 임금이 대폭 올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현장 업무는 힘들었다. 하지만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부터는 임금이 오르는 폭은 크지 않지만, 업무량이 매우 편해졌다"고 밝혔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열정페이' 논란이 나올 정도로 국내 스태프에 대한 처우는 가혹했다. 임금은 턱없이 적었고, 수많은 갑들로부터 빈번한 횡포를 당했다. 드라마나 영화 등 이야기 산업 영역에서 스태프들의 포지션은 하위권이었다. 

하지만 웹드라마를 비롯해 OTT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국내 콘텐츠 산업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스태프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현장 경험이 있는 스태프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 됐다. 스태프에 대한 가치가 급격히 올라갔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스태프 모시기' 경쟁이 일어났다. 주68시간 근무제로 인해 스태프 평균 임금이 2배 가까이 올랐다.

스태프 한 명당 임금이 대폭 상승하면서 영화계는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불과 5년 사이 스태프 임금은 두 배 이상 오르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4년 전에 순제작비 31억원에 찍은 영화가 있다. 당시 110만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제 그 영화를 찍으려면 최소 55억원 이상이 든다. 제작비가 2배 이상이 올랐다고 보면 된다"며 "그렇다고 영화 시장이 2배 이상 컸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영화 시장의 성장세는 임금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열정페이 옛말 오버페이 논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 발간한 '2020년판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2019년 국내에서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이 투입된 상업영화는 45편이다. 마케팅 비용이 포함된 총제작비의 도합은 약 4550억원이다. 한 영화당 101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이는 70편이 제작된 2015년의 총제작비인 3700억원(평균 총제작비 약 52억원)과 33편이 제작된 2016년의 총제작비 2950억원(평균 총제작비 약 89억원)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2017년에는 평균 제작비는 약 97억원, 2018년의 평균 제작비는 102억원이다.

불과 3년 사이에 제작비가 2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스태프 임금 상승과 함께 제작비가 대폭 상승한만큼, 영화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은 줄어들고 있다.

2019년 제작된 영화 45편의 총매출액은 약 5660억원이다. 한 편당 평균 1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화는 특정 작품만 고수익을 내는 형태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하게 나타난다. 연감에 따르면 2019년 매출 1위를 기록한 <극한직업>을 제외하면 44편의 평균 추정수익률은 -8.1%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동안 국내 상업영화 총 매출액은 4500억원 내외다. <극한직업>과 <기생충>, <어벤져스:엔드게임> 등 1000만 영화가 무려 5편이나 된 2019년 총매출이 약 1000억원 이상 늘어난 것. 그럼에도 <극한직업>을 제외한 수치를 따지면, 영화계는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았다.

영진위가 집계한 2018년 추정수익률은 -4.8%다. 영화산업은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의 수익은 전년 대비 90% 손실에 가깝다. 2021년 관객수 역시 코로나19 이전에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영화산업은 4년 동안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영화계가 존폐의 갈림길에 선 지 오래됐다. 코로나19를 떠나서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쉽게 설명해서 6000억원을 투입하면 5500억원 이하의 수익을 내는 산업"이라고 밝혔다. 

4년 동안
마이너스

영화계의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의 이유로 인건비 상승이 꼽힌다. 갑작스럽게 2배 가까이 오른 제작비로 인해 손익분기점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100만 관객만 동원해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던 영화가 이제는 200만 관객을 동원해야 수익을 남기는 것. 

촬영 회차당 비용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영화 질적인 부분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세트촬영이 주가 아닌 각종 지역을 돌아다니며 찍어야 하는 작품은 실질적인 촬영 시간이 매우 적어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감독은 "로케이션이 많은 작품은 이제 꿈꾸기도 힘들다. 매우 높은 비율의 세트촬영을 해야 겨우 주어진 시간에 모두 찍을 수 있다. 촬영장 이동 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차가 막히면 하루 회차를 이동하는 데 다 쓸 수도 있다"며 "로케이션 이 많은 방식을 택했다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은 감독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계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양산형 영화의 확산이다. 양산형 영화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아닌, 흥행한 작품을 적당히 따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말한다. 


양산영 영화의 특징은 장면마다 기시감이 강한 클리셰가 난무하며, 영화 속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신파가 이어진다. 소재는 대부분 자극적인 사건이며, 캐스팅에서도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미나리>의 윤여정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영화인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에도, 한국 영화의 장래가 밝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가박스는 최근 <자산어보>를 개봉하고 호평을 받았다. 이준익 감독은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정약용과 정약전의 가치를 그린 <자산어보>는 예술성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중적인 요소도 상당하다. 이 감독은 또 하나의 명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자산어보>와 같은 의미 있는 작품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소위 '미친 짓'이라는 말이 나온다. 적은 제작비로 훌륭한 퀄리티의 영화를 만들어온 이 감독이 <자산어보> 제작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신인 감독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작품이라는 것.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당장 투자배급사가 죽게 생겼는데, 작가주의 영화나 다양성 영화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성 영화를 의식해서 투자를 잘못했다가는 투자팀 직원이 잘리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뒤바뀐
갑과 을


스태프들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생겨나는 가운데, 영화관계자들은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부서 이기주의'다. 

영화마다 각 부서가 있는데, 부서만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부족한 예산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협력을 해도 모자를 판에 부서의 이익을 위해 비협조적인 결정을 내리는 행태가 만연해졌다는 것. 

촬영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30분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감독을 비롯한 연출진과 제작자는 '오버페이'를 부담하면서 촬영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하루 더 연장해서 촬영하면 약 2000만~3000만원의 제작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소 대여비와 각종 일정 등을 고려하면, 제작비는 예상치를 크게 웃돌게 된다. 오버페이를 지불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영화 현장에서 이런 협의는 절대 통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영화 촬영을 진행한 감독은 "스태프들과 협의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몇 차례 오버페이를 줄 테니 좀 더 찍자고 협의를 했는데 계속 거부당했다. 나중에는 협의하지도 않고 그냥 회차를 늘렸다. 한국 영화 현장은 할리우드보다 더 빡빡해졌다. 할리우드는 촬영이 좀 오버된 경우 충분히 협의하는 방법이 있는데, 한국은 스태프들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며 "임금이 늘었다고 책임감이 생긴 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협력 포기한 '부서 이기주의'
"위기의 충무로, 존폐 기로까지
"

드라마의 경우는 비교적 낫다. 매주 찍어야하는 분량이 있기 때문에 부서 이기주의가 비교적 덜한 편이라고 한다. 반대로 영화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편이라 각 스태프의 이기주의가 더욱 심화됐다고 한다. 

한 영화 스태프는 "영화는 일절 협의를 하지 않는다. 주어진 촬영 시간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나도 놀랐다. 조금만 더 촬영하면 이 장소에서는 모든 촬영이 끝나는데, 그런 형편을 이해해주지 않는 모습이 무책임해 보였다"며 "좋은 스태프도 있지만, 악질적인 스태프도 많다"고 밝혔다. 

엄청난 흥행을 일으킨 영화 감독은 '현장의 왕'으로 불렸다. 각종 배우 및 스태프의 캐스팅을 손에 쥐고 있으며, 촬영 및 편집 등 모든 부분에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에는 이런 감독을 견제하는 역할을 투자사에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감독은 동정심이 가는 포지션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한 투자 배급사 관계자는 "과거에 투자사에서 영화 현장을 가는 건 두 가지 이유였다. 이전에 찍은 촬영분이 너무 허접해서 혼내러 가거나, 작품이 잘 되고 있어서 놀러 가는 것이었다"며 "요즘에는 위로해주러 간다. '잘 찍는 건 둘째 치고 회차만 맞춰달라'고 말하고 온다. 그러면 감독은 '저런 애들 데리고 어떻게 회차를 맞추냐'며 하소연을 한다.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다들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영화 촬영에 집중하지 않는다. 어차피 촬영이 늦어지면, 이득을 보는 게 그들이다. 회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좋으니까"라고 말했다. 

대부분 스태프는 3~4개월 촬영하면, 1~2개월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작품에 투입된다고 한다. 계약의 연속성 면에서 부담이 있기는 하나, 요즘과 같은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서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게 전언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귀족 스태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금도 많이 받고, 실업급여도 받는다. 어차피 몇 달 하고 안 볼 사람이라는 생각들이 있어서인지 절대 제작진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견제할 방법도 없다. 수틀리면 갑자기 도망치기도 하는데, 처벌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갑자기 도망
책임감 필요

한 영화 감독은 "인건비가 늘어난 만큼 책임감 있는 스태프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일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 건강한 생각의 좋은 인력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갑질하는 스태프는 안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영화 미래는?

영화계 내에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현재 한국 영화계의 미래는 암울한 수준이다. 코로나19를 회복하지 못한 것에 더불어 각종 OTT로 인해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 문화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회복한다면 곧 영화계도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이 있는 반면, OTT로 인해 잠식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선도 많다. 오히려 비관론이 더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산업은 사양산업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과거에는 영화관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일탈이 될 것"이라며 "관람료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감독이나 작가, 배우 등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영화계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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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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