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억 두산인프라코어’ 재벌그룹 도련님들의 쟁탈전

닮은 듯 다른 동상이몽 대리전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매물로 나온 두산인프라코어를 누가 품게 될지 재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다수의 기업이 인수 의향을 밝힌 가운데, 재계의 눈은 GS건설과 현대중공업을 향한다. 최근 들어 한층 명확해진 두 회사의 후계 구도가 두산인프라코어의 미래를 결정짓는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두산타워 ⓒ두산

두산그룹은 지난 4월 채권단에 최종 자구안을 제출한 뒤부터 계열사 매각과 유상증자 등을 통해 현금 마련에 골몰했다. 두산솔루스, 클럽모우CC, ㈜두산 모트롤 사업부, 네오플럭스 등에 대한 처분 작업이 사실상 종료됐고, 두산타워와 두산건설도 매각을 진행 중이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에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매각 작업
본격화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작업은 넉 달 전부터 본격화됐다. 지난 7월24일 두산그룹은 매각 주관사 크레디트스위스(CS)를 통해 인수후보들에게 투자 안내서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매각 대상은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6.07%(7550만9366주)다. 

지난달 11일 종가 기준 두산인프라코어 시가 총액이 1조8675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지분의 시가는 약 5200억원이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감안하면 입찰 가격은 8000억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최근 실적이 매각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올해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9756억원, 15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48%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선방했다는 반응을 내놨다. 실적 발표에 앞서 증권가에서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두산인프라코어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5%, 50% 이상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매물로 나온 알짜 회사
수천억 현금 확보 관건

다만 재무적 투자자(FI)들과의 소송전은 걸림돌로 남아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11년 'DICC(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를 설립하면서 IMM프라이빗에쿼티, 미래에셋자산운용, 하나금융투자프바이빗에쿼티(PE) 등 FI로부터 3800억원을 유치하는 대신 20%의 지분을 넘겼다.

이후 DICC 상장이 수포로 돌아가자 FI들은 지분을 제3자에게 다시 매각하는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했지만 무산됐고, 이들은 2015년 7196억원대 주식매매대금 지급 소송을 냈다. 1심은 두산인프라코어, 2심은 투자자들이 승소했고, 현재 대법원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매각 작업이 끝난 상태에서 최종심 결과가 두산인프라코어 측에 불리하게 나오면 인수자가 배상금 일부를 떠안게 될 수 있다.

두산밥캣이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도 변수로 작용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분 51.05%(152만1502주)를 보유한 두산밥캣의 최대주주다. 두산밥캣은 두산인프라코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두산밥캣의 올해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9638억원, 643억원이었다.
 

▲ 정기선 현대중공업 지주 부사장과 허윤홍 GS건설 사장

재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 경영진은 예비입찰에 참여한 인수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이달 내 본입찰을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28일 진행된 예비입찰에는 예비인수 후보로 ▲현대중공업지주-KD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 ▲GS건설-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 ▲MBK파트너스 ▲글랜우드 프라이빗에쿼티(PE) ▲이스트브릿지 ▲유진기업 등 6곳이 이름을 올렸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작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인수 의향을 드러낸 기업들 사이에서 유력 후보군이 추려지는 분위기다. 현대중공업, GS건설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후보 여럿 
누구 품에?

증권가에서는 실질적인 인수 경쟁은 현대중공업과 GS건설 사이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연계 효과를 기대하기 유리한 사업모델을 갖췄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두산인프라코어 인수가 성사되면 국내 건설기계 부문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룹의 건설기계 부문 계열사인 현대건설기계는 국내 시장에서 두산인프라코어에 이은 2위 사업자고, 인수가 이뤄지면 글로벌 건설기계 선두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GS건설 역시 두산인프라코어를 통해 기존 건설사업 부문과의 연계가 가능하다. 여기에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해외 인프라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동반 진출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예상된다. 

특히 GS건설이 스마트시티 사업에서 건설업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만큼 두산인프라코어가 가진 스마트 기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드론을 활용한 첨단 측량, IT 스마트 기술 다수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서 현대중공업과 GS건설이 최종 후보로 부각될 경우 인수전은 후계자들 간 대리전 양상을 띨 것으로 점쳐진다. 양사 후계자들이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일을 담당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은 최근 그룹 내 신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 부사장은 비조선사업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직과 함께 그룹의 신사업을 발굴하는 미래위원회의 이사장 자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입장 달라도
셈법은 비슷

미래위원회는 약 20명의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주니어 보드 형태의 태스크포스(TF)다. 정 부사장이 미래위원회 이사장을 맡고 그룹의 3대 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수소·AI(인공지능)를 제시하며 관련 사업 육성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간 정 부사장이 신사업 발굴에 앞장섰던 만큼 미래위원회의 중요성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룹의 주력 업종이 저성장 국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 부사장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등 친환경 사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지만 코로나19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수주 상황은 녹록지 않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연간 수주 목표치를 연초 계획 대비 37%나 낮췄다.
 

▲ 두산타워 ⓒ두산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까지 성사되면 현재 재계 순위 9위 기업집단인 현대중공업그룹이 7위로 도약이 확실시된다. 조선업 빅딜과 건설기계 빅딜로 시장을 재편하고 그룹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수전이 순조롭게 끝날 시 정 부사장의 역량도 한층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다.

허창수 GS건설 회장의 장남인 허윤홍 GS건설 사장 역시 두산인프라코어 인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GS건설에서 대리로 업무를 시작한 허 사장은 재무팀장, 경영혁신담당, 플랜트공사담당, 사업지원실장을 역임했다. 2018년 신사업 추진실장 부사장으로 보임한 뒤, 지난해 12월 2020년 정기 인사를 통해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후계자들 능력 입증 시험대
존재감 발휘할 절호의 찬스

허 사장은 최근 4세 경영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GS건설이 다양한 신사업 분야로 확장을 모색할 수 있었던 데에는 허 사장의 활약이 컸다는 평가다. 실제로 GS건설이 3분기 시장의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낸 것도 허 사장이 담당하는 신사업 부문의 공이 지대했다. 3분기 신사업 부문 매출은 189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0% 급증했다.

허 사장의 성과로는 올해 인수한 글로벌 모듈러 업체 폴란드 단우드와 영국 엘리먼츠를 꼽을 수 있다. 두 회사의 인수에만 2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모듈러 두 업체의 유럽 실적이 본격적으로 반영돼 매출과 신규수주 모두 성장했고, 향후 사업의 본격화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2차전지 재활용 관련 신사업에 대한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GS건설은 지난 1월 포항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 내 재활용 규제자유특구에서 2차전지의 재활용 사업을 위한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정부의 전기차 보급 확대 기조에 따라 수혜가 예상되는 사업이기도 하다.


허 사장이 공격적인 사업확장으로 신사업에서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만큼,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은 자신의 경영 능력을 대내외에 입증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통해 건설장비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신사업 발굴과 사업 다각화를 이룰 수 있고 이 성과를 기반으로 그룹 내에서 더 탄탄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 

이력서 넣을
굵직한 한줄

재계 관계자는 “정기선 부사장과 허윤홍 사장에게는 그룹의 미래 먹거리 발굴이라는 중대한 임무가 주어진 상황”이라며 “두 사람은 후계자이기에 앞서 자리에 걸맞은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 역시 같은 흐름에서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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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