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10·11) 다래순, 당근

"시력 좋아지려 배터지게"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pixabay

다래순

이민구 작품이다. 

喫林果俗名獮猴桃(끽임과속명미후도)
속명 미후도를 먹다 

喬木深垂蔓(교목심수만)
높은 나무에 무성하게 드리운 덩굴
秋條正飽霜(추조정포상)
가을 줄기 서리 흠뻑 맞았네
游人頻渴肺(유인빈갈폐)
나그네는 자주 폐가 마르니
摘子必連房(적자필연방)
따는 열매 반드시 연방이네
滑憶西施乳(활억서시유)
부드러움은 서시유 떠오르고
淸知玉女漿(청지옥녀장)
맑기는 옥녀장 알만하네
鄕山後搖落(향산후요락)
고향 산에는 늦게 떨어지니
歸及晩林嘗(귀급만림상)
돌아가 숲속에서 감상해야겠네

상기 시 제목에 등장하는 獼猴桃(미후도)는 다래나무의 열매인 다래를 지칭한다.


아울러 다래나무는 獼猴木(미후목)이라 한다. 獼猴(미후)는 원숭이를 의미하는데 왜 이름이 이렇게 정해졌을까. 

그 사연이 흥미롭다.

다래나무 즉 다래나무 덩굴이 원숭이처럼 다른 나무를 잘 타기에 혹은 원숭이가 다래를 즐겨 먹기 때문에 미후목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어느 설이 정설인지는 몰라도 두 설 모두 말이 된다 싶다. 

여하튼 상기 글에 등장하는 연방(連房)은 식물의 두 씨방이 합해져서 하나의 꽃이나 이삭이 나는 것이나, 혹은 하나의 씨방에서 두 개의 꽃이나 이삭이 나는 것을 가리키는데 옛날에는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겼다. 

또 서시유(西施乳)는 복어 배 속의 살지고 흰 기름덩이를 가리킨다.

맛이 너무 좋아 월(越)나라의 미녀 서시의 가슴에 비유한 것이고 옥녀장(玉女漿)은 신선이 마시는 음료를 의미한다.


이제 다래란 명칭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펴보자.

혹자는 맛이 달다 할 때의 ‘달’에 명사화 접미사 ‘애’가 붙어 이루어진 말로 달~애 에서 ㄹ받침이 내려 읽히면서 다래가 되었다고 한다.

꿀처럼 단 다래 열매를 살피면 한편 그럴싸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익의 성호사설을 살피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髙麗史獼猴桃謂之炟艾로 ‘고려사에 미후도를 달애(怛艾)라 지칭했다’이다.

이를 살피면 다래란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능히 짐작하리라 간주하고 넘어가자.

그런 다래나무의 실체를 알려면 창덕궁 방문을 권장한다.

창덕궁 안에는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251호로 지정된 다래나무가 있는데 수령은 600년에 이르며 길이는 30m 내외로 뻗어갔을 정도로 웅장하다.

원숭이처럼 나무를 잘 타서 ‘獼猴木(미후목)’
시력회복에 탁월한 베타카로틴의 보고 당근

여하튼 다래순은 다래나무에서 나는 연한 순으로 맛이 달면서 향긋하여 어린순을 채취해 나물로 먹는데 이 대목에서 한마디 덧붙여야겠다.

앞서 고사리에 대해 언급할 때 반전의 나물이라 지칭한 바 있다.


고사리가 지니고 있는 독성 때문으로 다래순 역시 미미하지만 독성이 있다. 그런 이유로 반드시 끓는 물에 데쳐 먹어야 함을 주지시킨다. 아울러 조선 조 한문사대가 중 한사람인 장유(張維, 1587∼1638)가 ‘장주(황해도 장연)의 숙부께서 미후도를 보내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그 시에 차운하다(奉謝長洲叔餉獼猴桃次韻)’라는 작품에서 다래의 진수를 더하고 있다.

한 번 감상해보자. 

蒼藤成架幾多年(창등성가기다년)
푸른 덩굴 가자 이룬지 몇 년 되지 않아翠實驚看纍纍懸(취실경간유유현)
놀랍게도 벌써 푸른 다래 주렁주렁 달렸네嚼罷甘寒蘇病肺(작파감한소병폐)
씹을 때 차고 달콤함 병든 폐 소생하니蟠桃何必問群仙(반도하필문군선)
신선에게 반도 구할 필요 있겠는가

상기 글에 등장하는 架(가)는 가자(架子)의 줄인 말로 초목(草木)의 가지가 늘어지지 않도록 밑에서 받치기 위해 시렁처럼 만든 물건을, 반도(蟠桃)는 3000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는 선도(仙桃, 신선 나라에 존재하는 복숭아)다.

당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살피면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영어로 표기하면 ‘the carrot and stick’으로 이 대목에서 모든 사람들이 carrot을 채소의 한 종류인 당근 즉 홍당무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그도 맞다.

그러나 그 원 의미는 ‘보상’ 혹은 ‘미끼’임을 밝히며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당근은 원산지가 중동 지역으로 13세기 말에 중국으로 이어 16세기 경부터 조선서 재배됐다고 전해진다.

마치 그를 입증하듯 허균의 ‘성소부부고’에 처음으로 당근이 등장한다.

그를 인용해본다.

호나복(胡蘿葍)

마땅히 삼복(三伏) 안에 땅을 갈아서 둑을 짓고 하나씩 손으로 쥐고 심어야 하는데, 땅이 비옥하면 뿌려서 심으며 물을 자주 줘야 한다. 

상기 기록서 살피듯 당근의 원 명칭은 호나복(胡蘿葍, 오랑캐의 무)이다.

그런데 혹자는 당나라서 들어와 당근(唐根)이라는 이름이 불었다고도 한다.

물론 맞는 말이나 당근은 호나복의 속명 즉 세속에서 이르던 이름이다. 

이와 관련 김창업의 ‘연행일기’에 실려 있는 글 인용한다.

胡蘿葍。卽我國所謂唐根。而色正紅。與紅蘿葍無別
호나복은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당근이라 부르는 것인데, 빛깔이 붉어서 홍나복과 구별이 없었다.

여하튼 이 대목서 아연한 생각 일어난다.

물론 내 어린 시절 경험 때문이다. 어린 시절 깻잎을 식용했던 기억이 없었음을 술회했듯 역시 당근(그 시절에는 홍당무라 불렀음)을 식용했던 기억은 없다.

다만 토끼 먹이 정도로만 기억에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에 당근은 색깔도 선명하고 맛도 달콤하지만 그 당시 접했던 홍당무는 생김새도 볼 품 없고 색깔 역시 흐릿하고 맛 역시 씁쓰레해서 그저 집 뒤꼍에 심어져 있던 홍당무를 캐면 토끼 먹이로만 활용하고는 했기 때문이다. 

이제 당근과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 소개하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다.

막강한 지상군을 자랑하던 독일군이 공군력에서는 영국에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하여 독일군이 그 원인을 조사하던 중 기막힌 첩보를 접하게 된다.

영국 조종사들이 당근을 많이 먹기 때문에 시력이 좋아 그렇다고 말이다.

이로 인해 독일군 조종사들은 그야말로 배가 터지도록 당근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세는 역전되지 않고 영국 공군만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를 의아하게 생각하던 독일은 종전 후 그 진실을 알게 된다.

영국서 당시 개발한 레이더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퍼트린 소문이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영국서 흘린 정보가 터무니없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이 쉽사리 속아 넘어가지 않았을 터다.

당근이 시력 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 독일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력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당근은 베타카로틴의 보고다.

베타카로틴은 비타민 A의 공급원으로 시력회복은 물론 암, 동맥경화증, 관절염, 백내장 등과 같은 성인병 예방에 탁월하다고 조사됐다.

이 대목서 불현듯 씁쓰레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홍당무에 감추어진 진실을 진즉에 알았다면 토끼에게 먹이로 줄 게 아니라 내가 먹었어야 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 토끼 고기를 내가 먹었으니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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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