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봉준호의 마지막 기자회견 

몰락한 홍콩영화를 기억하다

[일요시사 연예부] 함상범 기자 = 지난해 5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에 이은 4관왕을 거둔 영화 <기생충>이 약 10개월의 여정을 지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약 10명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참석한 기자회견은, 지난 10일의 감동이 그대로 묻어있었다.
 

▲ 기자회견서 발언하는 봉준호 감독 ⓒ문병희 기자

지난 19일 오전 11시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서 <기생충> 팀의 마지막 기자회견이 열렸다. 명함과 ‘프레스 카드’를 주고받는 사이 다량의 마스크가 쌓인 박스가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0명 이상 급격히 늘면서 공포심도 확장됐음에도, <기생충>으로 전 세계를 휘어잡은 봉준호 감독을 위시한 제작진과 배우진을 취재하려는 열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호텔의 세미나장이 5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임에도 기자회견 1시간 전인 10시부터 현장은 빼곡하게 차있었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와 사적인 사람들의 집합으로 이뤄지는 결과물인 영화는 특성상, 국가 대표적인 성격을 띠기 어렵다. 하지만 <기생충>이 약 10개월 동안 쌓아올린 금자탑은 국내 영화팬 모두에게 감격을 전달했다. 그 안에서 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제작진과 배우진 역시 오스카 작품상 시상서 ‘패러사이트’(Parasite)가 울린 감동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모습이었다. 애써 침착해 지려고 노력하는 얼굴들 사이서 당시의 벅찬 기쁨을 엿볼 수 있었다. 

감독과 배우들의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부터, 직접 얽혀있어서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기자회견장에서 오갔던 ‘중요한’ 발언을 모아봤다.

- <기생충>이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반지하’와 ‘짜파구리’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대만 카스테라’ 등 한국적인 요소가 굉장히 다분한 <기생충>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서 사랑을 받았다. 작품의 예술성을 중시하는 칸 국제영화제는 물론 대중성의 메카인 아카데미 시상식도 <기생충>의 손을 들어줬다. 여러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봉 감독과 배우들이 생각한 ‘폭발적인 열광’의 뿌리는 무엇일까. 

▲봉준호 : 제가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만드는 스토리 본질을 외면하는 건 싫었다. 이 스토리가 가진 우스꽝스럽고 코미디스러운 점도 있지만 현대사회의 빈부격차가 드러나는 씁쓸하고 쓰라린 면이 있다. 

단 1cm라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처음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정면돌파해야 되는, 아울러 그러려고 만드는 영화가 <기생충>이다. 누군가는 불편해하고 하고 싫어할 수 있겠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당이정’을 입혀서 혹은 데코를 하면서 달콤하게 포장된 채로 영화를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현 시대를 최대한 솔직하게 그리려고 했다. 대중적인 측면서 위험해보일 수 있어도 이 영화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고, 영화를 마무리할 때도 그렇게 했다. 

국내서도 1000만 관객 이상이 호응을 해줬고,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와 베트남, 일본, 영국서도 오스카 후광과 상관없이 인기를 모았다. 그 부분이 기뻤다. 이런 저런 수상 여부를 떠나서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 기쁘다. 왜 그랬는지는 시간을 둬서 분석해봐야 될 것 같다. 그게 제 일은 아닌 거 같다. 평론가나 기자, 관객이 해주실 것 같다. 저는 빨리 다음 작품을 위해 한 줄 한 줄 써내려갈 생각이다. 
 

▲ 기자회견에 앞서 기념촬영 갖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 및 배우들과 스태프 ⓒ문병희 기자

▲이정은 : 칸에 갔을 때, 제 생각이지만 과거에 대한 회상 대신 현 시대를 짚는 영화들이 제 생각에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미국이나 유럽이나 젊은이들의 실업 등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다. 동시대적인 문제를 굉장히 재미있게 그렇지만 심도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고, 선과 악이 없는데 가해자 피해자가 되는 게 우리 인간 군상과 흡사해 놀랍다. 아카데미 캠페인이 경쟁구도 같지만 동지적 모습을 많이 보인다. 감독님이 인기가 있는 건, 시상식서 보여준 인간적이고 넘치는 유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 오스카 무대에 선 배우들의 전율은?

봉준호 감독 뿐 아니라 배우 송강호와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이선균, 조여정, 장혜진 등은 미국 내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당시 모든 배우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고, 일부 회자되기도 했다. 전율과 감동이 가득했던 그 순간, 배우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조여정: 무대에 서 있을 때 제 표정으로 만든 영상도 봤다. 저희만 한국 사람이고 타지서 무대에 올라가 있는 걸 보면서 ‘영화의 힘은 대단하구나’라는 걸 느꼈다. 봉 감독님이 수상소감서 말씀했듯이 영화가 한 가지 언어라는 게 체감이 됐다. ‘감독님의 영화가 얼마나 인간적으로 접근했으면 이게 다 통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굉장히 자랑스럽게 무대에 서 있었을 수 있었다. 

▲송강호 : 그 당시 제 얼굴이 계속 나오는데, 자세히 보면 제가 굉장히 자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칸 국제영화제’ 때 너무 과도하게 해서 감독님의 갈비뼈 쪽에 실금이 갔었다. 뺨을 때리기도 했고, 뒷목을 잡기도 했다. 아카데미에서는 갈비뼈만 피해갔다. 

- <기생충>은 어떤 드라마로 탄생할까?

<기생충>은 미국 HBO와 손을 잡고 약 6부작의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빅쇼트>와 <바이스>로 이름을 알린 아담 맥케이 감독과 봉 감독이 공동 제작한다.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봉 감독이 꼭 넣고 싶은 이미지는 무엇일까?

▲봉준호 :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아담 맥케이 감독과 몇 차례 만나서 얘기도 나눴다. 애초에 갖고 있었던 주제 의식과 빈부격차를 블랙코미디와 범죄드라마 형식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게 될 것 같다. 시즌1, 2로 가는 게 아니라 5∼6개 애피소드로 밀도 있는 TV시리즈로 만들려 한다. 틸다 스윈튼과 마크 러팔로의 캐스팅 언급이 나왔는데 공식적 사안이 아니다.

- 봉준호에게 번아웃이란?

지난해 5월부터 지난 2월까지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한 봉 감독을 향해 일각에서는 ‘번아웃’의 우려가 있다. ‘감독과 배우를 갈아 넣은 스케줄’을 지나친 봉 감독의 건강은 괜찮을까?
 

▲봉준호 감독 : 제가 2017년 <옥자> 찍고 이미 번아웃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기생충>을 찍고 싶어, 없는 기세를 다 긁어모아 찍었고, 촬영보다 더 긴 오스카 캠페인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긴 세월인데 행복하게 마무리돼 다행이다. 

- ‘제2의 봉준호는 없다’에 대하여…

<기생충>의 성공과 함께 일각에서는 ‘제2의 봉준호가 없다’고 말한다. <기생충>처럼 양극화가 뚜렷한 현 영화계 현실에 일침을 놓는 것. 한국 영화계에 기리 남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봉 감독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봉준호 : 저도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요즘 젊은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를 들고 왔을 때, <기생충>과 똑같은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고 냉정하게 질문해본다. 

제가 1999년 데뷔했다. 20여 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이상한 작품, 모험적 시도를 하기 뭔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재능 있는 친구들이 산업으로 흡수되기보다 그냥 독립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와 산업이 평행선을 이루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초,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을 찍는 시절엔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의 상호침투, 좋은 의미의 다이내믹함이 있었다. 그런 활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되는 지점이다.


90년대 홍콩영화산업이 어떻게 쇠퇴해갔는지 저희가 기억을 명확히 갖고 있다. 산업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더 도전적인 영화들을 산업이 껴안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나오는 여러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워낙 많은 재능들이 이곳저곳서 꽃피고 있기에 산업과 좋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 희망적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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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