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통상 1년 차 서른 과장님 파워

딸·사위는 들러리, 그래도 아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신성통상서 의미심장한 지분 변동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올 초부터 그룹 핵심 계열사가 신성통상 주식을 연이어 매입하더니, 최근에는 회장이 직접 나서 다량의 주식을 팔았다. 회장이 내놓은 주식이 향한 곳은 장남 소유의 회사. 약관의 나이에 이미 후계자로 인정받았던 입사 1년 차 황태자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1968년 니트 의류 전문 수출업체로 출발한 신성통상은 SPA ‘탑텐’, 남성복 ‘올젠’ ‘지오지아’ 등을 운영하는 패션기업이다. 1972년 600만달러(약 73억원)의 수출실적을 올리는 등 제법 굵직한 연혁을 자랑했던 신성통상은 1973년 대우그룹에 편입되면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대우그룹 공중분해를 겪으며 법정관리 신세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꼭대기 오른
초년병 아들

대기업 계열사서 법정관리 회사로 위상이 추락한 신성통상을 눈여겨본 이는 엄태순 현 신성통상 회장이다. 1983년 가방 제조업체 가나안상사(현 가나안)를 설립한 염 회장은 ’아이찜‘ 브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2000년대 초반 가나안을 연 매출 1000억원대 회사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염 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02년 신성통상을 인수하면서 패션업계에 파장을 불러왔다. 3년 넘게 법정관리 상태였던 신성통상이 새 출발을 알린 순간이었다. 당시 가나안컨소시엄은 신성통상을 품는 데 924억원을 쏟아부었다.

구원군을 등에 업은 신성통상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올젠, 지오지아의 꾸준한 매출을 토대로 2012년 탑텐의 시장 안착을 이끌어냈다. 덕분에 2002년 6월 말 기준 3000억원을 밑돌던 신성통상의 매출은 지난해 6월 말 연결 기준 1조원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계열 회사들의 매출 총합은 1조5000억원대에 육박한다.


당해 역시 무난한 성적표가 예상된다. 매년 6월 말이 결산일인 신성통상은 3분기 말(2020년 3월31일)까지 연결 기준 누적 매출 784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7292억원) 대비 7.6%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가 터진 3분기에도 전년 동기(2128억원)와 별반 차이 없는 2123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최상단 선점한 회장님의 장남
아버지 증여 덕분에 탄탄대로

수익성 역시 매우 안정적이다. 3분기까지 집계된 연결 기준 누적 영업이익은 327억원으로, 전년 동기(287억원) 대비 14.2%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3분기에 영업손실 67억5400만원을 기록한 가운데 거둔 성과다. 전년 동기에는 영업이익 67억6500만원을 달성한 바 있다.

성장을 거듭한 신성통상은 모기업 격인 가나안을 외형적으로 멀찌감치 따돌린 상태다. 지난해 8월 말 연결 기준 가나안의 매출은 3188억원으로 신성통상(2019년 6월 말 연결 기준)의 1/3 수준에 머물러 있다. 총자산 역시 신성통상(6896억원)의 37.8% 수준인 2603억원에 그친다. 신성통상의 올해 3월 말 기준 총자산(8114억원)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 신성통상 본사

그렇다고 해서 그룹 내 가나안의 위상이 신성통상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나안은 예나 지금이나 신성통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회사로서 중요도가 남다르다. 향후 승계 과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룹 내에서 핵심 회사로 분류되는 곳은 신성통상(상장), 가나안(비상장), 에이션패션(비상장)이다. 에이션패션은 캐주얼 브랜드 ‘폴햄’을 전개하는 신성통상의 관계사다. 이들은 지배구조 상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오래전 끝맺음
싱거웠던 승계


올해 3월 말 기준 신성통상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28.6%(4113만4460주)를 나타낸 가나안이고, 염 회장(21.6%, 3103만9280주)과 에이션패션(17.6%, 2537만6900주)이 뒤를 잇는다. 특수관계인 지분율 총합은 67.8%(9755만640주)에 달한다.

가나안 지분구조의 꼭대기에는 염 회장이 아니라, 그의 아들인 염상원씨가 서 있다. 상원씨는 지난해 8월 말 기준 가나안 지분 82.4%(47만8100주)를 보유한 최대주주고, 염 회장의 지분율은 10.0%(5만8000주)에 그친다. 나머지 7.6%(4만3900주)는 에이션패션의 몫이다.

이 같은 구조는 염 회장이 가나안 지분을 상원씨에게 증여한 데 따른 결과였다. 2008년까지만 해도 상원씨가 지닌 가나안 지분은 전무했다. 가나안 주주구성에 상원씨 이름이 등재된 건 2009년부터다. 당시 가나안은 주식 수를 38만주서 58만주로 늘렸는데, 이 과정서 염 회장은 상원씨에게 지분 대부분을 증여했다. 70%를 웃돌던 염 회장의 지분율은 증여 이후 10%로 변동이 생겼다.
 

▲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

에이션패션이 가나안·신성통상과 상호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지만, 큰 맥락서 보면 가나안이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달리 말하면 상원씨를 중심으로 승계가 완성됐음을 뜻한다.

최근 신성통상에 대한 염 회장의 보유 주식이 감소하면서 상원씨를 중심에 둔 승계구도는 한층 명확해졌다. 지난달 12일 염 회장은 신성통상 200만주를 장외 매매로 가나안에 넘겼다. 이로써 가나안이 보유한 신성통상 지분율은 기존 28.6%서 30.0%로 증가했고, 자연스럽게 상원씨의 신성통상 지배력도 높아졌다.

밀어주고
받아먹고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곳이 가나안이라면, 에이션패션은 오너 일가의 신성통상 지배력을 간접 지원한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에이션패션의 최대주주는 지분 41.2%(32만9500주)를 보유한 염 회장이다. 가나안(36.0%, 28만8000주)은 2대주주, 신성통상(22.7%, 18만1500주)은 3대주주에 등재돼있다.

99.9%의 지분이 3곳에 몰린 구조이며, 신성통상과는 지분을 서로 주고받는 관계다.

눈여겨볼 점은 에이션패션이 올 초부터 신성통상 지분을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에이션패션의 지분 매입은 케이디파트너스가 보유한 신성통상 지분 800만주를 흡수했던 2015년 이래 5년 만이다.

에이션패션은 장내 매수를 통해 지난 2월20∼25일 사이에 240만주를 매입했다. 이후 2월27일부터 3월23일까지 100만주를 더 사들이며 신성통상 지분율을 기존 15.3%서 17.6%로 끌어올렸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사태의 후폭풍으로 회사 주가가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진 게 저가 매수의 기회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신성통상에 대한 에이션패션의 지분율이 높아질수록 염 회장과 가나안의 실질 소유주인 상원씨의 지배력은 간접적으로 높아진다. 올해 나타난 특수관계인의 신성통상 보유 지분 변동에는 염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병아리 털도 못 벗었는데…
곳곳에 포진한 오너 친인척


오너 일가는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토대로 향후에도 오너 경영체제를 이어갈 것으로 점쳐진다. 이미 염 회장을 필두로 한 오너 일가는 계열사 곳곳서 영향력을 표출하고 있다. 염 회장의 동생인 염권준 부회장을 비롯해 염 회장 슬하의 1남2녀와 사위까지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다.

염 부회장은 형을 도와 가방·신발 등을 제조하는 씨앤티스를 이끌던 인물이다. 씨앤티스는 1999년 아이찜으로 설립된 뒤 2001년 씨앤티스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씨앤티스 대표이사이자 신성통상 임원을 역임했던 염 부회장은 그룹의 안살림을 직접 챙겼던 인물이다.
 

▲ 지오지아 매장 내부

염 회장의 두 딸과 사위들 역시 회사에 소속돼있다. 장녀 혜영씨는 물류 관련 부서 부장급 직책을 맡고 있다.

첫째 사위인 박희찬씨는 2011년 신성통상 입사 후 마케팅팀, 경영기획실을 거쳐, 탑텐 사업부문장을 지냈다. 현재는 에이션패션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린 상태고, 에이션패션이 전개하는 폴햄의 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차녀 혜근씨는 탑텐 상품기획부 차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둘째 사위는 지난해 11월 수출사업부 구매본부이사로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뒷배로
주요 직책 장악


경영 참여 시기를 놓고 관심을 모았던 그룹 후계자 상원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까지 대학생 신분이던 상원씨는 올해 1월부터 경영지원본부 과장으로 회사에 출근 중이다. 상원씨가 올해로 30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스무살이 채 되지 않은 시점서 그룹 후계자로 인정받은 셈이다. 최근 특수관계인 지분 변동 역시 상원씨의 등장에 맞춰 지배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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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