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희건설·한양건설 지주택 브로커 정체

돈줄 알선하고 수수료, 건설사 돌며 똑같은 짓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민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산다. 지역주택조합은 조금이라도 싼 값에 집 한 칸을 마련해보려는 사람들의 꿈을 모은 집단이다. 문제는 누군가 이들의 꿈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주택조합(이하 지주택)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다. 지주택 조합원들은 돈을 모아 토지를 구입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아파트를 세운다. 일반분양서 시행사가 하는 역할을 지주택이 맡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주택은 업무대행사가 그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싼 값에
내 집 마련

지주택 사업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시공사 선정이다. 시공사의 브랜드 가치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조합원 모집, 홍보, 은행 PF대출과 관련해서도 시공사의 이름값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지주택 조합원들이 시공사 선정에 민감한 이유다. 

양주백석 지주택은 지난 6월 말 조합 총회를 거쳐 한양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한양건설은 도급 순위가 124위(2020년 종합건설업자 시공능력평가액 공시)인 중소건설사로 ‘한양 립스’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이곳이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오산리 660-4번지 일대(약 3만4000평)에 총 1572세대 규모의 아파트 공사를 맡게 됐다. 공사비는 2382억원에 이른다.

양주백석 지주택과 한양건설의 만남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시점은 올해 3월. 양주백석 지주택의 업무대행을 맡고 있는 정모 진성산업개발 회장의 소개로 윤모 한양건설 개발사업본부 팀장(상무)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문제는 윤 팀장의 과거다. 윤 팀장이 서희건설 이사로 재직할 무렵, 대구 지역 지주택서 문제를 일으켜 1심서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의혹이 나온 것.

윤 팀장은 지난해 8월 대구 지역 지주택의 토지매입 자금 조성 과정서 자신들의 이권과 관계 있는 브릿지 대출 금융주관사를 조합 측에 소개하고 대가를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후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윤 팀장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서희건설의 임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거액을 수수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대체로 범행을 인정하며 수수한 돈을 수사기관에 모두 제출한 점, 피고인들이 받은 돈과 관련한 임무는 서희건설의 주된 임무가 아니라 조합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이었고, 대출 알선과 관련한 계약의 결정권한은 조합이 가지고 있었던 점” 등을 양형 이유로 밝혔다. 

5개월 만에
급물살 타

서희건설에 따르면 윤 팀장은 지난해 10월 퇴사했다. 이후 5개월 만에 한양건설 소속으로 양주백석 지주택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주백석 지주택 조합원에 따르면 윤 팀장은 양주백석 지주택 조합원들에게 대환대출을 시도했다. 대환대출은 금융기관서 대출을 받아 이전의 대출금이나 연체금을 갚는 제도를 말한다. 한 마디로 금융기관을 갈아타는 것이다. 이 과정서 금융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다. 

양주백석 지주택 정상화대책위원회(이하 정대위)는 대출만기 연장이 가능한데 금융수수료를 물어가면서까지 금융기관을 바꿔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대환대출은 조합원들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일각에선 윤 팀장이 서희건설 이사로 있을 때 대구 지역 지주택서 하던 일을 양주백석 지주택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여기에 한양건설로 시공사 선정이 이뤄진 과정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3월경 양주백석 지주택은 한양건설과 MOU를 맺고 사업약정서를 작성했다. 한양건설이 양주백석 지주택 조합원들의 신용대출과 토지담보 대출 이자를 대여해주는 조건 등이 붙었다.

실제로 한양건설은 3월부터 매월 양주백석 지주택에 이자 금액을 대여하고 있다.

MOU 과정서 작성한 사업약정서에 대한 의혹도 불거졌다. 조합과 업무대행사, 시공사(당시 시공예정사) 사이에 맺은 사업약정서에는 간인(계약서 사이마다 찍는 인장)은 있지만 날짜 부분은 비어있다.

토지매입 자금 조성 과정
브릿지 대출 금융주관사 
조합에 소개하고 대가 챙겨

정대위 관계자는 “한양건설이 조합으로 이자를 빌려주기 시작한 게 3월부터인데, 사업약정서는 그 이후에야 조합 홈페이지에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또 한양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는 안건이 상정된 6월28일 조합 총회 자체가 불법이라는 말도 나왔다. 6월28일 조합 총회는 법원서 정대위의 ‘총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6월7일 총회가 한 차례 무산된 뒤에 열렸다. 이날 상정된 안건은 시공예정사들과의 MOU 해지, 시공사 선정 등이었다. 

일반적으로 지주택서 시공사를 선정할 때는 복수의 건설사를 두고 조합원들의 표결을 거쳐 결정한다. 하지만 당시 조합 총회서 언급된 건설사는 한양건설 한 곳뿐이었다. 당시 조합원들 사이에선 시공사를 한양건설로 선정하는 것을 두고 불만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 매출 1569억원(2019년 기준)의 한양건설이 공사비만 2382억원에 달하는 지주택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일부 조합원들 사이서 돌았다.

하지만 표결 끝에 한양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 과정서 허위조합원 문제가 불거졌다. 주택법에 따르면 지주택 조합은 무주택자이거나 전용면적 85㎡ 이하의 주택 소유자에게만 가입 자격이 주어진다.
 

▲ ⓒ문병희 기자

지자체로부터 지주택 설립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조합원 모집률이 50% 이상 돼야 한다. 조합이나 업무대행사에서는 모집률 50%를 채우기 위해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조합원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명의대여자가 대표적이다. 명의대여자는 말 그대로 명의만 빌려주고 계약금 등 분담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지자체나 국토부는 전산조회를 통해 조합원의 자격 여부만 판단하기 때문에 명의대여자를 걸러내지 못한다. 

조합 절반이
허위 조합원?

양주백석 지주택의 경우 1572세대의 절반인 786명 이상의 조합원을 모아야 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양주백석 지주택서 양주시청에 조합 설립인가를 신청할 당시 조합원 수는 803명. 하지만 정대위는 803명 중에 382명이 허위 조합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에 이미 조합원의 절반가량이 가짜였다는 주장이다.


지주택 사업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조합을 운영하는 과정서 명의대여자를 조합원 수에 포함시키는 일은 자주 있는 편”이라면서도 “양주백석 지주택의 경우 그 숫자가 너무 많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정식 조합원이 받을 피해가 어마어마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명의대여자가 조합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정대위에 따르면 명의대여자는 조합 집행부와 업무대행사서 데려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의결 과정서 집행부 쪽에 표를 던지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합법적인 방식을 통해 조합 집행부나 업무대행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지는 셈이다.

총회서 선출된 조합장조차 2019년까지 조합원으로 등재되지 않았다는 의혹도 나왔다. 현재 양주백석 지주택의 조합장을 맡고 있는 이 조합장은 2018년 5월12일 선출됐다. 하지만 양주시청의 ‘지역주택조합설립 변경인가 처리 알림’ 공문에 따르면 이 조합장의 조합원 등재 시기는 2019년 8월22일로 추정된다. 

이 조합장이 조합장으로 선출되고 1년3개월 만에야 양주시청에 조합장으로 등재하고, 동시에 조합원으로도 이름을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2018년 5월 이 조합장이 조합장으로 선출될 당시에 그는 양주백석 지주택 조합원조차 아니었다는 뜻이다. 

정대위 소속 조합원 63명은 지난 6월 전 조합장 양모씨와 현 조합장 이모씨, 업무대행사 진성산업개발의 정모 회장과 정모 대표가 허위 조합원을 모집했다며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조합원을 모집하는 과정서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들까지 조합으로 끌어들이는 허수 모집을 했다는 주장이다. 정대위서 주장하는 허위조합원의 수는 382명으로, 양주시청에 등록된 양주백석 지주택 조합원 1042명(2020년 8월 기준)의 36.6%에 달한다.

현장 5곳 중 4곳은 망해
양주백석도 법적공방 중


정대위는 앞서 지난 5월 주택법 위반,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이들 4명을 고발했다. 조합장과 업무대행사 대표가 조합원들의 동의 없이 조합의 예산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정대위는 이들이 조합 돈을 이용해 사들인 땅의 명의를 업무대행사 대표로 해놓는 등 조합 돈을 임의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지주택 사업은 일반분양과 비교해 분양가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주택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수단으로 이용되는 이유다. 하지만 지주택 사업의 성공률은 20% 남짓이다. 나머지 80%는 표류하는 사업에 매달려 돈은 돈대로 날리고 집은 집대로 못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 ⓒ양주백석지역 주택조합 홈페이지

지주택 사업이 망가지는 이유는 대부분 조합서 발생하는 비리 때문이다. 지주택에 대해 잘 아는 관계자들은 조합 집행부와 업무대행사가 정직하게만 조합을 운영하면 별 무리 없이 아파트를 세운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지주택 5곳 중 4곳은 법적 분쟁으로 얼룩지고 사업이 무기한 길어지는 사태에 다다른다. 

양주백석 지주택 사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한양건설은 지난 5월18일 양주시청에 사업승인 계획 서류를 접수했다. 하지만 사업승인이 떨어지기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양주시청 주택과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서류가 많이 미비해 5월 중순경에 보완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진(8월3일) 다 보완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주택 사업이 표류하면 분담금을 낸 조합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이미 계약금을 내고 조합에 참여한 이들은 추가분담금이 발생할 때마다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낼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돈을 조합에 넣었기 때문에 발을 빼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 사업이 좌초되기라도 하면 조합원 손에는 빚을 빼곤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서민 피해
눈덩이 된다

정대위 측은 “양주백석 지주택은 2018년 7월 토지를 100% 매입한 이후 2년 넘게 일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지주택 사업의 성공률이 낮다지만, 토지를 전부 사놓고 2년 동안 진전이 없기도 힘들 것”이라며 “조합 집행부나 업무대행사서 사업을 성공시키려는 의지가 없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업이 엎어지면 모든 피해는 조합원들에게 집중된다. 이제라도 제대로 가야 한다. 집행부를 다시 선출하고 업무대행사를 바꾼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고 본다”며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집을 갖는다는 지주택의 원래 취지대로 조합이 운영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양건설·업무대행사·조합장 해명
그 사람, 일은 잘한다”

한양건설 홍보팀 관계자는 윤모 개발사업본부 팀장이 “서희건설 출신의 이사가 맞다”면서도 “인사 관련 부분은 잘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윤 팀장을 고용한 이유 ▲양주백석 지주택에 이자를 대여하는 이유 등 추가 질의에 대해서는 회사의 입장을 검토해 답변을 주겠다고 했지만 현재(7일 오후)까지 연락은 없었다.

업무대행사인 진성산업개발의 정모 회장은 양주백석 지주택 정상화대책위원회(이하 정대위)의 소송 제기에 대해 “(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딱히 할 말이 없다. 업무대행사는 토지 등기이전까지만 관여했고, 설립인가가 난 이후에는 조합이 사업을 주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지주택 사업 관련 일을 하다 보면 꼭 그 안에서 패가 갈려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조합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법적 송사로까지 번지는 이유는 이권을 잡기 위한 주도권 다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명의대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지주택 사업이 불안하다 보니 사업승인이 난 뒤에 돈을 넣겠다는 사람이 태반”이라며 “그때까지 돈을 내지 않으면 착공 들어갈 시점에 다 빼버린다”고 설명했다. 정대위는 업무대행사서 명부까지 만들어 명의대여자를 관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지주택 사업은 가다가 서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게 된다. 양주백석 지주택의 경우 올해 안에 착공하지 못하면 사업은 망가진다고 본다. 사업승인은 8∼9월 안에 날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너무 오래 끌었다. 다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한양건설 윤 팀장에 대해 “예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은 잘한다. 양주백석 지주택 사업은 윤 팀장이 없으면 부도난다. 한양건설이 이자를 내주지 않았다면 이 사업은 경매에 넘어갔다. 그걸 성사시킨 게 윤 팀장”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업이 망가지고 난 뒤에 옳고 그름을 따져서 뭐하냐는 입장도 전했다. 

윤 팀장과 현 조합장인 이모씨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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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