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제비·꽃뱀의 둥지 ‘카바레’ 묘연한 행방 추적

카바레 있던 자리에 ‘불법 성인무도장’ 똬리 틀었다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70~80년대 흥했던 유흥업소 카바레의 흔적은 현재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중장년층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카바레는 전국적으로 20개 미만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 많던 카바레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일까? 그곳에서 종사하던 사람들, 카바레 영업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업주들은 지금 무엇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까. 그리고 21세기의 중장년들은 카바레를 대신해 어디에서 유흥의 꽃을 피우고 있을까. <일요시사>가 그 묘연한 행방을 추적해봤다.

약 20년 전, 그러니까 70-80년 3대 화류계하면 나이트클럽, 룸살롱, 전국에 춤바람을 몰고 온 카바레를 꼽을 수 있다. 그 중 나이트클럽과 룸살롱은 아직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지만 카바레는 홀연히 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특히 80년대 후반에는 강남의 궁전, 장안동의 무학성, 청량리의 자금성, 동대문의 동대문관광, 영등포의 카네기, 상계동의 워싱턴 등의 카바레들이 활개를 쳤다. 하지만 지금은 장안의 어디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카바레가 자리하고 있던 몇 백여 평의 부지는 대부분 나이트클럽이나 콜라텍 등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활개 치던 카바레
사라졌다?

어떤 이에 따르면 나이트클럽의 부킹문화가 붐이 일면서 자연스럽게 카바레의 행적이 사라지게 됐다고 하는데, 꽤 일리 있는 말로 들렸다.

“화류계에서 중요한 축이 여성고객이다. 카바레로 향하던 수많은 미시족과 여성들이 나이트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가 바로 ‘부킹’이다. 미시들이 일상을 벗어나 성의 해방구, 속칭 ‘자유부인’이 되려면 오로지 카바레만이 성지였는데 그러기엔 폐단이 너무 많았다. 우선 춤을 배워야 하고 그러다 보니 춤 선생(일명 제비)을 만나 그들의 금전적 요구와 신체적 접촉 등의 불편한 요구사항 등을 들어줘야 했다. 하지만 나이트클럽에서는 웨이터는 물론이고 뭇남성들이 미시족들을 여왕처럼 모시기 때문에 카바레와 나이트클럽의 명암은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카바레의 몰락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젊은 시절에 화류계에 몸을 담고 있다가 결혼 후 그 직종을 그만두고 업주로서 카바레만 4년 넘게 운영했다는 김모(63)씨의 주장에 따르면 막대한 세금과 수많은 불법변태영업자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카바레의 문이 닫혔다. 주류 판매가 허용되는 카바레는 유흥업소로 분류하고 있어 보통 총 매출액의 40%를 특소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으로 내고 있다. 그러나 나이트클럽이 크게 흥하면서 카바레에서 술을 마시는 손님들은 거의 사라지고 오직 1만~2만원 정도의 입장료만 지불한 뒤 사교댄스를 추러 온 사람들로 붐비게 돼 수입이 쏠쏠하지 못했다. 나이트클럽에서 마시는 술과 카바레에서 마시는 술값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총매출액의 40%의 막대한 세금 충당 못해 콜라텍·무도장으로
술 안 판다던 콜라텍, 쪽문 연결해 술 팔아 불법영업 버젓이

결국 카바레 업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폐업신고를 하기에 이르렀고, 생계를 위해 돌파구로 찾은 것은 바로 성인콜라텍과 무도장. 콜라텍과 무도장은 각각 자유업과 신고체육시설업으로 분류돼있어 댄스는 가능하지만 주류판매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이 몰래 촬영한 동영상 사본을 보여주며 불법변태영업을 하는 업주들이 다반사라고 했다. 그 영상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내용과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김씨의 제보에 따라 취재에 나선 기자는 서울의 한 무도장을 찾았다. 그 지역에서 꽤 유명하다는 ‘무00 무도장’은 손님이 많이 있을 피크 시간대(오후 12시~6시)가 훨씬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장년 남성과 여성들이 짝지어 춤을 추고 있었다.

꽤 어두운 실내와 야광조명들로 이뤄진 무도장 내부는 누가 무슨 짓을 해도 모를 정도였다. 무도장이라고 해서 단순히 밝은 조명 아래 사교댄스나 스포츠댄스를 가르쳐줄 줄 알았던 기자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간 순간이었다.

시끄럽지만 않을 뿐 칠흑같은 어둠 속 화려한 조명은 나이트클럽의 스테이지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남성들은 소파 위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손을 내밀어 춤을 권했다. 그 광경을 보고 문득 ‘마치 말로만 듣던 카바레의 제비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쯤 업소 여사장으로부터 약간의 충격적인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입장료는 여성만 받고 남성은 받지 않는다는 것.

불황에 업주들
불법변태업소로 전향


그랬다. 그곳에 있는 남성들은 대부분 여성들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춤 선생(제비), 즉 무도장에 출퇴근하는 직장인이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를 밀착해 춤을 춘다. 자주 오는 사람들인 듯 박자하나, 스텝하나 틀리는 법이 없었다.

바로 앞에서 프로처럼 사교댄스를 추던 중년남녀는 서로의 몸이 밀착되거나 얼굴이 가까워질 때면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이기도 했다.

“유흥주점은 많아도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며 놀 곳이 없다”는 한 여성의 말에 40~60대의 중장년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년들의 야릇한 춤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던 기자에게 여사장이 다시 다가왔다.

그녀는 내게 “여기 온 거 보니까 결혼은 했을 텐데…. 아직 어리니까 이런 데 오지 마. 가정파탄난다. 애들 다 키우고 할 거 없고 심심할 때 한 40-50대 되면 와. 그때도 늦지 않아. 여기 온 사람들 죄다 나이 들고 외로워서 바람이나 쐬려고 오는 거니까. 여기 있으면 춤도 추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지 얼마나 좋아. 그때 오렴”이라고 당부했다.

여사장의 말을 듣고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할 때쯤 '매점·식당'이라고 적혀있는 간판을 발견했다. 식당은 무도장 바로 옆에 쪽문식으로 연결돼 있었고 내부는 환했다. 그곳의 정체를 살피기 위해 들어가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저 곳에서는 무엇을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사장은 “사람들이 춤추다가 목마르거나 배고프면 맥주나 소주도 한 잔 마시고, 식사도 한다”며 당당하게 말했다. 체육시설업으로 구분되는 무도장에서 버젓이 술을 팔다니. 이는 엄연한 불법이었다. 하지만 여사장은 주류판매가 불법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몰랐어요”
단속 피하기 꼼수

취재가 끝나고 다음 날 기자는 김씨를 만나 불법변태영업의 실태를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카바레 불황이 닥쳐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원인은 바로 카바레를 하다가 불법변태업소인 성인콜라텍이나 무도장으로 업종을 바꾼 업주들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콜라텍·무도장 업주들이 주류를 팔지 않고 춤추는 스테이지만 관리한다면 자신도 이렇게 정부에 민원을 넣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제제에 대한 법적규제가 따로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당국의 허술한 현장단속과 무관심으로 음지에서는 불법영업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

김씨가 기자에게 건넨 동영상자료를 다시 살펴보았다. 주부들이 대형 성인콜라텍으로 들어간 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여러 개의 테이블이 있고 그들은 남성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길 기다린다.
김씨는 ‘댄스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뒤로한 채 콜라텍 주위를 돌아다니며 불법으로 영업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았다.

콜라텍 맞은편에는 식당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들이 차례로 나열돼 있었고 음식과 주류를 팔고 있었다. 그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리낌 전혀 없이 당연하다는 듯 영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김씨는 이 장면에 덧붙이며 “콜라텍 업주가 콜라텍만 운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옆에 6-7개로 줄지어 영업하고 있는 일반음식점도 분명히 콜라텍 업주와 동일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만약 구청 관계자가 콜라텍과 식당영업에 대한 단속을 한다면 그들은 중간에 있는 복도를 핑계로 각자 다른 영업을 하고 있다고 둘러대겠지만 그건 분명히 단속을 피하기 위한 ‘꼼수’임에 틀림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업' 콜라텍 업주들, 1년 동안 세금 한 번 안내
불법 변태영업과 관련 법규 있지만 철저한 단속 미흡

또한 그는 “이들(콜라텍·무도장 업주)은 카바레에 비해 세금도 적고 내는 횟수도 일 년에 한 두 번 밖에 없음에도 세금포탈을 일삼는다. 정직하게 세금내고 운영하는 카바레 업주들만 바보”라며 “이런 문제들로 인해 카바레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가 행정당국에 숱하게 넣었던 민원과 그 답변이 기재된 자료에 의하면 ‘콜라텍은 자유업으로써 손님이 춤을 추는 시설 등을 갖춘 형태의 영업으로 주류 판매가 허용되지 아니하다. 이러한 콜라텍에서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영업 또는 유흥주점에 해당하는 영업을 하고 있다면 식품 위생법 37조에 의해 신고를 해야 하고 아니할 시 처벌을 받게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행정당국의 안일한 단속체제와 더불어 불법변태업소의 단속에 관해서는 다른 부서들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철저한 단속 없인
불법은 지속 된다

몇 년 전 자신도 성인 콜라텍을 운영하려고 했다던 김씨는 “막대한 세금부담에도 불구하고 정당하게 세금내고 사는 국민인데 당당하지 못한 불법영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불법영업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관련 업주들은 이보다 더한 불법행위를 저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때 중장년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화류계의 꽃’ 카바레. 비록 지금은 퇴조된 유흥주점으로 전락해버렸지만 머지않아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 화려하게 부활할 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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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