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흔드는 '귀족 스태프' 부작용

"월 1000만원" 부르는 게 몸값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수년 전만 해도 영화 혹은 드라마 스태프들에게는 '열정페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고생스러운 노동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스태프들의 처우는 선진국과 다름없는 수준이 됐다. 스태프의 노동비가 오른 반면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시장의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오히려 업계의 존폐가 걱정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 투자배급사의 한 예산 관련 직원은 예산을 나눠줄 때마다 자괴감에 빠진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사회에서 통용되는 스펙이 낮은 스태프들의 임금이 힘겹게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자신보다 2~3배가량 높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

지난 20일 최근 영화 촬영을 마친 한 감독에 따르면 일반 보조 스태프들의 평균 월급은 800만~900만원에 이른다. 약 3년에서 5년 경력을 가진 스태프들 대부분이 1000만원에 가까운 월급을 가져간다. 경험이 전무한 신입 스태프도 월 27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는다. 

이 같은 현상은 드라마·영화 등의 촬영 관련 스태프들이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시점부터 시작됐다. 주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대다수 스태프들의 임금이 대폭 상승했고,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부터는 업무 질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방영을 앞둔 드라마 스태프라고 밝힌 A씨는 "주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2년 전부터 임금이 대폭 올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현장 업무는 힘들었다. 하지만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부터는 임금이 오르는 폭은 크지 않지만, 업무량이 매우 편해졌다"고 밝혔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열정페이' 논란이 나올 정도로 국내 스태프에 대한 처우는 가혹했다. 임금은 턱없이 적었고, 수많은 갑들로부터 빈번한 횡포를 당했다. 드라마나 영화 등 이야기 산업 영역에서 스태프들의 포지션은 하위권이었다. 

하지만 웹드라마를 비롯해 OTT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국내 콘텐츠 산업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스태프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현장 경험이 있는 스태프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 됐다. 스태프에 대한 가치가 급격히 올라갔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스태프 모시기' 경쟁이 일어났다. 주68시간 근무제로 인해 스태프 평균 임금이 2배 가까이 올랐다.

스태프 한 명당 임금이 대폭 상승하면서 영화계는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불과 5년 사이 스태프 임금은 두 배 이상 오르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4년 전에 순제작비 31억원에 찍은 영화가 있다. 당시 110만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제 그 영화를 찍으려면 최소 55억원 이상이 든다. 제작비가 2배 이상이 올랐다고 보면 된다"며 "그렇다고 영화 시장이 2배 이상 컸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영화 시장의 성장세는 임금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열정페이 옛말 오버페이 논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 발간한 '2020년판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2019년 국내에서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이 투입된 상업영화는 45편이다. 마케팅 비용이 포함된 총제작비의 도합은 약 4550억원이다. 한 영화당 101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이는 70편이 제작된 2015년의 총제작비인 3700억원(평균 총제작비 약 52억원)과 33편이 제작된 2016년의 총제작비 2950억원(평균 총제작비 약 89억원)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2017년에는 평균 제작비는 약 97억원, 2018년의 평균 제작비는 102억원이다.

불과 3년 사이에 제작비가 2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스태프 임금 상승과 함께 제작비가 대폭 상승한만큼, 영화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은 줄어들고 있다.

2019년 제작된 영화 45편의 총매출액은 약 5660억원이다. 한 편당 평균 1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화는 특정 작품만 고수익을 내는 형태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하게 나타난다. 연감에 따르면 2019년 매출 1위를 기록한 <극한직업>을 제외하면 44편의 평균 추정수익률은 -8.1%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동안 국내 상업영화 총 매출액은 4500억원 내외다. <극한직업>과 <기생충>, <어벤져스:엔드게임> 등 1000만 영화가 무려 5편이나 된 2019년 총매출이 약 1000억원 이상 늘어난 것. 그럼에도 <극한직업>을 제외한 수치를 따지면, 영화계는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았다.

영진위가 집계한 2018년 추정수익률은 -4.8%다. 영화산업은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의 수익은 전년 대비 90% 손실에 가깝다. 2021년 관객수 역시 코로나19 이전에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영화산업은 4년 동안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영화계가 존폐의 갈림길에 선 지 오래됐다. 코로나19를 떠나서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쉽게 설명해서 6000억원을 투입하면 5500억원 이하의 수익을 내는 산업"이라고 밝혔다. 

4년 동안
마이너스

영화계의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의 이유로 인건비 상승이 꼽힌다. 갑작스럽게 2배 가까이 오른 제작비로 인해 손익분기점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100만 관객만 동원해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던 영화가 이제는 200만 관객을 동원해야 수익을 남기는 것. 

촬영 회차당 비용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영화 질적인 부분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세트촬영이 주가 아닌 각종 지역을 돌아다니며 찍어야 하는 작품은 실질적인 촬영 시간이 매우 적어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감독은 "로케이션이 많은 작품은 이제 꿈꾸기도 힘들다. 매우 높은 비율의 세트촬영을 해야 겨우 주어진 시간에 모두 찍을 수 있다. 촬영장 이동 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차가 막히면 하루 회차를 이동하는 데 다 쓸 수도 있다"며 "로케이션 이 많은 방식을 택했다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은 감독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계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양산형 영화의 확산이다. 양산형 영화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아닌, 흥행한 작품을 적당히 따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말한다. 


양산영 영화의 특징은 장면마다 기시감이 강한 클리셰가 난무하며, 영화 속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신파가 이어진다. 소재는 대부분 자극적인 사건이며, 캐스팅에서도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미나리>의 윤여정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영화인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에도, 한국 영화의 장래가 밝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가박스는 최근 <자산어보>를 개봉하고 호평을 받았다. 이준익 감독은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정약용과 정약전의 가치를 그린 <자산어보>는 예술성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중적인 요소도 상당하다. 이 감독은 또 하나의 명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자산어보>와 같은 의미 있는 작품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소위 '미친 짓'이라는 말이 나온다. 적은 제작비로 훌륭한 퀄리티의 영화를 만들어온 이 감독이 <자산어보> 제작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신인 감독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작품이라는 것.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당장 투자배급사가 죽게 생겼는데, 작가주의 영화나 다양성 영화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성 영화를 의식해서 투자를 잘못했다가는 투자팀 직원이 잘리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뒤바뀐
갑과 을


스태프들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생겨나는 가운데, 영화관계자들은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부서 이기주의'다. 

영화마다 각 부서가 있는데, 부서만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부족한 예산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협력을 해도 모자를 판에 부서의 이익을 위해 비협조적인 결정을 내리는 행태가 만연해졌다는 것. 

촬영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30분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감독을 비롯한 연출진과 제작자는 '오버페이'를 부담하면서 촬영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하루 더 연장해서 촬영하면 약 2000만~3000만원의 제작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소 대여비와 각종 일정 등을 고려하면, 제작비는 예상치를 크게 웃돌게 된다. 오버페이를 지불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영화 현장에서 이런 협의는 절대 통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영화 촬영을 진행한 감독은 "스태프들과 협의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몇 차례 오버페이를 줄 테니 좀 더 찍자고 협의를 했는데 계속 거부당했다. 나중에는 협의하지도 않고 그냥 회차를 늘렸다. 한국 영화 현장은 할리우드보다 더 빡빡해졌다. 할리우드는 촬영이 좀 오버된 경우 충분히 협의하는 방법이 있는데, 한국은 스태프들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며 "임금이 늘었다고 책임감이 생긴 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협력 포기한 '부서 이기주의'
"위기의 충무로, 존폐 기로까지
"

드라마의 경우는 비교적 낫다. 매주 찍어야하는 분량이 있기 때문에 부서 이기주의가 비교적 덜한 편이라고 한다. 반대로 영화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편이라 각 스태프의 이기주의가 더욱 심화됐다고 한다. 

한 영화 스태프는 "영화는 일절 협의를 하지 않는다. 주어진 촬영 시간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나도 놀랐다. 조금만 더 촬영하면 이 장소에서는 모든 촬영이 끝나는데, 그런 형편을 이해해주지 않는 모습이 무책임해 보였다"며 "좋은 스태프도 있지만, 악질적인 스태프도 많다"고 밝혔다. 

엄청난 흥행을 일으킨 영화 감독은 '현장의 왕'으로 불렸다. 각종 배우 및 스태프의 캐스팅을 손에 쥐고 있으며, 촬영 및 편집 등 모든 부분에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에는 이런 감독을 견제하는 역할을 투자사에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감독은 동정심이 가는 포지션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한 투자 배급사 관계자는 "과거에 투자사에서 영화 현장을 가는 건 두 가지 이유였다. 이전에 찍은 촬영분이 너무 허접해서 혼내러 가거나, 작품이 잘 되고 있어서 놀러 가는 것이었다"며 "요즘에는 위로해주러 간다. '잘 찍는 건 둘째 치고 회차만 맞춰달라'고 말하고 온다. 그러면 감독은 '저런 애들 데리고 어떻게 회차를 맞추냐'며 하소연을 한다.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다들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영화 촬영에 집중하지 않는다. 어차피 촬영이 늦어지면, 이득을 보는 게 그들이다. 회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좋으니까"라고 말했다. 

대부분 스태프는 3~4개월 촬영하면, 1~2개월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작품에 투입된다고 한다. 계약의 연속성 면에서 부담이 있기는 하나, 요즘과 같은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서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게 전언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귀족 스태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금도 많이 받고, 실업급여도 받는다. 어차피 몇 달 하고 안 볼 사람이라는 생각들이 있어서인지 절대 제작진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견제할 방법도 없다. 수틀리면 갑자기 도망치기도 하는데, 처벌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갑자기 도망
책임감 필요

한 영화 감독은 "인건비가 늘어난 만큼 책임감 있는 스태프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일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 건강한 생각의 좋은 인력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갑질하는 스태프는 안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영화 미래는?

영화계 내에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현재 한국 영화계의 미래는 암울한 수준이다. 코로나19를 회복하지 못한 것에 더불어 각종 OTT로 인해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 문화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회복한다면 곧 영화계도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이 있는 반면, OTT로 인해 잠식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선도 많다. 오히려 비관론이 더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산업은 사양산업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과거에는 영화관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일탈이 될 것"이라며 "관람료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감독이나 작가, 배우 등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영화계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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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