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데뷔한지 6개월이 넘어가는데 팬들을 본 적이 없어요.” 한 가요기획사의 한숨 섞인 토로다. 코로나19가 1년 넘게 장기화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탄생했다. 비대면 시대이니만큼 각종 SNS와 영상 사이트를 통해 이름값을 알렸지만, 정작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은 가져보지 못하고 있는 실상이다. 이런 이유로 ‘코로나 아이돌’이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마저 생겨났다.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새 앨범과 새 음원이 나오는 등 대중음악계의 시계는 돌아가고 있다. 스타 반열에 있는 가수들은 더 깊어진 음악을 선사하기도 한다. 팬들과 만나는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 아쉬움이 온라인에서 더 활발해지는 듯한 인상도 남긴다.
높아진 장벽
신인 아이돌도 대거 탄생했다. 지난해에만 약 30여팀이 데뷔했다. 그중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에스파,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CJ가 합작한 엔하이픈, YG엔터테인먼트 소속 트레저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이들 세 그룹은 대형기획사의 지원을 받아 팬층을 확장한 사례다. 정식 데뷔 전부터 SNS를 기반으로 팬덤을 구축하거나, 기존 아이돌의 두꺼운 팬층이 자연스럽게 이양된 형태다. 음원 순위에서도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다.
겉으로 보면 가요계의 시간은 문제없이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꺼풀을 벗기고 속을 들여다보면 우려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세 그룹의 성장세는 이들에게만 작동한 모양새다.
중소기획사의 경우에는 온라인 콘서트나 팬미팅조차 손해를 보고 있는 분위기며, 손해를 감수하면서 행사를 개최하더라도 팬덤의 확장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비대면 시대에서 데뷔한 아이돌은 이전과 비교해서 장벽이 훨씬 더 높아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들이 ‘코로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돌은 통상적으로 팬들과의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 유대감을 키우면서 성장하는 구조다. 음악 방송이나 콘서트, 팬미팅 등 여러 현장에서 팬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등 친구처럼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돌 팬들은 이름이 알려지기 전부터 아이돌 그룹 멤버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하면서 ‘저 그룹 내가 키웠다’라는 인식을 얻는다. 아이돌 그룹의 음원이 상위권에 올라가고, 각종 방송에서 점차 존재감을 보이면 뿌듯함을 느낀다. 이는 팬 활동을 더욱 열심히 하는 기반이 된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팬들은 데뷔 초부터 아이돌의 각종 스케줄을 따라다니면서 마치 아이를 키우는 느낌을 받는다. 이로 인한 충성도와 결집력이 상당하다”며 “최근에는 피부로 느끼지 못하다 보니 이전 그룹들보다 애정의 깊이가 얕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라진 오프라인 공연 ‘얕아진 유대감’
“막대한 자본 투입했는데, 수익은 제로”
코로나19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오프라인 현장은 급격히 축소됐다. 어쩔 수 없이 급한 불을 끄듯, 영상통화 이벤트나 브이 라이브, 온라인 공연, 자체 제작 예능 등 기존에는 부수적으로 여겨지던 온라인 콘텐츠가 최근에는 팬들과의 주요 만남 경로로 활용됐다.
최악의 상황에서 내놓은 최선의 결과물이긴 하지만, 이 같은 비대면 소통은 팬과 아이돌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기에 역부족이다. 아이돌의 코어 팬들은 현장을 찾아다니고 응원하면서 끈끈함을 느끼는데, 온라인에서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현장에서 느끼는 유대감을 통해 공고히 팬덤을 쌓아도 걸출한 아이돌로 정착하는 데 수년이 걸리는데, 코로나 시대에는 그 기반마저 사라진 것. 대면 행사를 할 수 없다 보니 팬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면서 신인 아이돌의 생존은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
또 다른 가요 관계자는 “기존에 팬덤이 없는 신인의 경우 온라인으로 팬덤을 집결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형기획사도 어려운 일인데, 중소기획사는 더더욱 힘든 일”이라며 “이미 손해를 보는 중에 확신이 없는 온라인 공연을 진행할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팬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힘을 내는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인기를 체감할 경험을 하지 못해 힘이 빠지는 현상도 나온다. 현장에서 전해지는 팬들의 함성을 받거나, 이를 통해 선물이나 편지를 받는 과정이 적어지다 보니 아이돌로서의 만족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
방송이나 시상식 등의 무대에 선 신인 그룹들이 “빨리 팬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다. 아울러 생방송 무대나 콘서트를 통해 무대 경험을 쌓고 이를 토대로 음악적인 역량을 키워나가야 하는데, 코로나19 시대에서는 현실화하기 어려운 문제다.
가요 관계자들은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이 영화나 공연에 비교해, 유독 음악 시장에 가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형 공연이 아니더라도 소규모 오프라인 공연만이라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지속할지 모르는 상황에 엄격한 기준만을 내세우는 건 음악 시장 자체의 기반을 흔든다는 지적이다.
흔들리는 기반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뮤지컬이나 영화 관람이 거리두기 좌석제를 이용해 정상적으로 열리는 것처럼 대중음악 공연에도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신인 아이돌의 경우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데, 수익은 0에 수렴한다. 소형 기획사들은 활동 자체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