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정식으로 연기를 한 지 4년째다. 2005년 인기 드라마 <마이걸>로 사람들에게 ‘에릭의 연인’이 아닌 ‘탤런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오는 5일 영화 <마린보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 같다. 요즘 박시연은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앞세우고 아주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가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두려운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신세대다. 뒤늦게 얼굴이 알려지고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두 배 이상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동안 표출되지 않았던 내면의 ‘끼’를 마음껏 펼쳐보고 싶다”는 탤런트 박시연을 만나보았다.
박시연은 영화 <마린보이>에서 도발적인 매력을 드러낸다. <마린보이>는 단속을 피해 사람이 직접 수영으로 바다를 건너 마약을 운반하는 음모를 둘러싼 얘기다.
박시연이 맡은 유리는 강사장(조재현)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물질적으로 풍부한 삶을 살지만 답답하다고 느끼는 인물.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되는 천수(김강우)에게 목적을 갖고 접근한다는 점에서 ‘팜므파탈’로 묘사되곤 했다.
유리의 마음보다 몸이 힘들어
“유리는 팜므파탈이 아니에요. 스토리 전개상 두 남자를 파멸로 이끌긴 하지만 눈빛을 요염하게 한다던가 옷을 화려하게 입는 식으로 팜므파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거든요. 워낙 강한 역이라 오히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연기를 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어요.”(웃음)
박시연은 유리의 사랑에 대해 ‘의리’라는 표현을 썼다.
‘유리’는 팜므파탈 캐릭터 아닌 신비로운 캐릭터
2007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상 수상
“이용하기 위해 다가갔지만 결국 사랑을 택하죠. 저는 그걸 ‘의리’라고 표현하는데요. 유리는 의리 있는 스타일이에요. 남자만 의리가 있는 게 아니거든요. 사랑이란 감정 뿐 아니라 의리와 믿음도 중요한 것 아닐까요.”
박시연은 유리의 감정을 연기하는 것보다 액션을 소화하는 게 더 힘이 들었다. 납을 허리에 매단 채 와이어를 달고 크레인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30m를 떨어져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는 장면을 찍을 때는 공포를 느꼈다.
“수십 차례 반복하며 물속으로 들어가는 공포,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껴야 했어요. 물귀신 될 뻔했죠.”
<마린보이>는 재편집 끝에 15세 이상 관람등급으로 개봉된다. 이 과정에서 잘려나간 박시연과 김강우의 베드신도 관심이 높았다. 박시연이 김강우와 베드신을 촬영했다는 소식은 단연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미리 공개된 스틸에서 박시연은 가슴골이 드러난 티셔츠를 입고 담배를 손에 쥐고 있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연기는 운전과 비슷한 거 같아요”
“<쌍화점> <미인도> 등에 비하면 말할 것이 못 돼요. 천수와 유리의 위험한 사랑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봐 주세요. 노출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요. 확 드러내기보다 분위기가 굉장히 야하게 그려졌던 것 같아요. 유리는 살아남기 위해 남자를 유혹해야 해요. 도발적인 대사도 많지만 베드신은 딱 15세 등급이었어요.”
얼굴은 아직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대부분 믿을 정도로 동안이다. 하지만 1979년생으로 올해 만 서른이 됐다.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생활했다. 고교 재학 중 미국에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롱아일랜드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다.
스크린 데뷔작 영화 <사랑>으로 2007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상을 거머쥔 박시연은 이후 서서히 자신을 썸바디(Somebody)로 예열하는 재능을 발휘했다. 엉뚱한 매력을 가진 스파이(다찌마와리)와 회장 경호원과 사랑에 빠지는 세컨드(사랑)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건 2006년 1월 전파를 탄 드라마 <마이걸>이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연개소문> <달콤한 인생>에 출연하며 3년간 쉼없는 행진을 이어왔다.
“<마린보이> 끝내놓고 두 달간 집에 있는데 갑자기 무엇부터 해야할지 손에 안 잡히는 거에요. 사람들은 바쁘게 휙휙 움직이는데 나만 신발 밑창에 접착제가 붙어있는 느낌 같은 거…. 한순간에 저 혼자 바보가 된 것 같은 낭패감에 시달렸어요.”
<구미호가족> 때와 3년이 지난 지금 연기 열정을 양팔저울에 단다면 어떤 평가가 나올까.
“무게는 똑같겠죠. 굳이 우열을 따지라면 그래도 현재가 조금 더 무거워지지 않았을까요. 연기는 운전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초보운전일 때는 잘 모르니까 겁 없이 직진만 하잖아요. 그러다 접촉사고도 나고 우여곡절 겪은 뒤엔 방어 운전이란 걸 하게 되죠. 무서우니까. 저도 연기를 하면 할수록 힘들고 무서워져요.”
사진 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