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이변의 주인공 스티븐 연

현실적인 초상화 정밀하게 그리다

[일요시사 취재 1팀] 차철우 기자 =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된 스티븐 연에게 전 세계가 주목한다. ‘화이트 오스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 속 이민자 제이콥 연기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 배우 스티븐연 ⓒCGV아트하우스

미국 내 아시아계 배우의 연기에 대한 인식은 보통 ‘아시아인 치고 잘했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스티븐 연이 오스카상을 수상한다면 미국 내 아시아인 배우에 대한 인식이 그의 목표인 좋은 배우로 바뀔지 기대되는 상황이다. 

“한국인이 해야”
전 제작에 참여

영화 <미나리>에 대한 반응도 뜨겁지만 연기력에 관한 평가는 더욱 좋다. 윤여정을 비롯해 아버지 역할을 맡은 스티븐 연의 연기력이 대단하다는 반응이 많다. 과거 <옥자>와 <버닝>에서 한국말 하는 교포 역할을 했던 경험이 있지만 <미나리>에서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해 공감을 일으킨 점을 팬들과 외신은 높이 평가했다. 

스티븐 연은 영화 <미나리>의 배우와 제작자로 참여했다. 지난 2020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미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인은 우리가 보는 한국인과 굉장히 다르다”며 “한국인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제작의 전 과정에 한국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제작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그런 그가 <미나리>에서 제이콥 연기로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게리 올드만(<맹크>), 고(故) 채드윅 보스만(<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앤서니 홉킨스(<더 파더>) 등이 경쟁자다. 후보자 역시 영화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다. 오스카 남자 주연상 후보자 발표가 되자마자 그는 “정말 초현실적인 느낌이고 후보로 지명된 것을 믿을 수 없다”며 소감을 전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 최초 후보 지명에 대해 “그동안 오스카는 아시아 사람들과 아시아계 미국인의 연기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된 스티븐 연이 오스카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만큼 오스카는 백인 잔치라는 평가가 많았다. 외신은 스티븐 연이 후보로 지명돼 할리우드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의견을 많이 냈다.

할리우드서 아시아계 배우는 살아남기 힘든데 미국 영화계에서 동양인 캐릭터는 주로 희생양 또는 돈 밝히는 사람, 둘 중 하나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븐 연은 미국 내 다양한 역할을 소화 가능한 배우로 꼽힌다.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의 글렌 리 역할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을 인식시켰다. 

아시아계 최초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
게리 올드만, 앤서니 홉킨스 등과 경쟁

그가 연기한 글렌 리는 미국에서 평가하는 아시아인 이미지와 다르게, 용감하고 영리하며 팀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연기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워킹데드>를 연기해 이름을 알렸지만, 그가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20세 때다. 

스티븐 연은 서울에서 태어나 4세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5세 때부터 계속 미국서 살아온 교포 2세다. 한국에서 건축업을 하던 그의 부모는 미국에서 미용 용품 판매점을 운영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다 우연히 극단 연기를 본 뒤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는 졸업 후 코미디언 조던 클래퍼를 따라 시카고 극단 멤버로 합류해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다. 
 

▲ 배우 스티븐연 ⓒ판씨네마

2009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배우가 되기 위해 6개월 동안 많은 오디션을 보고 다녔다. 그러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에 캐스팅됐다. <워킹데드>는 좀비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시즌3에서 시즌6까지 케이블 TV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다. 

그가 처음 <워킹데드>에 등장했을 때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욕을 했다. 그러나 시즌이 거듭될수록 스티븐 연에 대한 시청자 평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인이 상상했던 아시아인 캐릭터와는 달랐고, 연기도 잘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워킹데드> 시즌6에 글렌 리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의 인기가 많자 “글렌 리가 죽으면 보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스티븐 연의 <워킹 데드> 출연으로 미국 내 아시아인 연기에 대한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다.

서울서 태어나
부모와 이민

<워킹데드> 이후 배우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스티븐 연은 정이삭(미국명 리 아이작 정) 감독을 만나게 됐다.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이 겪었던 이민생활을 담은 자전적 영화다. 스티븐 연은 대본을 읽고 가족과 부친이 겪은 힘든 이민생활에 크게 공감해 출연을 결심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자라 한국 부친 캐릭터의 분석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 <미나리>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떠난 제이콥 가족의 힘겨운 이민생활을 보여주는 영화다.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제이콥이 아칸소로 이사해 농장을 경영하고 가장으로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독한 이민생활의 현실을 연기로 보여준다. 영화 대사 중 제이콥의 아들이 수컷 병아리를 폐기하는 이유를 묻자 “맛이 없고 알을 낳지 못해 쓸모없다”며 “쓸모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며 자신의 성격을 드러낸다. 

영화 속 제이콥이라는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는 야곱을 모티브로 탄생했다. 성경 속 야곱은 끈질기며, 자기 의존적 성격이 강하다.
 

▲ ▲배우 스티븐 연 ⓒ판씨네마

아무것도 없는 아칸소 농장을 가꾸며 가족에게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과 한국인이지만 다른 한국인을 믿지 못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누구도 겪은 적이 없는 일처럼 생각하며 심오한 연구 끝에 제이콥을 연기했다고 전해진다. 

제이콥의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과거 이민의 기억에 기대기보다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되뇌고, 미국에서 생활하는 이민자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하는 점에 대해 고민했다. 스티븐 연의 부친은 한국 사람이지만, 부친과 제이콥을 다르다고 생각했다.

<워킹데드>
많은 호평


자신만의 방법으로 미국에 이민 온 한국 가장의 모습을 재탄생시켰다. 영어가 편한 그는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고 어설픈 영어를 해야 하는 캐릭터를 위해 대본을 끊임없이 고치고, 많은 연기 연습을 했다. 24번의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윤여정, 한예리와 함께 대사를 연구하고 캐릭터를 분석했다.

스티븐 연의 대사는 전형적인 과거 한국의 아버지를 반영한다. <미나리> 속 제이콥은 언제나 굳은 표정으로 무심하게 말한다. 스티븐 연은 <미나리>로 “이민 2세대가 1세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는 시대의 틀에 박힌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고, 1970년대 말을 살았던 제이콥이라는 사람 자체를 공감하는 모습으로 연기했다. 스티븐 연은 “<미나리>에 출연해 내가 맡은 역할이 아버지의 삶과 같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제이콥은 내 아버지와 다시 연결된다. 그 경험은 나에게 감동적”이라고 <미나리> 출연 소감을 밝혔다. 

한예리와 연기 호흡도 돋보였다. 스티븐 연은 “연기할 때 배우 사이에 생각 차이가 존재했지만 서로 다른 견해를 좋게 여겨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았지만 편하게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의 장면 중 폴을 식사에 초대해 그가 집에 돌아간 뒤 다투는 장면은 NG 없이 한번에 진행됐다. 또 영화 속 제이콥은 한국서 온 장모와 함께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모습이다. 장모가 싫어서라기보다 미국서 혼자 힘으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다. 

한국서 장모가 오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갈등이 심화될 것을 제이콥이 예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속 스티븐 연과 윤여정 사이에는 오고 가는 대사가 많지 않다. 


한국어 어색하지만 발음 공부
배우들과 밤새 연구하며 촬영

말이 없는 두 사람 덕분에 영화 내내 둘의 긴장감은 계속 이어진다. 윤여정, 한예리와 함께 함으로써 <미나리>에서 그의 연기가 더욱 성숙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스티븐 연은 <미나리>를 통해 부친이 어떤 사람인지, 오해한 부분은 없었는지 확인하며 연기했다. 이민 가정을 이끈 그의 부친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의 관찰했다. 작품을 준비하며 부친을 인간으로 보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국 부친의 연기를 잘 소화했고 덕분에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 오스카상 후보로 지명됐다.
 

▲ ▲

그는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고 했다.

스티븐 연은 “감독의 시나리오가 훌륭해 그것이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며 “완벽한 시나리오에 적합한 배우들이 함께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이어 “위대한 것을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으로 작업했고, 가족처럼 행동하고 작업했다”고 밝혔다. 

제이콥 연기를 통해 국내 팬들뿐 아니라 미국인들의 공감을 끌어낸 점도 평론가들이 <미나리>를 좋은 영화라고 평가한 이유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나라다. 이민자가 힘들여 정착하는 이야기에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공감한다. 

그는 봉준호, 이창동 감독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며 이미 칸영화제에 다녀왔다. 특히 <버닝>에서는 벤 역할로 소시오패스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고급스럽지만 소시오패스의 성향이 가득한 벤은 스티븐 연이 보여준 새로운 연기 변신이었다. 그는 벤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새로움을 줄 수 있는 배우임을 이미 증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스티븐 연은 놀랄 만큼 다양성 있는 배우”라며 “<미나리> 속 그는 진정한 아버지를 표현하며, 무거운 짐을 진 아버지의 현실적인 초상화를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오래전부터 스티븐 연의 연기는 이미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새로움
다양성

스티븐 연은 미국인이지만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연기할 때 많은 차별을 당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프로덕션을 세워 아시아인들도 좋은 배역을 맡게 노력하는 것이 목표다. 다만 “인식을 바꾸고 아시아인 배우들에게 좋은 배역을 맡게 하는 선구자가 되기보다는 그런 선례 가운데 하나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이미 해외 영화제서 3관왕을 달성한 스티븐 연이  가장 권위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만큼, 그의 수상 여부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국산 ‘미나리’의 힘 오스카 개봉박두

6개 부문 후보 선정 <기생충> 기록 깰까

영화 <미나리>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발표된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6개 부문에는 각각 ▲작품상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조연상(윤여정) ▲감독상(정이삭) ▲작품상 ▲음악상이다.

오스카상 중 최고로 여기는 작품상 부문은 <미나리> 외에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 랜드>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맹크> 등이 함께 후보에 올랐다. 

독립 영화가 후보에 올랐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미나리>의 경쟁 상대로 예상하는 작품은 <맹크>다.

<맹크>는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다.

3월16일 기준 91관왕을 달성한 <미나리>가 오스카상 수상 영광을 차지할지 여부에 영화계가 주목한다.

미국 영화로 제작됐지만 한국어 대사가 주로 나온다는 이유로 골든글로브 외국어 작품상을 받아 논란이 생긴 <미나리>가 오스카에서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서 제외되며 작품상 수상에 기대감이 높은 상태다. 

오스카상 후보 지명에 정이삭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긴 여정을 지나오는 동안 후보로 지명되는 일이 생길 것이라는 상상을 전혀 못했다”며 “오스카의 순간이 왜 끝나지 않는 감사 인사로 가득 차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지난 2020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바 있다.

<미나리>가 <기생충>이 세운 기록을 갈아 치울지 여부에 많은 시선이 집중된 상태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4월25일(현지 날짜)에 시작될 예정이다. <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