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명실상부 재계 맏형 최태원 SK그룹 회장

꼰대 떼고 권위주의 벗는다

[일요시사 취재 1팀] 차철우 기자 = 지난달 24일, 최태원 SK 회장이 서울상공회의소 2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최 회장의 회장 임명 전부터 재계의 관심도가 높았다. 재계는 최 회장이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모았다. 최 회장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서울상공회의소에 전파할 것으로 보인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서울상공회의소(이하 서울상의)를 잘 이끌어 나가도록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다.” 최태원 회장의 출사표다. 견마지로는 ‘나라를 위해 바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춰 부르는 말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 하겠다’는 뜻이다. 4대 그룹(삼성, 현대자동차, SK, LG) 총수 중 처음으로 최 회장이 서울상의 회장에 선출됐다. 최 회장의 제안으로 회장단을 카카오 김범수 의장 등 젊은 기업인 위주로 선출했다. 최 회장은 상공회의소(이하 상의)의 파격 변화를 예고했다.

최태원표
경영 철학

경제단체의 새로운 회장이 된 최 회장의 행보를 경제계가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은 앞으로 기업과 경제계를 대변하고, 기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최 회장은 의원 총회에서 “미래 세대를 위해 올바른 경영 환경을 만들어 경제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강조했다.

최 회장의 취임으로 기업의 변화를 끌어낼지 여부가 주목된다.

지난 2016년 국정 농단 사태를 겪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점점 위상을 잃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상의는 “전경련을 탈퇴한 한국 4대 그룹 중 최초로 최 회장이 서울상의 회장에 선출된 것으로 경제계 발전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상의가 전경련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최 회장과 기업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대해 경제계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최 회장은 1998년 회장 취임 후, SK 경영 등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사업구조를 수출기업으로 사업구조를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SK의 자산은 최 회장 취임 당시 32조원이었으며 2019년에는 200조원을 돌파했다. 재계 순위는 5위에서 3위가 됐다. 매출액은 1997년 36조원에서 2018년 말 기준 184조원으로 5배 증가했다.

최 회장은 SK의 경영철학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요하게 여겼다. 재계는 최 회장이 SK의 목표와 방향을 명확히 했다는 평가다. 최 회장은 SK를 내수 중심에서 수출 중심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바꿨다. 취임 이후 글로벌 경영을 강화해 수출액이 1998년 8조원에서 2017년 75조원으로 9배 증가했다. 이렇듯 SK가 탄탄한 수출기업이 되도록 이끌었다.

최 회장이 ESG 경영철학을 갖게 된 계기는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소셜밸류커넥트 2019’ 에 참석한 티앤씨 재단 이사장과의 대화를 통해서다. 최 회장은 SK에서도 ESG를 항상 강조해왔다. SK를 경영하며 사회적 책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공유 인프라 등 사회적 가치를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4대 그룹 총수 처음으로 상의 수장
“견마지로 자세로” 파격 변화 예고

ESG란 기업 경영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고려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ESG라는 용어는 지난 2004년 UNGC(유엔글로벌콤팩트)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됐다. 최 회장은 세계 시장의 변화에 발 맞춰, SK에 ESG를 빠르게 적용했다.

최 회장은 지난 1월1일, SK 사내 메일을 통해 “기후 변화나 팬데믹 같은 대재난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곳을 먼저 무너뜨린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회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사회와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SK그룹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어 “ESG 경영 업무 중 하나로 수소 사업을 육성해 2025년까지 액화수소 28만톤을 생산하겠다”며 “수소 사업 진출은 회사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친환경으로 바꾸는 출발점”이라고도 했다.
 

▲ 김택진 NXC 대표와 김범수 카카오 의장

최 회장은 “우리가 키워가야 할 기업가치는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 ESG 및 고객신뢰 같은 사회적 가치 등과 같은 유·무형 자산을 포함하는 기업가치 구성요소다. 이를 활용해 시장, 투자자, 고객 등과 소통하고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ESG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ESG는 이미 미국과 유럽 등에서 채택해 활용하고 있는 경영 방식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 국내서도 최근 많은 기업이 ESG 경영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SK를 비롯해 카카오, 네이버 등이 도입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부터 서울상의 회장 후보로 언급되며 주목받았다. 최 회장의 서울상의 회장직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인물은 박용만 전 서울상의 회장이다.

젊게~
변화의 바람

박 전 회장이 최 회장을 강력하게 추천한 이유는 “최 회장이 항상 자신의 경영철학 ESG를 언급하며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상의 기업회원들 역시 최 회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재계 관계자들은 SK의 경영 철학인 ESG 철학을 상의에 적용해 회장직을 수행할 것으로 분석한다.

서울상의 회장단은 재계를 대표하는 대표적 집단이다. 그동안 상의는 IT 기업, 금융계 대표로 세울 적합한 기업인이 없다고 생각해, 경제단체 사이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최 회장은 상의 변화를 위해 IT 업계의 젊은 피들을 회장단에 임명했다.

그 결과, 서울상의는 전통 제조업, IT를 비롯해 4차 산업과 관련한 현안들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IT 계열과 스타트업 등에서 서울상의 부회장이 선출된 것 역시 최초다.

최 회장을 중심으로 그가 이끄는 회장단은 총 23명이다. 7명이 새로 합류하면서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 경영인들이 이끌던 자리를 대신해 급성장한 인터넷, 게임 분야의 신산업 주자들을 영입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내로라하는 국내 젊은 기업인들이 서울상의 회장단에 대거 선출됐다. 재계는 젊음을 불어넣은 적절한 세대교체란 시선이다. 신선한 피를 대거 수혈해 이뤄낼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했다.

4차 산업 붐이 일기 전, 장치 및 설비 중심의 제조업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업으로 급변하는 시대의 산업구도 변혁이 경제단체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산업구도가 갑작스레 변하면서 경제단체들이 해내야 할 일들도 그만큼 늘어났다.

상의 관계자는 “기존 기업인들로는 급변하는 사회의 문제들과 요구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재계 내부 변화, 세대교체로 새로운 사업 분야 현안들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새롭게 합류한 젊은 기업인과 기존 소속된 기업인들 모두 ESG를 주목해야 한다”며 “최 회장을 필두로 기업 간 ESG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기업
소통과 협치


서울상의 회장단은 새로 합류한 기업인 외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재계의 굵직한 인물을 포함한다. 최 회장은 큰형님으로서 3·4세대 기업 경영인과 2세대 경영인 간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상의가 젊은 피를 영입한 반면, 경제단체의 큰 역할을 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기업 중심이 된 전경련과는 다르게 18만개 회원 기업의 경제단체인 상의가 한마음으로 일치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문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서울상의는 다른 경제단체들과 다른 의견을 표출한 경우가 많았다. 경제단체들이 의견을 표출해도 서울상의는 참석하지 않아 대표성이 없다는 지적도 다수였다.

그런 이유로 최 회장과 새롭게 선출된 회장단의 임무가 막중하다.
 

IT업계 관계자는 “IT 기업들은 4차 산업 시대와 더불어 시가 총액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크게 발휘되고 있다. 카카오 김 의장 등의 서울상의 영입으로 기업의 의견은 정부에게 잘 전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3세대 기업인과 2세대 기업인의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지를 두고 많은 기업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젊은 피의 수혈은 상의의 변화를 말한다. 앞으로 최 회장과 3세대 경영인의 책임감이 커질 듯하다.


물론 맏형 최 회장과 회장단 앞에 꽃길만 놓인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 기업들은 경제 상황 및 정부의 기업규제 법안 등으로 큰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업인들은 이미 정부 및 정치인들과 수차례 이야기하고, 다양한 해결방안을 모색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느끼는 정책 부담감이 크게 증가했다. 현 정부는 기업들의 불만에도 연말·연초 상법, 공정거래법 등 기업규제 법안들을 하나둘 내놨고, 기업의 위기감은 점점 커졌다.

신·구 조화로 위기 극복 시너지 
기업 규제 관련 정부와 개선 의지

지난해 9월 집단소송법이 통과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비롯해 기업을 상대로 한 법안의 허점이 있음을 상의는 쉽게 간과할 수 없다. 최 회장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법안을 만들어 압박을 가하니,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 감독법)이 개정됐다. 많은 경제계 사람들은 기업들의 의견 반영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최 회장은 4대 그룹 맏형으로서 기업과 사회에 영향력이 매우 큰 인물이다. 최 회장이 서울상의 회장에 선출되자, 정치권과의 소통과 협치를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현재 최 회장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의의 영향력을 높이고, 기업들의 목소리를 적절히 반영해 18만개의 기업을 대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임기가 만료된 박 전 회장은 다음 주자 최 회장에게 무거운 바통을 전달했다.

지난달 18일 박 전 회장의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재임 중 상의에서 얻은 1순위 성과는 ‘샌드박스 규제’지만, 이와 관련해 기업들의 규제에 대해 더욱 애쓰지 못해 아쉽다”며 “국회는 기업을 도와주는 법안도 만들지만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법안도 만든다. 서울상의의 기업들이 합치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추가될 규제 법안에 대한 기업들의 의견을 내고, 이미 통과된 규제 법안에 대해 보완하도록 정부 및 국회와 소통하는 역할을 최 회장이 해 나가야 한다.

규제 혁신은 급격하게 변하는 세계시장 환경에서 국내 기업들이 미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필수 과제다. 기존 기업들의 새로운 사업과 스타트업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 해소 법안 처리를 정부와 논의해야 한다. 

아직 계류 중인 기업규제 법안과 다양한 기업들의 의견을 한 곳으로 모아 규제 해소 방안을 제시해 정부와 정치권에 제안해야 하는 큰 임무가 생겼다.

최 회장은 상의의 회장으로서 대기업에 좋은 것과 중소기업에 좋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대기업에만 유리한 정책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의에 포함된 중소기업들의 불만을 초래할 것이다. 잘못된 기업 관련 법안들을 고쳐나가는 데 힘쓰는 경제계의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

책임감
사명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정부와 소통해 법안을 조정하자는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이는 전임 박 회장이 계속해서 주장해왔으나 결국 마무리 짓지 못한 숙제다. 기업 발전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다. 양적으로는 국민 소득 증가와 국가 경제 발전, 질적으로는 생활 안정과 기업 발전을 꾀할 수 있다.

4대 기업 총수로서 최초의 서울상의 회장이 되어 맡은 임무는 굉장히 막중하다. 무거운 부담감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서울상의는 최 회장과 함께 파격적인 행보를 할 준비를 끝냈다. 최 회장이 서울상의를 이끌어 기업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해낼지, 앞으로가 주목된다.


<ckcjfd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SK 4대 핵심 사업 베팅은 계속된다 

최근 SK는 야구단, 석유화학계열사 지분 49%, SK바이오팜 지분을 일부 매각했다.

SK는 사업지주회사로 지분만 가지고 있는 순수지주회사가 아니다.

지난해 9월 ESR에 투자한 지분을 매각하면서 4800억원의 투자금액 대비 2.5배 이익을 챙겼다.

2019년의 투자, 회수와는 달리 SK바이오 팜 지분 일부는 직접 일군 곳을 매각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SK가 투자전문회사로서 성장하는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SK의 2021년 4대 핵심 사업은 첨단 소재(배터리, 반도체), 디지털(인공지능, 모빌리티, 인프라), 그린(수소·친환경에너지, 에너지·대체식품), 바이오(원료의약품, 위탁생산(CMO)·신약 개발)다.

주요 투자 분야는 미국의 수소 기업 플러그파워, 국내 전력 반도체업체 예스파워 테크닉스다.

최 회장은 핵심 4대 사업을 통해 SK를 글로벌 투자기업으로 육성할 것으로 보인다.

SK 관계자는 “계열사 지분 매각은 투자전문회사 SK가 투자와 육성, 기업공개, 투자금 회수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사례”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 회장의 이번 지분 매각을 통해 “SK가 관심 있는 4대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의 매각 지시와 많은 총알 준비는 향후 SK의 성장 동력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 반응도 긍정적이다. SK의 지분 매각을 통해 기업가치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 많다.

SK 관련 리포트에서는 “SK의 핵심 사업과 관련해 투자자산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매각을 통한 이익과 사업 방면으로도 큰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 회장의 단순한 감이 아니다. SK 경영에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이유다.

최 회장이 야구단을 매각한 이유도 눈길을 끈다.

야구단을 소유했던 SK텔레콤은 영업이익이 1조원 이상이다.

대부분의 야구단은 대부분 모기업의 파산으로 매각됐지만, SK의 경우는 다르다.

그렇기에 SK의 야구단 매각에 대해 여론은 많은 의문을 가졌다. 

최 회장은 야구단을 신세계에 매각해 1352억원의 인수대금이 생겼다.

매각을 통해 상업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등에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 회장은 ESG만큼 딥 체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눈에만 보이는 외형적 성장보다 미래 성장 사업을 개선해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의 경영 철학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최 회장은 SK의 딥 체인지와 ESG를 통해 다른 기업들의 미래 투자 방향성을 제시했다.

앞으로 SK의 투자는 더욱 큰 이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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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