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애 봐주는 ‘보모 경마장’ 가봤더니…

마사회 돈 세는 사이 노름꾼 부모는 병들고 애들은 방치돼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주말만 되면 어김없이 경마공원에 발 도장을 찍는 경마장 폐인들. 개중에는 가족단위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 경기가 시작되면 아빠 손을 꼭 잡고 입구까지 함께 들어왔던 아이들이 웬일인지 눈에 띄지 않는다. 아이들은 과연 어디 있을까. 1층 로비 끝에 마련된 ‘키즈플라자’는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어린이 휴게소다. 부모가 아이를 그곳에 맡겨놓기만 하면 보육교사가 알아서 아이들을 돌봐준다. 부모가 경마배팅에 집중하는 동안 아이를 봐주는 ‘보모 경마장.’ 과연 마사회의 개선된 복지시설일까, 아니면 도박을 부추기는 빗나간 장삿속일까?

따가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7월의 시작을 알리는 날, 이른 아침부터 경마공원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다수 보였다. 전날 거센 폭우로 인해 전 경기가 취소되면서 마치 ‘오늘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중장년 남성과 여성들, 심지어 젊은이들까지 경마장 안으로 들어가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맑게 갠 주말이라서 그런지 아빠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 또는 가족소풍으로 방문한 사람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말을 구경할 기대감에 활짝 웃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한국마사회
엇갈린 명암

최근 마사회에서는 대대적인 이미지 쇄신책을 내세웠다. 그 중 하나는 도박장이라는 음성적 이미지를 탈피해 가족이 주말나들이로 즐길 수 있는 가족공원 형태로 변화를 꾀한 것이다. 경마장 내 곳곳에는 금연구역이란 현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고 실내는 물론 야외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연령대별로 어린이들이 쉴 수 있는 어린이 휴게소를 만들어 부모들의 걱정을 덜게 하는 복지시설도 마련했다.

그러나 마사회의 피나는 노력에도 도박장의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금연구역이란 현판이 붙지 않은 야외공원에서는 아직도 담배를 뻑뻑 피우는 중장년층 남성과 여성들이 즐비했다.  그들의 손에는 모두 마권이 몇 장씩 쥐어져 있었고, 뭔가 심란한 듯 연신 줄담배를 피워댔다. 아예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경마예상지에 숫자를 적으며 배팅 전 당첨숫자를 골라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하철 출입구 앞에서 예상지를 팔고 있던 한 30대 남성은 취재기자에게 배팅숫자를 알려주겠다며 예상지를 적극 권했다. ‘10.3.4’라는 숫자를 차례대로 부르며 적으라던 이 남성은 아직 무직이지만 주말엔 경마장에 꼭 출근한다고 했다.

경마 예상지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이것을 보며 어떻게 숫자를 가려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거 정말 어려운 거예요. 공부해야 돼. 경마장에 와서 배팅하는 사람들 죄다 박사, 정치인 시켜야 돼요”라고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형이 있다며 어느 할아버지와 할머니 옆자리에 기자를 데려다주곤 홀연히 자리를 떴다. 아마 다른 이에게도 예상 숫자를 알려주며 중간에서 돈을 조금씩 받는 듯했다. 물론 기자는 경마장에 처음 방문했다는 말에 공짜로 숫자를 얻었다.


주중엔 카지노
주말엔 경마장

당시 현금이 5000원 밖에 없었던 기자는 과감히 오천원상당의 마권을 구매하고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관람하며 숫자를 맞춰보았다. 처음에 거의 이길 것 같았던 예상마가 3위 이하로 밀리면서 기자는 아무 배당금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아있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1만원을 투자해 20배인 20만원을 벌었다고 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기자도 욕심이 생겨 한 번 더 시도하고 싶었지만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현금만 더 있었다면 아마도 계속 배팅을 했을 것이다. 도박이라는 것이 거액이 오간다고 도박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돈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에 손을 쉽게 놓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20배 이상의 배당금을 거머쥐었던 두 사람은 그 돈으로 다시 마권을 구매하면서 끊임없는 배팅을 이어나갔다. 

기자가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방에 거주하는데 “4~5명 정도 그룹을 만들어 주말마다 서울로 원정 온다”고 했다. 할머니는 기자를 처음 보자마자 “어린 것이 벌써부터 여길 왜와! 인생 망치는 지름길이야. 오늘 처음 왔으니 이제부터 오지 마!”라고 호통치며 눈살을 찌푸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주중에 우리는 정선에 가. 카지노 하러. 주말엔 경마장에 오지. 어제 비 때문에 서울경기 취소돼서 제주까지 원정 갔다 왔어. 오늘은 새벽차 타고 서울에 올라왔고…. 여기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어”라며 걱정하듯 말했다.

놀이문화로 정착? 아이 내팽겨 두고 버젓이 노름판에
수억씩 배팅하는 사람들…“마약보다 더 끊기 힘들어”

수많은 스크린과 마권 매표소로 가득 채워진 실내경마 배팅장에는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자리가 없어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맨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마권 구매표에 숫자를 찍었고, 경기가 시작되면 스크린과 자신의 마권을 번갈아보며 소리를 지르고 배팅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서울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는 부산·제주경마까지 전국 배팅을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 예상지를 들고 싸인펜 뚜껑을 입에 물면서 열심히 숫자를 적어 내려갔고, 허름한 차림새의 아저씨들도 다수 목격되기도 했다.      


제4경기가 무르익을 때쯤 야외관람석으로 나갔다. 거기서 기자에게 관심을 보이던 60대 할아버지는 자신을 ‘정신병자’라고 지칭하며 25년 경마장 출입 경력에 대해 후회하듯 말했다. 그는 경마노름에 온 재산을 탕진하고도 마약보다 더 무서운 경마를 끊지 못해 대단히 후회하면서도 자신의 나약한 의지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해 비관했다.
그는 “여기 오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재산 탕진해서 주위 사람들한테 돈 빌려서 오거나 주말에 결혼식이나 장례식 있다고 가족한테 속이고 부조금 받아 탕진하는 사람들이 많아. 쓰레기통 한 번 뒤져봐. 부조금 봉투 쌓여있을 거야. 그리고 요즘에는 20~30대 젊은이들이 우리보다 더 심각해. 난 돈도 없고 해서 게임당 500원, 1000원씩 배팅하는데 걔네들은 한 게임당 5만원 이상씩 거액을 쏟아 붓거든. 하루에 15게임 정도 하니까 하루에 거의 100만원 탕진하는 셈이지”라며 젊은 세대의 도박중독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한탕’ 노리는
정신병자들

1인당 하루에 최대 10만원으로 정해져 있는 배팅금액 규율은 경마꾼들 사이에서 무참히 짓밟혀져 있었다. 마권 매표소의 직원이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한 매표소당 10만원씩 마권을 구매한 후 다음에 다른 매표소로 옮겨 구매하는 등의 얄팍한 수법은 이미 공공연히 성행하고 있었다. 또한 더러는 마권 구매기계를 이용해 하루에 수억원씩 마권을 구매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불법경마도박은 아직도 꾼들 사이에서 판을 치고 있어 이를 일일이 막기는 힘들어 보였다. 도박장의 이미지를 탈피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족공원을 만들어 보려는 마사회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사회에서 복지체계를 구축하려고 마련한 어린이 쉼터를 찾아가봤다. 그 큰 도박장에서 어린이 놀이방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안내데스크를 거쳐 겨우 ‘키즈플라자’라고 쓰인 어린이 휴게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 개의 칸막이 방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방은 바깥쪽보다 이용 연령대가 더 낮아보였다.

마침 휴게소에 들어섰을 때 아이를 맡기러 온 두 명의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아이를 휴게소에 데려다 주고는 바로 배팅장으로 향했다. 그곳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은 “5세에서 7세까지는 놀이기구가 많이 비치된 안쪽 휴게소를 쓰게 돼있고 7세 이상 초등학생들은 책들이 비치된 바깥 쪽 휴게소를 쓴다. 그 이상 청소년들은 출입이 금지돼있기 때문에 유아·초등학생용 쉼터로만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입구 쪽엔 몇 대의 유모차 안에 돌이 갓 지나 보이는 아기들도 눈에 띄었다. 이어 “여기에는 보육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전문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안심하고 경마게임을 즐길 수 있다”며 키즈플라자만의 장점을 내세워 안심시키듯 말했다.

‘도박 중독’ 방치하는 마사회? 부조금까지 경마장에
“경마장에 대한 바른 인식 심어주는 것이 먼저”

그때 놀이방 옆에 위치한 정체불명의 또 다른 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방안에는 중장년층 남성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배팅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 노는 곳에 도박장이라니….’

그 방은 마치 아이와 동행한 부모가 아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불안해 아이를 맡겨두고 자신들은 옆방에서 경마게임을 즐기는 용도 같았다. 마사회가 가족공원으로서 이미지 쇄신 차 만든 이 어린이 휴게소는 아이 걱정 없이 마음껏 도박을 즐기려는 부모의 마음을 대변한 ‘부모안심휴게소’로 변질돼버린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직원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 오래 머무를 수 없어 사진만 몇 컷 찍은 뒤 황급히 빠져나왔다.

올해 초까지 경마장에서 근무했다는 한 남성은 “한 사람당 10만원씩 밖에 배팅이 안 되니까 대리구매 시키는 사람들도 즐비하고, 특히 어린이휴게소가 개판이다. 부모들이 도박에 빠져서 애들을 그곳에 몰아넣고 하루 종일 방치한다”며 “특히 휴게소가 가득차거나 연령대가 맞지 않으면 더 이상 아이들을 받지 않기 때문에 겨울에는 아이들이 추위에 떨면서 밖에서 놀아야 한다. 경마에 미친 부모들 때문에 아이들만 불쌍하다”고 경마장 내 어린이휴게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허겁지겁 컵라면을 들이마시는 사람들, 한손에는 김밥, 다른 한손에는 싸인펜으로 마권 구매표에 숫자를 표기하며 한 경기도 놓치지 않으려 불타는 의욕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경마장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부모 도박 부추기는
어린이 휴게소      

현재 마사회는 배당금 중 세금 30%를 가져가는 식의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작년에 벌어들인 수익만 약 7조원을 훨씬 넘겼다. 마사회가 도박꾼을 몰아내고 도박장 이미지를 버리겠다는 확고한 결심에도 이렇게 거액의 수익을 내고 경마장이 활발히 운영될 수 있는 건 모두 경마노름에 미친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가족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마사회. 그들이 개선해야 할 점은 어린이휴게소가 아닌 사람들의 무분별한 배팅을 멈추기 위한 강력한 제재와 경마장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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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