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감싸는 '수상한 성북동' 이야기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8.27 17: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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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나는 대도들…설설 기는 부자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이 많다면 당장이라도 살고 싶은 동네. 고급 주택과 외국 대사관저가 많아 경찰과 보안업체가 수시로 순찰을 도는 동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도둑이 많은 동네. 서울 성북동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인 한 인사의 집에도 도둑이 들었다. 피해액은 '억'소리가 날 정도지만 한 달이 지나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간 큰 도둑'들이 '만찬'을 즐기고 가는 데도 신고도 제대로 못하는 '부자'들, <일요시사>가 그들을 집중 조명했다.

북쪽에는 북한산이 서 있고, 서울 성곽이 부채꼴로 에워싼 성북동은 예로부터 풍수적으로 명당으로 꼽혔다. 여기에 1968년 북악산길과 삼청터널이 개통되면서 도심과의 접근성이 높아졌고 재벌가 사람들의 호화 저택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보안수준'도 최고
'도둑수준'도 최고

성북동은 삼성, 현대, LG 등 재벌가 사람들과 주한외국대사관저들도 몰리면서 서울의 대표적 부촌으로 명성을 쌓았다. 타워팰리스 등 대규모 호화 주거시설이 들어선 도곡동과 '한국의 비버리힐즈'로 떠오르고 있는 청담동도 있지만 지금도 서울에서 재벌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는 성북동이다.

성북동이 유명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간 큰 도둑'이다. 성북동이 부촌으로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도둑들의 시선도 몰리기 시작했다. '대단한' 사람들이 몰려 사는 만큼 보안수준이나 경비상태도 삼엄하지만 그 만큼 외부와 단절돼 절도범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 절도 소식은 잊을만하면 '불쑥' 잘도 튀어나왔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 인사의 집에 도둑이 들었던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범행 한 달만이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달 22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서울 성북동 주택에 도둑이 침입해 10돈짜리 금목걸이 1개와 다이아몬드 반지 2개 등 금품을 훔쳐갔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가 "다이아반지가 몇 캐럿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해 정확한 피해금액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억대에 이르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집이 비었던 당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천 회장 가족은 당일 외출했다 귀가해 보니 천 회장 부인이 핸드백에 넣어뒀던 귀중품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집사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MB친구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다이아 도난 
이웃들 하나같이 묵묵부답 "냄새가 난다"

천 회장의 집 주변에는 다양한 각도를 비추는 CCTV가 설치돼 있지만 천 회장 가족은 도난 사실을 파악한 뒤 뒤늦게 자체적으로 보안 장비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절도범이 사전에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천 회장의 집을 범행대상으로 선정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또 비슷한 시기 천 회장 자택 인근의 모 기업체 사장이 사는 다른 고급 주택에도 동일범으로 추정되는 도둑이 침입해 수억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간 것으로 알려졌다.

성북경찰서는 강력반 두 개 팀을 투입해 수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발생 후 천 회장 주택 주변에 설치된 CCTV 화면 분석 등을 통해 용의자를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또 "인근 주택에도 도둑의 침입 흔적은 있으나 훔쳐 간 것으로 신고된 물품이 없다"며 "다른 집들에 대해서는 절도 미수에 그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천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상대 61학번 동기로 '대통령의 후견인'으로까지 불리며 정권 초기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2009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지난해에는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인 임천공업의 이수우 대표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47억여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6월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천 회장은 지난해 9월 '심장 발작 우려가 있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구속집행정지 요청이 받아들여져 현재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다.

MB 후견인 천 회장
정권 초 영향력 과시

지난해 9월 발생한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 집 절도 사건도 유명하다. 검거된 용의자가 15년 전 성북동과 한남동 일대 주요 재계 인사들의 집을 골라 절도행각을 벌여 일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대도' 정모씨였기 때문이다. 정씨는 1997년 7월 친형과 함께 성북동과 한남동 일대 재계 인사들의 집에서 수억원대 금품을 털다 경찰에 붙잡혔다. 정씨 형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간한 '한국재계인사록'을 입수해 기업 회장의 자택 5곳을 골라 대낮에 침입 모두 5억8000만원어치의 금품을 강탈했다.

이 회장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사돈이며 6공화국 시절인 1988∼1990년 동력자원부 장관과 1990∼1991년 상공부 장관을 지냈고 현재는 한국능률협회 회장으로도 재임하고 있다.

정씨는 당시 친형과 함께 최순영 전 신동아 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의 집만 골라 수억원의 금품을 훔쳤다. 당시 정씨 형제는 물방울 다이아몬드 등 희귀 귀금속 등을 훔쳤으나 오히려 피해자 상당수가 신분 노출을 꺼려 도난품을 찾아가지 않은 사건으로 더 유명했다.

털리고도 '쉬쉬' 알려질라 '벌벌'

이 회장 집에 대한 범행 수법도 대도다웠다. CCTV가 즐비한 성북동 부촌에서 그가 이 회장 집에 침입한 시각은 오후 2시30분께였다. 그 시각 이 회장의 집 대문은 열려있었다. 사건 발생 직전 택배가 배달되면서 현관문이 열린 채로 있었는데 범인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집 안으로 잠입했다.

빈 집은 아니었다. 가사도우미 한 사람이 집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범인은 집안에서 다이아몬드와 순금 거북이를 비롯해 5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훔쳐 달아났다. 범인이 집을 떠난 후에도 가사도우미는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한동안 알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완벽한 대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치밀하지는 못했다. 이 회장 집 주변 CCTV화면에서 정씨는 자주 등장했다.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온 뒤 경찰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휴대폰을 끄지 않아 경찰에게 실시간으로 현재 위치를 제공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범행 수법도 정씨가 1997년 벌였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1997년 성북동·한남동 고급 주택가에서 절도 행각을 하고 해외로 도피했다가 2006년 검거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7월 출소한 정씨는 결국 사건발생 14일 만에 충북 영동군 경부고속도로 황간휴게소에서 경찰에게 체포됐다.

보기보다 허술한
성북동 보안상태

경찰은 정씨를 체포한 뒤 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이에 경찰은 정씨가 훔친 금품을 홍콩 마카오에서 처분한 행적을 확인하고 현지에 수사관을 급파해 전당포에 맡긴 일부 장물과 장물을 처분한 돈으로 추정되는 현금 1100만원등 증거물을 추가로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구속영장을 재신청, 결국 정씨는 구속됐다.

정씨가 체포되던 날 또 다른 절도미수범인 전모씨도 경찰에 붙잡혔다. 정씨가 이 회장의 집을 털기 불과 15일 전 전씨는 한종우 국민대 이사장 자택에 창문을 통해 침입해 물건을 훔치려다 이사장에게 발각돼 격투를 벌이고 달아났다.

전씨는 비탈길이 많은 성북동 특성상 담장이 낮은 경우가 많은 것을 이용해 손쉽게 안으로 침입했다. 방범용 CCTV 또한 주로 골목 입구나 대문 앞에만 설치돼 있어 담장 쪽은 상대적으로 치안이 허술했다. 게다가 전씨가 열린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 경비업체의 경보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CCTV에서 맑은 날에도 우산을 쓰고 다닌 60대 남자를 추적, 절도 전과 6범의 전씨임을 확인하고 그를 검거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경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전씨가 평소엔 교회 장로로 활동하는 등 '이중생활'을 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 전씨의 부인과 이웃들은 그를 '착하고 마음 여린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부자들 웃고 있어도 눈물 나는 이유 왜?
상당수 신분 노출 꺼려…도둑들 ‘안심’

착하고 신앙심 깊은 남편이라 믿고 살아온 전씨 아내는 경찰조사에서 "남편이 일주일에 이틀은 새벽녘에 귀가하곤 했다"며 "얼마 전에는 갑자기 진주목걸이를 선물로 주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전시는 경찰 조사 과정 내내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절도사건은 우리주변에서 너무도 흔하게 발생한다.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전국 절도 발생수는 2003년 18만7352건, 2005년 15만5311건, 2005년 18만8780건, 2006년 19만2670건, 2007년 21만2458건 순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07년 기준 빈집에 대한 침입절도는 3만6392건으로 17%에 해당한다. 주변에서 절도피해가 발생하면 대부분 피해자는 절도사실을 경찰에 알리고 피해 물품을 돌려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지금껏 성북동에서 발생한 절도사건에서는 이런 적극적인 모습의 피해자들을 거의 발견할 수가 없다.

지난 2008년 10월17일 발생한 강성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집 절도사건이 대표적이다.

사건은 당시 새벽 3시께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강 전 의원의 집에 도둑이 들면서 시작됐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고 조사 결과 "도둑은 강 의원의 가족이 잠든 사이 다용도실 창문을 통해 침입했으며, 현금 155만원과 500만원권 수표 1매, 100만원권 수표 3매, 10만원권 수표 80매, 여성용 명품 손목시계 1개, 1캐럿 짜리 다이아 반지 1개 등 약 1억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고 밝혔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당시 SBS <8시 뉴스>에서 불거졌다. <8시 뉴스>는 2008년 11월8일 "모 의원이 도난당한 금품 가운데 귀금속 등은 국회의원 재산신고 내역에 없는 것들이다" "신고 몇 시간 뒤 피해 의원측은 도난당한 물건이 없다며 수사를 의뢰하지 않겠다고 밝혀 경찰에 절도 사건으로 접수되지 않았다" "해당 의원은 개 짖는 소리에 놀라 가족들이 신고한 것일 뿐 도둑이 든 적은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강 전 의원은 다음 날인 9일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의원이 자신임을 밝히면서 "절도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후 신고를 취소하거나 수사요구를 철회한 바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절도사실 사건발생
한달 만에 알려져

누구 말이 맞든 강 전 의원의 집에 침입했던 도둑은 어디선가 웃고 있었을 것이다.

천 회장 집 절도사건도 마찬가지다. 사건은 지난달 22일 발생했는데 알려진 것은 한 달 뒤인 지난 21일이다. 경찰은 피해자가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있어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건이 알려졌음에도 이웃들과 동네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뭔가 '냄새'가 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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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