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스타 전도연의 새로운 도전

다시 꿈을 꾸는 ‘칸의 여왕’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은 소위 ‘국뽕’에 취해 있다. 전 세계를 열광시킨 영화였던 것은 물론, 수많은 할리우드 배우 앞에서 여유롭게 미국 영화계의 거장을 존경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언행은 모두를 감동시켰다. 이미 13년 전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전도연도 마찬가지였다. 배우로서 정점에 오른 뒤 뚜렷한 자극이 없었던 그에게 <기생충>의 활약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는 ‘칸의 여왕’ 전도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 ⓒ메가박스플러스엠<br>

영화 관객의 입장서 배우 전도연의 연기를 보는 것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유괴를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죽임을 당한 아이의 엄마(<밀양>)였고, 신분 상승을 노리는 하녀(<하녀>)였으며,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수년간 가족과 생이별한 아내(<집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또 붉은 드레스를 입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퇴물’이 된 술집 마담(<무뢰한>)이기도 했으며, 세월호 침몰로 아이를 잃은 엄마(<생일>)였으니, 힘든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렇듯 전도연이 연기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극단의 환경에 놓여 있었다. 

<지푸라기…> 
‘숙명’으로

앞서 거론된 영화는 어떤 사건이 발생한 뒤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극을 이끌어가는 건 늘 전도연이었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전도연의 얼굴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배우로서도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대본 혹은 대사에 적혀 있는 것 이외에도, 진짜 본질에 가까운 감정을 알아내야 하는 숙제가 뒤따랐다. 거절하고 거절하다가도 결국 돌아오는 대본과 함께 “이 인물은 전도연밖에 소화할 배우가 없다”는 말이 붙었다. ‘숙명’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인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가 인물 중심의 서사가 아닌 사건 중심의 서사로 전개되는 신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로 관객과 만난다. 전도연은 큰돈이 앞에 나타났을 때 만나는 모든 사람을 속이고 상처 주는 연희를 연기한다. 활달하고 애교 섞인 귀여운 표정 뒤에 살벌함을 감춘 인물이다.


‘귀여운 소시오패스’가 적당한 묘사다. 극단의 감정을 절절이 쏟아내야 했던 기존 전도연의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극중 전도연은 연희를 두고 “내면의 깊은 감정까지 굳이 알아낼 필요 없이 주어진 텍스트만 해석해도 충분했다”고 언급했다.

“이 영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하겠다고 했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연희라는 인물 자체가 대본에 모두 세팅돼있었어요. 굳이 보이지 않는 감정을 찾을 필요가 없었어요. 예를 들어 <밀양>만 하더라도, 미쳐가는 신애의 모습을 제가 찾아야 하거든요. 연희는 전사를 쓰지도 않았어요. 지금 연희가 가진 얼굴이 과거에도 같은 연희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이미 과거에도 이렇게 살아왔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뭔가 만들려고 하지 않았어요. 여러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연기를 하자는 생각이었죠. 굳이 부담이 있었다면, 부담스럽게 뭘 하지 않는 거였죠.”

고민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인물인 연희는 영화 내에서 놀랍다. 타인에게 아픔을 주는 데 거리낌이 없는 데다 심지어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큰 일을 저지르고도 태연하다. 전도연은 충격적인 행위를 일관하는 게 매우 자연스러운 이 인물을 즐기는 데 성공한다. 

“배우 입장에선 정말 반가운 작품이에요. 부담도 없었고요. ‘묻어갈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도 들었어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감정이 중요했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르죠. 전작 모두 보이지 않는 감정이 엄청 중요했거든요. 저는 그걸 찾느라 늘 치열했어요. 이번에는 사실 연희한테 감정이입도 안 됐어요. 너무 이상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연희를 연기하는 것을 그저 즐겼던 것 같아요. 사연이 있고 커다란 감정이 있고 그랬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소시오패스죠. 정말 재밌었어요. 새롭기도 했고요.”

애교 섞인 ‘소시오패스’
정교하고 본능적인 연기력

<지푸라기>가 신선한 점은 처음부터 전도연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무거운 얼굴로 극의 처음을 열고 끝을 맺어왔는데, 이번에는 무려 50분이 지난 뒤에야 얼굴을 비친다. 그때부터 영화는 진한 색을 입고 쉼 없이 달려간다. 절절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전도연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이어지는 가벼운 언행에도 결국 엄청난 무게감을 안겨주는 그의 연기력은 이번에도 놀랍다. 

관객을 압도하기 전에 감독부터 제압하는 게 전도연의 능력인 듯하다. 영화감독이 배우에게 애정이 있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엄청난 존경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전도연이라면 예외다. <지푸라기>를 연출한 김용훈 감독에게 전도연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빠른 템포로 칭찬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김 감독은 전도연에 대해 “정교하면서 본능적인 배우”라며 “기술적으로는 현장서 풀샷이 ‘OK’ 사인이 나면 얼굴을 따는데, 모든 장면을 다 완벽하게 해내요. 연기적인 기술이거든요. 그것만 해도 훌륭한데, 순간적으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왔을 때 이미 그 인물처럼 본능을 발휘해요. 갑자기 바람이 싹 날렸는데, 연희처럼 바람을 피하더라고요. 차에 타는 장면이었는데, 헝클어진 머리를 운전석 위에 거울을 내리면서 머리를 다듬으며 대사를 던지는데, 거기서 이미 제압됐죠. 그게 첫 촬영이었어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해도 안 아까워요. 인간문화재로 등재할 수 있으면 그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좋은 배우의 미덕 중 하나가 캐릭터에 보편적이고 타당한 인간의 모습을 불어넣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 진짜 그럴 것 같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송강호나 이병헌처럼 전도연 역시 탁월하다. 이는 노력이 아닌 천재적인 재능으로 볼 수 있다. 

“누군가를 죽이는데 다리가 보여야 됐어요. 촬영하는데 저도 모르게 다리가 더 잘 보이게 하려고 몸을 틀더라고요. 그건 연희스러운 거잖아요. 저도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에요. 그 상황에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저도 모르게 나왔죠. 많이들 칭찬했어요. 기뻤고요.”

“인간문화재로 
등재하고 싶다”

<지푸라기>는 전도연을 비롯해 정우성, 박지환, 배성우, 정만식, 신현빈, 정가람, 진경 그리고 윤여정까지 주요 배우가 많다. 각자마다 사연이 있고 스타일이 있다. 모든 인물이 적절히 설명돼야 하는데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었다. 게다가 감독은 단편영화 한 작품밖에 안 한 신인이었다. 불안했다는 게 전도연의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먼저 캐스팅이 걱정이었죠. 인물이 너무 많잖아요. 사실 영화가 촬영까지 갈 수 있을까도 우려됐어요.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도 이 인물들을 한 이야기에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까 했어요. 막상 영화를 보고서는 만족감이 컸어요. 감독님이 정말 수고하신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애착이 생긴 전도연은 캐스팅에 전적으로 가담한다. 먼저 윤여정에게 전화를 걸어 역할을 맡아주길 요청한다. 또 이미 도장을 찍은 정우성에게도 전화해 ‘잘해보자’고 독려하기도 했다. 배우가 이토록 나서기란 쉽지 않다. 

“윤여정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어요.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정말 재밌다는 얘기를 했죠. 그러면서 치매 걸린 시어머니 역할을 해달라고 했어요. 뭔가 숨바꼭질 같은 게 필요한 인물이잖아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께 ‘역할이 좋다’고 하니까 ‘그렇게 좋으면 네가 하지 그러니’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결국 해주셨는데, 저를 믿어주신 거니까 감사하죠.”

걱정이 많았던 작품, 게다가 이례적으로 중간부터 투입되는 특별한 상황까지 있었던 터라, 우려는 비교적 컸다. 하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첫 촬영 날에 감독님을 보는데 여유가 넘치는 거예요. 신인 감독이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이미 현장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도가 됐어요. 그 이후로는 쭉 달렸죠.”

연희는 태영(정우성 분)과 연인 관계다. 정확히 말하면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다가 또 갑자기 태영 앞으로 찾아오는 인물이다. 전도연과 정우성, 멜로 장르서 각자의 성별로 활약한 두 배우지만,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만났다. 데뷔 30년 만이었다. 극중 연희가 느닷없이 태영을 찾아와 밥을 차리며 애교를 부리는 장면이 두 사람의 첫 촬영분이었는데 당황했었다고 했다. 
 

▲ ▲▲ 배우 전도연 ⓒ메가박스플러스엠

“정우성씨가 예상과 다른 연기를 하더라고요. 저도 애교를 부려야 하는데 힘든 면이 있었죠. 그래도 버텼어요. 그걸 버티고 나니까 상황이 만들어지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쉬웠어요. 우성씨와 가까워졌는데, 멜로보다 코미디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멜로는 어쩌면 뻔할 것 같고, 둘이서 코미디를 하면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 물론 해보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웃음)”


국내 영화계서 연기를 가장 잘하는 여배우가 누구냐고 하면 전도연이라는 답이 독보적으로 나오곤 하는데 여기엔 이견이 없다. 남자배우의 경우 송강호와 이병헌, 최민식, 한석규, 김윤석, 설경구, 하정우 등이 기호에 따라 이래저래 나뉘지만, 여배우는 전도연으로 모인다. 국내 최고라는 말이 결코 무색하지 않다.

여전히 그가 최고를 유지하는 비결은 위치를 가리지 않고 수용하는 자세에 있는 듯하다. 옳은 행동이라면 적극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그 명성을 만든 건 아닐까. 이번에는 신현빈이 그에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됐다. 

“봉·박 감독과
같이하고 싶다”

“제가 극 중에서 머리를 자르고 나와요. 미란(신현빈 분)과 만나는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현빈이가 머리를 자르겠다고 한 거예요. 연희를 닮고 싶은 마음을 짧은 머리로 표현하겠다는 의지였죠. 사실 딱 한 신이에요. 한 신을 위해 머리를 자른다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 수 있어요. 감동받았어요. 그런 어린 친구들이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자극이 돼요. 저도 더 노력하게 되고요.”

<지푸라기>는 큰돈이 담긴 돈 가방을 처절하게 쫓는 자들을 통해 ‘욕망’을 발언한다. 사회를 둘러보면 돈이라는 가치가 어떤 다른 가치보다 우선시 되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라고 불리는 배우에게도 돈은 중요한 가치일까. 전도연은 돈보다 일이라고 했다. 

“물론 돈 좋죠. 돈 앞에서 누가 자유롭겠어요. 돈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해요. 하지만 돈이 행복의 기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돈이 있어서 행복한 사람은 행복할 거고, 돈이 있다고 해도 불행한 사람도 있을 거잖아요. 저는 요즘에 일에 대한 욕망이 커졌어요.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꿈도 꾸게 됐다. 바로 ‘오스카’다. 인터뷰는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거둔 다음 날인 11일에 진행됐다. 모두가 감동으로 버무려진 날, 전도연도 똑같았다. 그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에 가는 꿈을 꾸게 됐다.   

“정말 역사적인 사건이죠. 뭐라도 받으면 좋은 거였는데, 4관왕이라니. ‘악’ 소리도 안 날 만큼 큰 기쁨이었어요. 사실 오스카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는데, 현실로 만들어준 거잖아요. 제가 비록 칸 국제영화제서 상을 받긴 했지만, 또 하나의 문이 열린 거잖아요. 저도 꿈을 꾸게 됐어요. 이왕이면 윤여정 선생님과 함께요.”

왜 윤여정일까. 두 사람은 <지푸라기> 뿐 아니라 <하녀>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일까, 두 사람은 이후 교감을 나누며 진한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도연은 윤여정을 사랑하는 듯 보였다.

“저는 선생님이 너무 궁금해요. 언제나 그분 연기를 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만나도 즐거운 사람이고요. 나이가 있으심에도 트렌디하고 허물없이 작품선택을 하고요. 정말 놀라워요.”

국내 최고 감독으로 칭송받던 봉준호 감독은 이제 전 세계를 아우르는 감독이 됐다. ‘칸의 여왕’과 ‘오스카의 왕자’는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꽤 무거웠던 ‘여왕 왕관’
오스카 무대를 상상하다

“봉 감독님이 저랑 작품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사적으로도 많이 봤어요. <옥자>를 준비할 때, 한 번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때 ‘내가 옥자로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근데 아역 안서현에 대해서만 물어보더라고요. <하녀>서 저랑 같이 연기했거든요. 전 사심이 있었지만, 그 분은 사심 없이 얘기하셨어요.(웃음) 봉 감독님이나 박찬욱 감독님과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어요. 요즘 많이 어필하고 있어요.” 

꿈과 변화, 이런 단어들이 연기 경력 30년 전도연의 입에서 자주 나왔다. 그리고 내용이 비교적 가벼운 시나리오들도 그를 향하고 있다. 차기작은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이다. 송강호와 이병헌이 나오는 재난 영화다. 이 역시 사건이 중심이다. 늘 80% 이상을 차지하던 전도연의 분량이 <지푸라기>도 그렇듯 <비상선언>서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기뻐 보였다. 
 

▲ ▲▲ 배우 전도연 ⓒ메가박스플러스엠

“저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파도에 휘말린 상황이었어요. 언제나 숨쉬기조차 버거운 인물들을 연기해야 했고요. 제작하시는 분들이 제가 그런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했나봐요. 그래서 피로도가 컸어요. <생일> 같은 영화는 홍보하기도 조심스러워요. 아무래도 웃을 수 없으니까.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후로는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다들 ‘연기 한 번 해봐’라는 식의 시선이 있었어요. tvN <굿 와이프> 찍을 때였는데 제가 ‘눈물의 여왕’이잖아요. 윤계상씨 앞에서 힘든 걸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는 신이었는데, 밑에서 스태프 모두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는 거예요.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우는 척만 했어요. 대사에 ‘실컷 울었네’가 있는데, 빼달라고 했었어요. 솔직하게 말했죠. 부담스러웠다고. 사실 그런 무게를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늘 칸의 여왕이라는 제일 윗자리에 있다 보니, 연기라는 직업이 무겁게 다가왔다. 13년이 지난 이제야 조금씩 그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서도 전도연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비교적 작은 역할은 물론 <백두산>처럼, 카메오로도 전도연을 부르고 있다.  

오스카의 꿈
자극을 받다

“<백두산>에서처럼 카메오로만 나와도 사람들이 새롭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새로움에 목말라 있어요. 분량은 전혀 문제가 안 돼요. 이제는 조금 밝고 즐거운 작품을 연기하고 싶어요. 블록버스터에도 나가고 싶고요. 저에게 흥행은 아픈 손가락이잖아요. 개인적으로 기대도 있고 그래요. 해외진출도 때 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어적인 부분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 또 모르죠. 그러면서 조금씩 오스카에 서는 저를 상상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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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