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서 ‘바른미래당 탈당을 선언한 안철수는 과연 녹색돌풍 일으킬까?’로 설문조사하는 지면을 접했다.
안철수가 바른미래당서 철수하고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한 데에 따른 반응으로 보이는데 이와 관련해 두 건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 풀어보자.
먼저 1985년에 실시된 제12대 총선과 관련해서다. 당시 신한민주당(이하 신민당)은 창당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관제 야당으로 평가받던 민주한국당(이하 민한당)을 제치고 민주정의당(이하 민정당)에 이어 제1야당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
당시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키게 된 데는 중요한 두 가지 여건이 조성돼있었다. 첫째는 전두환정권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로 국민들 사이에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둘째는 공천과 관련해서다. 신민당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구형받았던 이철 전 의원을 필두로 전두환정권과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지닌 인사들을 대거 공천했고, 또 정치 1번지의 상징성을 지닌 서울 종로와 중구에 당시로서는 절대 약세의 입장에 처했던 이민우 총재를 내세웠다.
사실 이민우의 종로·중구 출마는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무리수로 비쳐졌었다. 당시 그 지역에 민정당의 이종찬과 민한당의 정대철이 자리하고 있었던 탓이다. 필자 역시 역부족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출마를 고사하는 이민우를 설득해 해당 지역에 출마시키고, 결국 그의 판단은 일반의 예상을 깨고 선거판서 ‘돌풍’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대장정에 돌입하도록 했다.
다음은 1996년에 실시된 15대 총선서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의 사례를 들어보자. 자민련은 김영삼정권 탄생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 전 총리가 2선 퇴진을 요구하는 YS파에게 밀려 그의 조어마냥 ‘자의반 타의반’으로 출범한 정당이다.
당시 선거서 자민련은 일반의 예상을 깨고 지역구와 전국구 도합 50석을 건지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에 이어 제2야당의 자리를 공고히 하며 후일 DJP연합 정권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당시 자민련이 선거 돌풍을 일으킬 수 있던 가장 큰 동력은 김영삼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귀결된다. 김영삼정권이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강했던 대구·경북과 충청 지역서 김영삼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선거서 돌풍이 일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 안철수와 관련해 ‘녹색돌풍’이란 표현에 접근해보자. 도하 각 언론에서는 지난 총선 때 안철수가 앞장섰던 국민의당이 호남서 약진했다는 이유로 돌풍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모양인데, 필자는 이에 대해 쉽사리 용인하기 힘들다.
앞서 간략하게 살폈지만, 선거서 돌풍은 단순한 약진이 아니라 변화의 동력으로 작용하며 집권세력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당시 호남인들의 선택은 집권세력이 아닌 문재인 대표가 이끌던 야당, 즉 민주당에 대한 경고로 돌풍이라기보다는 일종에 야당 분열이었다.
그를 간파한 문재인 대통령은 권력을 잡자마자 초대 총리로 전남 영광 출신의 이낙연을, 그 후임으로 전북 진안 출신의 정세균을 임명해 민주당에 대한 호남인들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결론적으로 안철수에게는 돌풍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또 지난 번과 같은 약진도 요원해 보이고 그가 재삼 언급한 말장난 ‘실용적 중도 정치’마냥 이도저도 아닌 정치 철부지의 몸부림으로 그칠 전망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