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사망꾼?’ 박명수 리스크

버라이어티만 나오면 미숙해지는 진행력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개그맨 박명수가 주축이 돼 론칭한 MBC <끼리끼리>가 일요일 프라임 시간대에 편성됐음에도 불구, 시청률 1∼2%의 처참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다수의 예능서 기량을 뽐낸 예능인들과 이수혁, 하승진과 같은 신예들이 대거 투입됐음에도 3개월째 제자리 걸음이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제작진은 물론 진행의 롤을 맡은 박명수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 ▲▲ 사진제공=MBC

올해 1월, MBC <놀면 뭐하니?>서 라면 식당을 연 유재석을 김구라와 박명수가 찾은 적이 있다. 근황 토크 및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박명수는 MBC <끼리끼리>의 런칭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때 김구라의 촉이 발동했다. “첫 화 시청률을 얼마나 보고 있나요. 3∼4% 보죠?”라고 물었고, 박명수는 “첫 술에 배부르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구라는 “내심 2%도 보고 있는 거냐”고 매서운 말을 이었다. 박명수는 “얼굴이, 맞을 입이다”며 웃음으로 상황을 넘겼다. 

김구라 촉

결과론적으로 김구라의 촉이 맞은 셈이다. 오히려 현실보다 후한 평가였다. 지난 1월26일 일요일 오후 5시에 첫 방송한 이후로 <끼리끼리>는 약 3개월 간 3%의 벽을 넘지 못했다. 첫 방송이 2.1%로 시작해 3개월 동안 1∼2%를 오가고 있다. 심지어 요즘 ‘예능 치트키’라고 불리는 가수 임영웅과 영탁이 출연했음에도 2.8%(닐슨코리아)의 시청률에 머물렀다. 

5%대의 JTBC <뭉쳐야 찬다>가 TV조선 <미스터트롯> 참가자들이 출연하자 10%를 넘었다. <끼리끼리> 종방 직후 방송되는 <복면가왕>이 10%를 유지하고 있다. 주변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너무도 초라한 결과다. 

당초 <끼리끼리>는 기대가 있었다. 특히 출연 인물 면면이 화려하다. MBC <무한도전> 등을 통해 내공을 닦은 박명수와 최근 대세로 떠오른 장성규, 공개 코미디와 버라이어티 예능서 강렬한 웃음을 선사한 이용진과 강호동 사단의 에이스 은지원, tvN <더지니어스> 등에서 맹활약한 인피니티 성규 등이 출연한다. 


오랫 동안 웃음을 선보인 예능 선수들은 물론 신선한 얼굴도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였다. tvN <플레이어>서 매력을 뽐낸 모델 정혁과 첫 예능에 도전한 이수혁, 유튜브서 방송 재능을 선보인 하승진과 SBS <동상이몽>서 색다른 캐릭터로 인지도를 높인 인교진 등의 출연도 이목을 끌만한 요소다.

하지만 뚜껑을 연 <끼리끼리>는 과거로 회귀한 듯한 올드한 버라이어티 형식에, 한 곳에 어우러지지 못하고 따로따로 노는 듯한 느낌, 이유 없이 줄곧 게임만 하는 이해되지 않는 구조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특히 가장 큰 요소는 캐릭터의 부재와 줄기가 되는 스토리 라인이 없는 것이다.

비슷한 프로그램인 <런닝맨>의 경우 매주 바뀌는 게임 내에서, 이광수와 김종국, 송지효, 전소민, 지석진에게 어울리는 캐릭터를 부여했다. 멤버들은 그 롤에 맞게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이전 방송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더 큰 웃음이 만들어지곤 했다. 이 역시 메인 MC가 적절히 분위기를 이끌면서 생겨나는 대목이다.

메인 MC가 패널들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출연자가 그에 걸맞는 행동을 이어가면서 캐릭터와 스토리가 생긴다.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김구라와 같은 예능인들이 이 방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KBS2 <1박2일>이나 tvN <신서유기>도 비슷한 면이 드러났고, 장수 프로그램다운 성공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끼리끼리> 2% 시청률 ‘메인 부재’
보저적인 역할서 빛나 “MC는 과욕”

 


먼저 이러한 설정을 택한 제작진의 불찰은 말할 것도 없다. 여러 패널을 두 팀으로 만들어 각각 다른 게임을 한다는 설정 외엔 이들을 융합시키는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끼리끼리>의 또 하나의 문제는 메인 MC의 공백이다. 매번 다른 설정의 게임을 하다 보니 인물을 관찰할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이들의 특성을 명확히 잡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의 특성이 보이지 않는다. 캐릭터가 안 잡히니, 스토리가 제대로 구성될리 없다. 

특히 ‘늘끼리’ 팀(박명수·장성규·이수혁·은지원·김성규)으로 화면이 넘어갔을 때 지루함이 커진다. 메인 MC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박명수와 장성규가 있음에도, 진행 면에서 허점이 보인다. 출연자들이 한데 모이지 않아 어수선하다는 평가다.

피식 할 만한 파편화된 웃음은 있을지언정, 강력한 한 방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비록 환경이 좋지 못하다해도 충분히 메인 MC 역할은 잘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박명수는 그마저도 실패하는 그림이다. 매끄럽고 깔끔하게 시선을 모으지 못한다. 패널들조차 집중력이 부족해 보인다. 이는 MC가 패널을 이끌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온라인서도 비슷한 평가가 이어진다. 방송 내적으로는 ‘정신이 없다’는 평가가 많으며 박명수에 대해서는 ‘MC 면에서는 오래전에 실력이 탄로 났다’ 등의 지적도 있다. 

실제로 박명수는 버라이어티 메인 MC 진행 부문에서 지속적인 실패를 반복했다. 꾸준히 기회를 받고 있지만, 진행 면에서는 여전히 미숙함이 드러난다. 

비슷한 예가 지난 2010년 첫 방송해, 마니아층을 형성한 <뜨거운 형제들>이다. 순간순간 장면서 웃음은 상당했지만, 방향을 잡지 못한 <뜨거운 형제들>은 높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1년을 넘기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당시에도 메인 MC로서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현재 방영되는 <끼리끼리>가 주는 재미는 <뜨거운 형제들>의 그것에도 크게 못 미친다. 

예나 지금이나 박명수가 있었다. 박명수는 10년 전의 잘못을 답습하는 모양새다. 여전히 고정 패널이 다수 나오는 버라이어티 부문에서 취약한 모습이다. 

여전히 그는 각종 방송서 사랑받는 예능인이다. KBS Cool FM 라디오 <박명수의 라디오쇼>는 방송 때마다 관심을 받는 ‘핫’한 라디오며, TV조선 <아내의 맛>과 <미스터트롯>, tvN <더 짠내투어>, MBC 에브리원 <대한 외국인>도 비록 시청률은 높지 않지만, 각종 온라인서 높은 화제성을 띠고 있다.

최근 <놀면 뭐하니?>의 치킨 아이템에 출연해 유재석과 티격태격하는 장면 역시 그의 매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일부 호불호가 있었지만, 그를 반기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인기를 얻는 프로그램과 그렇지 못한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박명수는 스튜디오 방송에 적합하다. 버라이어티의 경우 메인 MC보다는 보조의 위치에서 더욱 빛이 난다.


패널로 등장하는 <아내의 맛>과 <미스터트롯>에서는 기발한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뺐었고, <대한 외국인>에서는 김용만의 안정적인 진행 옆에서 출연자들과 시너지를 내며 색다른 유머를 만든다. 여행을 설계할 때만 진행의 롤이 생기는 야외 버라이어티 <더 짠내투어>는 부담이 덜한 덕인지, 꾸준히 좋은 폼을 보인다. 특히 박나래와의 티키타카가 커다란 재미를 준다. <놀면 뭐하니?>에서도 유재석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로 더 큰 매력을 보여줬다.

과욕

‘잘 맞는 옷’이 분명히 있는 박명수는 이미 오랫동안 기회를 얻었음에도 지속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메인 MC까지 넘보는 건 과욕이 아닐까. 버라이어티 도전은 그의 훌륭한 업적에 생채기만 낼 뿐이다. 굳이 어울리지 않는 영역을 넘보지 않고, 스튜디오 위주의 영리한 선택을 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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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