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vs 재벌 '전면전' 막전막후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2.07.18 11: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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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겨누자 방탄…숨 막히는 일촉즉발 대치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폭풍전야다. 민주통합당과 대기업 사이에 심상찮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아직 본게임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현 상황만 본다면 누구 하나가 무릎을 꿇어야 끝날 판이다. 일단 주도권은 민주당이 쥐고 있다. 이미 살벌한 으름장으로 선전포고한 상황. 대기업들은 지금까진 대놓고 반기를 들지 않았지만 점점 노골적인 반기류가 형성되고 있어 일촉즉발의 전면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재벌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6개 법률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민주당은 "6개 법률안은 경제력 집중 완화·불공정 행위 엄단 등 재벌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6개 법률 개정안은 ▲재벌경제력 집중완화법 ▲불공정하도급거래 개선법 ▲전속고발권 폐지법 ▲경제사범 사면권제한법 ▲사내하도급 불법파견규제법 ▲중소기업보호법 등이다. 이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결국 대기업 규제로 이어진다.

출총제 재도입 주장
"순기능 약화" 반발

가장 논란이 많은 개정안은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부활이다. 김영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출총제 재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상위 10위 대기업 집단의 모든 계열사에 대해 순자산의 30%까지만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 및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단 3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한다. 김기식 의원도 최근 출총제 부활이 담긴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민주당에서 낸 내용보다 한발 더 나아가 30대 대기업에 순자산을 25%로 제한하도록 했다.

출총제는 회사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해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막기 위해 1987년 첫 도입됐고, 외환위기 직후 폐지됐다. 이후 DJ 정부시절인 2001년 부활했다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으로 2007년 출자한도를 완화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주의)'정책을 선언한 MB정부 출범 후인 2009년 3월 폐지됐다. 부채비율 100% 미만 기업, 동종업종, 민영화 공기업, 외국인 투자기업, 국가경쟁력 강화 산업, 부실기업 등에 대한 출자는 제한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번 개정안대로 출자총액 기준을 10대 대기업에 순자산 30%까지로 정할 경우 SK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상 기업집단에 속한다. 두 그룹이 해소에 필요한 출자금액은 4조3000억원에 이른다. 만약 출자총액 기준을 30대 대기업에 순자산 25%로 정하면 대상 기업집단은 더 늘어난다. SK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을 비롯해 한진·한화·STX·LS·동부·현대·부영그룹이 해당된다. 해소에 필요한 출자금액은 12조7000억원 정도다.

당연히 재계는 출총제 부활을 반대하고 있다. 전경련은 "수출이나 해외시장 개척 등 대기업의 순기능까지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도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김동수 공정위원장은 "출총제는 실효가 없다는 지적에 폐지한 제도인데, 다시 부활했을 때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낸 개정안엔 순환출자 금지법도 있다. 재벌의 소유구조 투명화와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상호출자의 회피수단으로 전락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기존 순환출자는 3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유예기간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을 경우 의결권을 제한하도록 했다. 또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현행 200%에서 100%로 낮추도록 했다.

공정거래법 등 6개 개정안 당론으로 발의
경제민주화 등 재벌개혁 강력한 드라이브

순환출자 역시 재벌그룹들이 계열사를 늘리고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주요수단 중 하나다. 예를 들어 그룹 계열사 A사가 B사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A사는 B사의 최대주주가 된다. 이어 B사가 C사에 출자할 경우 B사의 최대주주인 A사는 B사와 C사를 동시에 지배하는 식이다. 이 경우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출자한 다른 계열사까지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순환출자는 상호출자 금지로 생겨난 편법이다. 현행법은 계열사 간 상호출자를 금하고 있는데 순환출자에 대해선 별도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순환출자 금지가 실행되면 현재 상호출자제한 대상인 63개 그룹 중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15개 그룹이 적용 대상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순환출자 해소 비용이 30조∼40조원에 이를 것으로 계산된다. 전체적으론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 셈이다.

재벌그룹 총수를 겨냥한 법안도 있다. 바로 사면법 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나 그 일가가 징역형을 선고받고 형기의 3분의 2를 복역하지 않았거나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으면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당장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총수들이 불안하게 생겼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수백억·수천억대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각각 3심과 2심이 진행 중이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300억원을 횡령하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00억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특별사면 혜택을 받은 총수들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이다. 과거 죄 지은 대기업 총수들은 대부분 특사 출신이다.

"이제 특사도 없다"
재판 중 총수 불안

민주당은 전속고발제도 개정과 국가 당사자 계약법, 하도급 공정화법도 발의했다. 전속고발제도는 현행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의 고발이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민주당은 이를 개정, 담합과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 등 중대한 위반행위에 대해선 공정위의 고발이 없이도 누구나 고발이 가능하도록 했다.

국가 당사자 계약법과 하도급 공정화법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조치다. 국가 당사자 계약법 개정안은 국가 발주 사업에 있어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의 사업 참여기회 확대를 위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회사 등 대기업의 사업 참여를 의무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도급 공정화법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납품단가 협상을 할 때 중기 업종별 협동조합에 하도급대금 조정을 위임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하도급 계약 후 90일이 지나야 가능한 납품단가 조정신청 조건을 계약 후 60일로 단축하는 내용과 대기업 파견근로자의 지위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민주당의 전방위 공세에 재계는 할 말을 잃은 분위기다. 가급적 표정 노출을 삼가고 있다. 최대한 멘트도 아끼고 있다. 혹시 트집을 잡히거나 집중 타깃이 될 가능성 때문이다.

재계 대표단체인 전경련도 조심스런 입장이다. 전경련은 "경제민주화 정책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일방적이 아닌 그 방향에 대해 충분한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대기업 관련법들이 무더기로 추진되면 고용, 성장, 투자 등에서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과 대기업 사이에 전운이 가득하다. 아직 본게임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현 상황만 본다면 누구 하나 무릎 꿇어야 끝날 판이다. 일단 주도권은 민주당이 쥐고 있다. 이미 살벌한 으름장으로 선전포고한 상황. 대기업들은 지금까진 대놓고 반기를 들지 않았지만 점점 노골적인 반기류가 형성되고 있어 일촉즉발의 전면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재계 노골적 반기류 형성
비상경영 등 뒷문 잠그기 
'외풍'에 맞불? 엄살?

실제 대기업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꼭꼭 문을 걸어 잠그는 모양새다. 정치권 ‘외풍’에 대한 대비책인 한편 대응책으로도 해석된다.

가장 먼저 롯데그룹은 지난달 비상경영 체제 전환을 선포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전 계열사는 즉시 비상경영 시스템을 구성하고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SK그룹 등도 사실상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거나 준 위기경영체제로 들어갔다. 이들 그룹의 각 주력 계열사들은 세계 실물경기 위축에 대비한 수출 유지와 비용절감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해외시장을 직접 점검하는 등 현장 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주요 그룹 총수들은 연일 임직원에게 위기의식과 이에 따른 긴장을 주문하고 있다. 총수들은 경기침체에 따른 위기를 타개할 하반기 경영구상에 몰입하기 위해 여름휴가도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인력 감축 움직임까지 감지된다. GS칼텍스는 외환위기 이후 14년 만에 영업인력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70여명을 줄일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근속 연수 15년, 만 40세 이상인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지난해 10월에 이어 또 다시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으로, 이번에 40∼50명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은 부장급 이상 임직원 1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서를 받았다. 재계에선 모 그룹도 조만간 대대적인 인력감축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신규 채용까지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물론 내년 초 채용 계획도 대폭 수정할 기업도 있다.

인력 감축 움직임에
신규 채용까지 제한

대기업들의 위축은 설문 조사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최근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 10곳 중 9곳은 올 하반기 경영 환경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못지않게 나쁠 것으로 전망했다. 긴축 경영에 들어가겠다는 곳도 80%를 넘었다. 인력 구조조정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대기업도 상당수였다.

유로존 위기로 글로벌 실물경기가 위축되면서 국내 경제사정도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들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비상경영 선언에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정치권 공세를 향한 일종의 맞불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엄살로 보기도 한다.

대기업 한 임원은 "유럽발 경제위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기업들이 비상경영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며 "비용 절감, 인력 감축, 자산 매각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와중에 '외풍'까지 덮친다면 국제경쟁력 약화 등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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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