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재벌’ KPX그룹 승계의 비밀

철퇴 맞은 통행세 꼼수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KPX그룹의 오너 일가 개인회사에 대한 부당지원에 제동을 걸었다. 그룹 차원에서 자행한 일감몰아주기를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통행세 논란이 불거진 오너 개인회사가 승계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이 부각되자, 강도 높은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양규모 KPX그룹 회장과 양준영 KPX그룹 부회장

KPX그룹은 1985년 해체된 국제그룹을 모태로 하는 화학 전문 중견그룹이다. 국제그룹이 해체되기 전 고 양정모 회장의 동생인 양규모 회장은 계열사였던 진양화학을 이끌고 나와 현재의 KPX그룹을 일궈냈다.

불어 닥친 외풍
분위기 급반전

그간 KPX그룹은 규제 사각지대에 위치한 덕분에 별다른 외풍을 맞지 않았다. 자산총액이 5조원을 밑돈 관계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대기업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점이 컸다. 하지만 2019년 4월 공정위가 중견그룹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조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이 무렵 공정위의 칼끝은 KPX그룹을 향했다.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중견기업의 사익편취 행위를 중점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KPX그룹은 공정위의 타깃이 됐다.

공정위는 CK엔터프라이즈가 KPX케미칼의 물품을 사다가 다른 계열사에 파는, 이른바 ‘통행세’를 챙겼는지 조사에 착수했고, 2년이 다 돼서야 처분이 내려졌다. 공정위는 지난 10일 불공정행위를 이유로 KPX그룹 계열사인 진양산업과 CK엔터프라이즈에 각각 13억6200만원, 2억730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 측은 “CK엔터프라이즈는 스펀지 원재료 수출 시장에 노력 없이 신규로 진입했다. 이후 독점적인 사업자로서의 지위가 만들어졌다”며 “대기업집단에 비해 감시와 견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중견 기업집단의 위법 행위를 엄정하게 조치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사각지대서 몸집 키우더니…
오너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KPX 계열사가 오너 개인회사에 독점사업권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부당하게 지원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오너 개인회사는 사업권에서 나온 수익으로 지주사 지분을 사들였고, 이를 경영권 승계 발판으로 활용했다고 공정위는 보고 있다.

진양산업이 CK엔터프라이즈에 제공한 사업권은 KPX 현지법인에 연간 수십억원어치의 원료를 독점적으로 납품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이 부당지원행위로 인해 CK엔터프라이즈가 인적·물적 기반 없이 시장에 신규로 진입할 수 있었고, 독점사업자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게 공정위의 해석이다.
 

▲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에 따르면 진양산업은 폴리우레탄 폼 제조에 필요한 원·부자재를 국내 업체에서 구매한 뒤 40% 이상의 이윤을 붙여 베트남 현지법인 비나폼(Vinafoam·진양산업 100% 자회사)에 수출해왔다. 비나폼은 이 원·부자재로 폴리우레탄 폼을 생산해 베트남에 있는 한국 신발 제조사에 납품했다.

진양산업은 비나폼에 수출하던 자재 중 폴리프로필렌글리콜(PPG)의 수출 영업권을 지난 2012년 4월부터 2015년 8월까지 CK엔터프라이즈에 무상으로 양도했다. PPG는 폴리우레탄·계면 활성제·브레이크유·부동액 등의 원료로, 한국에서는 KPX케미칼·금호석유화학·한국바스프·MCNS 4개사가 생산한다.

“엄정하게”
옥죄는 칼날


공정위는 PPG 수출 영업권의 가치를 36억7700만원으로 평가했다.

PPG 수출 영업권 이관 결정은 2개 회사 모두에서 재직하던 임원에 의해 이뤄졌다. 관련 계약 체결이나, 대가 지급은 없었다. 심지어 PPG 수출 영업권을 넘겨받은 CK엔터프라이즈는 실무 인력이 없어 2016년 12월까지 다른 계열사 직원에게 해당 업무를 대신 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PPG 수출 영업권을 이관받은 CK엔터프라이즈는 급격히 외형을 키웠다. 2011년 CK엔터프라이즈의 매출액은 부동산 임대업에서 나오는 3억2700만원에 불과했지만, PPG 수출 사업을 시작한 이듬해 43억7400만원으로 13배 이상 뛰었다.

KPX케미칼은 CK엔터프라이즈에 대한 그룹 차원의 일감 몰아주기에 깊게 관여했다. CK엔터프라이즈는 KPX케미칼과는 매입거래, 비나폼과는 매출거래를 이어왔다. 결과적으로 KPX케미칼로부터 매입한 상품을 베트남 법인에 판매해 수익을 얻어왔음을 알 수 있다. 

CK엔터프라이즈에서 발생한 일감 몰아주기는, 오너 개인회사의 외형을 불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이익을 향후 승계에 활용하는 대기업의 전형적인 내부거래 방식과 맞닿아 있다.

대물림 지렛대 역할 톡톡
후계자 힘 실어준 우회 지원

KPX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는 지주사 KPX홀딩스가 있다. 오너 일가는 지주사에 대한 확실한 지배력을 통해 나머지 계열사를 통솔한다.

KPX홀딩스 최대주주는 지분 19.64%를 보유한 양규모 회장이고, 장남 양준영 부회장은 10.4%의 지분율로 3대 주주에 올라 있다. 이 같은 지분구조는 양규모 KPX그룹 회장이 적통 후계자로 양준영 부회장을 낙점한 2011년이 돼서야 확립됐다.
 

▲ ⓒKPX

이전까지만 해도 KPX홀딩스는 지분 23.81% 보유한 양규모 회장의 확고부동한 1인 체제였다. 2대 주주는 7.92%의 지분을 갖고 있던 양규모 회장의 차남 양준호 사장이었고, 양준영 부회장의 지분율은 5.74%에 불과했다.

하지만 장자승계 원칙이 정해진 이후 양준영 부회장은 빠른 속도로 KPX홀딩스 지분을 늘렸다. 양규모 회장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4% 이상 지분을 처분했다. 이 틈에 양준영 부회장과 그의 아들인 재웅씨는 양규모 회장이 처분한 지분을 매입했고, 양준영-재웅 부자는 지분율을 12.61%까지 확대하기에 이른다. 

특수관계자의 지분을 고려하면 양준영 부회장은 사실상 최대주주나 마찬가지다. CK엔터프라이즈에 대한 양준영 부회장의 지배력 때문이다. 

전형적인
오너 챙기기


양준영 부회장은 지분 88%를 보유한 CK엔터프라이즈의 최대주주고, CK엔터프라이즈는 KPX홀딩스 지분 11.24%를 지니고 있다. CK엔터프라이즈가 향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양준영 부회장의 우군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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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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