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기업 ‘F&F’ 오너 챙기기 꼼수

지주사 앞세운 진짜 이유는?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패션기업 ‘F&F’가 기업분할을 공표했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경쟁력 강화를 도모한다는 게 회사가 내세운 분할의 기본 취지. 다만 진짜 이유를 단순 효율성 제고 차원으로 해석하긴 애매하다. 분할의 최대 수혜자가 오너 일가 구성원들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김창수 F&F 대표 ⓒF&F

의류 브랜드 MLB·디스커버리를 운영하는 F&F는 지난달 20일 패션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해 신설법인 ‘F&F’를 설립한다고 공시했다. 분할 기일은 2021년 5월1일이고, 존속법인은 코스피에 변경상장, 신설법인은 재상장할 예정이다.

F&F는 “사업경쟁력을 강화하고 전문화된 사업영역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함”이라며 “지배구조 변경을 통해 경영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궁극적으로 기업 및 주주의 가치를 제고할 것”이라고 분할의 이유를 설명했다.

분할 발표
지주사 출범

이번 결정은 F&F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됨을 뜻한다.

분할안에 따르면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될 존속법인 F&F홀딩스(가칭)는 투자업무에 힘을 쏟게 될 예정이다. 최근 F&F는 무신사, IMM사모펀드에 자금을 투입하는 등 타법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또 물류 사업을 영위하는 F&F로지스틱스도 맡는다.


신설법인은 해외사업(상해·홍콩 법인)을 포함한 패션 부문을 영위한다. 현재 회사 내부의 대부분 인력은 신설회사로 이동하게 된다. 

분할비율은 순자산 기준 존속법인 0.5025055, 신설법인 0.4974945로 산정됐다.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의 자산은 각각 2643억원(부채 15억원+자본 2628억원), 4101억원(부채 1457억원+자본 2644억원)이다.

패션 부문에서 파생된 실적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설법인의 분할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됐다고 볼 수 있다. 분할 공시 후 첫 거래일인 지난달 21일 F&F 주가가 전 거래일 대비 5.66%(5200원) 떨어진 8만6700원에 마쳤던 것도 사업 분할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지난달 23일 배송이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패션 부문 실적이 대부분이지만 분할 비율은 5대 5로 산정됐는데 존속하는 F&F홀딩스에 현금 등 자산을 많이 배분하고 부채는 적게 배분했기 때문”이라며 “투자자금 목적임을 고려해도 사업회사의 분할 비율이 낮다”고 평가했다.

감춰진
노림수

F&F는 경영효율화를 지주사 체제 도입 배경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번 분할의 진짜 목적은 경영권 안정화 차원쯤으로 비친다.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오너 일가가 가진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사 신주로 바꿔 지배력을 강화하리라는 해석이다.

F&F 오너 일가는 주주명부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최대주주는 지분 45.01%(693만311주)를 보유한 김창수 대표다. 김 대표의 부인 홍수정씨(3.57%, 54만9509주), 아들인 김승범 상무(2.79%, 43만1096주)와 태영씨(2.60%, 40만730주)도 3~5대 주주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2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9.16%, 141만511주)이고, 특수관계인 지분율 총합은 58.82%(905만8461주)로 집계됐다.

분할 후 김 대표는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의 주식을 45.01%씩 보유하게 된다. 인적분할 덕분이다. 인적분할은 분할 전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분할 형태를 뜻한다. 당연히 주주구성도 변하지 않는다.
 

▲ MLB 매장 ⓒF&F

다만 F&F가 지주사 체제를 천명한 만큼 향후 김 대표의 신설법인 지분율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보유한 신설법인 주식이 궁극적으로 존속법인 주식 늘리기에 활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인정받으려면 상장 자회사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존속법인 역시 지주사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신설법인 지분 20% 이상 보유가 필수인 셈이다.

그러나 F&F의 경우 존속법인이 분할 기일까지 확실하게 보유할 수 있는 신설법인 지분은 사실상 0.52%(7만9896주)에 그친다. 이는 존속법인이 분할 전 자기주식을 승계 받기로 한 분할 결정에 의한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분할 비율
승계 작업 ‘일석이조’ 효과

부족한 지분율을 채우고자 F&F가 꺼내 든 방법은 현물출자를 통한 공개매수였다. 현물출자는 회사 설립이나 신주 발행 시 토지, 특허권, 증권 등을 출자해 주식을 배정받는 것을 뜻한다. 

F&F는 분할을 결정하면서 신설법인 지분에 대한 공개매수 방식의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예고한 상황이다. 신설법인 주식을 보유한 모든 주주 중에서 공개매수에 응모한 주주로부터 주식을 현물출자 받고, 존속법인의 주식을 신주로 발행해 부여하는 방식이다. 

현 시점에서 현물출자 유상증자 규모 및 구체적인 일정 등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공개매수가 김 대표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건 확실하다. F&F 주식을 들고 있는 주주들의 경우 굳이 현물출자를 고민할 정도로 존속법인의 주식이 매력적이지 않은 탓이다.

기존 매출에서 패션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상회하는 데다, 현금 창출 능력도 신설법인이 월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내년 5월 분할 재상장하게 되면 F&F의 주가는 상승, F&F홀딩스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김 대표의 입장은 일반 투자자들과 다르다. 경영권 강화 측면에서 보자면 사업회사 주식을 팔아 지주사 주식을 사들이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김 대표가 신설법인 주식을 현물출자로 F&F홀딩스에 넘기면 F&F홀딩스는 단숨에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김 대표는 F&F 주식을 넘긴 대가로 F&F홀딩스 주식을 배정받게 된다. 이 경우 ‘오너 일가→F&F홀딩스→F&F’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굳건해진다.


틈새 노린
히든카드

분할 결정은 향후 승계 과정에서도 이점으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김 대표(1961년생)의 나이를 볼 때 현 시점에서 승계가 오너 일가의 당면 과제는 아니다. 다만 오너 2세인 김 상무의 지분율(분할 전 2.79%)이 미미한 상황이기 때문에 김 상무의 지주사 지분율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를 감안하면 김 상무 역시 공개매수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 김 상무가 F&F 지분 2.79%를 현물출자하고 F&F홀딩스 주식을 배정받으면, 김 상무의 지주사 지분은 유상증자 규모에 따라 큰 폭으로 확대될 수 있다. 향후 승계 과정을 염두에 두더라도 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이 오너 일가에 이득이다.

현재 김 상무는 디지털본부를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본부는 전사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진행하고 있는 곳으로, 온라인 채널 역량 강화에도 힘을 싣고 있다. F&F홀딩스 휘하에 편입된 만큼 그룹의 온라인 사업 전략 중심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유 뻔한
급한 결정

한편 분할 기일을 내년으로 잡은 건 세제혜택을 고려한 결정으로 읽힌다. 정부는 주주가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회사에 현물출자 할 때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특례를 2022년부터 중단할 예정이다. 인적분할 이후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통해 지주회사로 변신하려는 기업의 주주는 차익에 대한 세금을 4년 거치 후 3년간 분할 납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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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