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문]
장난기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누구나 써 보았을 반성문.
성인이 되어서는 쓰고 싶어도 쓸 일이 많지 않다.
그런데, 누구보다 열심히 반성문을 쓰는 성인들이 있다.
최근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상 초유의 아동 학대 살인사건, ‘정인이 사건’의 가해자 장씨가 세 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범죄의 처벌에 대한 관점에는 두 가지, 교정주의와 엄벌주의가 있다.
교정주의는 범죄자의 교화에, 엄벌주의는 범죄에 대한 응징에 초점을 둔다.
우리나라에서는 피고인이 진정으로 뉘우치는 태도를 보여줄 시 그 점을 참작하여 감형해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교정주의적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범죄자들은 자신의 ‘진지한 반성’을 증명하기 위해 주로 ‘반성문’을 제출한다.
그러나 이 ‘반성문’은 악용되는 경우가 많아 시민들의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지난해 6월, 한 택시기사가 응급차를 의도적으로 가로막아 안에 있던 환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1년10개월로 감형되었다.
총 16차례의 반성문을 제출했다는 점을 재판부에서 참작한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은 유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전화 한 통조차 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물론 반성문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감형이 되지는 않는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모방한 피의자 배모군은 무려 133장의 반성문을 제출했으나 원심의 형량을 바꾸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반성문에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그것이 감형의 큰 요인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한 자 한 자 직접 쓴 반성문이라 해도 그 진정성을 받아들이기 힘든 판국에, 반성문과 탄원서를 대필해주는 업체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반성문 대필’을 검색해보면, 무려 30개 이상의 파워링크를 볼 수 있다.
가장 위에 있는 업체의 설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진정으로 뉘우치고 진심이 느껴지는 반성문’
반성문의 예시를 몇 가지 살펴본 결과, 대략적인 형태는 다음과 같았다.
이런 반성문의 가격은 A4용지 서너 장당 약 5만원이다.
엄벌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단돈 5만원으로 묵살할 수 있는 사회.
이러한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정은 초등학교가 아니다.
몇 줄의 반성문으로 처벌의 수위를 조절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타인의 권리, 특히 생명권을 침해한 흉악범들이 자신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경위와 저지른 다음 느꼈던 후회와 죄책감을 논하며 ‘진지한 반성’을 담아 썼다고 말하는 글들.
그것들은 반성문이 아닌 ‘감형 요구서’라고, 감히 주장한다.
총괄: 배승환
기획&내레이션: 강운지
구성&편집: 김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