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사태'로 본 한전 송전탑 잔혹사 전모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03 11: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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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사람 죽어야 문제 해결된다?"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송전탑 건설을 두고 한국전력공사와 지역주민들 간 마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밀양지역에선 70대 노인이 분신하고 여스님이 공사장 인부로부터 성적인 폭행과 폭언을 당하는가 하면 민주당 소속 시의원은 발에 밟혀 입원하는 등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10년 묵은 갈등, 해결될 순 없는 걸까?

 

2001년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세워진 후 한국전력공사는 정부의 인가를 받아 전국에서 41개의 송전선로 사업을 추진해 왔다. 길이를 모두 합치면 645㎞에 송전탑 개수만 1600개에 이르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그런데 전국의 각 건설 예정지마다 송전탑 부지 문제로 반대 집회와 소송 등이 이어지며 한전과 건설지역 주민 간 마찰이 극심하다.

극단적 선택…'왜?'

갈등의 절정을 보여준 사건은 지난 1월16일 밀양에서 벌어졌다. 경남 밀양시 산외면 주민 이치우(74)씨가 분신한 것. 이후 발표된 경찰조사를 종합하면 이씨의 논은 송전탑에서 80m 이격해 있어 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근처를 지나는 높이 100m에 육박하는 송전탑 때문에 이씨의 땅뿐만 아니라 이씨 삼형제 땅 전부 매매가 불가능해졌다.

실제로 3억여원 이상의 손해를 입게 된 직접적인 피해자는 이씨의 동생 이장우씨였다. 이장우씨의 친형 이치우씨는 분을 참지 못하고 저녁 8시10분께 "오늘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공사장 부근에서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스스로 불을 붙여 목숨을 끊은 것이다.

한전은 송전탑이 세워지는 부분의 좌우 3m만 보상범위로 정해놓고 있다. 보상범위도 문제고 그에 대한 보상금이 시가에 견줘 턱없이 낮게 책정되는 것도 문제지만 이씨의 사례에서 보듯 송전탑 주변 1km 이내는 지가가 대폭 떨어져 사실상 매매가 불가능해지데 이 부분을 한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피해주민과 한전 간 갈등의 폭이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


오히려 한전은 주민들에게 보상금을 주는 대신 10억여원대의 손해배상을 소송을 내기도 했다. 지난 6월27일 윤여림(75)·이남우(71)·서종범씨(63) 등 밀양시 부북면·단장면 주민들을 상대로 10억원을 배상하라며 창원지법 밀양지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낸 것. 이에 주민들도 '끝장을 내자'며 법정 대응 중이다.

지난 1월에는 용역직원이 공사를 저지하려는 비구니 스님을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한전의 밀양 초고압 송전탑 공사장에는 용역들의 온갖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데도 경찰은 방관한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비구니 스님을 집단 성폭행하고 70~80대 할머니들에게 개 부르듯 모욕을 주고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많은 누리꾼들은 격분했다.

하지만 관할 밀양경찰서 측 설명은 달랐다. 밀양경찰서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송전탑 공사를 진행하려는 인부들과 이를 반대하는 스님 간의 마찰 과정에서 폭행 사건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스님은 복면을 쓰고 있어 현장 공사인부들이 채증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발생한 것이지 성폭행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사인부들이 여스님에게 성적인 폭언과 폭력을 가한 점은 동영상 자료가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노인 분신, 여스님 성추행, 시의원 폭행
주민설득 생략한 채 밀어붙여 갈등 키워

또 지난달 25일에는 문정선 민주통합당 밀양시의회 시의원 등 2명이 현장사무소 직원과 충돌해 밀양병원에 입원했다. 문 의원은 헬기가 건설 자재를 운반하는 것을 목격하고 밀양시 단장면 4공구 현장사무소로 달려가 철창 아래로 기어들어 가려했다. 이를 발견한 공사장 인부들이 발로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밀양송전탑대책위는 동영상을 공개하며 "공사인부들이 1시간 이상 문 의원을 발로 짓누르고 신체를 비트는 등의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밀양에서 갈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경북 청도에서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한전과 주민들은 시시때때로 충돌하고 있다. 한전 대구경북지사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주변에 3기의 송전탑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마을 주민 50여 명은 한전이 주민동의 없이 공사할 수 없다며 지난 7월2일부터 공사예정부지 입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같은 달 13일에는 환경운동 활동가가 용역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용역직원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아스팔트에 머리를 부딪쳐 인근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전북 군산에선 새만금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해온 군산시 지역주민 73명이 한전에 실시계획을 승인해준 군산시를 상대로 '도시계획시설사업 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가 기각됐다. 재판부는 "군산시가 한전 의견을 받아들여 송전선로를 정했고 공청회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원고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송전방식과 노선 결정은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판단으로 그 정당성과 객관성이 있다"고 판시해 한전의 손을 들어줬다.


현행 전원개발촉진법 제5조 2항을 보면 '전원개발사업자는 승인 신청하기 전에 사업시행 계획의 열람·설명회를 통하여 대상 사업의 시행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지역의 주민과 관계 전문가 등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라고 명시돼있다. 법 표현부터 모호해 사실상 주민의 동의가 없어도 사업 강행이 가능해왔던 것이다.

법적 소송 비화

지금까지 한전은 비용을 절약하고 시간을 단축한다는 명분으로 사전 주민 설득작업을 아예 생략한 채 모든 결정이 이루어진 후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주민들의 땅을 강제 수용하는 방법을 취해왔다. 이에 주민들은 의견수렴 절차와 토지보상 방식에 불만을 품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온 것이다.

오늘도 밀양 송전탑 건설예정지의 연로한 주민들은 단식농성, 천막농성을 벌이며 공사 저지에 나서고 있다. 한전은 "전력수급난 해소를 위해 공사를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며 마을별 주민대표와 협상을 계속하면서 공사를 하겠다"고 밝혀 송전탑 공사장 마찰사태는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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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