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접수한 <기생충>의 아이러니

봉준호와 <기생충>이 만든 역설적인 현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한국 영화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사가 생겼다.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서 무려 4관왕을 차지한 것. 자본주의의 빈틈을 꼬집은 <기생충>은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제작부터 ‘오스카 캠페인’까지 지원한 국내 콘텐츠 분야 1위 기업인 CJ ENM이 있다. CJ ENM은 그간 줄곧 외쳐온 ‘해외 경쟁력’을 <기생충>을 통해 입증해보였다. 빈부격차의 아픔을 전달한 <기생충>이 결과적으로, 대기업이 내세운 주장의 결실이 된 아이러니한 현실을 짚어봤다.
 

▲ 오스카마저 접수한 봉준호 감독

지난해 5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기생충>은 전 세계 영화 관련 155개 시상식서 174개의 상을 휩쓸었다. <기생충> 이전 영화들이 유수의 영화제서 거둬들인 상의 총합(약 150개)보다도 월등히 많은 수치다. 전 세계 영화인은 물론 비평가들마저도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후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국제영화상과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석권했다. 

한국영화 
100년 쾌거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받은 작품은 1955년 <마티> 이후로 <기생충>이 두 번째다. 비영어권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도 최초며, 아시아계 최초 각본상 수상 등 최초로 세운 기록도 즐비하다. 전 세계적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기생충>이 남긴 기록은 쉽게 깨지지 않을 전망이다.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영화의 힘에 있다. ‘익숙한 것에서 낯섦을 추구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의도가 영화 곳곳에 놓여있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영화 전문잡지인 <카이에 뒤 시네마>서 ‘삑사리의 미학’이라고 할 정도로 영화 초반부터 후반까지 예측대로 흘러가는 부분이 없다. 영화의 중점적인 사건이 예고 없는 실수와 실책으로부터 시작해서, 또 다른 우연을 맞이하며 나아간다. 그런데도 개연성은 탄탄히 유지된다. 

모든 국가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부익부 빈익빈’을 주제로 한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도 깬다. 매우 중립적인 관점으로 부자와 빈자를 바라본다. 이전부터 부자는 옳지 못한 행위로 부를 축적하는 나쁜 인물로 묘사됐으며, 가난한 자는 선하거나 게으른 인물로 표현됐다.


하지만 극 중 부자로 나오는 박 사장(이선균 분)은 성실한 노력으로 부를 쌓았으며, 딱히 악한 면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아내 연교(조여정 분)는 누구보다 순진하다. 빈자로 등장하는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게으르지도 않다. 그러면서 문서를 위조하는 것이나 남을 속이는 것에 죄의식이 없다. 부자보다 악한 행동을 잘한다.

‘빈부격차’에 대한 기존 ‘영화적 질서’를 두 가족의 이야기로 완전히 무너뜨린 이 영화는 마치 축구 경기처럼 전·후반부로 나뉜 형태로 구성됐다. 기택의 가족이 박 사장의 가족 곁으로 투입되는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로 이어지던 전반부를 지나, 문광(이정은 분)이 돌아오는 기점부터 마지막까지 공포와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를 갖춘다.

<기생충>의 영화 같은 시작과 끝 
전 세계가 인정한 ‘봉준호 장르’ 

풍자와 해학, 드라마와 공포, 스릴러와 미스터리 등 장르의 혼종 형태를 보인다. <기생충>의 장르를 규정하는 것을 두고 여러 말이 돌자 한 외신 기자는 “<기생충>은 그냥 봉준호 장르다. 생각하지 말자”라는 말을 남겨 화제를 모을 정도로 <기생충>은 ‘이상한’ 영화다. 

독특한 구성과 장르, 완벽에 가까운 연기 앙상블에 이어 본질에 접근한 주제 의식, 기존 인식을 깬 빈부를 바라보는 관점, 아울러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한 빈부격차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에 가까운 슬픈 엔딩까지, 이 영화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완벽한 수준의 작품으로 꼽힌다.

또 봉준호 감독이 보였던 인간존중의 태도 역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각종 시상식서의 그의 수상 소감은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서 미국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를 존경한다는 소감은 전 세계 시청자를 감동시켰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유머와 해학을 섞어 촌철살인과 같은 핵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화법은 그의 영화와 닮아있다. 봉 감독과 함께 그의 뇌에서 나온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던 통역 담당자까지 덩달아 화제에 올랐다. 제작 초기부터 ‘오스카 작품상’으로 귀결되기까지, 그 긴 여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왔다. 


현재 한국 사회 전체가 <기생충>의 쾌거에 취해있다. 하지만 한국 영화 미래는 그리 밝지 않으며 다소 암울하기까지 하다. 박 사장의 잔디밭이 받아내는 태양광과, 기택의 반지하에 겨우 떨어지는 빛의 양처럼 닮았다. ‘포스트 봉준호는 누구인가’라고 했을 때 기대되는 인물이 없다. 이는 감독 개개인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해석된다.

세계가 감동
매력에 흠뻑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개봉한 2003년도에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 식사>,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등이 함께 개봉했다.

이들 감독들은 현재 한국 영화의 거장으로 대표되고 있다. 흥행과 무관하게 당시 영화들은 지금까지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수작으로 회자된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영화 제작자들이 작가주의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일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필성 감독은 유튜브 채널 ‘직격탄’과의 인터뷰서 “그때를 생각하면 서부개척시대 같은 느낌이다. 뭔가 새로운 이야기와 배우, 장르의 영화를 감독이나 제작자, 배우, 투자사 모두가 만들어 내보자는 폭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저희 세대 수많은 감독이 데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대기업 중심의 거대 자본 투입과 함께 수많은 멀티플렉스가 생겨나고 국내 영화산업서 경제적 파이가 늘어나면서, 영화는 제작자 중심서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옮겨갔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작품을 중시하는 풍토서 흥행을 중시하는 풍토로 그 흐름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소위 ‘양산형 영화’로 불리는 클리셰로 점철된 영화들이 한국 영화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는 늘어났지만, 200만서 500만 관객을 모으는 허리에 해당하는 영화들은 줄어들고 있다. 호평을 받는 영화도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받은 영화는 <기생충>과 <극한직업> <엑시트> <사바하> 정도에 그친다. <벌새>와 <메기> 등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작품은 대부분 저예산 독립영화계서 탄생했다.

봉 감독이 엄청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한국 영화 위기론’은 지속될 전망이다. 

‘제2의 봉’
찾아보니…

작품 중심서 흥행 중심으로 변화된 풍토 속에서 영화인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대목은 수직 계열화다. 국내에서는 CJ와 롯데가 해당한다. CJ는 영화 유통 플랫폼 CGV와 투자·배급을 하는 CJ ENM을 갖고 있다. 롯데는 롯데시네마와 롯데컬처웍스를 보유하고 있다. 

1938년 미국서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로 세계적으로 제작·배급과 상영을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독과점을 막기 위해 스크린 15∼27개를 보유한 멀티플렉스서 한 영화는 최다 4개 스크린만 점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스크린 몰아주기에 대한 제재가 완전 무방비 상태다. 

실제로 4대 배급사로 불리는 영화들은 첫 주에 상영점유율과 좌석점유율이 50%에 육박한다.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반독과점 영대위)에 따르면 <백두산>은 개봉일 상영점유율 44.5%, 좌석점유율 50.6%를 기록했다. 이는 총 상영작 128편의 상영 횟수 중 44.5%를, 좌석 수 중 50.6%를 차지한 것.
 


반독과점영대위는 “올해만 해도 영화 13편이 스크린을 독과점했고 3사 극장 체인이 매출 97%를 독차지하는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산업 내에서 자율적 정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정부와 국회가 법과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영화산업은 개봉 후 극장서 벌어들이는 수입 외에는 다른 수입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개봉 후 관람 비용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별히 입소문을 얻고 역주행을 하지 않으면 첫 주에 흥행 여부가 판가름난다. 대다수 스타가 출연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4대 배급사 작품은 작품성과 별개로 각종 영화관으로부터 수많은 스크린을 확보한다.

약 2600개의 스크린서 한 영화가 1800개까지 확보한 예도 있다. 반대로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다양성 영화관으로 밀려나거나, 새벽과 심야에만 대관이 되는 일명 ‘퐁당퐁당 상영’을 하게 된다. <기생충>의 박 사장과 기택 가족처럼 영화계 내 양극화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기대하기 힘든 ‘포스트 봉’ 
영화계 양극화 짚어야 할 시점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CJ와 롯데를 향한 수직계열화 관련 지적은 이전부터 지속됐다. 그럴 때마다 두 기업은 ‘해외경쟁력’을 내세워 수직계열화의 명분을 찾으려 했다. 2016년 열린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서 당시 CGV 대표였던 서정 CJ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사 대표는 “영화는 문화이자 산업적인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물론 문화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서 더욱 산업적인 시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CJ의 이 같은 방침은 4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빈부격차의 슬픈 현실을 노골적으로 직시한 <기생충>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영화계 내 빈부 격차를 더 벌리고 있는 CJ로부터, 전폭적으로 지원받아 자본의 중심에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서 작품상을 수상함으로, 그동안의 CJ 측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우려를 낳게 됐다. 일각에선 이번 수상이 이재현 CJ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지속적인 투자로 인해 얻어진 결실이라는 분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것이 ‘봉준호의 역설’이 함의하는 핵심이다. 
 

▲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직후 트로피에 입맞춤하는 봉준호 감독

그런 가운데 봉 감독과 기생충 팀의 쾌거가 순기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영화계에 존재하는 양극화 문제를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봉준호 감독이 일궈낸 쾌거는 한국 영화 역사상 다시 보기 힘들 쾌거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제2의 봉준호 등장이 가능해지려면 영화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환경과 생태계, 곧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영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계급의 문제를 다룬 이 영화가 대기업과 대자본의 후원으로 세계 영화계에 알려진 건 의미 있고, 반가운 현실이지만, 영화산업의 문제나 왜곡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돼야 하지 않겠냐고 여긴다. 쾌거 이면에 독립예술 영화계나 창작자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측면서 다시 한 번 짚어봐야, 봉 감독의 쾌거가 순기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일 뿐?
순기능 하려면…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서 “제작과 투자, 배급이 모두 1000만 관객에 매달리는 현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제2, 제3의 봉준호를 못 만든다”며 “왜곡된 시장과 독점 상황을 바로잡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게 혈맥을 뚫어주는 제도가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화적 화법’ 봉준호의 말말말 

영화를 만드는 능력만큼 봉준호 감독은 뛰어난 언변을 갖고 있다. 전 세계를 비롯해 미국 전역을 돌면서 수백번의 수상 소감 발표 및 기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국 MC들의 수많은 질문에 위트와 재미, 존중과 배려, 솔직한 진심을 담은 그의 말솜씨는 감동적이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이 스피치 강사로도 손색없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으며, 시사평론가 김어준은 TBS <뉴스공장>서 “영화감독이라 그런지 말하는 것도 영화적”이라고 평가했다. 듣기만해도 미소가 번지는 봉 감독의 어록들을 모아봤다. 

▲BAFTA 영국 아카데미 백스테이지 인터뷰 = “어느 나라나 가난한 자와 부자들이 있고 그들 사이에 되게 가파른 계단이 있다. 여기 로얄 앨버트 홀에도 계단이 많아서 땀이 나려고 한다.(웃음) <기생충>도 계단에 관한 영화다. 스토리를 요약하면 계단을 올라가려던 한 가난한 남자가 오히려 계단을 내려가면서 끝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우리 시대가 담고 있는 슬픈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

▲HCAA 할리우드 비평가협회 각본상 수상소감 = “습관이 이상하게 들어 시나리오를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커피숍서 쓴다. 영화가 개봉할 때쯤에 가보면 그 커피숍이 망해서 없어졌다.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는데 조용하다는 것은 장사가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해준 그 커피숍 주인 분들께 이 상을 바친다. 또 저의 파트너가 있다. 오늘 약간 변호사나 회계사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변태적인 아이디어로 가득찬 저의 멋진 공동작가 한진원씨를 소개한다.”

▲피트 해먼드와의 인터뷰 = “정치적인 주제나 사회적인 코멘트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장르적인 흥분 내지는 재미가 있는 영화를 하려고 하는데, 대신 인물들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까, 인물들에 대해 파내려갈수록 사회, 역사와 저절로 연결되는 것 같다. 무인도서 평생 사는 사람이 영화를 찍지 않는 이상, 자연스러운 것 같다.” 

▲산타바바라 영화제 감독상 수상 후 인터뷰 = “이 영화와 함께 한국서 혁명이 시작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혁명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혁명은 부숴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혁명의 대상이 뭔지 파악하기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기생충>은 그런 복잡한 상황을 표현하는 영화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수상소감 = “어렸을 때 영화 공부하며 계속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은 마틴 스코세이지다.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내가 상을 받게 될 줄 몰랐다. (중략) 오스카 측이 허락한다면 오스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5개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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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달’ 쿠팡발 관세 음모론

‘벌써 두 달’ 쿠팡발 관세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쿠팡 사태의 ‘나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뜻처럼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외교전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더불어 쿠팡의 ‘믿는 구석’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권을 넘어 미국 정가마저 반응하고 있는 쿠팡 사태를 <일요시사>가 조명했다. 지난해 11월 말 온라인 이커머스 업체 쿠팡에서 고객의 개인정보가 3000만건 이상 유출됐다.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규모를 웃도는 수치였다. 지난달 28일로 쿠팡 사태는 두 달째를 맞았다. 그동안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까지 쿠팡 사태를 언급했다. 미국 기업 방패 삼아 하지만 쿠팡의 태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뻔뻔함’을 앞세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쿠팡 사태는 지난해 11월29일 쿠팡 고객에게 발송된 문자로 시작됐다. 문자에는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배송 주소록, 주문 정보 등 개인정보가 ‘노출’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쿠팡 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괜찮다고 했다. 주말 사이에 문자를 받은 고객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앞서 상반기 SK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 직원의 소행이라는 의혹이 번지면서 충격을 더했다. 사태가 쿠팡 시스템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정부는 쿠팡 사태 발생 직후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경찰은 쿠팡 본사 현장을 압수 수색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청문회를 진행했다. 정부는 쿠팡 유출 대응 범부처 TF를 구성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세청도 가세해 전방위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말을 보탰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난 지 사흘 만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쿠팡 때문에 우리 국민이 걱정이 많다”며 “사고 원인을 조속하게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 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현실화하는 등의 대책에 나서달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역대 정부 최초로 생중계된 기관별 업무보고에서도 쿠팡에 대한 질책을 이어갔다. 당시 이 대통령은 “‘무슨 팡’인가 하는 곳에서 규정을 어기지 않았나. 그 사람들은 처벌이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에 대한 처벌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전방위서 압박했는데도… 그러면서 “야간 노동자의 건강권 이야기가 사실 쿠팡 때문 아니냐. 너무 가혹하고 심야 노동 때문에 많이 죽는 것 아니냐. 금지시키자는 주장도 있다”며 “새로운 노동 형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규제 기법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뿐만 아니라 쿠팡 자체를 정조준한 것이다. 문제는 이 정도의 전방위적 공격에도 쿠팡의 태도는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정부와 논의되지 않은 자체 조사 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도 모자라 실제 개인정보 유출 규모는 3000여건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쿠팡의 ‘셀프 조사’ 결과에 경찰 등이 반박했지만 쿠팡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쿠팡의 주장대로면 피해 규모는 1만분의 1로 줄어든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의 대국민 사과도 사태 발생 한 달 만에야 나왔다. 김 의장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자체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하지만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진행한 청문회에는 출석하지 않아 사과의 진정성이 바랬다. 실제 김 의장뿐만 아니라 김유석 쿠팡 부사장 등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쿠팡에서 제시한 보상안은 부정적인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쿠팡은 1인당 5만원 상당의 쿠폰을 지급하는 등 총 3370만명의 고객에게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마련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현금 배상이 아니라 쿠팡, 쿠팡이츠(배달), 쿠팡트래블(여행), 쿠팡알럭스(명품)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으로 쪼개놓은 것도 모자라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의 지급이라 비판이 빗발쳤다. 대통령도 나섰는데 심지어 사용 조건도 까다롭게 설정해 놨다. 쿠폰 사용 기간을 지급일로부터 3개월로 제한하고 도서, 주류, 상품권 등은 구매할 수 없으며, 쿠팡이츠에서 사용할 때는 최소 주문 금액 이상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보상안에 대해서는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비판했지만 쿠팡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되다 보니 쿠팡의 ‘뻣뻣한’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쿠팡의 ‘믿는 구석’이 뭐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쿠팡이 그동안 정치권 인사를 영입한 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언급됐다. 쿠팡은 정부 부처 출신을 많이 데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치권 인사와 쿠팡 관계자가 식사했던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탈당한 김병기 전 원내대표는 쿠팡 대표와 고가의 식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쿠팡으로 이직한 전직 보좌관 관련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자신의 비리 의혹을 폭로한 전직 보좌관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쿠팡이 독점적 지위를 무기로 뻔뻔하게 굴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쿠팡은 온라인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보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에도 전국에 지어놓은 물류센터가 배송 거점 역할을 하는 중이고 ‘로켓배송’이라 이름 붙인 새벽배송은 배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월 구독료 7890원의 ‘로켓와우’ 서비스는 2024년 말 기준으로 1500만명 이상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켓와우에 가입하면 무료 배송, 무료 반품은 물론 쿠팡에서 론칭한 OTT ‘쿠팡플레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회원 탈퇴 등으로 이용자가 감소 중이지만, 여전히 후발 주자와는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격 없이 흘러가나 실제 사건 발생 직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쿠팡에 미칠 손실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독점적 지위’를 언급했다. 쿠팡이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에 개인정보가 유출됐어도 이용자는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최근 또 하나의 의견이 더해졌다. 쿠팡이 미국을 믿고 우리나라 상황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쿠팡은 우리나라에서 매출 대부분을 올리고 있지만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미국 기업이다. 쿠팡의 대처가 주가에 미칠 영향만을 고려한 행보였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사태 규모를 축소한 자체 조사 결과가 주가 방어용이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의견은 최근 미국의 행보로 힘을 받는 모양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국회가 미국과의 관세 협정에 대해 승인을 하지 않고 있는 점을 배경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무역 협정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합의된 거래에 따라 신속하게 관세를 낮췄고 당연히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도 같은 조치를 취하길 기대한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지난해 7월30일 양국 모두에 훌륭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10월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왜 한국 국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나”라고 적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외신은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최근 김민석 국무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에 불이익 조치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을 기습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오간 대화라는 점에서 쿠팡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뻔뻔한 태도 일관하더니 ‘믿는 구석’ 있었나 의심 <WSJ>는 관계자 발언 등을 인용해 “밴스 부통령이 지난주 워싱턴 D.C.에서 김 총리와 만나 쿠팡을 포함한 미국 기술 기업들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대화는 양국 간 무역 긴장이 정점에 이르기 불과 며칠 전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쿠팡의 미국 투자사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이 일반적인 규제 집행 수준을 넘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대응이 주가 하락 등 손실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 정보 근절법)과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대해서도 트럼프정부와 의회 일부에서는 검열이자 미국 기업 차별이라는 비판을 냈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체결한 대미 투자 관련 양해각서(MOU)에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내용,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차별 금지 약속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발표는 이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관계자를 급파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쿠팡이나 온라인 플랫폼법 등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메시지가 나온 뒤 저희가 미국 국무부와 접촉한 바로는 쿠팡이나 온라인 플랫폼법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그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안갯속 조 장관은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정되는 어떤 특별한 이유를 특정키가 어렵다”며 “그런 이유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추가 메시지를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인상 발표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협상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한국 국회가 무역 합의를 통과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승인하기 전까지는 한국과의 무역 합의는 없는 것”이라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또 한 번 우리나라가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의 늪에 빠진 셈이다. 동시에 쿠팡 사태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