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시대’ 한국타이어 후계전쟁 막전막후

아버지의 선택 ‘형보다 아우’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국테크놀로지그룹서 의미심장한 지분 승계가 이뤄졌다. 놀랍게도 회장이 가리킨 화살표는 장남이 아닌 차남이었다. 아버지의 선택이 차남을 향하면서 장남은 졸지에 최전선서 밀려날 처지에 내몰렸다. 훗날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불거져도 딱히 이상할 것 없는 모양새다.
 

한국타이어 기업집단은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의 차남인 조양래 회장이 지난 1986년 계열 분리하면서 그룹의 토대가 세워졌다. 지주회사는 지난해까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라는 사명을 썼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다. 기업집단의 정점에 위치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 한국아트라스비엑스, 한국네트웍스, 한국카앤라이프 등의 계열사를 지배한다. 

회장님의
둘째 사랑

그룹은 지난해 초 조양래 회장이 경영 일선서 물러난 후 장남 조현식 부회장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차남 조현범 사장이 한국타이어테크놀로지를 이끄는 형제 경영을 해왔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서 착실히 기반을 쌓아왔다. 

1970년 태어난 조 부회장은 국내서 중학교까지 졸업한 뒤 미국 힐스쿨 포츠타운고등학교와 시러큐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국타이어서 글로벌 해외영업본부장, 마케팅본부장, 한국타이어 사장을 거쳐 총괄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972년생인 조 사장은 1998년 한국타이어에 차장으로 입사해 2001년 광고홍보팀장을 거쳤고, 4년여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후 마케팅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부사장, 경영기획본부장, 경영운영본부장 등을 거쳤고, 한국테크놀로지그룹 COO(최고운영책임자)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을 역임했다.


2001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씨와 결혼했다. 

조 회장이 후계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데다, 장남과 차남의 역할 분담이 균등하게 이뤄졌기에 지난달 초 까지만 해도 그룹의 차기 승계 구도는 명확하지 않았다. 대동소이했던 두 사람의 지주사 지분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부추겼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구조는 조양래 회장이 지분율 23.59%(2194만2693주)로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렸고, 조 부회장과 조 사장이 각각 지분율 19.32%(1797만4870주), 19.31%(1795만9178주)로 2, 3대주주에 등재된 상태였다. 오너 일가 우호지분의 총합은 73.92%(6876만3857주).

조양래 회장, 보유 지분 조현범 사장에
장남 조현식 부회장 낙동강 오리알 신세

팽팽한 균형을 이뤘던 형제간 지분구조는 지난달 말 크게 요동쳤다. 조 회장이 사실상 차남의 손을 들어준 데 따른 변화였다.

지난달 26일 조 회장은 장 마감 후 보유 주식 전량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조 사장에게 넘겼다. 이 소식은 나흘 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대주주 지분 변동을 공시하면서 공개됐다.

현행 자본시장법 규정에 의하면 지분이 5% 이상인 대주주가 추가로 1% 이상 지분을 확보할 경우 체결일로부터 5일 이내에 관련 사항을 공시하도록 돼있지만, 대기업의 최대주주 변경 공시가 곧바로 이뤄지는 모습과는 분명 대조적이다. 


조 회장이 지분 전량을 넘긴 덕분에 조 사장은 단숨에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최대주주에 올랐다. 42.9%에 달하는 조 사장의 보유 지분은 조 부회장 보유 지분(19.32%)을 두 배 이상 앞선 것이었다. 조 사장은 기존 보유 주식 등을 담보로 2200억원을 대출받아 매입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 왼쪽부터)조양래 회장, 조현식 부회장, 조현범 사장

조 회장이 차남에게 주식 전량을 넘긴 결정은 통상적인 재벌기업 승계 과정과 차별화된다. 오너 일가 구성원 간 지분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안정을 꾀한 뒤 승계 작업을 표면화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형제 경영 체제가 가동된 시기 즈음에 그룹의 실적 악화가 본격화됐다는 점은 조 회장이 결단을 내린 이유로 꼽힌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439억원으로 전년 대비 22.6% 감소했다. 매출 상승이 미미한 가운데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하면서 2018년 4.9%였던 영업이익률은 3.1%로 주저앉았다.

차남 장악
장남 반격?

부진한 흐름은 올해 1분기까지 이어졌다. 1분기 매출액은 1조4357억원, 영업이익은 10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5%, 24.6% 감소했다. 더욱이 최근 코로나19로 타이어 수요가 감소, 2분기 실적도 우울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미국 상무부가 한국, 대만, 태국, 베트남산 자동차 타이어를 대상으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면서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조 사장이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됐지만 당분간 회사 경영방침은 기존과 비슷하게 유지될 것으로 점쳐진다. 일단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형제경영 체제 고수를 천명한 상황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달 30일 “대주주 간 주식거래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형제경영 체제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또 조양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과 차남인 조현범 사장의 지위에 당장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조 사장이 법적 문제로 오랫동안 경영 일선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성급한 결정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조 사장은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데 이어 지난 4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 여파로 지난달 23일에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다. 

게다가 조 사장은 그룹의 변혁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그에 따른 ‘공’ 만큼 ‘실’을 그룹에 떠안겼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사명 변경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한국타이어는 20년 만에 사명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로 바꿨다. 같은 시기에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간판을 교체했다. 타이어 사업에 국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움직임이었다. 이 과정을 조현범 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태자는
토사구팽?

그러나 교체한 사명으로 인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생각지 못한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IT사업과 자동차 전장 사업을 영위하는 ‘한국테크놀로지’가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지난해 말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것이다.


1심은 한국테크놀로지의 손을 들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15일 한국테크놀로지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상대로 제기한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표시된 간판, 거래 서류, 선전광고물, 사업계획서, 명함, 책자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최악의 경우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또 한 번 간판을 바꿔달아야 한다.
 

▲ 한국타이어 사옥

더 큰 문제는 형제경영 체제가 유지되더라도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조 사장이 조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은 영향으로 입지가 급격히 흔들리게 된 조 부회장이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다.

애초부터 두 사람은 경영방침부터 명확한 견해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조 사장이 구속된 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홀로 이끈 조 부회장은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보단 내실 강화의 중요성을 피력해왔다. 이는 적극적인 M&A와 신사업 추진을 강조한 조 사장의 방침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차그룹과의 관계 개선 무드를 선두서 조율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조 부회장은 충분한 성과를 드러낸 상태였다.

사실상 경영권 승계 마무리
형제의 난? 살아있는 불씨

양사 간 갈등은 2015년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2015년 한국타이어 제품을 장착한 현대차 제네시스는 타이어 편마모에 따른 진동·소음 문제가 발생하면서 대규모 리콜을 시행했다. 이후 양사의 사업상 관계는 틈새가 벌어졌고, 현대차의 신형 모델에는 한국타이어 제품이 쓰이지 않았다.


5년에 걸친 냉각 기류를 완화시키는 데 앞장선 게 조 부회장이다. 조 부회장은 지난 17일 현대차 사옥을 찾아 ‘현대차그룹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건립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충남 태안군에 건설하고 있는 첨단주행시험장 내에 현대차그룹 드라이빙센터를 조성하는 게 주된 골자였다.

물론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 분쟁이 불거지더라도 조 부회장이 원하는 바를 얻기란 쉽지 않다. 조 부회장의 지주사 지분 19.32%는 조 회장의 지분을 모두 넘겨받은 조 사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나들의 도움을 이끌어내더라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10.82%(1006만8989주)를 가진 큰누나 조희원씨와 0.83%(76만9583주)를 갖고 있는 작은 누나 조희경씨가 힘을 보태도 우호 지분율은 30%를 겨우 넘긴다. 게다가 조희원씨는 “회사 경영에 관여할 생각이 없고, 특정 인물을 편들 생각은 더더욱 없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 당하나
모아서 뒤집나

다만 국민연금의 의중에 따라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7.7%(720만1539주)를 보유한 4대주주다. 조 부회장이 누나들의 도움을 등에 업은 상태서 국민연금까지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면 조 사장과의 지분 격차는 4%대로 감소한다. 조 사장이 현재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나머지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다면 표 대결서 역전을 노려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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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