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A는 어느 날 밤늦게까지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 기사 B를 호출해 집까지 자신의 자동차를 운전하도록 맡겼습니다. A의 동네로 가는 길이 익숙지 않았던 B는 내비게이션을 자신의 다리 사이에 끼워놓고 운전했는데, 이를 본 A는 “운전 몇 년 했느냐? 길을 잘 모르느냐?”고 물었고 이에 B는 기분이 상했습니다. 결국 A와 B는 말다툼을 하던 도중 화가 난 A는 B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하자 B는 차를 도로에 정차시키고 가버렸습니다.
도로에 남겨진 A는 대리운전 업체에 전화해 대리기사를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업체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A는 하는 수 없이 직접 차를 몰아 300m 정도 떨어진 주유소 앞에 차를 정차시킨 후, 경찰에 신고해 자신이 음주운전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음주측정 결과 A의 혈중알콜농도는 면허취소가 되는 0.140%였습니다. 이 경우 A는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죄에 해당할까요?
[A] 최근 음주운전이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되면서 이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면허정지가 되고, 100m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운전했다 해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예외 없이 음주운전죄가 성립하지요.
그런데 사안과 유사한 최근의 실제 사건서 울산지방법원은 A에게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A가 음주운전을 한 행위는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를 형법에서는 ‘긴급피난’이라 합니다(형법 제22조 제1항). 긴급피난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해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란 ①위난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행위가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것이어야 하고, ②그 피난 행위로 보호되는 이익(A 자신의 생명)이 침해되는 이익(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보다 우월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③피난 행위는 그 자체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춰 적합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법원은 A가 당시 처한 구체적 상황을 토대로 300m를 음주운전한 행위는 긴급피난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①B가 정차하고 간 도로는 평소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으로, 갓길이 없었고 자동차전용도로는 아니었지만 그와 유사해서 운전자들이 차가 주차돼있으리라 예상하기 어려운 곳임을 고려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건 당시 다른 차량들은 A의 차 옆을 지나가면서 경적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새벽 12시가 넘은 야심한 시간에 이 도로에 장시간 차를 정차할 경우 사고 위험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A는 이렇게 높은 사고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②주유소까지 300m라는,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운전했다는 것입니다. ③A는 주유소에 차를 정차시킨 후 경찰에 자신이 음주운전했다는 사실을 자발적으로 신고했다는 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비록 A가 B에게 화를 내며 차에서 내리라고 한 사실이 있더라도, A의 음주운전은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대해 A가 직접 운전하기 전에, 지인이나 경찰에게 연락해 대신 운전해줄 것을 요청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긴급피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지인이나 경찰이 새벽시간에 음주운전 차량을 이동시켜 줄 기대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지 않고, 경찰에게 음주운전 차량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켜야 하는 업무까지 추가로 부과하는 것은 정책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며 이러한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음주운전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하는 최근 경향과 달리, 이 사건은 그동안 판례가 매우 이례적으로 인정해온 긴급피난 법리를 적용해 A에게 무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그러나 긴급피난은 매우 까다로운 조건 하에 인정되므로, 사실상 소주 한 잔 마시고 운전대만 잡아도 음주운전죄가 성립한다고 기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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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윤은?]
▲ 서울대학교 법학과 석사 졸업
▲ 대한상사중재원 조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