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박수홍에 주어진 배신과 사랑

잃어버린 30년과 차곡차곡 쌓인 30년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 방송계에 대표적인 성실의 아이콘이자, ‘순수청년’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방송인 박수홍이 안타까운 사연에 휘말렸다. 누구보다도 가족을 아끼는 마음을 방송에서 내비쳤던 그가 친형과 형수로부터 배신당한 사연이 전해졌다. 박수홍의 기획사 대표였던 형이 30년 동안 횡령한 금액은 확실치 않지만, 100억원대에 근접할 것으로 추정된다. 
 

▲ 방송인 박수홍 ⓒMBC

물질의 욕심이 너무 지나칠 때 천륜마저 거스르기도 한다. 그런 경우가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지나친 ‘물욕’
‘천륜’ 와르르 

직장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수익을 버는 연예인이다 보니 종종 가족과 불화를 겪기도 한다. 자신의 재능으로 일궈낸 재산을 가족이 남들에게 퍼주다시피 하거나, 때론 당사자도 모르게 잇속을 챙기기도 한다. 뒤늦게 진실을 발견하고 부모와 의절한 연예인도 여럿 있다. 

최근 방송인 박수홍에게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박수홍의 기획사를 운영해온 형(본명 박진홍)으로부터 약 30년간 일하며 모은 돈을 모두 빼앗긴 일이다. 

박수홍은 오래전부터 형에게 경제권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엔터테인먼트 대표임에도 경차를 타고 다닐 뿐 아니라 형수마저도 흔한 가방 하나 없이 종이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검소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배신의 초석이었다. 말이 1인 기획사지 사실상 박수홍이 버는 돈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쳤던 형은 재테크 명목으로 수많은 상가와 아파트를 사들였다. 월세만 무려 4000만원에 이른다는 후문이다. 이 모든 명의는 돈을 번 주체자인 박수홍이 아니라, 형과 형 가족의 이름으로 돼있었다. 

박수홍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해 초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몰랐던 법인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부터다. 자신의 지분은 하나도 없고 오롯이 형 가족의 지분으로만 채워진 법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때부터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동생 몰래 세운 법인이 들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형과 그의 가족은 이때부터 박수홍과의 연락을 끊는다. 1년 동안 박수홍과는 연락이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을 통해서만 형에게 연락이 닿는 형태다. 그간 자신을 철석같이 믿어왔던 동생의 신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오랫동안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박수홍이 세무서를 통해 전달한 소명자료 요구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언론사를 통해 박수홍 흠집내기에 돌입했다. 스스럼없이 천륜을 거스르는 행동에 대중도 놀라고 있다.

기획사 대표 역임한 형의 참혹한 배신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잠도 못 잤다”

SBS <미운 우리 새끼>를 비롯해 MBN <동치미> 등 각종 프로그램의 MC를 오랫동안 맡았던 박수홍은 평소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꺼내 놨다. 가끔 가족들의 이해되지 않을 행태를 공개하기도 했지만, 기저에는 가족에 대해 애틋함이 묻어있어 그들만의 문화로만 여겨졌다.

최근 방송된 <동치미>에서 박수홍은 속내를 전하며 눈물을 터트렸다.


반려묘 ‘다홍이’의 이야기를 꺼내던 중 박수홍은 “제가 가장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어요. ‘이래서 사람이 죽는구나.’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어요. 제가 잠을 못 자니까 고양이가 와서 저보고 자라고 눈을 깜빡깜빡하는 거예요. 얘(다홍이)를 자랑하려고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댓글에 ‘수홍씨가 다홍이 구조한 줄 알죠? 다홍이가 수홍씨 구조한 거예요’라고 남겼어요”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30년차 베테랑 방송인이 촬영 도중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낸 것. 
 

▲ 방송인 박수홍 ⓒ다홍이랑엔터테인먼트

패널들은 ‘갑자기 왜 이래’라며 박수홍의 갑작스러운 오열에 어리둥절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눈물의 배경에 이런 충격적인 사연이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평소 바른 행동 덕에 순수청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젠틀한 이미지의 박수홍이기에 대중이 받은 충격도 컸다. 

박수홍은 어렸을 적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오랜 시간 방송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한때 최고의 MC로서 활약했음에도 30세가 넘어서야 겨우 빚을 청산했다. 돈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아끼고 사는 것이 몸에 뱄을 뿐 아니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늘 짓눌렀다고 한다. 

힘든 시기를 함께 잘 이겨내 온 형제들이었기에, 감히 자신의 돈을 횡령할 것이라는 의심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박수홍이었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보여주듯 행동해온 형의 가족들이어서, 선량한 마음의 박수홍은 30년 동안 건물이 자신의 것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 생각조차 안 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에 대한 믿음은 비수가 되어 부메랑처럼 날아왔다. 30년 동안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 

박수홍은 지난달 31일 설왕설래가 오고 가던 자신의 스캔들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경제적인 피해를 본 것과 더불어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믿음
배반

“그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다시 한 번 대화를 요청했다”고 밝힌 그는 “마지막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다면 가족으로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전 재산을 자신과 형 사이에 7:3으로 나누겠다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총재산이 100억원대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에 미뤄보면, 형에게 꽤나 큰 금액을 줄 의향이 있었던 듯 보인다. 

그럼에도 형은 오히려 박수홍의 여자친구 문제를 들먹이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직접 나서지도 않을뿐더러, 지인을 내세우는 치졸한 방법으로 이른바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동생에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모든 유산을 조카에게 물려줄 것”이라며 형의 가족을 제 가족처럼 사랑한 박수홍이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법적 대응 및 언론 보도를 자제한 이유는 조카 때문이었다고 한다. 현재 어른들의 다툼에 조카까지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 크게 괴로워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상대는 모든 것을 걸고 가족을 배반했지만, 박수홍은 마지막까지도 인간적인 도리를 다하려는 듯하다. 마치 선과 악의 다툼을 보는 것 같은 형세다. 모든 정황이 밝혀지면서 대중은 그를 향해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다.


비록 가족으로부터 배신당했고 30년 동안의 노력이 단숨에 사라진 슬픈 상황이지만, 반대로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은 방송인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고 있다. 
 

▲ 눈물 흘리는 박수홍 ⓒ방송화면

박수홍의 유튜브 채널 ‘검은 고양이 다홍’의 영상 댓글에는 그간 그에게 인간적인 따뜻함과 고마움을 느낀 사람들이 미담 릴레이를 하듯 속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룹 멜로망스 김민석을 비롯해, 오래전에 함께 방송했던 작가와 스태프, 웨딩사업 관련 업체의 막내 스태프, 건물의 보안요원, 크리스마스를 맞아 어린아이들과 돈가스를 먹으러 갔던 가족,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 방송에서 만난 방청객까지 모두 박수홍과의 인연을 고백하고 있다.

모두가 그의 따뜻한 성품에 감동했다는 것. 

박수홍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먼저 허리를 90도 굽히며 상대에게 다가갔다. 혹여 타인이 불편함을 받을까 걱정하는 듯, 자신을 더 낮추고 편하게 다가갔다. 

사진을 찍고 싶은데 차마 말을 걸지 못하는 여학생에게 ‘왜 나랑 사진 찍자고 말 안 하냐’며 손을 건넸고, 업무상으로 알게 돼 차마 쉽게 말을 못 거는 광고 브랜드 담당자에게는 “이럴 때 못 찍으면 평생 못 남겨요”라며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뜨거운 응원
미담 릴레이

편의점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에겐 자신의 물건을 사면서 커피와 박카스를 전했고, 녹화가 2시간가량 지체되자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방청객들에게 직접 다가가 머리를 숙여 죄송함을 전했다.

한 어린 출연자가 밥을 못 먹었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자신의 도시락을 전했고,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스태프에게 먼저 다가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박수홍이었다. 

이외에도 미담은 끊임없이 나온다. 모두 하나 같이 박수홍과 만남을 자신의 인생에 중요했던 순간처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박수홍에게서 느꼈던 인간적인 따뜻함을 마음 한쪽에 두고 있다가, 그가 힘들어하자 진심으로 응원하기 위해 꺼내놓는 모양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 실제 친구들과의 미담도 다양하다. 2018년 방송된 <해피투게더-프렌즈>에서 박수홍의 친구로 나온 A씨의 일화는 감동적이다. 다리를 다친 A씨를 위해 친구들과 노는 것을 포기하고 등교부터 하교까지 늘 부축하며 지냈다는 것. 
 

모델 학원을 다니기 위해 새벽 신문 배달을 하며 모은 돈으로 학원비를 낸 일화도 있다. 자신이 필요한 게 있으면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얻어내는 강인함도 있는 그다.

이토록 미담이 많은 연예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도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먼저 남을 배려하고 챙기는 것을 실천하며 살아온 듯 보인다.

대중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에는 성품 이외에도 방송인으로서 다양한 매력 덕분이다.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베테랑 MC답게 안정적으로 진행한다. 방송을 오랜만에 찾은 게스트나 패널이 어색하지 않도록 대화를 이끌고, 누군가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정중한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
 
<동치미>나 JTBC <TV 정보쇼 알짜왕>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는 최적의 재능을 발휘하며 맹활약 중이다. 그와 함께 진행을 맡은 동료 MC들 역시 편안하게 박수홍에게 기댄다. 또 최근 방송을 시작한 SBS <뷰티 앤 더 비스트>에서는 천재 반려묘 다홍이와 보내는 일상을 솔직 담백하게 꺼내 놓는다. 

구김살 없는 서글서글한 성격을 바탕으로 방송에 임하는 진솔한 그의 모습에 잔잔한 미소가 절로 띠어진다. 길고양이였던 다홍이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힘든 와중에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서사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수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안겨주고 있다.

충격 소식에 쏟아지는 ‘미담 릴레이’
배려와 존중의 30년 ‘응원하는 대중’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이른바 ‘샌드백’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야생과 같은 예능에서 짓궂은 농담을 일삼는 탁재훈, 김희철, 김종국 사이에서 늘 놀림을 당하는 역할이다. 다소 기분 나쁠 법한 놀림에도, 언제나 웃음과 장난기 섞인 서운함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그다. 

멀쩡한 허우대에 선한 인상, 잘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어딘가 빈틈이 있는 그는 강력한 입담을 자랑하는 예능인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다. 그 놀림이 박수홍도 크게 싫지는 않은 듯 웃는 얼굴로 응대한다. 

이는 과거에서부터 이어졌다. MBC <라디오스타>나 KBS2 <해피투게더>에서 동료들과 출연했을 당시에도 놀림을 당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김구라나 김수용에게 놀림을 당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는데, 그때마다 당황하는 척하면서 톡톡 튀는 입담을 보이며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특히 김수용의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농담과 박수홍의 리액션이 어우러지는 영상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강력한 웃음을 준다. 

KBS 공채 개그맨 7기 감자골(김국진‧김용만‧김수용‧박수홍) 친구들이나 <미운 우리 새끼>의 멤버들, 윤정수와 손헌수 등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 모두 박수홍의 인간적인 면모를 칭찬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예의를 갖출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그의 모습을 존중한다고 한다. 
 

▲ 방송인 박수홍 ⓒ김영준스튜디오

이 같은 그의 매력을 알기에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박수홍에게 힘이 되는 말을 건네고 있다. 꼭 미담이 아니더라도, 그를 향한 응원글은 포털사이트나 SNS 등 박수홍과 연관된 모든 댓글창에 남겨지고 있다.

무려 20년 동안 보육원에 1억원 이상을 기부했으며, 친분이 깊은 동료 박경림과 함께 이방인의 심정을 느낄 다문화가정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연예인이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선한 영향력을 펼쳐온 그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는 박수홍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렇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아깝고, 가족의 배신으로 인한 상처가 쉽게 지워지지 않겠지만,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함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지 않을까 기대되는 점도 있다. 

물욕 때문에 천륜을 거스르는 가족으로 파생된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 여론은 일방적으로 박수홍의 편이기는 하나, 오래전부터 사기를 칠 마음을 먹은 사람이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면,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선한 영향력
악을 누를까

그럼에도 진실은 거짓을 이기기 마련이고, 선도 궁극적으로는 악을 제압한다. 선의 위치에 놓인 박수홍이 기필코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이 한가운데로 모이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이번만큼은 주위를 배려하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 이겨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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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