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LG그룹에 뿌리를 둔 또 하나의 재벌집단이 출범을 앞두고 있다. LG그룹의 든든한 소방수였던 총수의 삼촌은 어느덧 홀로서기를 목전에 둔 상태다. 이는 장자승계 원칙에 따른 예고된 수순이다. 다만 시작부터 어딘지 모를 삐걱거림이 연출되고 있다. 뻔히 오해받을 법한 사명을 밀어붙인 반대급부다.
구본준 LG그룹 고문은 전문경영인의 식견을 지닌 오너 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선제적 투자를 중요시했던 구 고문은 남다른 식견으로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손수 챙겼고, 이는 굵직한 성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구 고문의 행보를 주목하는 시선이 한층 많아진 상황이다. 홀로서기에 대한 관심 차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삼촌의
독립경영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 주주총회에서는 ▲LG상사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LG MMA 등 4개 자회사를 분리해 신설 지주회사 ‘LX홀딩스’를 설립하는 지주회사 분할계획이 승인됐다.
특별결의 사안인 분할 안건의 경우 전체 주식의 3분의1 이상,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되는데, ㈜LG 주총 총 참석률은 89.2%였으며 이 중 76.6%가 찬성표를 던졌다.
분할이 승인됨에 따라 기존 ㈜LG는 5월1일부로 존속 지주회사(㈜LG)와 신설 지주회사(LX홀딩스)로 재편된다. ㈜LG는 양 지주회사가 독립 및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해, 사업관리 영역 전문화, 사업구조 고도화 등을 통해 기업가치 제고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LX홀딩스를 추축으로 하는 LX그룹의 계열분리는 LG그룹의 장자승계원칙에 따른 것이다. 계열분리와 함께 한동안 경영일선에서 자취를 감췄던 구 고문 역시 경영에 복귀하게 된다.
출범 공식화…범LG 식구 늘어
그룹 뿌리와 비전?…사명 논란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3남인 구 고문은 ▲금성사 상무 ▲LG화학 전무 ▲LG반도체 대표이사 ▲LG필립스LCD 대표이사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등 계열사 주요 보직을 거치며 30년 넘게 그룹에 몸담았다.
고 구본무 회장이 병환으로 수장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시절에는 형을 대신해 그룹을 총괄하기도 했다. 2018년 조카인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후에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재계에서는 신설 LX그룹이 성장 잠재력을 갖춘 사업회사를 육성하는 전략을 꾀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LG상사가 최근 주주총회를 거쳐 추가한 신규사업목적에는 ▲디지털콘텐츠 ▲소프트웨어 ▲플랫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 기술 영역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있다. 신설 LX그룹은 친환경·관광·의료 등 여러 신사업 분야로의 진출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X홀딩스의 총자산은 개별기준 9133억원으로 알려졌다. ▲LG상사(5조3959억원) ▲LG하우시스(2조3853억원) ▲실리콘웍스(7506억원) ▲LG MMA(6207억원) 등을 합산한 총자산 규모는 9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출범과 함께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이 확실시된다.
시작부터
큰 덩치
LG상사는 신설 LX그룹의 핵심 계열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상사는 신설 LX그룹 계열회사 가운데 자산과 매출 규모에서 가장 크다. 신설 LX그룹의 총자산과 총매출에서 LG상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60%, 70% 수준이다.
LG하우시스는 그룹 출범에 앞서 대대적인 사업재편을 예고한 상태다. 인테리어 등 고부가 건축자재 부문에 역량을 집중할 예정이다. 지난해 LG하우시스는 건축자재사업에서만 영업이익이 27% 늘었다. 향후 신도시 건설, 민간 신규 주택 분양, 재건축·리모델링 활성화 등으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리콘웍스는 반도체 제품군을 늘려 종합 반도체 설계회사로 도약이 예상된다. 국내 1위 팹리스 업체인 실리콘웍스는 주력제품인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수요 증가로 지난해 사상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매출은 전년대비 34% 증가한 1조1618억원, 영업이익은 99.4% 늘어난 942억원을 기록했다.
또 실리콘웍스는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사업 진출을 추진 중이다. 실리콘웍스는 주력 사업구조를 확장하는 가운데 자동차, 가전 등 고성장·고수익 프리미엄 제품군을 추가하겠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남의 것
탐내나
이외에도 LG MMA는 국내 최초 MMA(메틸메타크릴레이트) 생산 기업으로 독점적 시장 지위를 강화해나간다는 계획이다. LG상사 자회사인 판토스는 최근 백신 운송 국제인증을 받아 글로벌 의약품 물류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계열분리 후 주식시장 상장 추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재계에서는 신설 LX그룹이 빠른 속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다만 몇몇 불안요소는 신생 LX그룹의 앞날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한국국토정보공사와의 사이에서 불거진 ‘LX’ 사명 갈등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지난달 2일 ㈜LG는 특허전문 법인을 통해 특허청에 LX 상표와 이미지 90건을 출원했다. 특허출원은 신설지주사를 위한 사전 작업 차원이었다. 기업을 대표하는 기업 이미지(CI)는 특허청에 상표로 등록돼야 지식재산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신설 지주사가 쓰기로 한 LX라는 이름은 LG그룹의 첫 글자 'L(Lucky)'과 디지털전환(DX) 등에서 혁신·변화 의미로 사용하는 'X'를 결합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사명을 통해 그룹의 뿌리와 비전을 나타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한국국토정보공사가 2012년부터 영문명으로 LX를 써왔다는 사실이다. 이후 한국국토정보공사는 LX대한지적공사, LX한국국토정보공사, LX뉴스, LX국토정보플랫폼 등 다양한 상표출원을 했다.
그룹 뿌리와 비전?
뭐가 대단하다고…
한국국토정보공사는 신설 지주사와 자사를 오인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우려가 현실화되면 공공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게 한국국토정보공사의 기본 논조다.
실제로 김정렬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은 지난 6일 “LX홀딩스는 양사의 로고 디자인 등이 달라 상표권 행사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타인의 성명이나 상호 표장, 그 밖의 것을 유사하게 사용해 혼동하게 하거나 오인하게 하는 경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LG그룹 측은 로고, 디자인, 색상 등이 명확히 구분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적고, 사업 내용도 전혀 다르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공공성 저해를 우려하는 한국국토정보공사 측 주장을 현실성이 낮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름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좀처럼 종식되지 않고 있다. 수습은커녕 사태는 한층 악화되는 양상이다.
지난 14일 한국국토정보공사는 신설 지주사 사명 논란과 관련해 ㈜LG를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거래행위로 신고했다고 밝혔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신고서에서 “㈜LG가 신설지주회사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지주 회사명을 LX홀딩스로 정한 것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다른 사업자의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다행히 양측은 사명 사용과 관련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냈다. LG 측은 지난달 30일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국토정보공사와 LX 사명을 함께 사용하며 상호 발전하는 방향에 양사가 공감, 실무 협상을 이어간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