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를 만나다> 김태리의 성공 공식

혜성처럼 등장해 더 빛나는 존재감
작품마다 줄흥행, 연기는 매번 호평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김태리는 등장부터 드라마틱하다. 국내에서 거장으로 꼽히는 박찬욱 감독의 복귀작 <아가씨>에 무려 1500: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을 뚫고, 노출 연기도 감행했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보인 김태리를 향해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매우 강렬했다.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빛을 잃은 배우들이 부지기수인 데 반해, 김태리가 써낸 서사는 데뷔 이후가 더 매력적이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했으며, 그 안에서의 보여준 연기는 매번 호평을 받기 충분했다. 신작 <승리호>에서도 김태리는 또 한 번 성공 공식을 써내는 듯하다. 

▲ 배우 김태리 ⓒ넷플릭스

배우 김태리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주체성이다. 서열이 낮은 하녀(<아가씨>)일 때도, 주위 친구들과 달리 민주주의를 억지로 외면하던 대학생일 때도(<1987>), 그는 당돌했다. 

재미와 주체성
단단한 신념

집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사회 초년병(<리틀 포레스트>)일 때도 매사 자발적이었으며, 나라를 지키는 독립운동가(tvN <미스터 션샤인>)의 얼굴에서는 당당함을 넘어 비장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김태리가 연기한 역할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늘 올바른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 인물이 정의로운 행동을 할 때도, 때론 정반대의 생각을 할 때도 김태리의 얼굴에는 늘 단단한 신념이 엿보인다.

이런 필모그래피가 가능한 이유는 김태리 자체가 시나리오를 볼 때 캐릭터의 주체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가 재밌는지와 연기하게 될 인물의 성향이 주체적이면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드러내는지를 확인한다고. 여러 고민 끝에 마음이 가는 작품의 키워드는 재미와 주체성이다.


신작 <승리호>와 장 선장도 김태리의 마음을 건드렸다. 특히 <승리호>를 연출한 조성희 감독은 김태리에게서 선장의 단단함을 봤다고 한다. 선원을 이끄는 리더인 선장은 건장한 체구에 카리스마를 갖춘 모습이 연상되는데, 조 감독은 야리야리한 김태리가 선장의 강인함을 표현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제 역할을 하는 선장의 이미지가 그려진 듯하다.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승리호>에서 김태리는 조 감독이 그린 독특한 이미지의 장 선장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핑크색 티셔츠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가죽 재킷을 입고 개성이 강한 선원들을 이끈다. 

조 감독은 김태리가 새로운 형태의 선장을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김태리는 자신과 선장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캐스팅 미팅 때 김태리가 조 감독에게 던진 질문은 “왜 제게 선장의 역할을 주시는 거죠?”였다. 

“미팅 때 감독님께 가장 먼저 여쭤봤던 게 ‘왜 저를 캐스팅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이었어요. 사실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었어요. 캐릭터는 좋았지만, 제 얼굴로 읽히지는 않았어요. 다른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대사를 읊으면 자연스럽게 제 얼굴이 보이거든요. 쉽게 떠올려지기도 하고요. <승리호>의 장 선장에게서는 그게 잘되지 않더라고요. 의상에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전형적이지 않은 선장, 모든 공은 감독님”
“SF 장르 최초 타이틀…국가대표 된 기분”

다른 작품에서 선장은 과격한 이미지를 품고 있다. 눈빛이 강하며, 비교적 과묵하고 욕설에도 능하다. 힘으로 주위를 제압한다. 영화 <해무>의 김윤석이 대표적인 선장의 이미지다. 선장이라는 무게감은 키 166cm, 가느다란 몸매의 김태리가 가진 겉모습과 대척점에 있는 게 사실이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밌어서 작품을 하고 싶었지만, 저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저처럼 순둥순둥한 사람이 조종석에 있을 때 전형적인 강한 사람이 앉았을 때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설득이 돼서 작품을 했는데, 많은 분이 신선하다는 평을 남겨주셨어요. 이 부분은 전적으로 감독님께 공을 돌리고 싶어요.”


김태리가 연기한 캐릭터가 독특한 선이 있었던 만큼, 작품 역시도 서사가 있다. 영화 <박쥐> 이후 무려 7년 만에 국내 복귀작이었던 <아가씨>, 엄혹했던 시기 수많은 영화인이 힘을 모아 만든 <1987>,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리틀 포레스트>, 김은숙 작가의 첫 사극 <미스터 션샤인> 등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이 사연이 다양하다. 
 

▲ ▲ⓒ넷플릭스

<승리호>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한국 영화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만든 SF 판타지 장르다.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활극)라고도 한다. 

우주 공간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승리호 선원들이 우연히 발견한 도로시(백예린 분)를 알고 위험한 거래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우주가 배경인 SF 장르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엄청난 분량의 CG로 인해 국내에서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장르다. 할리우드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SF 판타지 영화가 우리나라의 언어와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
우주 활극

다수의 인종이 경제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백인을 상대로 인류를 구출해낸다.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승리호> 배우들은 작품 내외적인 의미가 상당한 이 작품을 홍보하면서 ‘마치 국가대표가 된 기분’이라고도 표현했다. 

“관객으로서 SF 장르를 좋아해요. 한국 최초라는 이름이 설렜어요. 사실 최초라는 이름이 붙으면 웬만해서는 다 잘된 거 같아요. ‘최초는 다 잘돼’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고요. 제가 이 자리에 없었어도 <승리호>를 즐겼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얼굴까지 있다면?’이란 생각에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네요. 작품을 하면서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CG 수준이 정말 좋아서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SF 장르의 촬영 기법은 일반적인 장르의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 크로마키 세트에서 초록색 배경을 바탕으로 풍부한 상상과 함께 촬영해 나가야 한다. 눈앞에 상대가 없음에도, 마치 누가 있는 척 연기를 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있는 척 연기한다는 게 전문 배우에게도 매우 낯선 경험이다. 시선 처리도 매우 정교해야 할 뿐 아니라, 행동할 때 작은 차이만 있어도 화면에서는 크게 튄다. <승리호> 역시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고 한다. 

“어려움이 많았어요. 업동(유해진 분)이 있을 때도 찍고, 없을 때도 찍어야 했어요. 없이 찍는 게 진짜 OK 장면이에요. 유해진 선배가 업동이 모션을 했는데, 그건 CG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찍는 거였어요. 업동 없이 찍을 때는, 업동의 존재를 상상해야 했고, 만약 업동을 한 대 때렸다고 치면, 정확한 위치에 때려야 했어요. 현실적인 것들에서 많이 헤맸어요.”

<승리호>에는 걸출한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이야기의 화자 격인 태호 역에는 배우 송중기, 레게 머리를 딴 엔지니어 타이거 박 역할에는 <극한직업>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진선규, 장 선장이 승리호 선원 중 가장 먼저 픽한 로봇 업동은 유해진이 맡았다.

이 외에도 우주를 지배하는 설리반 역은 할리우드 배우 리차드 아미티지가 연기했다. 인물이 다양할 뿐 아니라 충분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 탓에 캐릭터들의 서사가 매력에 비해 축소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태호를 제외한 장 선장과 타이거 박, 업동은 전사가 많이 나오지 않고 최소한으로만 배치된다. 

거장의 선택
영광과 부담


“저도 아쉽긴 하죠. 하지만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인물이 네 명 나오고, 아이도 나와요. 감독님께서 그리는 세계의 이미지가 있어요. 특정 부분을 부각하고 축소하는 건 감독님의 결정이죠. 전사는 정말 많아요. 다 들려주면 좋겠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 완결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줄어들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 ▲ⓒ넷플릭스

<아가씨> 박찬욱 감독을 시작으로 <1987>의 장준환 감독,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 이번 조성희 감독, 앞으로 나올 영화 <외계인>의 최동훈 감독과 작업을 했다. <미스터 션샤인>의 작가는 국내 최고 흥행작가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서로 앞다퉈가며 김태리를 캐스팅하는 모양새다. 왜 거장은 김태리를 선택할까. 

“그 이유는 전혀 모르겠어요. 그저 감독님들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작품을 많이 하셔서 저를 계속 써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외국 작품 말고, 한국 작품으로요. 훌륭한 연출력을 가진 감독님들께서 저를 써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제 복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거장과 작업을 하는 건 영광스럽기도 하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거장의 연출 속에서도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으면, 그때는 배우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매번 연기적인 측면에서 호평을 받는 김태리도 부담감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다만 부담감을 잘 떨쳐내고 다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아가씨>부터 <미스터 션샤인>까지, 다 부담감이 컸어요. 저는 부담감을 잘 느끼는 편이거든요. <승리호>도 정말 부담감이 컸죠. 제작비도 다른 영화에 비해 큰 편이고, SF 촬영 현장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고요. 그 부담을 어떤 식으로든 희석을 해야 해요. 부담감이라는 게 저한테는 원동력이 되지 않아요. 빨리 없애는 게 중요해요. 그런 감정에 허덕이면서 힘들어하느니, 이 인물을 어떻게 묘사할 건지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는 걸 배웠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특히 더 많이 깨달았어요.”

“나와 닮은 진선규, 스승은 유해진·송중기”
“언제나 느끼는 큰 부담감, 허덕이지는 않아”


배우들은 작품을 통해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배우가 연기를 통해 관계를 맺고 끈끈하게 친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툼이 있는 경우 안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작품 자체가 우정의 실마리 역할을 한다. 송중기와, 유해진, 진선규, 김태리는 유달리 가까워진 듯 하다. 작품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친분이 엿보인다. 

“저는 선규 오빠와 정말 닮은 것 같아요. <승리호> 캐스팅이 확정되고 촬영 전에 우연히 봐서 인사를 나눴거든요. 짧은 순간이었는데 정말 선한 인간성이 느껴지더라고요. 이 분하고 연기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막상 촬영할 때 보니까 선규 오빠도 저처럼 의심을 많이 해요. 감독님이 OK 사인을 했는데, 그걸 믿지 않아요.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늘 해요. 다음날까지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해요. 저도 그렇거든요. 더 잘해보려는 마음이 있어요. 끝까지 고민해요. 서로 연기에 대한 회의를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최고 연장자 유해진에게는 연기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받았고, 송중기에게는 리더쉽을 배웠다고 한다. 
 

▲ ▲ⓒ넷플릭스

“제가 장 선장이 아니라 다른 역할을 했어도 재밌었을 것 같아요. 근데 업동은 잘할 자신이 없어요. 업동은 시나리오에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풍부해졌어요. 유해진 선배님이 만드신 부분이 많아요. 아마 제가 했으면, 그렇게 풍성한 느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중기 오빠는, 스태프 한 명 한 명을 다 잘 챙겨요. 정말 어른스러워요. 중기 오빠가 진짜 선장 같아요.”

데뷔 5년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사이에 놀라운 건 꾸준한 성공 공식을 써 내려갔다는 것이다. 출연한 모든 작품이 호평과 함께 높은 흥행률을 보였다. <승리호> 역시 넷플릭스 공개 후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조회 수 1위를 기록 중이다. 

그의 말처럼 인복이 있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도 있겠지만, 강인한 성격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낸 김태리의 힘도 기인한다. 특히 현장을 즐기게 되는 연기에 대한 애정이 성공 공식의 포인트로 해석된다. 

꿈꿔온
평생 직업

“학창 시절에 꿈이 있었던 학생은 아니었어요. 우연히 연극 한 편을 올리게 됐는데 그 과정이 모두 좋았어요. 밥 먹고 술 먹고, 밤새 소품 만들다 싸우고, 무대서 조명을 받고, 관객을 만나고 한 시간 넘게 서 있고요. 그리고 박수를 받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고 행복했어요. 금방 질리는 타입인데, 이 정도로 재밌으면 평생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도 어려운 구석도 많고, 헷갈리고 고민도 많은데요. 그런 어려움이 저만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그런 어려움을 축소해 나가면서 더 좋은 연기로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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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