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토로> ‘엔카 여왕’ 계은숙이 감췄던 이야기

“한 사람의 삶 박살…끝까지 싸울 겁니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한류 최초의 원조스타는 누구일까. 국내의 수많은 연예인이 일본서 인기를 얻었지만, 최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수 계은숙이 있다. NHK <홍백가합전> 7회 출연자일 뿐 아니라 고이즈미 총리가 팬클럽 회장이기도 했던,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한류스타가 계은숙이다. 2007년 이후 절정의 위치에 있던 그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고 있는 엔카의 여왕 계은숙 ⓒ배승환 기자

일본서의 잘못으로 한국으로 온 이후 일이 꼬여만 갔다. 마약과 사기라는 불명예에 휩싸였다. 실수도 있었지만, 억울함이 더 컸다. 13년간 묵혀왔던 그 억울함을 풀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싸우기 위해 기운을 낸 계은숙을 직접 만났다. 

어쩌다…
잘못된 만남

지난 12일 오후 4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418호 앞. 욕설이 들렸다. “야, 이 천벌 받을 새끼야” “쓰레기 같은 인간아” “하늘이 두렵지도 않냐. 이 나쁜 새끼야.” 

거칠고 험한 말을 내뱉는 이 여성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욕을 들은 남자는 화들짝 놀란 기색이었다. “어이, 어이”라면서 자리를 피하기에 바빴다. 남자는 도망쳤고, 여성은 쫓아다니며 욕을 했다. 욕한 사람은 가수 계은숙이고, 남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5촌이자, <시사인> 주모 기자를 통해 사기 잡범으로도 알려진 김모씨(59)다.

계은숙은 어쩌다 이렇게 분개하게 된 것일까. 그 사연은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김씨를 처음 본 건 30년 전쯤 될 거예요. 제 팬이기도 했고, 거칠게 말하면 스토커에 가까웠어요. 어려서부터 쫓아다녔어요. 얼굴에 주근깨도 있고, 말더듬이였어요. 솔직히 전 좀 그를 살짝 모자란 아이로 봤어요.”

1977년 샴푸 회사 광고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을 발표하면서 MBC <10대가수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한 뒤 ‘나에겐 당신밖에’ ‘다정한 눈빛으로’와 같은 히트곡을 통해 인기 연예인으로 자리 잡았다. 

인기 연예인이었던 것도 잠시, 당시 사랑하던 남자와의 문제가 있었고, 소속사의 압박에 못 이겨 방송 펑크를 내고 연예계 생활을 중단한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다다미방 생활을 전전하던 중 다시 가수로 데뷔했고, 그때부터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스타가 된다. 

일본의 <홍백가합전> 7회 출연은 국내 최다 횟수다. 일본 열도를 들썩인 가수 보아가 6회 출연인 것을 감안하면,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마약, 사기…꼬이고 꼬인 오해들
“사기꾼이란 불명예 이젠 벗을 것”

남진, 나훈아, 조용필보다 앞서 일본을 제패했다. 일본 총리들이 그의 팬클럽 회장 출신일 만큼, 일본 내 엘리트들도 그를 좋아했다. 일본은 여전히 그를 그리워한다. 아직도 수천만원의 로열티를 내고도 그의 공연을 보고 싶어한다.

그런 그에게 어둠이 엄습한 건 2007년이다. 일본서 마약을 복용한 혐의로 불명예를 얻었다. 일본의 연예기획사가 일본으로 귀화하라는 제의를 거부한 탓에 눈 밖에 났다가 문제가 생겼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녀가 일본으로부터 추방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 제 발로 나왔어요. 추방당한 게 아니에요. 그때 홀어머니가 당뇨로 지병이 있으셨는데, 약이 없었어요. 약을 빨리 처방해 드려야 해서 급히 나오다가, 연장 사유를 정확히 제출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해서 들어갈 수 없게 된 거예요. 들어가지 못하는 건 맞지만, 쫓겨나온 건 아니었어요.”

일본 귀화를 거부한 인기 한국인은 2008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무대에 서서 노래 부르는 것이 행복했지만, 워낙 많은 일을 겪은 데다 세간에 알려진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꼭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가수 생활을 완전히 중단하려고 마음을 먹고, 한국서 생활하던 2011년쯤, 우연히 알게 된 옥모씨를 통해 한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그게 김씨였다. 
 

“일본에 있을 때는 전혀 연락을 안 하다가, 오랜만에 봤는데 반가웠어요. 어찌 됐든 순수했던 시절에 알았던 사람이니까. 한국에 와서 어려운 일들을 상의하다 가까워졌어요. 그는 그때도 숱한 사기를 치고 도망다니던 신세였는데 저는 몰랐죠. 가수로서 노래 부르는 것만 생각하고 살다 보니,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몰랐어요. 오래전에 알게 돼서, 가족처럼 대한 거죠. 제가 돌아가신 김종필 전 총재하고도 잘 아는 사이였어요. 신변이 완전히 확실했어요. 그래서 더 믿었죠.”

그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씨는 계은숙이 한국의 물정에 취약한 것을 이용해 여러 제안을 했다. 출발은 신사동 소재의 집을 대신 팔아주겠다는 것이었다. 약 50억원가량 하는 이 집을 대신 정리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귀화 요구
절대 안돼

“저는 그때 한국 생활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가 보니, 친구도 없었어요.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일본이랑 문화가 다른 것도 잘 몰랐죠. 담보대출이 싫어서 집을 정리해서 일부는 내가 쓰고 일부는 집을 살 계획이었어요. 김씨가 대신 처리해주겠다고 해서 믿었는데, 다운계약서를 썼고, 그것을 자기 지인인 편씨의 후배한테 팔았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그 후배는 은행 대출로만 그 집을 샀다고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50억원 정도였고, 현 시세는 150억원에 육박하는 큰 돈이에요. 돈을 받고 명의를 이전해주는 게 맞는데, 2013년 5월에 명의를 변경해주면 돈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했어요. 사기를 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못 했죠. 당연히 돈을 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11건의 사기전과가 있는 김씨는 집을 판 돈을 갖고 있음에도, 돈을 주겠다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미룬다. 그러면서도 계은숙의 주위를 맴돈다. 계은숙은 이미 신변이 너무 확고한 그가 돈을 당연히 갚으리라 생각하고, 거처를 호텔로 옮긴다. 

“짐 일부는 창고에, 일부는 호텔에 있었어요. 수중에 돈이 거의 한 푼도 없었어요. 모아뒀던 돈이 일본에 묶여있기도 했고, 저도 집을 팔아서 그 돈으로 생활을 하려고 했던 터라 돈이 없었죠. 그때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어요. 제가 어머니를 소중히 여긴다는 건 제 주변 모두가 다 알아요. 당시에 어머니가 치매가 있으셨어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둔다는 게 너무 서글픈 일이었어요. 그때 호텔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돈은 준다고 하는데 안 주지, 상황은 형편없지, 정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그날 일본서 18년 동안 운전기사하던 친구가 약을 줬어요.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까 준 거예요. 두통약인지 그 약인지 긴가민가 했어요. 너무 아프니까 일단 커피에 타 먹고 잤어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다. 마약이었다. 다음날 아침 두통이 가시기도 전에 경찰이 찾아온다. 

“아침 9시에 경찰이 찾아왔어요. 밤 9시에 먹었는데, 아침 9시에 경찰이 온 거죠. 저는 손도 못 써보고 현행범으로 잡힌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매니저는 마약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들어가면서 3명이 풀려났어요. 검찰과 마약상 간의 기획수사에 놀아났다고 생각해요. 검찰이 저한테 계속 또 마약한 사람 누구 아냐고 계속 말하라고 했어요. 제가 누굴 알아요. 저는 이미 모든 진실을 말했어요. ‘또 다른 마약범은 모른다’고 하면, 계속 제 이름으로 기사가 나갔어요.”


“박근혜 친인척이 진짜 사기꾼”
9년 이어진 악연 “너무 혐오”

계은숙은 바로 감옥에 가게 된다. 너무 처량한 신세에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생을 마감할까 하는 고민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죽고 싶었던 중에 또 한 사건이 발생한다. 외제차 리스 사기 사건이다. 

김씨가 계은숙을 도와주겠다며 나서던 시기, 신용불량자였던 김씨는 외제차를 리스하겠다는 명목으로 계은숙에게 보증인이 돼달라고 부탁한다. 국내에선 운전면허증도 없었고, 자기를 도와주고 있었던 김씨였기에 계은숙은 선뜻 도움을 주려 한다. 이 부분이 세간에 알려진 계은숙 포르쉐 리스 사기 사건이다.

이 사건까지 겹쳐 계은숙은 총 1년4개월을 복역한다. 마약으로만 8개월 징역을 선고받았는데, 이로 인해 6개월을 더 감옥서 지내게 됐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고 있는 가수 계은숙 ⓒ배승환 기자

“보증인이 돼달라고 해서, 그렇게 갔죠. 저도 일본에 있을 때 차가 두 대였어요. 일본서 차를 사려면 서류를 10개는 작성해야 해요. 당연히 보증인이 되는 건지 알았죠. 인감을 달라고 하기에 위임했어요.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어요. 저는 그 차를 탄 적도 없어요. 차 키를 받은 적도 없고요. 김씨가 탔어요. 근데 나중에 언론을 통해 알게 됐어요. 제가 그 차의 차주라는 사실을요.”

“이미 김씨는 외제차를 리스해 담보대출을 받는 등 그쪽 사기에 능통한 인간이었던 거죠. 판사는 제가 나쁜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변호사라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돈이 하나도 없어서 변호사도 못 구했어요. 그냥 눈 뜨고 당한 거죠. 그 사건으로 사람들은 저를 마약중독자에 사기꾼으로 알고 있어요. 마약을 한 건 사실이지만, 중독은 아니에요. 후회는 없어요. 일본서도 정말 너무 힘들었어서. 그런데 사기는 정말 불명예입니다. 전 그렇게 살지 않았어요. 눈물 나요. 정말.”


계은숙이 김씨와 연루돼 사기로 고소된 사건이 또 있다. 김씨의 지인이 계은숙에게 1억원을 빌려준 건이다. 지난 12일, 서울지법서 두 사람이 만난 이유도 이 사건 때문이다. 형사 사건이다. 

통장이 없던 계은숙은 김병규의 제안으로 통장을 만든다. 그리고 이 통장을 김씨가 사용한다. 

믿음이 
배신으로

“김씨가 제가 일본에 묶인 돈을 정리하고 돌아오려면 약 3억원 정도 필요하다면서 돈을 구했어요. 그중 하나가 그 지인의 돈이었어요. 제 명의로 된 통장에 1억원을 넣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돈을 하나도 만지지 못했어요. 거래 내역을 보면 다 나와요. 제가 썼는지 김씨가 썼는지. 김씨는 그 돈으로 자기 아내한테 돈을 주고 그랬던 것 같더라고요. 제가 나중에 돈을 넣어준 분한테 3000만원은 줬어요. 저 때문에 빌렸다고 하니 도의적으로 준 거예요. 차용증도 썼어요. 나중에 김씨가 7000만원은 준 거 같더라고요.”

“형사 고소라서 돈을 받았음에도, 재판은 이어지고 있는 거죠. 이 과정도 복잡해요. 변호사를 세 명이나 바꿨거든요. 아까 말했던 옥씨가 진짜 나쁜 놈이에요. 제 옆에서 계속 저를 감시한 거죠. 변호사 사무실 사무국장인데, 그 사람이 변호사를 붙여줬어요. 그러면서 계속 김씨 편을 들고 있었던 거죠. 변호사도 이상했어요. 제가 수임한 변호사인데 제 편은 안 들고 엉뚱하게 돈 달라는 소리만 하더라고요“.

“이상했는데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됐죠. 옥씨가 그렇게 작당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요. 오랫동안 봐서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저에게 시종일관 배신하고 있었던 거예요. 옥씨나 김씨나 다 그 패거리들이에요. 그놈들이 제 인생을 망가뜨렸어요. 진작 알지 못하고 순진하게 믿었던 제 잘못이기도 한데, 정말 억울합니다. ”

지난 12일 법정에선 의외의 증언이 나왔다. 당일 증인으로 참석한 이모씨는 김씨와 계은숙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씨에 따르면 김씨는 계은숙과 동거하는 사이라고 주위에 알렸다고 했다.

<시사인>서 근무한 주 기자가 대중을 위해 쓴 사법기관 사용설명서 프로젝트 3화 ‘검찰이 나를 부르면 당황하지 말고 이렇게’에 김씨가 등장한다. 글에는 김씨가 계은숙의 집에 기거한다는 제보를 받은 기자가 아침 7시에 계은숙의 집을 들이닥치는 과정이 나온다. 그때 계은숙이 부스스한 얼굴로 나왔다고 적혀 있다. 이 내용만 봐서는 둘이 사실혼 관계로 오인할 수 있다. 

“마약은 기획수사로 추정, 손발 묶인 채 당했다”
“사실혼 사실무근…예쁘지 않은 꽃은 꺾지 않아”

법조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실혼 관계가 증명되면, 사기나 재산 관련 범죄서 죗값을 낮출 수도 있다고 한다.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처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계은숙은 김씨가 이 점을 노렸다고 생각했다. 

“주 기자도 속았을 수 있어요. 그 제보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네요. 그때는 제가 김씨와 같이 다니던 시기였어요. 저한테 집 돈을 주기로 하고 차일피일 미루던 때였거든요. 제가 거의 볼모처럼 김씨를 데리고 다녔어요. 호텔 갈 때도 트윈룸으로 들어가서 자기도 하고 그랬어요. 왜냐면 돈을 받아야 하니까. 주 기자가 오기 전날 밤에 갑자기 저희 집에 오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라고 했어요.”
 

▲ ⓒ계은숙 제공

“새벽 2시쯤에 낚시 도구를 챙겨서 들어왔어요. 저는 자고 있었고요. 다음날 아침에 기자가 들이닥쳤어요. 저는 무슨 일인지 전혀 몰랐었어요. 지금 와서 보면 왠지 그것마저도 설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 내용에 보면 김씨가 굉장히 침착했다고 하는데, 그는 기자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 인간의 악의 손길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본 사이서 김씨에게 이성적인 호감은 전혀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제게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왔겠습니까. 꽃도 예뻐야 꺾는 법이에요. 그 사람이 예쁩니까?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니잖아요. 애초에 좀 모자란 아이로 보기도 했고요. 그렇게 엮이는 것도 정말 너무 싫어요.”

김씨와 관련한 굵직한 것만 해도 이 정도다. 크고 작은 사기까지 말하기엔 너무 많은 내용이 필요하다. 이제껏 감추고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사람을 믿고 지지해준, 순진한 성격이 이토록 충격적인 배신으로 돌아와야만 하는가에 극심한 우울증도 겪었다. 

“전혀 몰랐다”
극심한 우울증

“한 사람의 삶을 박살을 내놓고 너무 뻔뻔한 거예요. 지 살겠다고 변호사를 선임한 거 보세요. 그게 너무 열 받아서 보고 있는데 머리를 쥐어 잡고 뜯어버리고 싶었어요. 제가 현명하지 못했던 것도 있죠. 그래도 이렇게 명예가 실추된 채로 살고 싶지 않아요. 전 그래도 떳떳해요. 이제는 밝혀야 할 때가 왔어요. 정말 사기꾼이라는 불명예는 벗고 싶습니다. 제가 곤조는 있어요. 저는 누구에게도 피해준 적이 없어요. 얼렁뚱땅 덮을 게 아니에요. 김씨를 비롯한 일당을 고소할 겁니다. 법적으로 결론을 질 거예요. 어떻게서든 싸워서 이길 겁니다.”

지난 19일 계은숙은 김씨와 편씨를 사기 공범으로 판단하고, 고소장을 접수했다. 편씨에게 돈을 갚아야 했던 김씨가 계은숙의 집을 팔아 남긴 돈으로 편씨에게 지불하기 위해 두 사람이 공모를 해 사기를 쳤다는 게 고소장의 핵심이다. 유명 연예인으로서 이러한 사건에 연루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잘못된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힘을 모았단다. 

“그들로 인해 저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추락했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겨낼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습니다. 진실을 밝혀낼 겁니다. 그동안 저에 대한 오해가 있으셨다면, 이번 기회에 모두 풀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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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